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보다 재미있는 명당야사...여흥 민씨 할머니 묘 이야기

“이 터에 나를 묻으면 후손 중 선현 줄줄이 나올 것”

글/장천규(풍수 연구가) | 기사입력 2019/10/04 [11:14]

소설보다 재미있는 명당야사...여흥 민씨 할머니 묘 이야기

“이 터에 나를 묻으면 후손 중 선현 줄줄이 나올 것”

글/장천규(풍수 연구가) | 입력 : 2019/10/04 [11:14]

천문·지리 익힌 민씨 할머니, 태종 핍박 피해 장성으로 도망
묘터 고른 후 울산 김씨 세 아들에 “나 죽거든 여기 묻어라”
민씨 남편 김온의 후손들 발복…호남의 제일가는 집안 등극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명정마을에는 여흥 민씨 할머니 묘가 있다. 그 묘 옆에는 남편 김온의 단이 있다. 이곳은 가마솥을 엎어놓은 모양이라 하여 복부혈(覆釜穴)로 유명하다.


방장산에서 뻗은 맥이 흘러내려 혈을 형성했다. 그곳에 서서 바라보면 자연적으로 어떻게 이런 형태의 혈이 맺혀졌는지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다.

 

▲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명정마을에는 여흥 민씨 할머니 묘가 있다. 그 묘 옆에는 남편 김온의 단이 있다.  


이제 민씨 할머니 야사로 들어가 보자.


민씨 할머니는 학문이 뛰어났다고 한다. 그 당시 부친은 무학대사와 친분이 두터웠는데, 민씨 할머니가 부친께 부탁을 했다.


“아버님, 제가 풍수지리를 공부하고 싶습니다.”


“여자가 무슨 풍수지리냐? 풍수지리는 남자들도 공부하기 힘든 학문이다.”


“아버님, 그래도 자연의 이치를 알고 싶습니다.”


“하는 수 없구나! 너의 고집을 누가 꺾겠느냐? 내가 무학대사를 잘 아니까 부탁을 해보마.”


그리하여 민씨 할머니는 무학대사에게 천문·지리·복서 등을 배웠고 풍수이론을 정립한 <하소결(荷沼訣)>을 지었다.


민씨 할머니는 태종 이방원의 부인인 원경왕후의 사촌 동생이다. 원경왕후와 민씨 할머니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태종이 왕이 되고 조선 건국 초기부터 태종을 도운 처남과 민씨 할머니의 남편인 김온이 있었다. 태종은 외척들의 힘이 강해지자 그 힘을 빼기 위해 원경왕후의 동생인 민무구·민무질 형제를 귀향 보내고 처형했다. 그때 민씨 할머니의 남편 김온도 연루되어 처형을 당하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원경왕후가 소리쳤다. 


“여봐라! 여봐라! 아무도 없느냐?”


“예! 중전마마 대령 했습니다.”


“지금 큰 일이 발생했다. 빨리 내 사촌동생 하소부인에게 이 소식을 전하라! 남편과 오빠들이 죽임을 당하니 빨리 자식들을 데리고 몸을 피하여 목숨을 지켜라!”

 

“예! 중전마마!”


원경왕후의 말을 들은 궁녀는 김온의 집으로 달려갔다.


“계십니까? 계십니까?”


“뉘시오!”


“예, 궁에서 나왔습니다.”


“중전마마의 전갈을 가져왔습니다.”


궁녀에게 원경왕후의 전갈을 들은 민씨 할머니는 아들 삼형제를 데리고 아무도 모르게 몸을 숨겼다. 그 후 전라도 장성 땅에 도착했다.


민씨 할머니는 산등성이에 올라가 나무로 매를 깎아 만들고 하늘로 날렸다. 그 매가 하늘 높이 날더니 한자리에 내려앉았다.


“저곳이다! 빨리 이동하자.”


민씨 할머니는 세 아들을 데리고 매가 앉은 자리에 터를 잡았다. 그리고 그곳에 집을 짓고 살았다. 그곳이 바로 백화정(百花亭)이다.


세월이 흘러 삶이 여유로워지자 민씨 할머니는 세 아들을 불렀다.


“나를 따라 오너라.”


장성한 세 아들을 데리고 명정 땅에 도착한 민씨 할머니가 말했다.


“내가 죽거든 이곳에 묻어라! 나를 이곳에 묻으면 말을 탄 자손이 밀등에 가득하리라!”


그리고 집에 돌아온 민씨 할머니는 세 아들을 앉혀 놓고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맥동마을 이 터에서 선현이 탄생할 것이다! 또, 필암은 필시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 서원이 들어설 것이다!”

 

▲ 민씨 할머니의 산소는 가마솥을 엎어놓은 모양이라 하여 복부혈(覆釜穴)로 유명하다.    


세월이 흘러 민씨 할머니의 말은 실제가 되었다.


“말을 탄 자손이 밀등에 가득하리라!”는 말대로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수없이 많이 나왔다.


민씨 할머니의 5대손에 이르러 하서 김인후 선생이 나왔다. 하서 선생은 동방 18현의 한 분이다. 동방18현은 신라·고려·조선 시대에 나라의 정신적 지주로 문묘(文廟, 공자를 모신 사당)에 종사된 유학자다.


문묘에 종사된 동방 18현은 동배향→설총·안유·김굉필·조광조·이황·이이·김장생·김집·송준길, 서배향→최치원·정몽주·정여창·이언적·김인후·성혼·조헌·송시열·박세채 등이며


옛말에 “정승 10명이 대제학 1명에 미치지 못하고, 대제학 10명이 문묘종사 현인 1명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처럼 문묘종사 현인은 신라·고려·조선 시대의 국가에서 인정하는 정신적 지주인 학자들이다.


그리고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에 하서 김인후 선생을 주벽(主壁)으로 모시고 제자 양자징 선생을 종향한 호남의 대표적 서원인 필암서원이 들어섰다.

 


민씨 할머니 말처럼 모든 일이 이루어졌다. 김온의 후손들은 발복에 발복을 거듭하여 호남의 제일가는 집안이 되었다. 울산 김씨는 1인 1명당의 규칙을 따르고 모든 묘를 거리에 상관하지 않고 명당이면 그곳을 찾아 묘를 썼으며, 현대에 이르러 부통령을 지낸 인촌 김성수,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 삼양그룹 창업주 김연수 등이 그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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