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의 장편소설 ‘몽키 하우스’ <마지막 회> 풀이슬 묘비명&에필로그

‘아, 얼마나 많은 위안부 백골이 이 산야에 묻혀 있을까?’

글/김영권(소설가) | 기사입력 2019/12/13 [10:36]

김영권의 장편소설 ‘몽키 하우스’ <마지막 회> 풀이슬 묘비명&에필로그

‘아, 얼마나 많은 위안부 백골이 이 산야에 묻혀 있을까?’

글/김영권(소설가) | 입력 : 2019/12/13 [10:36]

수용소 여자들은 방씨를 친미파보다 더 잘난 미친 놈이라고 했다
“얜 한미동맹 사이에 피어난 꽃…그러니 예를 다해 석별 인사 해야”


벌거숭이 야산엔 페니실린 알레르기로 돋아난 뾰루지 같은 검붉은 무덤들
‘천상에선 양공주 아닌 프린세스로…’ ‘애니의 무덤…배고파 몸 판 죄뿐…’

 

▲ 좌익과 우익의 이념 대립이 첨예했던 해방공간, 신문기자인 허윤은 이념으로 분리된 세상에서 스스로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한 채, 밤마다 술집과 화류계를 전전하며 방황한다. 사진은 영화 ‘깃발 없는 기수’ 한 장면.

 

어스름 달밤이었다.
청운은 지게 위에 정인의 시신을 얹은 채 터벅터벅 산길을 걸어올랐다. 뒤에는 잡부 방씨가 이따금 플래시를 켰다 껐다 하며 따라오고 있었다.


“어이, 이리 가… 저리 가….”


그는 마치 소를 몰고 가는 것처럼 플래시 빛으로 방향을 지시하며 뇌까리곤 했다.


“자꾸 장난하지 마세요. 헷갈리니까.”


청운이 한마디 했다.


“무슨 소리야. 자빠지지 말고 방향 잘 잡으라고 애써 비춰 주는데….”


“난 달빛이면 돼요. 아저씨 발밑이나 비추세요.”


“어이, 내가 지금 할일 없어서 어둑스레한 밤에 산을 할딱할딱 오르는 줄 아나, 응? 난 지금 매장 감독 자격으로 동행하는 거란 말야.”


“알았으니 그만 하세요.”


“젊은 애들이란 참 대책 없이 반항할 생각만 한다니까. 고리 가지 말고 내가 빛을 비추는 대로 조리 가라니까!”


방씨는 화를 냈다.


“공동묘지는 저쪽이잖아요.”


청운은 걸음을 계속하며 대꾸했다.


“몰라서 그래, 응? 흔적 없이 묻어 버리라고 아까 조장이 지시했잖아. 임마, 이건 관행이야. 적당히 덮어 주고 내려가자구. 이젠 웬만큼 알 만한 놈이 웬 돼먹잖은 고집을 자꾸 부리고 있냐.”


“좀 더 가면 공동묘지가 있는데….”


“야, 됐어. 내 말만 들으면 잘 돼. 조기 조쪽이 으슥하니 괜찮겠네.”


“힘드시면 제가 혼자 갔다 올게요.”


“안 된다니까! 이건 명령이야!”


방씨는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숲의 둥지에 들어 쉬던 새들이 놀라 날개를 파닥거렸다. 청운을 갈래길에 멈춰 선 채 어떡하는 게 좋을지 생각에 잠겼다.


‘아, 정말….’


그는 한숨을 쉬었다.


방씨는 같은 잡부이면서 미군부대가 관할하는 몽키하우스의 직원이라는 사실을 유독 자랑스러워하는 40대 중반의 상이군인이었다. 6·25 동족상쟁 당시 일등병으로 최전선에 나서서 수많은 북한군을 죽인 무용담을 늘어놓곤 했는데, 찬란한 무공훈장을 받았지만 언제 어디선지 모르게 잃어버렸다며 무척 아쉬워했다. 사실인지 공상인지….


최후의 고지전 때 처절한 육박전을 벌이다가 북괴군을 껴안은 채 산비탈을 굴러 내렸는데, 북괴 새끼는 큰 바위에 골통이 부딪혀 즉사하고 자기는 간발의 차이로 옆머리만 살짝 다치곤 살아남았다고 지껄였다.

 

술이라도 한잔 마셔 알딸딸해지면, 그건 즉 남한이 북한을 이긴다는 하느님의 계시라고 히득거리기도 하고, 간혹 그 빈사상태에서 북괴군의 목을 물어뜯어 피를 빨아먹은 덕분에 살아남았다며 개기름이 흐르는 거무죽죽한 얼굴로 껄껄거리기도 했다. 특히 남에게 겁을 줄 때….


한 핏줄끼리 그땐 피 흘리며 싸웠을지언정 지금까지도 서로 미워해야만 할까? 청운은 공작원으로 북한에 갔다 온 사실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그 황량하던 산하와 가난에 지친 사람들을 두 눈으로 보고 와서 그런지 씁쓸했다.


방씨는 때때로 정신이 약간 이상해졌는데, 나쁜 방향으로 치우치면 폭력적인 성벽으로 동료 잡부들에게 주먹을 휘두르거나 여자들에게 해코지를 가하기도 했고 흉기로 자신의 몸을 찔러 피를 빨아먹기도 했다.

 

그런데도 관할 당국인 미군부대 측에서는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어쨌든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방씨가 한미혈맹을 좌우명처럼 여기고, 동족인 형제자매에겐 흡혈귀 노릇을 하는 꼴이 볼만했는지도 몰랐다.


수용소의 여자들은 그런 그를 친미파보다 더 잘난 미친 놈이라고 욕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방씨는 미군 관리와 한국인 실무자들의 지시 방침을 잘 준수하면서 언젠가는 잡부 조장이 돼 ‘혈맹’ 미국을 위해 나름대로 큰일 할 꿈을 꾸며 살았다.


“꾸물거리지 말고 어서 저쪽에다가 지게를 받쳐!”


방씨는 성마른 목청으로 소리치며 플래시 불빛을 큰 소나무 밑에 비춰댔다. 그래도 청운이 망설이자 그는 목소리를 착 깔더니 구슬렀다.


“이봐, 애송이… 어른 말씀을 잘 들으면 자다가 떡 얻어먹는단 얘기도 못 들었나? 사실 황량한 공동묘지보다는 여기가 호젓하고 아늑해서 혼백이 쉬기는 더 좋을 거야. 그러니 고집부리지 말라구.”


방씨의 말이 옳다기보다 계속 버텨 봐야 해결 날 것 같지 않아 청운은 일단 노송 밑에 지게를 받쳐 세웠다. 방씨는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청운에게 한 대 권하고 자기도 한 대 빼물곤 불을 붙였다. 희뿌연 연기가 어두운 허공 속으로 흩어져 갔다.


“휘유… 인생이란 과연 무엇일까? 저 연기처럼 구름처럼 허무해. 공수래 공수거라고… 잘난 놈도 못난 놈도 결국엔 흙 속으로 돌아가는데 뭘 시시비비하겠나? 초로인생(草露人生)이라고들 말하는데 난 초혈인생이라고 하고 싶어. 풀잎 끝에 맺힌 이슬방울이라기보다 핏방울이랄까… 사람 목숨은 한 순간이야… 자, 이제 구덩이를 좀 파자구. 서둘러야겠어.”


방씨는 담배를 비벼 끄곤 삽 한 자루를 청운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그러고는 플래시를 나뭇가지에 걸어 환해 비치게 했다. 별수없이 청운은 삽을 들고 땅바닥을 파기 시작했다. 삽질을 거듭하는 사이에 모종의 불만과 의혹은 다 사라지진 않았지만 서서히 잊어버렸다. 그저 졸지에 죽어 시체가 된 정인을 생각하며 그녀가 잠들 보금자리를 마련키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방씨는 오줌 좀 누고 오겠다며 비켜났다.


“적당히 파라구.”


청운은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무시하며 계속 삽질을 했다. 무슨 반발심 때문인지 더 넓고 깊게 정성껏 팠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청운은 문득 눈가에 맺혀 오는 눈물방울을 감추기 위해 얼굴을 들어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달빛은 나뭇잎에 가렸지만 그 사이사이로 별이 초롱초롱 떠서 눈물에 어리어 반짝였다.


‘저 별빛이 정인의 가슴속에서도 초롱거렸으면….’


혼잣말을 하며 지게 쪽을 바라보던 청운은 문득 이상스런 느낌에 저도 모르게 흠칫 떨었다. 방씨 사내가 상체를 구부린 채 시체에게 뭔가 범상찮은 야릇한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슬쩍 한 걸음 다가서던 청운은 깜짝 놀라 숨을 멈추었다. 방씨는 시체의 입술을 빨아대면서 무아지경에 빠져 정인의 허연 젖가슴을 주무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뭣하는 거요?”


청운은 말보다 빨리 방씨의 어깨를 잡아 떼어내며 소리쳤다.


“야, 이거 왜 이래, 응? 사랑스럽고 가여운 정인과 작별 인사를 하는 중인데….”


“뭐라구요!”


청운은 사내의 얼굴을 돌려 그 눈을 노려보았다. 빙글빙글 웃고 있었지만 이미 정상적인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뇌에 입은 과거의 상처로 인한 것인지 어쩐지 몰라도 그는 제정신을 잃은 반쯤 미친 상태였다.


“넌 잘 모르겠지만… 얜 한미동맹 사이에 피어난 아름다운 꽃이었어. 그러니 예를 다해 석별 인사를 해야지….”


그러더니 방씨는 다시 입을 시신의 가슴 쪽으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청운이 제지하자 그는 갑자기 미친 짐승처럼 돌변해 덤비며 으르렁거렸다. 한창 젊은 청운의 근육조차도 마구 짓누르는 포악한 광기였다. 마치 흡혈귀가 자신의 음식을 빼앗겨 광란하는 모습이었다.

 

청운은 북파공작원 훈련소에서 익힌 위기상황 대처법을 응용해 팔꿈치로 상대의 옆구리를 치곤 한쪽 무릎을 굽혀 살짝 앉는 동시에 급소를 쳐올렸다. 사내는 억 소리를 내며 쓰러져 나뒹굴더니 제풀에 파둔 구덩이 속으로 굴러 들어갔다.


청운은 잠시 기다려 보았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청운은 좀 걱정스런 눈치였지만 내려가서 확인해 보진 않았다.


“죽어도 싸… 하지만 저 자의 가족 입장에서 보면 아마 내가 죽일 놈이겠지. 흐흐….”


청운은 삽과 플래시를 챙긴 뒤 지게를 지곤 아까 자기가 가려고 했던 길을 향해 발걸음을 떼었다. 저녁을 넘어가는 고요한 산중엔 공기조차 멎어버린 듯했다. 이따금 산새인지 산짐승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는 두견이의 처연한 울음소리만이 혼백 잃은 시신을 위해 애곡해 주었다.


“미군 홀에서 시달리는 것보다 차라리 황토흙 속에서 잠드는 게 편할지도 모르지.”


청운은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야트막한 능선을 넘고 다시 아래로 걸어내려 계곡을 끼고 에돌아가면서 그는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반주 삼아 만가(挽歌)를 흥얼거렸다. 선감도 수용소에 있던 시절 사감에게 맞아 죽거나 탈출하다가 익사한 어린 시체를 묻으러 가며 불러 주던 노래였다.


북망산이 어드메뇨
건너산이 북망일세
만장 같은 집을 두고
북망산천 찾아가네
어이 넘차 어허야~ 어허이 어허야~

 

불쌍하고 가련쿠나 애절하고 원통쿠나
먹던 밥은 놓아두고 어디로 가시는가
황천 길이 멀다 해도 쉬엄쉬엄 가소서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
어이 넘차 어허야~ 어허이 어허야~

 

비탈길을 지나 다시 능선을 넘자 저쯤 공동묘지가 바라보였다. 그쪽엔 나무가 한 그루도 없고, 플래시 빛을 비추자 듬성듬성 자라난 풀잔디 새로 검붉은 황토 흙이 드러나 보였다.


청운은 공동묘지에 처음 가보는 셈이었다. 전에 나무 하러 온 길에 멀찍이서 바라본 적은 있었지만 시체를 매장하러 가는 건 처음이었다. 그는 천천히 발을 떼어 놓았다.


‘아, 얼마나 많은 위안부 여자들의 억울한 백골이 이 산야에 묻혀 있을까? 선감도에서도 그랬었지. 아마 땅을 파헤쳐 보기 전엔 아무도 모를 거야….’


여자들이 흙산 또는 황토산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그 벌거숭이 야산엔 마치 페니실린 알레르기로 인해 살갗에 돋아난 뾰루지 같은 검붉은 무덤이 총총히 모여 있었다.


청운은 한쪽에 지게를 받쳐 놓곤 그 하찮고 애처로운 무덤 사이를 고개 숙여 거닐었다. 이지러진 무덤 앞엔 낡은 나무 판대기가 꽂혔고 거기엔 서투른 글씨로 이런저런 묘비명이 씌어 있었다.


‘난희의 묘… 천상에선 양공주가 아닌 프린세스로….’


‘애니의 무덤… 배고파 몸 판 죄뿐….’


‘선아 여기에… 지옥이 곧 천국….’


청운은 좀 외떨어진 소나무 옆에 호젓한 장소를 발견하곤 삽으로 파기 시작했다. 암석산이 아닌 토산인지라 잔디를 걷어내자 곧 부드러운 흙이 나타났다. 달빛을 받으며 그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얼마 후 아담한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청운은 지게에서 시체를 들어 하늘을 한번 쳐다보곤 구덩이 속에 눕혔다. 짧은 삶 동안 기구한 역경을 겪은 여인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청운은 삽에 흙을 떠 뿌리려다가 잠시 망설였다.


“잘 자… 언젠가 좋은 세상이 올 때까지… 정인아, 그땐 일어나 네가 겪은 얘기를 생생히 들려 줘야 하지 않겠니.”


청운은 급히 흙을 퍼서 구덩이 속으로 던졌다. 시신이 덮이고 차츰 흙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지은이 주-미군 기지촌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2017년 1월 재판부는 “국가가 법적 근거 없이 성병에 감염되거나 감염자로 지목된 피해자들을 낙검자 수용소에 강제 격리수용해 치료한 것은 불법이다. 수용된 위안부들은 완치 판정을 받을 때까지 수용소 밖으로 나갈 수 없었으며, 임의로 수용소를 탈출하려고 시도하다가 부상을 입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들이 치료 과정에서 페니실린 쇼크로 인한 부작용에 시달리거나 사망한 경우도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표시가 나면 나중에 놈들이 파헤칠 수도 있어.”


그는 봉분을 아주 낮게 평지와 비슷하게 만든 다음 멀찍한 데서 잔디를 떠 와 조심스레 입혔다. 그러고는 플래시를 들고 이리저리 살피더니 넓적한 돌 하나를 주워 와 소나무 옆에 꽂아 세웠다.


“잘 있어. 묘비명 하나도 제대로 세워 주지 못해서 미안해….”


청운은 손가락으로 돌을 슬쩍 쓰다듬어 주곤 일어서서 발길을 돌렸다.

 

▲ 제2차 세계대전, 차디찬 전장 한가운데 버려진 소녀들. 그곳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일본군만 가득한 끔찍한 고통과 아픔의 현장이었다. 사진은 영화 ‘귀향’ 한 장면.    

 

에필로그·푸른 달


어둠이 점점 깊어졌다.
청운은 모든 걸 다 팽개치고 능선을 넘어 미지의 어떤 다른 곳으로 떠나 버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는 솔잎 사이로 저 멀리 반짝거리는 별을 쳐다보다가 지게를 찾아 지곤 터덜터덜 산길을 되짚어 내렸다.


‘일단 가서 상황을 살펴보자.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지 뭐.’


그는 플래시를 꺼서 주머니 속에 집어넣은 후 어둑스레한 산길을 오히려 더 빨리 걸어 내렸다. 악마산에서는 달도 없는 캄캄한 밤의 벼랑길을 얼마나 빨리 오르내렸던가. 험악한 북한 지역의 산악을 고려해 참혹한 지옥훈련을 받았었다. 그는 일단 아까 구덩이를 팠던 곳으로 향했다.


‘쓰벌, 기분 더럽군… 아니, 수치스러워. 벌레보다 못한 그런 놈 땜에 심장이 이다지도 팔딱거리다니….’


청운은 노송나무 밑의 구덩이 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만일 죽어 버렸다면 졸지에 살인자가 되는 셈이었다.


‘그런 쌍놈 때문에….’


청운은 소나무 옆에 서서 흙구덩이를 내려다보았다. 뭔가 신음소리를 내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청운은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갔다.


‘흠, 어찌해야 하나? 저대로 죽게 놔둔다면 나 자신이 살인자가 되고, 살려 주자니 왠지 스스로 치사스런 느낌이 드는군. 또한 저 반미치광이가 살아난다면 얼마나 많은 여자들을 괴롭히게 될까 싶어 솔직히 걱정이 되니 말야… 흥, 저 미친 엉터리 친미주의자를 오히려 몽키하우스에 가둬 두면 좋겠건만….’


청운은 한동안 망설이다가 구덩이 가에 쭈그려 앉았다.


“여보슈, 그새 참회는 좀 했소?”


“아니, 당신은 누구시우? 사람이우, 귀신이우?… 아무튼지 제발 좀 살려내 주시웁서….”


“난 저승사자요. 오늘 밤 당신을 잡아가야 하오.”


청운은 근엄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아아,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옵나이까?… 오늘 아침까지 잘 살다가 왜 갑자기 이런 꼴을 당해야 하나이까? 정녕 억울하오이다… 더군다나 제겐 가족이 있습니다. 일주일 후엔 사랑스런 딸애의 결혼식이 있고 또한 알뜰히 모은 돈도 장독대 옆 화단 밑에 은밀히 숨겨두었는데… 그걸 한푼 써보지도 못하고 몽땅 버려둔 채 어딜 가란 말입니까?”


사내는 격하게 헐떡거리며 말하던 끝에 울음을 클클 쏟아냈다.


“그럼 직접 나와서 그곳을 향해 가면 될 것이오.”


“제발… 지금 갈비뼈가 부러지고 다리까지 비틀어졌는지 일어날 수가 없나이다. 그러니 제발 좀….”


“저승의 거울 속엔 모든 죄악상이 다 비친다오. 당신 마음속의 거울에 한번 비추어 보시오. 다 통하니까.”


“전….”


사내는 얼마 동안 생각하더니 말했다.


“저는… 저는… 사실 살인자이오이다. 나쁘긴 나쁘죠. 하지만… 살인을 내가 왜 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나이다. 제발 여기서 좀….”


청운은 웃었다.


“너스레 떨지 말고 내가 누군지 제대로 한번 보시우.”


“아니, 넌… 네가 왜 여기 있어?”


“잘 알 텐데 뭘 시치밀 떼고 그래요?”


“아냐, 난 정말… 이 상황이 뭔지 모르겠어. 내가 왜 여기 이러고 있는지도….”


청운은 방씨의 흙투성이 얼굴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원래 음흉스런 놈팡이니… 지금 속으론 허연 이빨을 갈면서도 흑여우처럼 술책을 꾸미고 있는지도 몰라. 물에 빠진 미친 광견을 건져 주면 곧바로 물어뜯어 공수병을 전염시킨다는 말도 있잖아. 아, 정말이지, 고민되는군….’


한참 동안 망설이던 청운은 결국 결심했는지 일어나 몸을 돌려 몇 발짝 걸어 내렸다. 그러더니 머리를 흔들곤 묵묵히 되돌아가서 부상자를 집어들어 지게에 얹은 다음 비명 소리에 아랑곳 않고 터벅터벅 산길을 내려갔다.


이윽고 몽키하우스 입구에 닿은 청운은 지게를 육중한 출입문 앞에 받쳐 둔 후 발길을 돌렸다.
그는 밤하늘의 별빛보다 더 밝은 아메리칸 홀의 네온사인 빛이 반짝이는 요지경 지옥을 향해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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