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의 장편소설 ‘몽키 하우스’ 제3부 <10> 할미꽃

양색시라 불리는 여자들의 영혼처럼 느껴지는 ‘아, 할미꽃…’

글/김영권(소설가) | 기사입력 2019/11/29 [11:11]

김영권의 장편소설 ‘몽키 하우스’ 제3부 <10> 할미꽃

양색시라 불리는 여자들의 영혼처럼 느껴지는 ‘아, 할미꽃…’

글/김영권(소설가) | 입력 : 2019/11/29 [11:11]

쇠창살 속에 갇힌 여인들에게 봄은 오히려 독약 같은 스트레스
‘얼마 전 돌아가신 백발 할매 설움이 눈물처럼 맺힌 것만 같아’

 

피난민들은 두려움에 떨며 몸을 움츠렸고 미군들은 공포탄을…
민들레와 질경이꽃이 핀 길을 미군의 포로 꼴이 되어 허겁지겁

 

꽃샘바람도 어느덧 스러지고 봄기운이 한결 완연해져 갔다.


황토 속에 뿌리를 뻗은 나무들의 잎사귀는 연초록으로 치장했으며 산 여기저기 연분홍 꽃이 활짝 피어났다. 만물의 생명의 약동하는 계절….


하지만 쇠창살 속에 갇힌 여인들에겐 오히려 독약 같은 스트레스였다. 욕구불만으로 인해 짜증을 내고 신경질을 부리던 여자들은 차츰 무기력감에 젖어 우울 증세를 나타냈다.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 서로 미친 닭처럼 싸우기도 했지만 기력이 약해진 상태라 곧 그만두곤 한숨이나 푹푹 쉬었다. 자신의 팔뚝을 물어뜯어 피를 빨아먹는 여자도 있었다.


청운은 소요산 골짝을 올라 나무 하는 틈틈이 굵은 칡을 캐어내 인연 닿는 여자들에게 나눠주었다. 그걸 질겅질겅 씹으며 욕구불만을 해소하고 깊은 땅속의 기운을 조금이나마 받아 생기를 찾길 바랐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더 힘을 내어 살아남아야 하지 않을까?

 

▲ ‘갓 피어난 소녀 같은 꽃이 왜 할미처럼 보일까? 하얀 솜털과 구부정한 허리 때문인 듯싶은데… 너무 애처로워.’ <사진출처=Pixabay>    

 

무덤 옆에 피어난 할미꽃


그런 어느 날, 청운은 지게를 소나무 밑에 세워 둔 채 어느 주인 모를 무덤가에 드러누웠다. 따스한 볕이 잘 들고 잔디가 유난히 포근스러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보다 노란 옛 잔디가 훨씬 더 많았다. 따사로운 햇볕을 늙은 잔디가 애잔히 빛났다. 무덤 옆에 피어난 어린 할미꽃을 바라보던 청운은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

 

그는 손을 내밀어 할미꽃을 살살 쓰다듬어 보았다. 빌로드처럼 부드러운 감촉이었다.


‘갓 피어난 소녀 같은 꽃이 왜 할미처럼 보일까? 하얀 솜털과 구부정한 허리 때문인 듯싶은데… 너무 애처로워. 마치 아름다운 처녀 시절을 헛되이 잃어버린 여성의 모습이야… 아니, 어쩌다 보니 겉늙어 버린 피에로 형이나 나의 초상화라고도 할 수 있겠어. 먼 옛날, 고향 뒷동산에 피어난 할미꽃을 보노라면 왠지 어린 마음속에 슬픔이 고이곤 했었지. 하구 많은 꽃 중에 왜 하느님께서는 저 애처로운 꽃을 무덤가에 피어나게 하셨을까?’


그는 할미꽃의 굽은 허리를 살며시 펴 주려다가 그만두었다. 눈가에 눈물 한 방울이 돋아나 햇빛 아래 반짝였다.


‘할머니꽃에 설움의 눈물이 맺힌 것만 같아. 아, 이 꽃이… 얼마 전에 돌아가신 백발 할매와 양색시라 불리는 여자들의 수많은 영혼처럼 느껴지는 건 내 망상일까?’


그가 눈을 감자 눈물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잔디 속으로 스며들었다.


‘왠지… 내 인생이 저렇게 될까 싶어 좀 두렵기도 해. 까마득한 옛날, 어디인지도 모를 고향 뒷동산에서… 따사로운 무덤가에 엎드려 누운 채 지금처럼 할미꽃과 노란 민들레를 바라보며 문득 상여가 나가는 몽상에 잠겼었지.

 

아마 선명한 노란 색깔이 현실을 떠나 명도(冥途)로 들어가는 환영을 불러일으켰는지도 몰라. 죽음 자체가 별로 무섭지 않다기보다 신비스런 어떤 세계를 얼핏 보여주는 듯싶었지. 왠지 슬펐어. 동무 애들은 다 딱총을 들고 전쟁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왜 나만 그랬을까?

 

나중엔 대장 녀석의 호통에 놀라 총싸움을 하다가 뒤로 굴러 꽤 깊은 구덩이 속에 떨어진 적이 있었지. 발목이 시큰거리고 옆구리가 결렸지만 난 가만히 웅크려 있었어. 눈을 꼭 감은 채, 동무애들이 불러도 죽은 척 대답하지 않았었지. 그 애들의 목소리엔… 나를 걱정하기보다 끄집어내서 전쟁놀이의 총알받이로 사용하려는 목적이 강하게 느껴졌어.

 

그러자 갑자기 그 애들은 침을 뱉으며 간첩 새끼니 빨갱이니 하고 욕을 퍼붓기 시작했지. 쪼그만 걔들이 뭘 알아서 그런 소릴 한 건 아니고, 당시에 단체 행동에 참여하지 않는 자는 무조건 빨갱이나 간첩으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전국적으로 팽배했었던 모양이야. 어른들이 그러니 우리 어린 애들도 그렇게 세뇌가 되어서…

 

나중에 들어보니 그 구덩이는 6·25 전쟁 때 미군 전투기가 인민군을 죽인답시고 포탄을 퍼부어서 생긴 것 중 하나라더군. 그때 그 어린앤 몰랐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느낌이야….’


청운은 엄마 품 같은 무덤가 잔디 위엔 누워 눈을 스르르 감은 채 꿈꾸듯 회상에 잠겼다. 청아하고 감미로운 새소리가 마치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엄마 얘기에 의하면 난 전쟁이 한창이던 무렵에 태어났다고 해. 난 전혀 기억하지 못하지만…. 생명과 죽음이 한 나무에 핀 꽃과 낙화(落花)처럼 거의 비슷하고 아슬아슬했겠지.

 

남한과 북한을 합쳐 무려 1000만 명이 죽은 처절한 골육상쟁이었다는데, 아무리 어렸다지만, 왜 멍청이 백치마냥 아무런 기억도 없는 걸까? 엄마도 공포에 질린 눈망울로 파르르 떨 뿐 전쟁에 대해서는 아무 얘기도 해주지 않았어… 아, 엄마는 어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살아 계시기나 한지 몰라….’


청운은 눈을 스르르 떴다가 다시 스르르 감았다.

 

‘미국 놈 믿지 마라’


‘초콜릿, 꿀꿀이죽, 부대찌개… 난 눈물 어린 그 오리지널을 먹어 보진 않았지만 여덟 살 무렵부터 어린 거지가 돼 그것보다 더 열악하고 눈물 젖은 밥을 먹으며 겨우 살았지. 쉰밥도 못 얻어 굶는 때가 더 많았지만….’


청운의 눈시울에서 소리 없이 눈물이 돋아 뺨을 흘러내렸다.


꿀꿀이죽은 미군부대 주변의 궁핍한 사람들이 부대 쓰레기장에서 주워 낸 버린 음식 찌꺼기를 큰 통에 넣어 끓인 잡탕 죽이었다. 개나 돼지의 먹이와도 비슷한 그 잡탕 속엔 미군이 버린 담배꽁초나 이쑤시개가 섞여 있기도 했다.

 

꿀꿀이죽은 세월이 흐르는 사이 부대찌개라는 새로움 음식으로 변했다. 역시나 미군들이 먹다 버린 햄, 소시지, 비프스테이크, 통조림 콩 따위에 김치, 감자, 두부, 떡을 섞어 넣고 고추장을 곁들여 푹 끓인 잡탕이었다.


용산 미사령부 식당에서 먹고 남은 스테이크와 햄 소시지 따위를 모아 부대찌개 전문 식당에 넘겨준 미군 관계자와 업주들이 적발되기도 했다. 그들은 쓰레기통에 버려진 잔반들을 사료용이라 속이고 미군부대에서 빼낸 다음 이빨자국 등을 슬쩍 잘라낸 후 넘겨 큰 이익을 취했던 것이었다.


‘악마산에 있을 때… 어떤 녀석한테 들었는데… 자기네 고향에서는 북한군이 아니라 미군들이… 노근리 쌍굴다리 속이라던가… 전쟁에 미쳐서 죄 없는 양민들을 마구 쏘아 죽였다더군. 우리의 혈맹인 미군이 그럴 리가 있나. 무슨 착각이겠지.

 

하지만 그 녀석은 자기 꿈속에 자주 보인다며 공포스러워하더군. 그 당시 한두 살밖에 안 된 어린애였다는데… 아마 너무 참혹하다 보니 그 검은 눈동자를 통해 잠재의식 속으로 쑥 스며들었겠지. 그리고 자라면서 어른들에게 들은 체험담이 합쳐져 그 녀석의 머릿속에서 그런 악몽이 만들어졌을 거야. 그 어린애는 엄마 등에 업혀 피난을 가고 있었는데….’


청운은 눈을 감은 채 긴 한숨을 내쉬었다. 푸른 하늘 아래 따사로운 햇볕이 묘지의 잔디와 할미꽃 그리고 청운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는 살짝 선잠이 든 듯 마치 어린아이가 옹알이하는 것처럼 작게 잠꼬대를 중얼거렸다.


‘갑자기 허연 양놈 귀신이 나타나….’


남북한 간에 전쟁이 터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충청도 영동의 아늑한 농촌 마을 주민들은 점점 잦아지는 폭격이 두려워 피난길에 나섰다. 그 와중에도 논둑으로 들어가 물꼬를 돌보고 나오는 농부도 있었다.

 

당시 영동지역은 대전을 점령하고 계속 남하하던 북한군과 패주하는 미군이 마구 쏘아대는 총포 소리로 요란했다. 농민들은 허겁지겁 걷다가 밤이면 기진맥진해 근처의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다음날 새벽빛이 밝아 올 무렵 마이크 방송이 우렁우렁 들려왔다.


“여러분, 현재 미군이 주민들을 안전하게 피난시키고 보호하기 위해 이곳 마을에 와 있으니, 여러분께서는 즉시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뒤처졌다간 인민군의 밥이 되고 말 테니 속히 서두르세유!”


옛말에 ‘미국 놈 믿지 마라’는 충고가 있었지만, 워낙 다급한 나머지 미군을 믿은 피난민들은 급히 집결해 따라갔다. 피난 행렬을 인솔한 미군은 닿는 마을마다 같은 긴급 방송을 해 주민을 모았다. 위기에 처한 개미떼 같은 기나긴 인간 행렬은 봇짐을 이고 지고 걸음을 옮겼다.


갑자기 미군 마크가 찍힌 전투기 한 대가 하늘을 찢고 날아가며 산속에 폭탄을 투하했다. 굉음과 함께 한창 푸른 생명의 기색을 띤 초목은 벌건 불길에 휩싸였다. 피난민들은 두려움에 떨며 몸을 움츠렸고 미군들은 공포탄을 쏘아대며 신경질적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여기저기서 모여든 500여 명의 피난민은 아비규환을 이루었다. 그들은 민들레와 질경이꽃이 핀 길을 미군의 포로 꼴이 되어 허겁지겁 걸어갔다. 하늘에서는 땡볕이 쨍쨍 내리쬐었고 땅에선 지열이 훅훅 올라와 숨결을 막았다. 자기들이 땀 흘려 만들고 가꾸어 온 길을 도망치듯 걷는 사람들의 앞과 옆과 뒤에서는 무장한 미군들이 총구를 든 채 위협했다.

 

가도 가도 산으로 둘러싸인 지역이라 곧 어스름이 내렸다. 서녘 하늘가를 곱게 물들이던 노을도 점차 회색으로 변해 스러져 갔다. 가까운 논물 속에서는 개구리들이 슬피 울어댔고, 초저녁 하늘엔 벌써 샛별이 돋아 마치 눈물 어린 소녀의 눈동자처럼 영롱하게 깜빡거렸다.

 

아비규환 노근리 지옥도


행렬이 노근리 근처에 도착했을 때 정지 명령이 내렸다. 불현듯 굉음과 함께 미군 탱크 몇 대가 달려와 위협하며 길을 막았다. 지쳐 파김치 꼴이 된 피난민 행렬엔 갑자기 긴장감이 흘렀다. 미군들은 총부리를 휘두르며 둔덕 위의 철길로 올라가라고 몰아세웠다. 모두들 겁에 질린 개미떼처럼 비탈을 기어 철둑으로 올랐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혹시 열차에 태워 안전하게 후송하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땡볕 아래 아무리 기다려도 그럴 기미는 없었다. 미군 통신병이 어디론가 무전을 날리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다시 얼마쯤 이동했다.

 

철둑길 아래 쌍굴다리가 내려다보이는 지점에서 또 정지 명령이 내렸다. 그러더니 이고 진 짐을 모두 내려놓은 다음 풀어 헤치라고 재촉했다. 미군의 쏼라쏼라하는 영어를 어떤 한국 사람이 통역해서 고함쳐 전달했다. 피난민 속에 북한 인민군 스파이가 숨어든 정황이 포착된 엄중한 첩보가 입수됐다는 것이었다.


숨막힐 듯한 순간이 일초 일초 흘러갔다. 따가운 땡볕 아래서 피난민들은 초조감과 갈증에 지쳐 애달픈 짐승처럼 헐떡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또 다시 무전치는 소리가 한동안 날카롭게 울리더니 피난민을 검사하거나 감시하던 미군들이 왠지 갑자기 자기네끼리 쏼라쏼라 외쳐대며 다급히 철둑 아래로 기어내려 몸을 숨겼다.

 

피난민들이 어리둥절한 사이 문득 하늘 저편에서 은회색 날개를 번쩍이며 미군 전투기 편대가 날아오더니 피난민 머리 위에 폭탄을 투하하고 기총 소사를 퍼붓기 시작했다. 처참한 비명 속에 100명이 넘는 사람이 죽거나 심한 부상을 입었으며, 희생자의 피와 살점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지옥도가 펼쳐졌다.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혼비백산한 채 철둑 언덕을 굴러 내린 다음 쌍굴다리 밑으로 숨어들었다. 배수로나 논두렁 아래 납작 엎드린 사람도 많았다. 전투기 편대가 사라지자 다시 미군들이 나타나더니 총구를 흔들며 모두 굴속으로 들어가라고 고함쳐 명령했다.

 

미국 놈 믿지 말라는 옛말의 속뜻을 깨달았는지 사람들이 망설이자 즉시 총탄이 마구 날아가 황토색 논물 속에 거꾸러뜨렸다. 결국 모두 쌍굴 속으로 기어들었다. 미군들은 쌍굴을 내려다보는 양쪽 언덕배기에 기관총을 설치해 놓고 엄중 감시했다. 누가 굴 밖으로 얼굴을 살짝 내밀기만 해도 총탄이 날아들어 순식간에 여러 명의 생명이 끊어졌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둠이 깊어지자 살금살금 기어 도망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그들은 모두 기관총의 세례를 받아 숨지고 말았다. 아까 전투기 폭격 때 사지가 떨어져 죽은 자들의 머리통이 갑자기 굴러 떨어져 내리기도 했다. 피비린내와 신음소리 속에서 밤이 더디게 흘렀다. 굶주림과 갈증에 시달린 어떤 사람들은 시체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빨아먹기도 하며 히히 웃어댔다.


이윽고 날이 밝아왔다. 하지만 감금 상태는 풀리지 않았다. 오줌을 누려고 굴 밖으로 나가던 사람 몇이 총알에 고꾸라져 죽은 후론 모두 짐승처럼 안에서 수치심도 버린 채 방뇨를 했다.

 

그런 와중에도 풀밭 위의 미군들은 꽃을 꺾어 향기를 맡기도 하고, 밭에서 따온 호박으로 축구나 럭비를 하다가 승부가 나면 축하와 분풀이를 하는 듯 피난민을 향해 침을 뱉고 오줌을 내갈기며 낄낄거렸다.


하지만 울분을 토하거나 대거리를 했다간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므로 아무리 억울하더라도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삭막한 회색 시멘트 구조물인 쌍굴 속에 갇힌 사람들은 점차 절망조차 넘어 낙망의 구렁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들은 똥오줌을 참지 못해 밖으로 나가려다가 총탄에 맞아 죽기도 했다. 그냥 굴 속에서 싸야 했다. 만약 지옥이 있다면 그런 곳이 아닐까 싶었다.


아무런 죄 없이 사람으로부터 갑자기 짐승보다 못한 처지가 된 난민들은 서서히 미치광이로 변해 괴성을 내지르기도 했다. 그러면 겨냥도 제대로 하지 않고 총알을 마구 퍼부었다. 그렇게 무차별 살해를 자행하면서도 또 요상스럽게 몇 명의 군의관은 부상자를 바깥으로 끌어내어 치료를 해주는 것이었다. 물론 상처가 치명적이라 거의 다 죽고 말았지만….

 

뙤약볕 아래 버려진 시체는 차츰 썩기 시작했다. 진물이 흐르거나 거무스레한 배가 빵빵히 부풀어 올랐다. 고약한 냄새가 퍼져 파리떼가 몰려들자 곧 구더기도 생겨나 구물거렸다. 주위에 까마귀 무리마저 모여들어 불길하게 울어댔다.

 

시카고 뒷골목의 저질 갱들이나 저지를 듯싶은 악행을 미군들이 자행하고 있었지만, 그 짓이 단순히 전쟁터에 자원해 온 애숭이 깡패 놈의 개인적인 취향에 의해 결행되는 건 아닌 성싶었다. 무전기를 통해 그들은 계속 미군 상부의 명령권자와 쏼라쏼라해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흘째 되는 날 다급하게 무전 연락을 취하던 미군들은 북한 인민군이 근접했다는 소식을 받고 즉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쌍굴 속으로 기관총탄을 마구 쏟아부었다.

 

사흘 동안 지옥 속에 갇혔던 5백여 명의 농민 중에서 그나마 만신창이가 된 채 살아남은 사람은 겨우 50명도 채 되지 않았다.(지금도 쌍굴엔 당시의 총격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2001년에야 미국 대통령 클린턴이 학살에 대한 유감의 뜻을 밝히긴 했지만, 희생자들의 원한을 달래 줄 만한 진정한 사죄와 보상책은 아직 없는 상태다-지은이 주)

 

▲ 노근리 사건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합동위령제 모습.  <사진출처=노근리평화공원 홈피>    

 

억울한 참살극에 3000명 희생미군에 의한 양민들의 억울한 참살극은 노근리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벌어졌다. 평택 200여 명, 단양군 300여 명, 예천군 100여 명, 구미 200여 명, 왜관읍 300여 명, 문경 100여 명, 포항 100여 명, 울릉군 독도 200여 명, 창녕 100여 명, 마산 100여 명, 사천 100여 명, 익산 100여 명 등등 남한에서만 약 3000여 명의 일반인들이 미군에 의해 학살당했다. 반쯤 죽은 것과 다름없는 중상자까지 합하면 피해자는 부지기수로 늘어날 터였다.

 

특히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인 1948년 6월, 독도에 12대의 미군 전투기가 무차별 폭격을 가해 300여 명이 죽고 크게 다친 사건은 미군의 존재에 대해 근원적인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대체 왜 그런 어처구니없는 비극이 벌어졌을까?


미개인들의 동족상잔 전쟁에 귀한 청춘을 걸고 참전했으니, 하이에나처럼 서로 숨통을 물어뜯으며 싸우는데 초원의 사자 왕이 잠시 나서서 기분풀이를 했기로서니 무슨 대수냐고 여기는지도 몰랐다. 사자는 황제고 하이에나는 저급한 야수일 뿐인데 쌍것들이 무슨 잔말이 많으냐며… 동족끼리 서로 죽이는 잡년놈들 같으니 하고….


실제로 6·25 전쟁 때 후방 지역에서의 양민 학살은 미군뿐만 아니라 우리 국군과 극우적 반공단체인 서북청년회 등에 의해 더욱 참혹한 비극이 펼쳐졌다.

 

한강 다리를 불시에 폭파해 무수한 피난민을 수장시키고 이산가족을 한맺히게 한 건 차치하더라도, 이승만 정권은 서울을 비롯한 남한 전 지역에서 종북 빨갱이를 소탕한다는 명목으로 이른바 ‘보도연맹(保導聯盟)’을 만들어, 처음엔 비가입자를 공산당이라며 쏴 죽이고 나중엔 가입자들을 부역자라며 집단적으로 학살했다.


9·28 서울 수복 후엔 피난 가지 않고 남아 있었던 사람들을 그런 억울한 죄목으로 엮어 즉결처형했다. 팔도강산에 억울한 사람들의 피가 흘렀다. 강원도와 충청도는 물론이고 지리산 자락의 전라도와 경상도 양민들은 빨치산 소탕 작전에 휘말려 특히 피해가 컸다. 남원, 구례, 순천, 여수, 거창, 산청, 진주 등지에서 죄 없는 원주민들이 국군과 경찰에 의해 희생됐다.


특히 제주도에서는 한 집에 사망자가 없는 집이 없다고 할 정도로 무차별 학살을 당했다. 전국적으로 약 50여만 명의 무고한 국민들이 정부의 방침에 의해 비명에 죽고 말았다. 그러니 어찌 미군만 탓할 수 있겠는가. 한미합작의 살인 활극이라고 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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