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의 장편소설 ‘몽키 하우스’ 제3부 <8> 민들레

몽키하우스 여자들은 미군에게 성병 옮길 준범인 취급을 받았다

글/김영권(소설가) | 기사입력 2019/11/15 [10:54]

김영권의 장편소설 ‘몽키 하우스’ 제3부 <8> 민들레

몽키하우스 여자들은 미군에게 성병 옮길 준범인 취급을 받았다

글/김영권(소설가) | 입력 : 2019/11/15 [10:54]

“회장입네 생색 내면서 미군 앞잡이 노릇…민들레 피 빨아먹는 마귀”
“어느 헬렐레 미군이 광란증 발작해 불 질러 언니 얼굴엔 화상 흉터”

 

“놈들이 언니의 시신 망가트려 버리면 슬픈 영혼은 어디로 가야 하나?”
“주사 맞고 쇼크사한 여자는 슬쩍 숨긴 채 으슥한 데 표시 안 나게 평장”

 

“소망식당 언니가 비참스레 살해당한 소식은 들었겠죠? 우리도 무슨 대책을 세워 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노랑머리가 말을 꺼냈다.


“글쎄, 비극적인 사건이긴 한데… 일단 미군의 수사 상황을 지켜봐야지 어쩌겠어.”


회장은 차분히 대꾸했다.


“과연 그놈들이 제대로 하겠어요? 보나마나 똥개 한 마리 죽은 것쯤으로 생각할 텐데… 한국 경찰은 쪽도 내밀지 못할 테고….”


“정자 넌 왜 그리 매사를 부정적으로만 보니, 응? 아무리 그래도 미군이 너만도 못하겠니? 첨단적인 과학수사를 해서 범인을 잡아낼 테니까, 괜히 감정적으로 설치지 마.”


회장의 표정이 냉랭해졌다.


“그래요, 첨단 장비로 과학수사를 하는 건 좋아. 하지만 미군 병사가 범인으로 밝혀져도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갈 테니 문제야. 한국 경찰은 손도 쓰지 못한 채 미군 헌병이 먼저 시체를 급히 싣고 가 버렸다는 사실 자체에서 이미 냄새가 나잖아요.”

 

▲ 아직은 폭력과 착취가 난무하는 1970년대의 사창가. 고향의 기억도 그저 어렴풋한 17세의 영은(신은경 분)은 사창가 골목으로 흘러든다. 사진은 영화 ‘창’ 한 장면.    

 

‘미친(美親) 친미(親美)라…’


“그래서, 나더러 어쩌라구?”


회장은 짜증스런 목소리를 냈다.


“내가 뭘 알겠어요, 응? 나두 답답해서 한번 와 본 것뿐인걸….”


노랑머리는 눈물을 훔쳤다.


“그래. 얘, 내가 왜 니 맘을 모르겠니. 가능한 일을 한번 찾아보자구. 하지만… 그 언닌 민들레 회원이 아니라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긴 좀 어렵지 않을까 싶어.”


노랑머리의 눈에서 일순 눈물이 멎었다.


“회원이 아니라서 못 나선다구? 정말 기가 찬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좀 알겠어. 이 동두천 바닥에서 그 언니의 따뜻한 밥 한술 안 먹어 본 년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최소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지….”


그녀는 다시 눈물을 머금었다.


“그만 하렴. 이제 이 땅에서 눈물은 현실만큼 값지지 않아.”


회장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녀의 화장한 얼굴은 잔뜩 일그러진 채 냉엄한 빛을 내쏘고 있었다. 노랑머리의 울음은 점점 애절해졌다. 말은 없었다.


“이 세상에서 온갖 고생을 하고 떠나신 분의 원혼을 달래고 시신을 고이 안장해 드리는 건 우리들 자신의 남은 생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닐까요? 설령 범인을 잡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노력을 보면 고인도 고갤 끄덕이지 않을까 싶군요.”


청운이 한마디 꺼냈다.


“호호, 그래야죠. 언제 한번 조용할 때 놀러오세요. 그때 차분히 의논해 봐요.”


그녀는 짐짓 고운 미소를 만들어 지었다.


“혹시 너무나도 바쁘셔서 도와주진 못할 땐 미군 측에 기울진 말고 그냥 냉정한 눈으로 지켜봐 주세요.”


“뭐라구요?”


“아니, 혹시… 이런 자리에 계시다 보면 본의 아니게 그런 입장에 처하게 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죠.”


“호호호, 왜 편을 들겠어요. 난 어디까지나 사심을 떠나 민들레 회장으로서 공정한 입장에서 진실하게 처신할 뿐예요. 그런 걱정은 세상을 잘 몰라서 하게 되는 풋풋한 소리일 거예요.”


“여러분들 말씀 잘 알았어요. 모처럼 방문하셨는데 제가 마침 오늘 서울에서 박대통령 영애이신 근혜 님을 만나 뵙기로 스케줄이 잡혀 있어서… 먼저 실례해야겠군요. 호호….”


회장은 호들갑을 떨며 아래층으로 내려가 버렸다.


“저 쌍년… 누구 말마따나, 미군 좆이나 빨다가 친미적으로 변한 미친 년 같으니라구… 회장입네 하구 생색은 다 내면서 실제로는 미군 앞잡이 노릇을 하며 노란 민들레들의 피를 다 빨아먹는 마귀야.”


상심한 여자는 담배를 꺼내 물곤 허연 연기를 한숨인 양 내뿜었다. ‘미친(美親) 친미(親美)라… 이 농담 같은 말 속엔 과연 얼마만한 진실과 허위가 숨어 있는 걸까?’


청운은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히죽 웃고 말았다.


‘검정고시 국사 강의록에 나오는 그 많은 옛날의 친일파들은 얼마나 다르고 얼마나 비슷할까?’


청운은 깊은 생각에 잠겨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대통령 부부와 태극기 밑에 붙여 놓은 표어를 그는 묵묵히 쳐다보았다.


‘미군은 우리의 혈맹, 온몸 정성으로 보답하자!’ ‘우리는 조국 부강을 위해 헌신하는 꽃나비 천사!’ ‘나라 없는 나 없다!’ ‘새마음 운동에 발맞춰 우리 함께 새 시대 건설!’
‘스파이라고 의심되면 지체 없이 신고하자.’ ‘빨갱이 때려잡아 조상님의 원한을 달래자….’


청운은 픽 웃으며 밖으로 나섰다. 그러고는 열린 창을 향해 심호흡을 했다.

그들은 다시 거리를 걷고 있었다.


“저 아래로 한번 가봐.”


노랑머리가 말했다.


“거기 뭐가 있길래?”


피에로가 물었다.


“아마 잘 모를 거야. 땅속에 있거든.”


“지옥인가?”


노랑머리는 아무 대꾸 없이 걸어갔다.

 

▲ 돈 많은 남자를 만나 술집을 차려 극성스럽게 운영하기도 하는 영은은 노름빚에 사기까지 당해 다시 거친 술집으로, 텍사스 촌으로 팔려 다닌다. 사진은 영화 ‘창’ 한 장면.    


민들레


번화가로부터 좀 벗어난 외곽지대인 철둑길 옆엔 이른바 기지촌 유곽 중에서도 최하류급인 히빠리들이 모여 사는 낡고 허름한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거무칙칙하게 썩어 들어가는 듯한 길바닥엔 깨진 콜라병과 찌그러진 맥주 캔 따위가 널브러졌고 휴지조각이 꽃샘바람에 날려 유령처럼 떠다녔다. 전봇대 앞에 벌그무레한 토사물이 싸였는데 한 어린 가무잡잡한 트기 소녀가 그걸 주워 먹고 있었다.


노랑머리는 그중에서도 곧 쓰러질 듯 우중충한 건물로 들어서더니 어둑한 계단을 걸어 지하로 내려갔다. 음습한 기운이 풍겨 왔다. 문 옆에 ‘민들레 홀씨’라는 작은 명패가 붙어 있었다.


노랑머리는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섰다. 좁고 어둑스레한 실내 한쪽에 자리잡은 낡아빠진 탁자 앞에 앉아 뭔가 하고 있던 여자가 얼굴을 들었다. 머리를 남자처럼 짧게 깎았지만 큰 눈과 목소리가 여자임을 알렸다.


“아이구, 불이나 좀 켜고 살지. 그깟 전기료 얼마나 나온다구….”


“어서들 오세요. 한낮에 잠깐 햇빛이 들어올 땐 고맙게 이용하는 거죠 뭐. 밖에 있다 들어와서 좀 어두울 거예요.”


“참나… 으스스 해서 귀신 나오겠구먼. 아니, 왜 또 난로는 안 켜? 마치 북극에 온 것 같아.”


“바깥은 꽃샘추위가 아직 남았죠? 여긴 그나마 견딜만 해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불을 좀 피워 볼게요.”


여자는 천천히 일어나 낡은 석유난로에 불을 붙였다. 불꽃을 작게 조절했다. 얼굴 한쪽의 화상 흉터가 불빛을 받아 드러났다. 입술도 좀 이지러진 모습이었다.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다면 좀 가려질 텐데도 굳이 짧게 깎은 게 기이했다. 마음속으론 어떤지 몰라도 겉으로는 별 개의치 않는 성싶었다.


“이 언닌 참 대단해. 이 언니 인생이 왜 이렇게 된 줄 알아요? 좀 죄송스런 말이지만, 이 언니가 원래는 어여쁘고 복스런 인상이었댔어요. 클럽에서 인기도 좋았죠. 그런데 어느 헬렐레(술과 마약에 취했다는 뜻)한 미군 놈이 광란증이 발작해 불을 지른 거야. 전생에 무슨 악연이 있었을 리도 없으련만… 언닐 이렇게 만든 그놈은 쥐새끼처럼 미국으로 내빼 버렸어.”


“뭐 그런 얘길… 그만해요.”


여자의 제지에 노랑머리는 잠시 입을 다물었으나 곧 말을 이었다.


“이 언닌 그런 불운에 굴하지 않고 다시 정신을 차려… 그동안 모아뒀던 돈으로 셋방을 얻어 홀로 이 일을 시작한 거예요. 여긴 지치고 가련한 사람들의 원두막 같은 곳이죠. 미군과 한국 놈들은 말 잘 듣고 아첨하는 아까 그 도둑년에겐 많은 혜택을 주면서도 이곳에 대해선 사사건건 트집잡아 괴롭히려 들어요. 후유….”


노랑머리는 한숨 섞인 담배연기를 훅 내뿜었다.


“민들레 홀씨엔 어떤 뜻이 들어 있나요?”


청운이 물었다.


“별다른 건 없어요. 민들레꽃은 우리들의 소망과 영혼을 상징하지요. 민들레회엔 이곳 대부분의 여성들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어요. 그러지 않으면 아예 클럽에 출입할 수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회비를 내면서도 그곳에 가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전혀 갈 수조차 없는 불우한 여자들도 있지요. 그런 의지가지없는 분들에게 무슨 힘이 되어 준다기보다는… 오히려 제가 그분들의 힘을 받고 있는 셈이랄까요.

 

그런데… 민들레회가 잡음이 많은 단체이긴 해도 굳이 사갈시하긴 싫었어요. 우리가 힘을 모아 서서히 바꿔 나가면 언젠가 새로운 민들레가 필 테니까요. 그래서 홀씨라는 말을 군더더기처럼 붙여 본 것뿐이에요.”


여자는 어눌하면서도 차분히 말했다.


곰팡이가 핀 벽엔 대통령 사진도 새마음 운동 표어도 붙어 있지 않았다. 그저 하얀 백지에 ‘민들레 홀씨는 우리 마음속의 꿈, 사랑, 진실, 독립성, 자유…’라는 글이 단정히 씌어 표구돼 있을 뿐이었다.

 

슬픈 영혼 어디로 가야 하나?


“그나저나 소망식당 엄니가 그렇게 돼서 어떡해? 언니도 이미 들었지?”


“좀전에 누가 전화를 해줘 대충 듣긴 했는데… 대체 어찌 된 일일까요?”


“글쎄, 그 지장보살님 같은 분을 대체 누가….”


노랑머리는 다시 분을 못 이겨 눈물을 흘렸다.


“시신을 가져가 버렸으니… 일단 좀 기다려 보자구요. 곰곰이 생각해 봐도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짧은 머리 여자가 신중스레 말했다.


“놈들이 언니의 시신을 망가트려 버리면 슬픈 영혼은 어디로 가야 하나요?”


“설령 좀 훼손되더라도 넋은 알아볼 거예요. 나도 이런 꼴로나마 살아 숨 쉬고 있잖아요.”


“어머나!….”


노랑머리는 말을 잇지 못한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작아서 우울해요. 그래도… 뭔가 찾아서 해야지요. 우선은… 장례식에 대해 좀 의논해 보는 게 어떨까 싶네요.”


“그게 좋겠어요.”


노랑머리가 두 손등으로 눈물을 싹 훔치고 나서 담담히 말했다.


“몽키하우스에 계신다고 좀전에 들었는데… 거긴 요즘 별일 없나요?”


짧은 머리 여자가 청운을 보며 물었다.


“예, 그럭저럭….”


“그곳에선 불상사가 자주 일어나곤 하는데 다행이네요.”


“글쎄, 듣고 보니 그렇네. 출감해서 돌아온 애들 얘길 들으면 죽고 다치고 장난 아니던데… 요즘엔 그런 소식이 없었어. 지옥이지만 재미있어서 한번 더 들어가 보련다는 미친년도 있더라니깐.”


노랑머리가 중얼댔다.


“흠, 내 생각엔… 히히, 그게 왠지 이 친구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요로코롬 19세기 타입으로 후지게 생겼지만 여자들한텐 좀 인기가 있으니까 말이유. 헤헤….”


피에로가 끼어들었다.


“쓸데없는 소리 좀 닥쳐! 남성미 때문이 아니라 꺼벙해 보이면서도 허무적인 어떤 인간미에 끌린 모양이니깐.”


노랑머리가 핀잔을 주었다.


“그게 그 소리지 뭐.”


“하기야… 자살하고픈 사람에겐 인간적인 말 한마디가 도움이 되겠죠.”


짧은 머리 여자가 손을 들어 상처 입은 자신의 한쪽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한 달이면 두세 건씩 사고가 일어났었는데 묘하긴 해.”


노랑머리가 입속으로 중얼댔다.

 

몽키하우스의 비밀


청운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그곳에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모르는 게 많았다. 청운 스스로 철창 속에 갇힌 수녀(囚女)들에게 굳세게 살아야 한다는 둥의 인생 설교를 한 적은 없었다.

 

그래도 현실의 쇠창살은 어쩔 수 없을지언정 마음속의 창살만큼은 걷어내고, 같은 인간으로 누이로 대하면서 가능한 한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려 한 건 사실이었다. 그것이 그녀들에게 어떤 위안을 주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자신이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고 할까. 선감도 수용소나 악마산 지옥훈련 후의 북파공작원 활동 등은 수시로 그의 뇌리 속을 강박하고 있었으므로….


몽키하우스의 여자들은 범인은 아니지만 미군에게 성병을 감염시킬 수도 있는 준범인으로 취급돼 그곳에 갇혀 있었다. 왜 근원지인 미군 새끼들은 그냥 두면서 자기네만 짐승처럼 가둬 두냐며 억울해 불만을 토해냈다. 그러다가 사람답게 살아보자며 차라리 목숨 걸고 탈출을 감행하는 것이었다.

 

첫 단계는 옥상으로 올라가 뒷마당 쪽으로 뛰어내려야 했다. 튼튼한 남자라면 가능하겠지만 여자들은 독한 마음을 품었더라도 머리를 다쳐 죽거나 대부분 부상당한 채 잡혔다.


설령 무사히 내려섰다 하더라도 이번엔 날카로운 철조망이 쳐진 높은 담을 넘어야 했다. 그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혹시 피투성이가 된 채 담벼락 위에 겨우 올랐다고 하더라도 캄캄한 밤중에 그녀는 죽음보다 더한 공포와 고독감으로 온몸을 떨었으리라 싶었다.


탈출이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라 한다면 페니실린 주사로 인한 쇼크사는 불가항력적이었다. 정기적으로 모든 수용자들에게 투약하는 페니실린은 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각 개인에 알맞게 양을 조절해야 하는데도, 성병균을 단시일에 완전히 박멸한다는 구호 아래 담당자들은 가장 강한 어떤 가상의 신체를 기준으로 삼아 일률적인 단위를 주사했다. 그건 독재 권력의 전황과 다름없었다.

 

많은 여자들이 페니실린 알레르기로 인해 괴로워했고 때로는 쇼크 반응을 일으켰다. 멀쩡하던 여자가 진료실을 걸어 나오다가 갑자기 쓰러져 사지를 파르르 떨며 극심하게 헐떡거렸다. 해쓱해진 얼굴에 식은땀을 흘리며 헛구역질을 하다가 의식을 잃곤 끝내 저승사자에게 끌려갔다. 그래서 여자들은 페니실린 주사를 무엇보다 두려워했다.

 

감금, 원숭이 취급보다 언제 자기에게 닥칠지 모르는 ‘나도 모르는 나의 허무한 사라짐’을 더 못 견뎌 그녀들은 탈출을 감행하는지도 몰랐다.


청운은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겼다.


‘비밀…’


노랑머리의 말마따나 달포 동안 탈출 사고가 없었던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몽키하우스에 들어간 며칠 후에 청운은 어떤 여자의 시체를 보았다. 환경미화과 소속 청소부인 장씨와 함께 어스름녘에 담가(擔架)를 들고 뒷산으로 올라갔었다. 마대자루 밖으로 비어져 나온 발을 보고 여자인 줄 알았다.


“어디로 가는 거죠?”


앞장선 중늙은이를 향해 청운이 물었다. 장씨는 헛기침을 한번 했을 뿐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으슥한 곳에 멈춘 그는 들것을 내려놓은 뒤 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삽이 한 자루뿐이라 번갈아서 했다. 적당한 구덩이가 마련되자 장씨는 청운을 재촉해 함께 시체를 넣었다.

 

흙을 덮기 전에 그는 마포를 슬쩍 들쳐 보더니 “선애 년이군. 쳇, 잘 가거라”라고 내뱉곤 삽질을 했다. 청운이 삽을 받아 마무리를 하는 동안 장씨는 담배를 꺼내 물고 천천히 연기를 내뿜었다.


“어이, 신참… 이건 비밀이야. 뭐 설령 알려지더라도 별 대단스런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여기 있는 동안은 모르는 척 입을 다무는 게 좋을 게야.”


“얘길 듣기 전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아저씨 말을 굳이 듣고 보니 좀 이상스런 생각이 드는군요. 어찌 된 사연이죠?”


“계집애들이 도망치려다가 떨어져 죽거나 총에 맞아 뒈지면 드러내 놓고 욕을 하면서도 공동묘지에다 묻어 줘. 그런데 주사를 맞고 쇼크사한 경우엔 가능한 한 슬쩍 숨긴 채 이런 으슥한 데에 표시 안 나게 평장을 해버리고 말지. 물론 뻔히 알려져 도저히 숨길 도리가 없을 경우는 예외지만….”


산을 내려오는 도중 청운이 물었다.


“이런 경우가 많은가요?”


“그딴 건 묻지 마. 나도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니까 말야.”


장씨는 혀를 쯧쯧 차더니 고개를 틀어 침을 찍 내갈겼다.


‘비밀….’


청운은 얘기 한번 나눠 본 적 없는 어떤 양색시의 시체를 가슴속에 묻어 둔 채 그 후로 아무에게도 꺼내지 않았다. 피에로 형과 함께 술을 한잔 할 때 슬쩍 털어놓으면 속이 시원해질 듯싶은데도 끝내 그러지 못했다. 꼭 장씨 영감의 언질 때문만은 아니었다.


‘굳이 그런 얘길 해봤자 뭘해. 비밀도 비밀끼리 사귀는 시간이 필요한가 봐. 선감도와 악마산에서 비밀이니 기밀이니 강박하던 말들이 과연 진실한 기밀일까? 놈들이 만들어 놓은 비밀… 그것으로 사람을 조종하려는 술수였는걸. 그런 건 싫어.

 

어릴 때부터 그런 가짜 비밀을 가축 사료처럼 먹고 살아서 그럴까. 차라리 장씨 영감을 목 졸라 죽이는 게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군. 그가 말한 비밀을 내 입으로 지껄이긴 싫어!… 아냐, 그게 아니야. 숲속의 그 으슥한 구덩이는 내 가슴속인지도 몰라.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좀 쉬고 싶어. 비밀과 비밀끼리 사귀도록. 하기사 그 시체는 이미 아무 비밀도 아니겠지만….’


청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입을 열려고 할 때 노랑머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암튼 저쪽 꼴통 회장 년이 정식 회원이 아니라면서 개수작을 부리니 우리끼리 일단 소망 언니의 장례를 준비하도록 해요. 그럼 차츰 사람들이 모이겠지.”


“그렇게 되도록 함께 힘을 모아 봐요. 그분은 우리 모두의 대모(代母) 같은… 그늘도 그윽한 고목 같은 존재였건만… 어찌 그리 속절없이….”


흉터 진 여자의 옆얼굴에 눈물이 한 방울 여린 굴곡을 그리며 흘러 내렸다.


<다음 호에는 ‘담요부대’가 이어집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포토뉴스
12월 둘째주 주간현대 1123호 헤드라인 뉴스
1/3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