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고국 찾은 장한나, 트론헤임 심포니와 내한공연

“망원경으로 음악세계 보고파 첼로 대신 지휘봉 잡았죠”

인터넷뉴스팀 | 기사입력 2019/11/15 [11:54]

5년 만에 고국 찾은 장한나, 트론헤임 심포니와 내한공연

“망원경으로 음악세계 보고파 첼로 대신 지휘봉 잡았죠”

인터넷뉴스팀 | 입력 : 2019/11/15 [11:54]

2013년 2월 노르웨이의 세 번째 도시 트론헤임의 날씨는 귀가 꽁꽁 얼어붙을 정도로 추웠다. 하지만 그곳에 막 당도한 첼리스트 장한나(37)는 뜨거웠다.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객원 지휘를 앞둔 상황. 첫 협연에도 이 오케스트라와 찰떡궁합의 호흡을 보여준 장한나는 이후 수석 객원 지휘자가 됐다. 그리고 2017년 8월 상임지휘자로 취임했다. 장한나가 마침내 지난 11월13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내한공연을 펼쳤다. 장한나가 지휘자가 된 뒤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악단을 이끌고 내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09년에 설립돼 110년 역사를 지닌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내한공연을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노르웨이와 한국 수교를 맺은 지 60주년, 장한나가 열한 살 때인 1994년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로 우승하며 세계무대에 데뷔한 지 25주년이 되는 해다.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내한해 순회공연
“지휘로 위대한 작곡가들 표현…눈과 귀 열리는 것 같다”

 

“정말 위대한 교향곡 공부 해야겠다는 생각에 철학 전공”
“구체적 계획은 없지만 미래에 첼로 연주할 가능성 있어”

 

지난 11월11일 오후 서울 중구 더 플라자호텔에서 만난 장한나는 북유럽의 차가운 날씨를 겪었음에도 여전히 뜨거워 보였다.


“제가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사랑하는 이유는 단원들이 무대 위에서 열정에 불 타는 연주를 들려주기 때문”이라면서 “자신을 연주에 쏟아붓는 단원들의 모습이 저와 비슷하다”고 웃었다.

 

▲ 지휘자 겸 첼리스트 장한나가 11일 오후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장한나&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나를 넘어 ‘우리의 음악’으로


어릴 때부터 ‘첼로 신동’으로 통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은 장한나는 2007년 지휘자로 다시 태어났다. 첼리스트와 지휘자의 차이점을 분명히 했다.


“솔리스트는 ‘나 자신과 싸움’을 해야 해요. 스스로 실력을 갈고 닦고 그걸 충분히 감당해야 하죠. 반면 오케스트라는 나를 넘어 ‘우리의 음악’을 통해 하나의 비전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걸 위해 함께 노력하고 열정을 공유하며 주고받아야 하죠.”


또 솔리스트는 연주 여행을 통해 여러 도시에 단기간 체류하는 반면, 상임 지휘자는 오케스트라가 있는 곳이 ‘음악적 집’이 된다고 했다. 미국 뉴욕에 집이 있는 장한나는 한국이 제1의 집이고 트론헤임이 제2의 고향같다고 했다.


“오케스트라가 있는 도시의 청중과 관계가 쌓이면서 예술단체의 발전에 기여하게 되고 전통의 일부가 돼 가기도 하죠.”

 

장한나가 지휘봉을 들게 된 까닭은 시야가 좁아지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첼로는 레퍼토리가 비교적 한정돼 있다. 음대 진학이 아닌 하버드대에서 철학을 전공해야겠다고 결심할 무렵 장한나는 “정말 위대한 교향곡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첼로 연주는 현미경으로 큰 음악세계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망원경으로 음악세계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말러, 브루크너, 베토벤 악보를 사서 그것을 뚫어져라 봤어요. 오케스트라는 개별 악기들이 모여 하나의 더 큰 악기가 되는 과정이죠.

 

위대한 작곡가들이 표현한 무한한 가능성으로 눈과 귀가 열리는 것 같았어요. 지휘를 할 때는 단원들과 음악이 정말 위대한 점, 왜 웃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공유해요. 진심으로 소통하려고 매일 노력을 하고 있죠. 분명 힘들고 어려운 점이 있어도 ‘물 만난 물고기가 이런 느낌일까’라며 행복해하고 있죠.”


하지만 첼로는 자신의 음악적 첫사랑이라며 끈을 놓지 않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지휘자로서 역에 몰두하지만 첼로에 대한 사랑도 놓지 않고 있어요. 멜로 드라마 같기도 하네요, 하하.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미래에 연주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습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삶도,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는 삶도 모두 좋아요.”

 

▲ 지휘자 겸 첼리스트 장한나가 11월11일 오후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장한나&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 기자간담회를 마친 뒤 로아르 라이난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 대표(오른쪽)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노르웨이 알짜배기 악단 리더


이번 내한공연에서 장한나와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 1번과 피아노 협주곡,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을 들려줬다. 피아니스트 임동혁(35)이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했다. 비슷한 나이의 장한나와 임동혁은 모두 EMI클래식(현 워너클래식) 전속 연주자로, 활동 시기도 비슷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한 무대에 선 적은 없다고.


특히 그리그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현지인들이 이 작곡가에 대해 갖고 있는 자부심은 대단하다고 한다. 장한나는 “그리그는 노르웨이의 정신적 목소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한 그리그의 곡을 장한나와 임동혁의 협연으로 한국 팬들이 들을 수 있었다. 장한나는 임동혁에 대해 “이름만 알고 지금껏 만나본 적이 없어요. 그리그를 꼭 연주하고 싶었는데 (이번 공연을 주최한 한국 기획사인) 크레디아에서 동혁씨 추천을 해줬어요. 기대가 컸죠”라고 했다.


노르웨이 인구는 약 500만 명인데, 트론헤임에는 약 16만 명이 산다. 트론헤임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K팝 마니아들에게 이미 익숙하다. 그룹 ‘소녀시대’ ‘엑소’ 등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과 주로 협업한 작곡팀 ‘디자인뮤직’이 이곳에 산다. 장한나는 “인구가 적고 아담한데, 있을 것은 다 있어요. 오케스트라, 연극단 등의 문화수준은 세계적입니다”라고 귀띔했다.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알짜배기 악단이다. 그동안 젊고 재능 있는 지휘자들이 거쳐갔다. 영국 출신 대니얼 하딩(44)이 1997~2000년 지휘봉을 잡았다. 폴란드 출신의 크시슈토프 우르바인스키(37)가 2010~2017년 이끌었다.


그간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리버풀 필하모닉, 나폴리 심포니, 시애틀 심포니, 이스탄불 필하모닉, 도쿄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을 지휘했으며 2013년에는 카타르 필하모닉의 음악 감독을 맡아 영국 최대 클래식 음악축제 BBC 프롬스에 데뷔한 장한나는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대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장한나는 “트론헤임 단원들은 제가 무언가를 제시했을 때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요. 뜨뜻미지근하게가 아닌 진심으로 도전하는 오케스트라입니다”고 평가했다.


이번에 함께 내한한 로아르 라이난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 대표는 장한나가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이후 2년간의 변화에 대해 “트론헤임 도시에 많은 활력을 줬다”면서 “그녀의 음악에 대한 접근, 레퍼토리를 넓혀가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에너지와 기획력이 오케스트라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가 바라보는 나’가 중요


장한나는 2014년 카타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QPO)의 음악감독직을 돌연 사임,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급부상 중인 이 오케스트라의 BBC 프롬스 데뷔까지 이끌었는데 2년의 임기의 절반만 채우고 물러났다.


“카타르필은 2013년에 맡고, 첫 시즌에 15주를 연주했어요. 트론헤임에서는 1년에 8주를 연주하니 (카타르필을 위해) 노력을 많이 한 거죠. 카타르필에는 젊고 유망한 단원들이 많아요. 외국 단원들의 개성이 하나로 모이는 점도 있죠.

 

하지만 사임 당시 오케스트라의 미래와 제 자신의 비전을 맞추기 힘들었습니다. 중동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지역사람들에게 음악을 허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많았죠. 제가 할 수 있는 1년 동안 최선을 다했고 서로 갈 길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장한나’하면 항상 따라붙는 수식어가 ‘신동’이다. 이날 간담회의 사회를 본 이상민 워너뮤직코리아 이상민 이사는 “장한나씨는 CD 시대의 최절정기를 보낸 신세대 연주자”라면서 “피아노, 바이올린에 치중된 클래식 업계 시장을 첼로까지 확장시킨 업적이 있다. 당시 장한나씨 덕에 첼로 학원이 10배 이상 늘어났다는 증언도 있다”고 했다.


그런 장한나가 보는 요즘 신동들은 어떤 모습일까. 그녀는 “너무 예쁘고 자랑스러워요. 저도 나이가 들어가나 봐요. 20대만 봐도 푸릇푸릇하고 좋아요”라며 이모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콩쿠르에서 자신을 우승자로 선정한 옛 소련의 거장 텔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1927~2007)가 친필로 적어준 내용들을 떠올렸다. 한 달에 4번 이상 연주하지 말기, 음악 안 하는 친구와 놀기, 어린 시절을 최대한 즐기기, 남들이 가는 학교를 가서 또래처럼 경험하기 등등.


장한나는 “다른 신동이 100번 연주할 때 저는 40번 정도 연주했어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덜 받은 것 같아요. 지금도 그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대에 서지 않아도 불안함이 없어요. 그 기간은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값진 시간이니까요”라고 강조했다.


첼로 연주자에서 지휘자로 가는 길이 두렵지 않았다고 돌아본 장한나는 “제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알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이 어떤 음악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남들이 콩쿠르에 출전해서 입상한다고 해서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요. ‘남의 시선에서 보는 내가 아닌 내가 바라보는 나’가 중요하죠. 자신의 음악에서 탐험가가 되고 개척가가 되는 꿈을 가졌으면 해요. 인생은 한 번이잖아요. 내가 주인공이니까, 내가 만족하는 인생이 100점짜리 아닐까요.”

 

“언젠가 베를린 필 지휘하고파”


장한나는 2006년 클래식 음악 전문 그라모폰 선정 ‘내일의 클래식 슈퍼스타 20인’에 뽑혔다. 2015년 영국 클래식 전문 <BBC 뮤직 매거진>이 선정한 ‘현재 최고의 여성 지휘자 19인’에 들기도 했다.


하지만 뉴욕 필, 베를린 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을 지휘한 첫 여성 지휘자 안토니아 브리코(1902∼1989)를 다룬 영화 <더 컨덕터>에도 드러나 있듯 여전히 여성 지휘자에게는 ‘유리 천장’이 존재한다. 이 영화에서 명시되듯 현재 ‘세계 20대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나 음악감독, ‘세계 50대 지휘자’ 중에 여성은 없다.


장한나는 “클래식계뿐 아니라 인종, 여성, 나이에 대한 수많은 차별이 존재하는 것이 우리 사회”라면서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장한나가 한국을 찾은 것은 5년 만이다.


“이번에 오니까 ‘한국이 이렇게 좋았나‘ 싶어요. 엄마랑 같이 너무 좋아하고 있어요. 하하.”


개인적으로는 한국 클래식 음악 업계에 대해서도 고민 중이라고 했다. “한국에 베를린 필 같은 오케스트라가 100년 뒤에 나올 수 있는 씨앗을 뿌리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안정적으로 콘서트홀에 상주하며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오로지 음악에만 주력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가 한국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말미에 한마디도 더했다. “언젠가는 베를린 필도 지휘해야죠!”


한편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서울 공연 이후인 11월14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11월16일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 11월17일 익산예술의전당 무대에도 올랐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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