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에 꼭 가볼 만한 곳, 노래와 함께 떠나는 여행

“바람 부는 저 들길 끝에는♬ 삼포로 가는 길 있겠지??”

정리/김수정 기자 | 기사입력 2019/12/06 [11:12]

12월에 꼭 가볼 만한 곳, 노래와 함께 떠나는 여행

“바람 부는 저 들길 끝에는♬ 삼포로 가는 길 있겠지??”

정리/김수정 기자 | 입력 : 2019/12/06 [11:12]

흔히들 ‘유행가’는 민초들의 삶과 애환을 여과 없이 반영하면서 시대의 희로애락을 그대로 담아내는 그릇이라고들 한다. 지금의 60~70대는 <소양강 처녀>를 흥얼거리며 젊은 시절을 보냈고, 50대는 강은철의 <삼포로 가는 길>과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들었을 때, 30~40대는 HOT와 젝스키스의 노래를 들으면 눈이 부시던 10대 때로 돌아가 감상에 빠진다. 요즘 방탄소년단의 <Make It Right>와 <불타오르네>에 열광하는 10대들도 세월이 흐른 뒤 이 노래를 다시 들으며 상큼발랄했던 소년·소녀 시절을 그리워할 것이다.

 

국어학자인 한성우 인하대 교수는 2018년 3월 펴낸 <언어의 노래>라는 책에서 “노랫말의 표준은 ‘젊은 세대’의 말”이라고 했다. 지금의 ‘나이가 든 세대’가 사랑하는 노래도 결국은 자신의 젊은(어린) 시절 노래이고, TV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이나 <슈가맨>이 인기를 얻는 지점도 그때 그 시절을 소환하고 ‘응답’하게 하는 데 있다고 분석한다. 그 노래가 세월이 흘러 ‘흘러간 노래’가 되고 노랫말이 ‘시간 방언’이 되더라도 ‘당대에는 최신의 곡이었고 최신의 말’을 담아냈다는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행가 속에는 숱한 사람들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시절의 낭만과 애환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한국관광공사가 12월에 가볼 만한 곳으로 추천하는 곳은 ‘노래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다. 이번 주에는 <삼포로 가는 길>과 <목포의 눈물>을 탄생시킨 고장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풍경에 반해 노랫말 썼다는 삼포마을은 진해의 한적한 포구
바닷가 걸을 때는 무심코 “나도 따라 삼포로 간다고~” 흥얼

 

노래비 앞쪽으로 바다와 어우러진 목포시내 시원하게 펼쳐지고
항구도시의 풍광 제대로 감상하려면 목포해상케이블카가 제격

 

1. 삼포로 가는 길


“바람 부는 저 들길 끝에는 삼포로 가는 길 있겠지.”


강은철이 부른 >삼포로 가는 길> 도입부 노랫말이다. 강은철은 서정적인 음색으로 198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으며, 1983년 발표한 <삼포로 가는 길>이 대표곡이다. 2015년에는 예능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 ‘배따라기 이혜민 편’에서 마마무가 다시 부르기도 했다. ‘배따라기 이혜민 편’에 나온 이유는 그가 작사·작곡했기 때문이다.


삼포는 이상향처럼 들리지만 실재하는 마을이다. 이혜민은 1970년대 후반 삼포마을에 여행을 왔다가 마을 풍경에 반해 노랫말을 썼다. 노래를 부른 강은철은 한 방송에서 “삼포란 ‘듣는 사람들이 가려고 하는 장소’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름이 말해주듯 삼포마을은 한적한 포구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 있으며, 진해해양공원에서 약 2km 거리다.

 

▲ ‘삼포로 가는 길’ 노래비와 삼포마을.    

 

2008년 마을 초입에 ‘삼포로 가는 길’ 노래비가 세워졌다. 조각가 김성민이 제작한 노래비에는 ‘소리가 있는 풍경’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앞면에 <삼포로 가는 길> 노랫말이, 뒷면에 이혜민이 쓴 수필 〈내 마음의 고향 삼포〉 일부가 적혔다. 이혜민은 삼포를 “동경의 그리움을 충족하기에 충분한 마을”이라고 썼다. 노래비 아래 음향 장치가 있어, 버튼을 누르면 노래가 나온다.

 

▲ 노래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    


이 조용한 공원에 누가 올까 싶지만, 30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에 몇 명을 만났다. 처음 다녀간 이는 삼포마을에서 소녀 시절을 보낸 여성이다. 가족, 친구들과 노래비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당시에는 길이 없어 재를 넘어 학교에 갔다고 했다. 전에 살았다는 파란 지붕 집을 가리키며 추억에 잠겼다. 강은철의 <삼포로 가는 길>이 흘러나오자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정든 고향 떠난 지 오래고, 내 님은 소식도 몰라요”라는 노랫말이 뒤따랐다.


그들이 떠나고 한 남자가 왔다. 50대로 보이는 남성은 노래비 옆 아스팔트 도로인 명제로를 건설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는 강은철을 “이용 같은 가수와 달리 다운타운 중심으로 활동한 포크 가수”로 기억했다.

 

때마침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흘러나왔다. 노래비 아래 음향 장치에서는 <삼포로 가는 길>은 물론, 비슷한 시기에 유행한 가요가 여러 곡 나온다.


노래비 곁에 머물다 보면 자연스레 삼포마을이 궁금하다. 바다 쪽으로 400미터 정도 가면 삼포마을이다. 노래비 주변은 ‘진해바다70리길’이 지난다. 그 가운데 삼포마을로 향하는 5구간은 코스 이름마저 ‘삼포로 가는 길’이다.

 

▲ 삼포마을 동쪽 방파제에서 본 마을 전경.    


삼포마을은 자그마한 포구로, 정박한 낚싯배가 여러 척 눈에 띈다. 마을 초입 정자 쉼터에서 몇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맞은편은 카페다. ‘철든 어른보다 철들 청춘이 나을지도’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포구는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약 500미터 거리다. 동쪽 방파제에서 서쪽 바다 너머 자리한 진해해양공원의 창원솔라타워와 창원짚트랙이 들어선 99타워가 보인다.


삼포마을은 전형적인 관광지는 아닌데 묘한 매력이 있다. 바닷가를 걸을 때 무심코 “나도 따라 삼포로 간다고~”라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자신과 마주한다. 그게 삼포마을의 매혹인지, <삼포로 가는 길> 노랫말의 중독성인지 알 길이 없다.

 

▲ 묘한 매력이 있는 삼포마을.    


<삼포로 가는 길> 노래비와 삼포마을이 노랫말의 정서에 기댄 여행지라면, 이웃한 진해해양공원은 음지도 전체가 공원이다. 어류생태학습관, 해전사체험관, 해양생물테마파크 등 볼거리와 체험할 거리가 다양하다.

 

해양솔라파크 중심에 있는 창원솔라타워는 높이 136m 건물에 태양광 모듈 2000여 개가 부착된 태양광발전 시설이다. 건물 120m 지점에 있는 빨간 원형 공간이 전망대 역할을 한다. 진해만 앞바다에서 부산항 신항까지 보인다.


바로 앞에 있는 99타워는 창원짚트랙 탑승장이자, 엣지워크 체험장이다. 지난 10월에 개장했다. 창원짚트랙은 높이 99m인 99타워의 21층이 탑승장이다. 여느 짚트랙과 비교가 안 될 만큼 아찔한 높이다. 탑승장에 서면 심장박동이 급격하게 빨라진다. 바다 위를 1390미터 이동해 소쿠리섬까지 내려간다. 소쿠리섬에서는 제트보트를 타고 공원으로 돌아온다. 10분 남짓 이동하는데, 엄청난 스피드에 제트보트가 바다 위에서 360° 회전하는 등 짜릿한 경험을 선사한다.


엣지워크 체험장은 99타워 19층이다. 스릴로 치면 짚트랙보다 한 수 위다. 엣지워크(edge walk)는 이름처럼 가장자리를 걷는 체험이다. 다만 그 가장자리가 높이 94미터 타워 19층 바깥의 가장자리다. 안전 줄에 의지해 난간 바깥으로 몸을 기울이면 온몸이 저릿하다.


삼포마을과 느낌이 비슷한 동네 산책을 원한다면, 소사동마을이나 진해군항마을 역사길을 추천한다. 소사동마을은 뉴트로의 진수다. 김현철씨가 만든 김씨공작소와 김씨박물관, 갤러리마당 등 볼거리가 많다. 골목은 갑자기 1970~1980년대로 돌아간 듯하고, 그때 그 시절의 온갖 물건이 긴 세월을 뽐내며 늘어섰다. 김달진문학관과 김달진 생가도 들러볼 만하다.


진해군항마을 역사길은 군항 진해의 옛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중원로터리를 중심으로 진해우체국(사적 291호), 진해군항마을역사관, 새수양회관, 원해루, 흑백다방 등 옛 풍경과 사연을 간직한 건물이 방사형 도로 곳곳에 자리한다. 진해군항마을역사관에 들러 마을이 간직한 사연을 보고 들은 뒤, 숨은 보물을 찾듯 한 곳 한 곳 탐방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중원로터리 동쪽으로 제황산공원이 자리하고 정상에 진해탑이 있다. 편백로 쪽에서 보면 도로 끝에 제황산을 오르내리는 모노레일카가 보인다. 진해탑에 오르면 진해군항마을 역사길과 진해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적하고 낭만적인 장소를 찾을 때는 진해보타닉뮤지엄이 제격이다. 장복산 중턱에 있는 수목원으로, SNS용 사진 명소다. 지난 2017년에 문을 열었는데, 입소문이 나서 찾는 이가 많다. 겨울에는 카페나 온실을 주로 이용한다. 진해만이 내려다보이는 경관이 장점이다.

 

2. 목포의 눈물


혜성처럼 등장한 가수 송가인 덕분에 대한민국은 트로트 열풍이 거세다. 트로트는 일본 엔카(演歌)를 번역·번안한 노래를 거쳐 1930년 전후에 국내 창작이 본격화됐고, 1935년 <목포의 눈물>에 이르러 그 형태가 정착됐다고 한다.

 

트로트를 찾아 목포와 영암으로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목포는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의 현장이다. 이난영이 잠든 삼학도 이난영공원, 이난영이 태어난 양동 42번지 생가 터, 유달산 허리에 자리한 <목포의 눈물> 노래비 등을 보면 목포 구석구석에 <목포의 눈물>이 스며들었음을 알 수 있다.


목포역이 가까워지자 이어폰으로 ‘목포의 눈물’을 들었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삼학도 파도 깊이 숨어드는 때/부두의 새악시 아롱져진 옷자락/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애절하고 구슬픈 가락이 울려 퍼진다. 예전에는 호남선 기차가 목포역에 도착할 때쯤이면 ‘목포의 설움’이 흘러나왔고, 사람들이 너도나도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고 한다. ‘목포의 설움’은 목포의 주제가나 마찬가지다.


이난영을 찾아가는 여행은 목포역에서 시작한다. 노랫말에 등장한 삼학도에 이난영공원이 있다. 목포역에서 설렁설렁 걸어가면 15분쯤 걸린다. 세 개 섬이던 삼학도는 매립해 육지가 됐고, 지금은 공원으로 꾸몄다.

 

삼학도 중 가장 큰 대삼학도 중턱에 <목포는 항구다> 노래비가 있다. 이난영은 노래비 뒤 배롱나무 아래 잠들었다. 본래 이난영의 무덤은 경기도 파주에 있었는데, 목포 시민이 참여한 목포의눈물기념사업회가 2006년 3월 이곳으로 이장했다. 이난영은 41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처럼 목포 시민의 이난영 사랑은 유별나다. 노래비 앞쪽으로 목포항 일대와 유달산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 이난영공원에서 바라본 목포 시내와 유달산.    


다음에 찾아볼 곳은 이난영 생가 터다. 이난영이 다닌 목포공립보통학교(현 목포북교초등학교) 건너편 산동네 양동 42번지에 생가 터가 있다. 생가는 헐리고 그 자리에 이난영의 흉상을 세웠다.

 

이난영(본명 이옥례)은 1916년 이곳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무능하고 어머니가 객지에서 일했기에, 두 살 오빠와 친척 집에서 불우하게 컸다고 한다.


이난영은 열여섯 살 무렵, 유명한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목포에 공연 온 태양극단을 따라나섰다. 태양극단 순회공연 중 막간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고, OK레코드 이철 사장에게 발탁돼 가수로 데뷔했다. 열아홉 살 때인 1935년, 문일석의 작품에 손목인이 곡을 붙인 ‘목포의 눈물’을 불러 단번에 가요계의 여왕으로 떠올랐다.

 

당시 이 노래는 식민지 땅이 온통 흐느낌으로 잠기고, 항구도시 목포가 애틋한 추억의 장소로 되살아나게 했다고 전한다.


유달산 자락에 있는 <목포의 눈물> 노래비를 찾아가려면 산길을 좀 걸어야 한다. 노적봉 입구에서 유달산으로 가는 계단을 따라 오른다. 이순신 장군 동상과 유달산휴게소를 연달아 지나면, 1969년에 세운 노래비를 만난다. 노래비에는 <목포의 눈물> 노랫말 변천사가 기록돼,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 노랫말을 확인할 수 있다.

 

노래비 앞쪽으로 바다와 어우러진 목포 시내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목포의 눈물>이 유달산에 스며들었다가 허공으로 사라진다.


항구도시 목포의 풍광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지난 9월 개통한 목포해상케이블카가 제격이다. 케이블카 스테이션이 세 곳(고하도, 유달산, 북항)인데, 고하도스테이션에서 타는 코스를 추천한다. 이곳에서 케이블카를 타기 전에 고하도전망대에 올라보자.

 

▲ 고하도전망대 가는 길에 본 유달산과 목포해상케이블카.    


잘 단장한 숲길을 10분쯤 오르면 능선이고, 다시 10분쯤 완만한 능선을 밟으면 고하도전망대에 닿는다. 고하도는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마치고 106일 동안 머무르며 전열을 정비한 곳이다.

 

고하도전망대는 판옥선 13척을 격자로 쌓아 올린 형상이다. 전망대 꼭대기에서 목포대교와 유달산, 목포 시내가 거침없이 펼쳐진다. 가만히 풍경을 바라보면 장군이 왜 고하도에 머물며 철통처럼 지켰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곳이 바다에서 영산강을 통해 내륙으로 이어지는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 고하도전망대는 판옥선 13척을 격자로 쌓은 형상이다.    


고하도스테이션에서 케이블카를 탄다. 고하도를 떠나 바다로 접어든 케이블카는 높이 155미터 기둥을 넘어 유달산으로 간다. 유달산스테이션에서 왼쪽으로 틀어 유달산 이등바위와 일등바위를 지나 북항스테이션에 내려앉는다. 허공에서 바다와 유달산을 바라보는 짜릿한 쾌감에 속이 후련하다.


목포에 이난영이 있다면, 영암에는 하춘화가 있다. 하춘화의 아버지 하종오씨는 딸이 데뷔한 1961년부터 50년 남짓 모은 트로트 관련 자료와 음반 등을 고향 영암군에 기증해 한국트로트가요센터를 건립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지난 10월29일, 월출산기찬랜드에 문을 연 한국트로트가요센터에 들어서면 데뷔 당시 일곱 살 하춘화 밀랍인형이 반긴다. 천장 스피커에서 “제가 하춘화예요. 금년에 일곱 살입니다. 노래란 것은 우리 생활에 있어서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라는 앙증맞은 음성이 들려 빙그레 웃음이 난다.


1층에는 트로트역사관, 명예의전당 등이 마련됐다. 193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트로트의 흐름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다. 2층은 하춘화전시관이다. LP와 카세트 테이프, CD 등 다양한 앨범, 공연 의상과 사진, 영상과 팸플릿 등을 통해 50년 넘게 가수로 활동한 하춘화의 생애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한국트로트가요센터 뒤에는 가야금산조테마공원이 자리한다. 공원 내 가야금산조전시관은 가야금 관련 유물과 자료를 전시해 초보자도 이해하기 쉽게 꾸몄다. 가야금산조는 장구 반주에 맞춰 가야금을 연주하는 민속 기악 독주곡으로, 영암 출신 악성 김창조가 창시했다는 설이 있다. 가야금산조전시관에는 다양한 가야금과 국악기, 음향과 영상 자료, 가야금산조 6대 유파의 기증품 등이 전시되고, 산조공연장에서 가야금 연주 공연도 펼쳐진다.


<콘텐츠 제공=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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