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참사 진상규명 청문회 스케치

옥시 대표 책임 떠넘기기…“살인기업 주제에” 피해자 격앙

김혜연 기자 | 기사입력 2019/08/30 [14:48]

가습기 살균제 참사 진상규명 청문회 스케치

옥시 대표 책임 떠넘기기…“살인기업 주제에” 피해자 격앙

김혜연 기자 | 입력 : 2019/08/30 [14:48]

소비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불량 제품과 저질 서비스의 실태를 고발하는 ‘똑부러진’ 소비자들이 늘면서 기업들도 상당한 압력을 받고 있다. 이제 소비자 문제는 정부나 소비자 보호기관의 노력으로 그치던 단계를 넘어서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몇 해 전부터 공정거래위원회 주도로 소비자 정보제공 창구인  <컨슈머 리포트>까지 등장해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이제는 소비자들도 정보로 무장하고,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지켜나가는 시대가 된 것이다. 본지에서도 독자들이 보다 합리적이고 현명한 소비생활을 영위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실용적인 소비자 정보와 자료를 전달하는 생활환경 감시 페이지를 마련한다. <편집자 주>

 


 

‘참사’ 직후 옥시 거쳐간 외국인 임직원 일제히 증인출석 외면해 원성
박동석 옥시RB 대표와 LG생활건강 관계자도 책임 회피로 일관해 질타
특조위, “참사와 관련해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조직적으로 대응한 정황”

 

▲ 가습기 살균제 참사 진상규명 청문회가 8월28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렸지만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진은 박동석 옥시RB 대표이사가 청문위원들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뉴시스>    

 

가습기 살균제 참사 진상규명 청문회가 ‘참사’라는 이름을 붙인 지 8년 만인 지난 8월28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 차원의 청문회는 이번에 처음 열렸으며, 2016년 8월 국회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청문회 이후 3년 만에 개최됐다.


하지만 특조위가 주최한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한 기업 관계자들이 “정부 탓이 크다”며 책임을 떠넘기자 피해자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날 청문회는 가습기 살균제의 최대 피해자를 낸 ‘옥시싹싹 뉴 가습기 당번’을 판매한 다국적 기업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RB)의 본사 임직원이 사태에 개입했는지 밝히고 참사 발생 이후 대응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집중 추궁하기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락스만 나라시만 RB그룹 상임이사, 아타사프달 전 대표이사·아태지역 대표, 거라브 제인 전 마케팅 디렉터·전 대표이사 등 옥시RB가 제품을 판매하고 사태가 불거진 당시 이 회사를 거쳐간 외국인 임직원은 일제히 증인으로 나오지 않아 원성을 샀고,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은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살균제를 유통시키고 사안에 조직적으로 대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날 오전 청문회에 증인으로 불려나온 옥시RB와 LG생활건강 관계자들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로 일관해 질타를 받았다.


박동석 옥시RB 대표는 청문회 신문위원이 피해자 지원 대책에 대해 묻자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다양한 원인과 다수 당사자에 의해, 장기간에 걸쳐 복잡하게 얽힌 문제”라며 “이런 복잡한 문제에서 저희(옥시RB)가 단독으로 해결책을 내놓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답했다.


박 대표는 이어 “1994년 유공, 지금의 SK케미칼이 가습기 살균제를 최초 개발하고 제조·판매했을 때, 1996년 옥시가 유사 제품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정부가 보다 안전한 기준을 만들고 관리감독을 철저히 했다면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정부와 국내 기업에 책임을 떠넘겼다.


그러면서 “2016년에 늦었지만 옥시가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 절차에 들어갔을 때 정부기관이나 원료물질 공급에 책임이 있는 SK케미칼 등이 이때라도 진정성 있게 공동배상을 위해 노력했다면 피해자가 겪는 아픔과 고통은 현저히 줄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최예용 신문위원으로 나선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지금 뭐라고 하고 계십니까. 정부에서 예전에 더 안전한 기준을 만들었더라면 기업들이 그런 제품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정부 탓을 하고 있는 거예요?”라고 따졌고, 최 부위원장이 추가 질문을 하는 동안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이 앉은 방청석에서는 ‘옥시 사기꾼’이라는 외침도 터져나왔다.


한국 옥시 대표의 발언 직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유체이탈’ 화법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고, 방청석에서는 “살인기업 주제에” “그건 피해자가 할 소리”라는 질책이 쏟아졌다.


그러자 박 대표는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인사를 한 뒤에도 “옥시RB가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지만 많이 부족한 면도 있다”며 “다만 (옥시RB 제품의) 시장점유율이 약 50% 정도인 반면 피해자 구제에 있어서 재정 부담은 85% 이상 감당하고 있다”고 말해 빈축을 샀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LG생활건강이 판매한 ‘119 가습기 세균제거’도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해당 제품은 1997년부터 2003년까지 110만 개나 팔려 옥시와 애경 제품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이 팔렸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LG생활건강의 박헌영 대외협력부문 상무는 “119가습기세균제거 제품 판매에 앞서 흡입독성에 대한 실험을 하지 않았다”고 인정하면서도 “실질적인 피해가 아직 인정된 단계가 아니다. 확정되면 신속하게 배·보상을 하겠다”고 했다.


최 부위원장은 “LG생활건강의 반응이 사건 초기 ‘우리 제품의 문제가 확인되지 않았고 확인되면 배상하겠다’고 일관한 옥시RB의 태도와 유사하지 않느냐”며 “2016년 국정조사에서 문제가 드러날 때까지 5년 간 쉬쉬하던 것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고 질타했다.


하루 전인 8월27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청문회에서는 SK케미칼·애경산업 등 전·현직 관련자를 대상으로 가습기 살균제 최초 개발 경위 및 원료공급, 제품 제조·판매 과정과 참사 대응과정의 문제점 등을 추궁했다.


최 전 대표이사와 채 대표이사를 포함해 김철 SK케미칼 대표이사,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이사, 양정일 SK케미칼 법무실장, 양성진 전 애경산업 홍보총무부문장, 이영순 전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등 10명이 증인으로 참석했다. 최태원 SK회장, 김창근 SK이노베이션 부회장,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고광현 전 애경산업 대표이사 등 7명은 불출석했다.


특조위 측은 이날 청문회에서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이 참사와 관련해 조직적으로 대응한 정황을 지적했다. 특조위는 특히 2017년 10월18일, 11월1일 회의록을 공개하면서 두 회사가 검찰과 공정위, 환경부 동향을 파악하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법 개정안을 저지하려 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안종주 특조위 비상임위원은 “1994년 유공에서 제품을 내놓을 당시 흡입독성에 대한 안전성을 확보하지 않았음에도 판매를 강행했다”고 지적하면서 “흡입독성 실험에 착수하기도 전에 안전하다, 확인됐다고 해서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고위 경영진까지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고 따졌다.


그러자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측은 공개 사과를 하면서도 배·보상 문제에 관해서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최창원 전 SK케미칼 대표이사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피해를 보고 고통을 당한 피해자와 그 가족들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 전한다”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국민 여러분께도 대단히 송구하다”고 했다.


채동석 애경산업 대표이사(부회장)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성실히 지겠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국민의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는 노력을 하겠다”고 했다.


다만 조건부 사과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최 전 대표이사는 “저희가 현재 재판 중에 있다”면서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고, 피하려고 하지도 않겠지만 판결이 나오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 가도록 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채 대표이사도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고 애경과 오래 (일을) 한 분들이 지금 구속된 상태”라며 “조금 있으면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이에 맞는 대응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최예용 부위원장은 “그렇게 조건을 달면 피해자들이 사과로 받아들이겠느냐”며 “옆구리 찔러 사과 받은 느낌에 실망스럽다”고 꼬집었다.


이틀에 걸친 청문회에도 불구하고 진상규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7월 검찰 재수사 마무리 이후 가해 기업을 제대로 처벌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을 제정하는 데까지 나아가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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