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에 가볼 만한 여행지...세계유산 주목받은 한국의 서원

태고의 자연 속에서 학문과 사색의 즐거움을 찾다!

정리/김수정 기자 | 기사입력 2019/10/04 [10:52]

10월에 가볼 만한 여행지...세계유산 주목받은 한국의 서원

태고의 자연 속에서 학문과 사색의 즐거움을 찾다!

정리/김수정 기자 | 입력 : 2019/10/04 [10:52]

서원은 인재를 키우고 선현을 모시며 시정 비판의 기능도 담당하던 조선시대 대표적인 지역 교육기관이었다. 그런 만큼 서원에는 명망 높던 유학자들의 역사와 인간적인 자취가 오롯이 배어 있다. 한국의 서원은 유생들에게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삶을 가르치고자 했다. 그리고 제향자의 정신을 건축으로 구현해 유생들이 공간 속에서 그의 삶과 사상을 체험하게 했다. 얼마 전 유네스코에서도 도동서원, 소수서원, 도산서원, 병산서원, 옥산서원, 남계서원, 돈암서원, 무성서원, 필암서원 등 한국의 서원 9곳을 자연생태와 인문생태의 관점에서 분석한 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성리학의 가치를 온전히 담고 있는 한국의 서원에는 선현들의 사상과 숨결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다. 한국관광공사에서는 ‘10월에 가볼 만한 여행지’로 국가문화재를 넘어 세계인의 유산으로 거듭난 한국의 서원들을 꼽고 있다. 우리 선현들의 사상을 공간에 녹여낸 경주 옥산서원과 논산 돈암서원의 이모저모를 소개한다.

 


 

작은 문고리도 지나칠 수 없을 만큼 회재의 학문적 열정 곳곳에…
독락당과 공수간 사이 토담 골목 타박타박 걸으면 마음마저 ‘차분’

돈암서원은 현대와 조화롭게 예를 가르치는 참교육의 산실 지향
김장생 인품과 학문 기리며 후대가 꽃담에 사자성어 채색해 새겨

 

1. 경주 옥산서원


조선시대 유교 교육기관이자 명문 사립학교인 경주 옥산서원(사적 154호)은 회재 이언적의 덕행과 학문을 기리고 배향하는 곳이다. 풍광 좋은 안강의 자계천에서 숲과 계곡이 가장 아름다운 자리에 있다.

 

역락문을 지나 무변루, 구인당, 민구재와 암수재까지 작은 문고리 하나 무심히 지나칠 수 없을 만큼 회재의 학문적 열정이 스며들었다. 엄격한 강학과 성현의 문화가 만나는 옥산서원에서 학문과 사색의 즐거움을 찾았다.

 

▲ 회재 이언적의 덕행과 학문을 기리고 배향하는 옥산서원.    


회재 이언적은 김굉필·정여창·이황·조광조와 함께 동방5현으로 꼽히는 조선시대 성리학자다. 1514년 문과에 급제한 뒤 이조정랑, 밀양부사 등을 거쳐 높은 벼슬에 오르며 승승장구했지만, 두 번이나 정변에 밀려 낙향하는 불운을 겪었다.

 

회재가 택한 곳은 본가가 있는 양동이 아니라 독락당이다. 그는 직접 구상하고 지은 독락당에서 약 7년간 기거하며 성리학 연구에 전념했다. 회재 사후 19년이 지난 1572년, 후손들이 독락당 인근에 옥산서원을 세웠다. 회재의 삶이던 성리학은 퇴계 이황에게 이어져 영남학파 학풍의 뼈대를 이루고, 그를 기리는 옥산서원은 사액을 받았다.


옥산서원 앞에는 사철 마르지 않는다는 자계천이 흐른다. 회재가 이름 붙이고 퇴계가 썼다는 세심대(洗心臺)는 ‘마음을 씻고 자연을 벗 삼아 학문을 구하라’는 뜻이다. 회재가 이 천혜의 자연을 얼마나 아꼈을지 짐작할 만하다.

 

▲ 울창한 숲과 계곡이 아름다운 옥산서원.    

 

거대한 너럭바위 사이로 힘차게 들리던 물소리가 서원 안으로 들어서니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강학에 몰두하는 데 거친 자연의 소리가 거슬리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사라지고, 적막한 고요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무변루 통문을 지나 돌계단에 올라서면 강학 공간의 마당이다. 마당은 휴식 공간인 무변루와 강당인 구인당 사이에 기숙사인 민구재와 암수재가 양쪽에 끼워진 정방형 공간이다. 전학후묘는 여느 서원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기품 있는 공간 배치가 돋보인다.


옥산서원으로 들어가는 정문은 역락문(亦樂門)이다. <논어> ‘학이’ 편에 나오는 인생의 세 가지 즐거움 가운데 유붕자원방래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에서 따온 이름이다. ‘멀리서 벗이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의미다.

 

여러 해석 중에 출세가 목적이거나 남이 알아주기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의 성숙을 위해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먼 곳에서도 사람이 찾아온다는 뜻이 가장 선명하게 다가온다.


무변루(無邊樓)는 서원 건축에서 접하기 어려운 누마루가 눈길을 끈다. 2층으로 된 무변루는 총 7칸이지만, 마당에서는 5칸처럼 보인다. 통나무 계단으로 오르는 누마루는 가운데 3칸이 대청이고, 양쪽에 온돌방이 있다.

 

‘배움에 끝이 없다’는 무변루는 서원 밖 경관을 차단하는 판문의 푸른색이 폐쇄적인 느낌이지만, 판문을 열어젖히면 푸른 자옥산과 자계천이 펼쳐진다니 상상만 해도 아름답다.


서원의 규율과 위계가 엄격해서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 외부와 만남을 삼갔다는 이야기가 실감 난다. 무변루로 가는 나무 계단은 난간이 없어 올라가기 어려울 듯한데, 내려올 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휴식에서 학업으로 돌아오는데 그보다 좋은 긴장감이 없었을 것이다.


무변루에서 마주 보이는 구인당(求仁堂)은 회재가 저술한 <구인록>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회재는 “오상(五常)의 으뜸은 인(仁)이며 이것이 심덕(心德)의 전부요, 만선(萬善)의 근본”이라고 했다. 강의와 토론이 열리던 구인당은 대청 3칸과 양쪽 온돌방으로 구성된다.

 

▲ 경주 옥산서원 구인당 대청에서 자옥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구인당에는 내로라 하던 대가들의 친필이 있다. 강당 처마에 걸린 ‘옥산서원’ 편액은 추사 김정희, 대청에 걸린 ‘옥산서원’ 편액은 문신이자 명필 이산해의 글씨다. 마루 안쪽에 걸린 ‘구인당’ 편액은 ‘무변루’와 함께 한석봉의 글씨다. 한 획 한 획 힘차고 믿음직한 글씨를 보면, 인(仁)의 선비 정신에 강한 호기심이 생긴다.

 

▲ 추사 김정희가 쓴 ‘옥산서원’ 편액.   


구인당과 무변루 사이 좌우에는 기숙사인 민구재와 암수재가 있다. 민구재(敏求齋)는 ‘민첩하게 진리를 구하다’, 암수재(闇修齋)는 ‘드러나지 않게 묵묵히 수양하다’라는 뜻이다. 민구재 툇마루에 앉아 바라본 네모난 하늘이 서원의 기운만큼 반듯하고 고요하며 아름답다. 그 안에 담긴 하늘과 산과 나무까지 옥산서원의 품위를 닮았다.


서원은 1574년 선조에게 ‘옥산’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에도 살아남은 47곳 가운데 하나인 옥산서원에는 보물급 문화재가 많다. 회재가 벼슬살이하며 받은 교지, 독락당과 강계에 유배 중이던 시기에 저술한 책 등이다.

 

국보인 <삼국사기> 본질 9책 50권이 옥산서원유물관에 있지만, 열람이 불가능하다. 또 <동국이상국전집>을 비롯한 고서 4000여 권, 호구단자와 명문, 도록 등 고문서 1156건, <회재선생문집> 책판 1123판 등 무형 유산과 기록 유산 6300여 점이 있다.


옥산서원 앞 계곡의 외나무다리를 건너면 회재가 살았던 경주 독락당(보물 413호)으로 가는 길이다. 회재가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지내던 집의 사랑채다.

 

토담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 독락당은 숲과 계곡을 집 안으로 들어오게 한 자연 친화적인 건축양식이 돋보인다. 마루와 사랑방으로 구성되고, 마당에서 바라본 풍광이 그림 같다. 엄격한 균형미와 폐쇄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옥산서원과 확실히 비교된다. 무위자연을 존중하며 학문과 수양에 전념하고자 한 회재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겼다.


독락당은 안채와 사랑채, 별당, 사당, 공수간 등을 갖춘 살림집이다. 옛 독락당은 사랑채를 칭했지만, 지금은 집 전체를 의미한다. 독락당에서 감탄을 자아내는 곳이 있다. 첫째, 독락당 옆쪽 담장에 살창을 달아 대청에서 냇가를 바라보도록 한 설계다. 토담에 뚫린 살창은 지금 봐도 신선하고 멋진 발상이다.


둘째, 독락당 뒤쪽 바위에 긴 기둥을 세워 만든 계정이다. 계곡 가까이 지은 정자로, 세속에 지친 마음에 위안을 주는 푸른 숲과 맑은 계곡을 품으려는 회재의 노력이 느껴진다. 계정 난간에 기대앉으면 계곡에서 청아한 바람이 불어온다.


회재가 태어난 서백당이 있는 경주 양동마을(국가민속문화재 189호)은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양동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 집성촌으로 전형적인 양반 마을이다.

 

서백당, 무첨당, 관가정, 향단, 심수정 등 기와집과 초가 150여 채가 있다. 심수정(국가민속문화재 81호)은 형인 회재 이언적을 대신해 벼슬을 마다하고 노모를 봉양한 농재 이언괄 공의 효심을 추모해서 지었다. 양동마을에서 가장 큰 정자로, 오래된 정원과 함께 고색창연하다.


독락당에서 북쪽으로 700미터쯤 올라가면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국보 40호)이 도도하게 서 있다. 정혜사 터에 남은 9세기 통일신라 석탑으로, 높이 5.9m에 이른다. 불국사 다보탑,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과 더불어 우리나라 이형 석탑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조형미가 빼어나 볼수록 신비롭고, 예술적인 감동을 준다.

 

<글·사진/민혜경(여행작가)>

 

2. 논산 돈암서원


논산 돈암서원(사적 383호)은 사계 김장생 사후 3년 되던 1634년(인조 12)에 후학들이 창건했다. 그 후 1660년(현종 1)에 ‘돈암’이라는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됐다. 1864년(고종 1)부터 시작된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 보존된 47곳 중 하나다. 본래 지금의 자리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1881년(고종 18) 홍수 피해를 우려해 옮겼다.


사계 김장생은 율곡 이이의 학풍을 이어받은 기호학파(당시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을 중심으로 한 성리학 학파)로, 무엇보다 예를 중시했다. 여러 문헌에서 의식 예절을 정리하고 후학을 양성했다.

 

▲ 사계 김장생의 예학 정신이 깃든 돈암서원 전경.    


그중 <의례문해>는 의식 예절에 대한 궁금증을 해석하고, <가례집람>은 가정 의식 예절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돈암서원이 이전하면서 여느 서원과 조금 다른 건축 배치를 보이지만, 예를 중시한 전통 교육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돈암서원은 현대와 조화롭게 예를 가르치는 참교육의 산실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돈암서원은 해마다 지역 유치원생부터 어린이와 청소년, 어른을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화합해 정신의 아름다움으로 향하는 예를 가르치는 서원의 진정성은 변함이 없다.

 

▲ 유림 복장을 하고 인사 예절을 배우는 학생들.    


서원에 상주하는 문화해설사는 “돈암서원이 여느 서원과 조금 다른 모습으로 우리의 유산, 세계의 유산으로 자리하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보통 서원은 외삼문에서 강당, 사당까지 직선으로 이어지는데, 돈암서원의 강당인 양성당은 중앙에서 왼쪽으로 조금 치우친 곳에 있다. 이전 당시 기술로는 본래 강당인 응도당(보물 1569호)을 옮길 수 없어, 김장생이 생전에 강학하던 양성당을 강당으로 배치했다.


양성당 앞쪽 양옆으로 유생이 생활하던 거경재와 정의재가 있고, 중앙에 돈암서원 원정비를 세웠다.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글씨는 송준길이 썼으며, 비 이름은 김만기의 글씨다. 돈암서원 창건 당시 건물 배치에 대한 설명문도 있어 사적 비교 연구 자료로 가치가 크다.


입덕문 왼쪽으로 1971년에 옮긴 응도당이 있다. 응도당을 지나 제향 공간으로 향하는 길에는 김장생의 아버지인 황강 김계휘가 학문을 가르치던 정회당이 있고, 그 옆으로 <사계전서> <신독재전서> <황강실기> 등의 목판이 보관된 장판각이 자리한다.


제향 공간은 강학 공간과 구분하는 내삼문이 있고, 담을 둘렀다. 내삼문은 문과 문 사이에 담이 이어지며, 이 담을 ‘돈암서원의 꽃담’이라 부른다. 꽃담은 장식을 위해 채색한 담을 말하는데, 돈암서원의 꽃담은 김장생의 생전 인품과 학문을 기리며 후대가 표현한 사자성어를 채색해 새겼다.

 

▲ 제향 공간인 숭례사로 향하는 내삼문과 꽃담.    

 

오른쪽부터 지부해함(地負海涵: 땅이 만물을 짊어지고 바다가 만천을 수용하듯 넓은 아량), 박문약례(博文約禮: 학문을 넓고 깊이 익혀 몸가짐을 바르게 실천하는 예), 서일화풍(瑞日和風: 아침 햇살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운 품성)이라 쓰였으며, 현대까지 돈암서원의 가르침으로 전하고 있다.


숭례사는 ‘예를 숭상하다’라는 뜻으로, 사계 김장생부터 그 제자인 신독재 김집, 동춘당 송준길, 우암 송시열의 위패를 차례로 모셨다. 보존과 관리를 위해 사당 내부는 관람할 수 없지만, 처마의 기와에 쓰인 명문 내용으로 숭례사가 응도당과 같은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숭례사 기단에서도 돈암서원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커다란 장대석으로 이곳에 모신 이들의 위상을 높이고자 했으며, 맨 위의 앞면 돌을 깎아 처마 형태로 만들어서 빗물이 흘렀을 때 기단 아래 땅으로 떨어져 흙이 튀는 것을 방지했다.


입덕문 오른쪽 경회당에는 문화해설사가 상주한다(월요일 휴무). 그 옆으로 제향을 준비하는 공간인 전사청이 있다. 제사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 평소에는 개방하지 않으니 참고하자.


돈암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백제군사박물관이 자리한다. 백제 시대 유물과 군사 문화 모형 등을 전시한다. 4D영상관을 상시 운영하며, 주말과 공휴일에는 국궁과 승마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박물관 옆으로 계백장군묘, 충장사 등이 조성된 충혼공원은 산책하기 좋고, 계백장군기념비가 있는 언덕에 오르면 멀리 탑정호가 보인다. 계백장군유적지에서 800미터 거리에 있는 탑정호수변생태공원에 들러 호수 풍경 속을 거닐어도 좋다.


논산의 서북 끝자락 강경에는 젓갈거리와 근대 역사 문화 공간이 조성됐다. 다양한 강경 젓갈을 맛보고, 현대까지 이어지는 근대건축물을 구경할 수 있다. 구 강경노동조합(등록문화재 323호) 건물은 현재 강경역사문화안내소로 운영된다.

 

여유가 되면 논산선샤인랜드도 방문하자. 1950낭만스튜디오를 무료 개방하며, 서바이벌체험장과 밀리터리체험관, 선샤인스튜디오 등을 유료로 운영한다.

 

<글·사진/김애진(여행작가)>
<콘텐츠 제공=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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