엘리트 독식 사회, 시장 승자들의 위선 까발린다!

인자한 엘리트들은 세상의 구원자인가, 불평등의 공범들인가?

김혜연 기자 | 기사입력 2019/08/02 [10:49]

엘리트 독식 사회, 시장 승자들의 위선 까발린다!

인자한 엘리트들은 세상의 구원자인가, 불평등의 공범들인가?

김혜연 기자 | 입력 : 2019/08/02 [10:49]

미국은 뜨겁다. 1980년대 초반부터 2008년에 이르기까지 미국 사회를 강력하게 압도한 이데올로기는 이름도 찬란한 ‘신자유주의’였다. 시장의 힘과 우월성이 그 무엇보다 강조되었고, 그 안에서 각 개인의 자유는 언뜻 무한한 듯 보장되었다. 눈부신 기술 혁신은 사방을 온통 새로운 것들로 번쩍이게 만들며 물질의 풍요를 가져왔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부의 양극화를 필두로 한 ‘불평등’ 문제가 슬금슬금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다 2008년, 미국을 시작으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덮쳤다. 지난 20년간 이러한 불평등에 관해 말하는 책들이 가장 먼저 등장했다. 이어서 이 모든 불공정을 촉진했다고 지목된 신자유주의 정책을 설명하는 책들 또한 쏟아져나왔다. 컬럼비아 대학 교수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이제 새로운 장르를 준비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그런데 미국의 저널리스트 아난드 기리다라다스가 돌고 도는 콘퍼런스에서 만나 빤한 말을 주고받으며 ‘세상의 구원자’를 자처하고 나선 이들의 폐부를 정중하게 꿰뚫는 <엘리트 독식 사회>(생각의힘)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해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다. 불공평한 현 상태의 수혜자이자 미국 사회를 좀먹은 숱한 문제의 발생과 지속에 모종의 역할을 한 이들의 열망과 위선에 주목한 것이다. 인자한 엘리트들은 세상의 구원자인가, 불평등의 공범인가? 날카로운 시선과 번뜩이는 통찰을 무기로, 더 나은 세상을 내세우며 민주주의를 대체하려는 시장의 승자들을 비판하는 아난드 기리다라다스의 일갈을 간추려 소개한다.

 


 

미국사회 좀먹은 문제 모종의 역할…엘리트들 열망과 위선 폭로
글로벌 자본주의 승자들, 최고 지위 누린 채 패자들 도우려 생색
정치권력과 금융권력에 의해 길들여진 ‘지식 소매상’ 실체 까발려

 

실리콘밸리 新부호 포함 수많은 엘리트, 복지활동에 막대한 기금
그러나 소수 엘리트에 돈과 권력 집중되는 현상은 우리 시대 해악

 

‘선출되지 않은’ 엘리트, 세계의 가장 심각한 문제 떠맡아도 되나?
오늘날 개혁으로 보이는 많은 것들은 사실 현 상태의 옹호일 뿐…

 

▲ 1980년대 초반부터 2008년에 이르기까지 미국 사회를 강력하게 압도한 이데올로기는 이름도 찬란한 ‘신자유주의’였다. 사진은 미국 신자유주주의 상징으로 통하는 뉴욕 월 스트리트. <사진출처=Pixabay>    

 

“오늘날 미국의 엘리트들이 역사상 가장 많은 사회적 배려를 하는 엘리트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냉정한 숫자의 논리가 보여주는 것은 이들이 가장 약탈적인 엘리트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엘리트는 자신의 생활 방식이 위태로워지는 것을 거부하고 공공선을 위해 권력자가 희생할 수도 있다는 관념을 부정하면서 일련의 사회적 합의를 고수한다.

 

요컨대 진보는 자신들이 독점하고 그 부스러기를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상징적으로 건네겠다는 것인데, 사실 사회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그들 중 다수에게 그런 도움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엘리트들의 사회적 배려와 약탈, 예외적인 베품과 축재(hoarding), 불공정한 현 상태에서 단물을 빼먹고 그럼으로써 아마도 사태를 악화시키는 행동과 그 행동을 하는 주체가 현 상태의 사소한 부분을 수선하려고 하는 시도 사이의 연관성을 이해해보려는 작업을 하게 됐다.

 

또한 엘리트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하나의 견해를 제시하는 시도도 할 것이다. 이를 통해 그들이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행하는 활동의 장점과 한계를 더 잘 평가해볼 수 있을 것이다.”


<타임>의 논설주간 아난드 기리다라다스가 불공평한 현 상태의 수혜자이자 미국 사회를 좀먹은 숱한 문제의 발생과 지속에 모종의 역할을 한 이들의 열망과 위선에 주목하며 한 말이다. 


그는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출신으로, 2011년 아스펜 연구소의 헨리 크라운 펠로우로 선정된 저널리스트다. 헨리 크라운 펠로우는 비즈니스로 성공한 사람들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일’로 이행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으로, ‘세계의 고질적인 문제들과 씨름할 새로운 유형의 지도자 발굴’을 목표로 한다.

 

▲ 기술의 혁신을 통해 부(富)를 쌓아올린 실리콘밸리의 신(新) 부호들을 포함한 수많은 엘리트가 인간의 보편적인 복지를 위한 재단 활동에 막대한 기금을 쏟아붓고 있다. <사진출처=Pixabay>    

 

승자가 주도하는 사회변화


아난드 기리다라다스는 자신이 이러한 프로그램에 선정된 사실에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은밀한 내부로의 초대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전용기를 타고 세계를 누비는 이들과 어울리면서 머지않아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린다.


최근 수십 년간 열린 변화의 열매를 ‘아주 운 좋은 이들이 전부 챙겨갔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보통사람들의 박탈감과 분노가 극에 달한 지금, 미국의 시스템은 고장 났고 이제 바뀌어야만 한다는 인식이 뜨겁게 확산된 지금, 그곳에 모인 엘리트들은 한데 모여 ‘변화’에 관해 말하면서도 그 모임의 이득을 가장 많이 챙겨가는 듯 보인 까닭이다.


<뉴욕타임스>와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오른 그의 <엘리트 독식 사회>(원제: Winners Take All)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선한 의도로 가득 찼지만, 결국에는 사태를 악화시키고 현 상태의 사소한 부분을 수선하는 데 바쁜 한 집단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내부자의 신랄한 고백이다.


아난드 기리다라다스는 오늘날 미국의 엘리트들이 역사상 가장 많은 사회적 배려를 하는 엘리트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는 말로 르포르타주의 문을 연다. 애써 카네기나 록펠러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기술의 혁신을 통해 부(富)를 쌓아올린 실리콘밸리의 신(新) 부호들을 포함한 수많은 엘리트가 인간의 보편적인 복지를 위한 재단 활동에 막대한 기금을 쏟아붓고 있다.

 

이렇듯 엘리트가 주도하는 사회변화는 상당히 유익하고 고통을 달래주며 때로는 생명을 구하기까지 한다는 사실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아난드 기리다라다스는 곧바로 100여 년 전, 지금과 같은 혼돈의 시대에 오스카 와일드가 건넸던 말에 주목한다. 이러한 엘리트들의 유용함이 “해결책이 아니라” “곤경의 악화”라는 견해인데, 선을 행하려고 하는 일일지언정 잘 보이지 않는 해악의 공범일 때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이 아난드 기리다라다스의 주장이다.


우리 시대에 그 해악이란 아주 소수에게 돈과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이다. 단 여덟 명이 전 세계 부의 절반을 차지한 오늘날, 일부 억만장자와 수많은 백만장자는 이와 같은 집중에 관한 문제는 건드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더욱 공고히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요컨대 승자가 주도하는 사회변화는 근본적인 권력 방정식을 뒤엎지 않은 채, 세상을 그대로 유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자한 부자와 권력자들은 평등과 정의를 위한 고결한 싸움을 벌이지만, 사회질서와 그 꼭대기에 위치한 자신들의 지위를 위협할 만한 그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


이렇듯 사적이고 시장 친화적인 행위는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과 함께 절정에 이르렀고, 아난드 기리다라다스는 한 가지 까다로운 질문을 던진다. 세계화와 시장 자유화, 기술이 그들이 약속했던 편익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명백한 시점에서 ‘선출되지 않은’ 엘리트들이 세계의 가장 심각한 문제를 떠맡아도 되는지에 관한 질문이다.

 

그들만의 밀실에서 세상 재해석


그는 ‘마켓월드(MarketWorld)’라는 새로운 개념을 선보이며, 엘리트 사회의 이면을 낱낱이 파헤친다. 마켓월드는 현 상태로부터 이익을 얻으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좋은 일도 해내는 신흥 권력 엘리트의 세계를 지칭하는 표현으로서, 계몽된 사업가와 자선단체, 학계, 언론, 정부, 싱크탱크의 세계에 있는 그들의 동료로 구성되어 있다.


요컨대 네트워크이자 커뮤니티지만, 그와 동시에 일종의 문화이자 정신 상태를 가리킨다. 이들은 ‘(힘 있는) 나에게 좋은 것은 (힘없는) 당신에게도 좋은 것’이며, ‘좋은 일을 함으로써 성공한다’는 사고방식을 가리키는 ‘윈윈(win-win)’의 율법을 따른다.

 

아난드 기리다라다스는 아스펜과 다보스, 테드,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 선밸리 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콘퍼런스들에서 나타나는 윈윈의 언어를 기가 막히게 포착해낸다.

 

예컨대 그들은 ‘사랑’과 ‘연대’, ‘기회’와 ‘빈곤’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세상을 바꾸는 일에 관해 말하지만, 사실상 수많은 보통사람들이 절망스럽다고 느끼는 부분은 결코 개선되지 않는 현실에 주목한다.


“힐러리 코헨이 맥킨지에 간 이유 중 하나는 윈윈에 대한 널린 퍼진 믿음 때문이었다. 이 믿음은 신발 한 켤레를 사면 다른 한 켤레의 신발이 곧 가난한 사람에게 전달될 것임을 알고 누군가 위안을 느낄 때마다 작동했다. 어느 대학 캠퍼스에 붙은 한 장의 포스터에서도 이런 믿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연구 결과, 베푸는 것이 여러분을 더 행복하게 만든다. 이기적이라면 베풀어라.’


이 믿음은 작고한 경영학자 C. K. 프라할라드(C. K. Prahalad)가 말한 ‘피라미드 밑바닥의 행운’이라는 활기 넘치는 발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프라할라드는 대기업에 ‘윈윈 상황’을 약속했는데, 그에 따르면 ‘기업은 활기찬 시장을 이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소비자로 대우함으로써 이들도 더 이상 모욕을 당하지 않고 자율적인 소비자가 된다’는 것이다.


세계은행의 어느 난민 문제 담당 고문이 쓴 ‘시리아인들을 일터로 돌려보내는 것은 난민을 받아들인 국가와 난민 모두에게 윈윈’이라는 글에서 드러나듯이, 한때 순전히 동정심에 기초해서 주창되었던 것에 비하면 윈윈은 확실한 장점일 수 있었다. 시장 중심의 사고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공인을 받으려면 2차 세계대전 이래 가장 대규모의 인도주의적 접근이 필요한 재난 중 하나인 난민 문제도 도와주는 사람들을 위한 기회로 홍보될 필요가 있었다.


이렇듯 다양한 발상을 관통하는 것은 고통이 없다는 약속이다. 나에게 좋은 것은 당신에게도 좋을 것이다. 애셔가 이러한 방식의 사고에 끌렸던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당신은 현재의 삶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죄책감을 얼마간 덜어내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


마켓월드의 승자들은 자선행사장에 모여, 호텔 연회장에 모여, 고층 건물 회의실에 모여 사회문제를 그들 식으로 재해석한다. 잘 차려입은 차림으로 노트북을 앞에 둔 채, 마치 비즈니스를 다루듯 파워포인트와 엑셀을 이용해 현실을 수백 개의 작은 조각으로 쪼갠다. 이어서 조각들을 논리적으로 관련짓고, 경험에서 우러난 추측을 토대로 결론에 도달하면 그럴듯한 답변이 만들어진다. 이제 산뜻하고 명확하며 확신에 찬 방식으로 발표하기만 하면 그들은 사회문제 하나를 해결한 셈이다.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지식 소매상(thought leader)’이라는 새로운 지식인 계층도 눈여겨봐야 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비판자이자 권력의 적으로서 수전 손택, 윌리엄 버클리, 고어 비달 등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공공지식인(public intellectuals)’과 달리, 지적 생산에 꽤 많은 후원을 하는 대부호들과 어울리는 유형을 일컫는다.

 

▲ 지난 1월 스위스의 무장경찰 1명이 연례 세계경제포럼(WEF, 일명 다보스 포럼)이 열리는 다보스의 한 호텔 지붕 위에서 경계를 서고 있다. <뉴시스>    

 

마켓월드와 지식 소매상


“동기부여를 잘하는 연사이자 지식 소매상인 숀 스티븐슨(Sean Stephenson)은 참석자들을 향한 환영 연설에서 서밋의 목적을 야심 차긴 하지만 조금 더 솔직하게 제시했다.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듯 세 개의 자잘한 조언으로 구성되었다.

 

첫째, ‘여러분이 인류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인맥을 이 방 안에서 만들 수 있습니다.’ 둘째, ‘여러분의 경제 사정에 힘을 써줄 수 있는 친구들을 사귀게 될 것입니다.’ 셋째, ‘이 배는 술에 취해서 옷을 벗는 모임이 아닙니다. 뭐,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사회정의에 관한 모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극심한 불평등의 시대라는 엄혹한 현실 앞에서 주머니 사정을 나아지게 할 요량으로 사회정의에 접근하고, 비즈니스를 이용하여 잠재력을 해방함으로써 획기적인 변화를 만든다는 전망은 빛이 바랬다.

 

기업가들이 세상을 바꾸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수록, 이들의 거창하면서도 자기 잇속만 차리는 주장을 조롱하듯이 엄혹한 현실의 장벽은 더 굳건해졌다.

 

서밋앳시의 참석자 중 일부를 보면 이 말이 딱 들어맞는다. 비즈니스에 좋은 것이 인류에게도 좋다는, 마켓월드의 기준에서 봐도 썩 뻔뻔한 주장을 하는 실리콘밸리와 기술 세계에서 온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아난드 기리다라다스는 토머스 프리드먼, 니얼 퍼거슨, 파라그 카나 등을 예로 들며, 승자에게 진정한 위협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가치를 홍보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이들의 특징을 상세히 제시한다.

 

지식 소매상들은 주로 테드 강연을 통해 사회문제를 한입 크기로 잘라서 사람들이 겁먹지 않고 쉽게 소화할 수 있게끔 만들며, 시스템의 변화보다는 ‘희망에 찬 해결책을 강조’한다.


“정작 사이넥 본인은 지식 소매상의 부상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듯했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는 명백히 신봉했지만 ‘지식 소매상’을 으레 사기꾼이라고 비판했다. 그가 불쾌하게 여긴 이들은 재벌이 아이디어를 후원하고 사상이 상품화되는 새로운 시대에 생성되고 있었다. 그 자신이 마켓월드 순회 강연의 걸출한 인물 중 하나였음에도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을 경멸한다’고 말했다.


‘저는 동기부여 강연자 혹은 그 밖의 표현으로 자신을 지칭하는 사람들과 함께 묶이곤 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사랑하고 또 명석하다고 여기는 그들을 경멸하죠. 그들은 무대 위에 올라서 내가 알기로는 스스로도 결코 동의하지 않는 내용을 발표합니다. 사실이 아닌 엉터리를 말한다고요.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말합니다. 이봐, 친구.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라고요. 그러면 그들은 말합니다. 사이먼, 나도 먹고살아야 한다고. 이 먹고살아야 한다는 말은 진정성이 없는 일을 할 때 우리가 스스로에게 건네는 일종의 합리화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어떤 이들은 바로 사이넥을 정확히 똑같은 용어로 묘사하지만, 그는 이러한 영합을 자신이 애써 거리를 유지하는 종류의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이들 지식 소매상이 행하는 강연은 마켓월드의 돈을 받고 이루어지고, 경력 또한 마켓월드에 의해 만들어진다. 따라서 마켓월드가 선호하는 시선과 관점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기란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아난드 기리다라다스는 이렇듯 진정한 비판이 외면받고, 얄팍한 ‘포장용 아이디어’가 각광받는 현 시대에 대한 우려를 내비친다. 아울러 그는 엘리트들이 변화의 주체이자 문제의 해결사이지, 결코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세상에 확산시키는 역할을 떠맡은 지식 소매상들의 사례를 들춰낸다.

 

우리는 승자에게 우호적인 방식으로 변화를 재정의하는 지식 소매상들이 그들에게 절대 도전하지 않는 대가로 넉넉한 보상을 받는 방식 또한 확인할 수 있다.

 

상위 0.001% 사람들의 합리화


“가죽보로 덮인 탁자 주위의 붉은 의자에 전문가들이 앉았고, 이들은 세 개의 벽걸이 TV로 시선을 돌렸다. 화면에는 마켓월드가 사회문제 해결에 나설 때 필수적인 도구로 입증된 마이크로소프트의 파워포인트가 띄워져 있었다. 이 방문자들 앞에는 인류에게 알려진 가장 난해한 문제 가운데 일부인 정의와 평등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작업이 철학적인 통찰이나,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의 분명한 욕망이나, 아니면 정의와 평등의 추구를 억제하는 권력 구조에 관한 분석을 토대로 이루어질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비즈니스를 할 때 마켓월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왔듯, 그래프와 도표가 있는 슬라이드 형태로 전달될 것이었다. 더욱 포용적인 경제를 건설하는 문제는 무수히 많은 하위 범주로 세분화되어 인간의 현실은 거의 사라질 정도에 이를 것이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거의 인식할 수 없게 될 것이었다. 정의와 평등은 사모펀드의 루스가 해결할 만한 문제로 전환될 것이었다.”


그의 책에는 마켓월드를 둘러싼 각계각층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난드 기리다라다스는 자신의 책이 “한 비판자의 작업이지만, 문제의 내부자이면서 외부자인 이의 작업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새로운 도금시대, 부자와 권력자들로 가득 찬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간 아난드 기리다라다스는 방대하고 긴밀한 인터뷰와 관찰, 다양한 문헌을 인용하여 주변부에서는 결코 획득할 수 없는 신빙성과 전문성을 갖춘 생생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이들은 마켓월드가 선호하는 형태의 변화를 열렬히 신봉하거나, 혹은 의문을 제기한다.


‘문제를 야기한 바로 그 도구를 가지고 문제를 풀려는 시도’에 자신이 공모한 것은 아닌지 고민하는 사람에서부터, 실제로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있다고 믿는 상위 0.001퍼센트의 사람들을 만나 ‘스스로의 행위를 어떻게 합리화하고 있는지’ 따져 본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후 부호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에게 이득이 되는 사적인 방법을 통한 변화에 이끌리기 시작한 전직 대통령을 만나 그 고심의 흔적을 엿본다.


세상을 바꾸려는 열망으로 가득 찼지만, 결국에는 자기 본위의 관대함을 찬양하는 기업가들로 붐비는 유람선 콘퍼런스에도 참석한다. 거물급 인사들이 만들어낸, 그들에게 엄청난 보상을 안겨주는 새로운 경제 질서를 축하하는 국제 비밀회합과 기업의 리더들이 기후변화의 위험, 점증하는 불평등과 금융 불안정성을 토론하는 세션, 억만장자와 기업을 위한 세금 감면을 칭찬하고 탈규제 시도에 갈채를 보내는 저녁 식사 자리에 이르기까지 아난드 기리다라다스는 엘리트들이 속한 곳곳의 장소로 안내한다.


이들이 낡은 사회적 질서의 가장자리를 고치며 헛되이 써버린 돈과 시간은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도 사용될 수 있었다고 아난드 기리다라다스는 날카롭게 비판한다.

 

지식 소매상들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1969년의 위대한 구호를 정반대로 뒤집었다. 정치와 시스템과 관련된 문제를 바라보면서도 사소한 문제에 집중해서 본질을 협소하게 이해하도록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민주주의에 관한 질문으로 다시금 돌아온다.

 

인자한 엘리트와 불편한 진실


아난드 기리다라다스는 진정으로 더 나은 세상을 열망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는 사적 행위자들이 효율성이나 규모와 같은 지배적인 가치를 내세워 민주적인 목적을 찬탈하는 모습을 지켜볼 것이냐고 물으며 우리의 결정을 촉구한다.

 

이어서 변화를 추구하는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결론,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아난드 기리다라다스는 승자가 제공하는 인자한 도움이 아니라 좀 더 강력하고 평등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하향식 해결책에 의존하기보다는 아래로부터 세상을 바꾸는 험난한 민주적 작업에 착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선거 8개월 후 빌 클린턴은 뉴욕시 인근의 차파쿠아(Chappaqua)에 있는 집 근처에서 개를 산책시키고 있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의 팬이자, 마지막 CGI가 끝난 지 불과 몇 주 만에 이웃인 힐러리의 선거 패배로 원하던 결과를 얻은 ‘괴짜’ 우파 한 사람을 우연히 마주쳤다. 그 이웃 주민과 클린턴은 자신들 사이의 깊은 골을 두고 농담을 주고받는 전통이 있었다. 그래서 그날 클린턴은 ‘그와 함께 노닥거리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때 그 이웃은 ‘오바마와 힐러리가 제2차 남북전쟁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클린턴은 맨해튼의 40층에 있는 자신의 재단 사무실에 앉아서 우유를 넣지 않은 차를 홀짝거리며 이 이야기를 했다. 그는 미국을 트럼프 시대로 빠뜨린 그 패배를 소화하기 위해 반 년을 보냈다. 그의 아내가 실패한 후보로서 대부분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면, 그는 약간 다른, 가장 추상적인 방식으로 고통을 겪었다. 트럼프는 힐러리를 이겼지만, 그의 ‘미국 우선(America First)’ 캠페인의 추진력이 된 생각은 클린턴이 항상 거리낌 없이 목청 높여 주창해온 세계주의적인 합의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결국 아난드 기리다라다스의 책은 우아하면서도 정중한 비틀기와 위트 있는 꼬집기로 인자한 엘리트들의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큰 주목을 받았다. 마켓월드를 철저히 파헤치는 데 집중했고, 혼란스러운 시대를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의식의 환기와 명료한 분석을 제공했다.


그 결과 실리콘밸리와 다보스 포럼, 하버드 경영대학원 등 기업가와 부호들이 모이는 토론의 장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워싱턴포스트>와 <파이낸셜타임스> 등 주요 매체가 앞다투어 보도하며 강력하게 추천했다. 그의 책은 엘리트뿐만 아니라 일상의 시민들을 향한 다급한 증언이자 행동의 요청이다.


따라서 아난드 기리다라다스의 책을 읽고 나면 우리 사회의 문제가 어디부터 잘못되었는지, 진정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지 고심할 기회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가 조심스러우면서도 거침없는 문장을 통해, 오늘날 개혁으로 보이는 많은 것들은 사실 현 상태의 옹호일 뿐이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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