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 새로 쓰는 古今疏通-조호이산(調虎離山)

추미애 장관은 인사에 ‘조호이산’ 책략 활용하라!

글/이정랑(고전연구가) | 기사입력 2020/01/10 [11:38]

다시 읽고 새로 쓰는 古今疏通-조호이산(調虎離山)

추미애 장관은 인사에 ‘조호이산’ 책략 활용하라!

글/이정랑(고전연구가) | 입력 : 2020/01/10 [11:38]

호랑이를 산속에서 끌어내 들판으로 유인한 다음 쏘아 죽인다?
호랑이 위세 업고 산속 횡행하던 여우 같은 것들 천천히 수습?


원소처럼 자기 군대의 숫자 많다고 적을 깔봤다간 큰코다친다!
장수 된 자라면 신중 또 신중해야…충분한 주의 기울이도록 명심

 

▲ 추미애 장관의 검찰인사는 경륜과 지혜, 통치철학이 함축된 용인술로써, 국민절대 다수가 갈망하는 검찰개혁의 성공과 국가융성 발전이 함께하는 중차대한 원동인(原動因)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조호이산


조호이산(調虎離山). 호랑이를 꾀어 산을 떠나게 한다.


“조호이산은 두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호랑이(정치검찰 수뇌부)를 깊은 산속에서 끌어내서 넓은 들판으로 유인한 다음 쏘아 죽인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호랑이를 산 속에서 쫓아낸 다음 그동안 호랑이의 위세를 업고 산 속을 횡행하던 여우 같은 것들(개혁반대 부패정치검찰)을 천천히 수습해 버린다는 뜻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이번(처음) 검찰인사는 경륜과 지혜, 통치철학이 함축된 용인술로써, 국민절대 다수가 갈망하는 검찰개혁의 성공과 국가융성발전이 함께하는 중차대한 원동인(原動因)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조호이산‘을 사람 사는 세상에 비유해 말한다면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우선 가장 위험한 인물을 지목하고 그 자를 자신의 기반으로부터 유인해 냄으로써, 일단 반항의 의지를 꺾어놓은 후, 그를 천천히 처치하는 것이다. 혹은 지략으로 적 신변의 인재들을 적으로부터 떠나게 함으로써 먼저 그 자의 세력을 약화시킨 다음, 서서히 무너뜨려 가는 것이다.


“무릇 호랑이가 개를 제압할 수 있음은 그 이빨과 발톱이 강하기 때문이다. 만약 호랑이의 이빨과 발톱을 뽑아버리고 개는 그대로 둔다면, 호랑이가 반대로 개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다.”(韓非子)


이는 아주 훌륭한 하나의 예다.


역사상 이 책략은 주로 권력투쟁에 많이 사용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후세로 내려올수록 그 수법이 더욱 신출귀몰해졌다. 어떤 이에게는 권력이 이권 쟁탈의 수단일 뿐이며 이익 쟁탈이야말로 권력투쟁의 궁극적인 목적이 된다. 유사 이래로 이익을 도모하지 않으면서 권력투쟁에 나선 바보는 존재하지 않았고, 또한 권력의 비호 없이 오래 가는 이권도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포부를 펼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권력을 손에 넣어야 한다. 권력이 없다면 아무리 대단한 포부와 웅지를 가슴에 품었다. 하더라도 그걸 펼쳐보지 못할 것이다. 또한 뱃속 가득한 지모와 계략이 있더라도 무슨 수로 이를 밖으로 뱉어 놓을 수 있겠는가? 강태공도 권력을 잡은 후 비로소 주(周)나라 건국의 위업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지, 권력이 없을 땐 한낱 소금장수에 불과했다.


신도(愼到)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필부 요(堯)는 이웃과 더불어 살 만한 사람이 못되었다. 그러나 남쪽으로 가서 왕이 되자 그 명령이 분명한 점을 좋아하여 이를 장려해서 잘 지켜졌다.“


이 세상 사람의 대부분은 이와 같다. 권력이 있으면 닭털도 예리한 화살로 변하는가 하면, 영웅호걸도 실의에 빠지면 보검이 부엌칼로 변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이라면 서로가 잡으려고 달려들고, 세상의 모든 일도 먼저 이해득실을 따져보고 난 후 그에 따라 이전투구를 거듭하는 것이다. 마치 너와 나의 관계는 호랑이가 아니면 곧 사냥꾼이라는 식이다.


‘조호이산’은 호랑이를 잡는 계책이다. 그 목적은 곧 상대방의 저항력을 약화시킴으로써 내 자신의 위험을 감소시키는 데 있을 뿐이다.


역사상 ‘조호이산’의 책략을 가장 멋지게 사용한 사람은 아마도 진평(陳平)일 것이다. 그가 유방에게 헌납한 여섯 가지 기책(奇策)은 하나같이 출중한 ‘조호이산’ 술이었다. 그 여섯 가지 책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초패왕의 중신 종리매(鐘離昧) 등을 떠나게 하여 초패왕의 힘을 약화시킨다.
둘째, 범증(范增)으로 하여금 초패왕을 버리게 함으로써 그를 고립시킨다.
셋째, 밤에 여인 2000명을 풀어 놓음으로써 형양에서 포위된 유방을 탈출시킨다.
넷째, 한신(韓信)을 제(齊)왕으로 봉하게 함으로써 그를 이용하여 천하를 얻는다.
다섯째, 유방으로 하여금 거짓으로 운몽(雲夢)을 유람토록 함으로써 한신을 제거한다.
여섯째, 백등(白登)의 포위를 풀음으로써 유방의 목숨을 건진다.


이상 그 수법이 고명함에는 실로 감탄을 금치 못할 뿐이다.

 

▲물이삼군위중이경적


물이삼군위중이경적(勿以三軍爲衆而輕敵). 군대가 많다고 적을 가벼이 보지 않는다.


“삼군이 많다고 해서 적을 가볍게 보지 말라. 명령이 중하다고 해서 꼭 목숨을 버리려고 하지 말라. 자기 몸이 귀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천시하지 말라. 자기 혼자만의 견해로 여러 사람을 어기지 말라. 말로 꼭 그렇다고 하지 말라.”


이 말은 <육도> ‘용도(龍韜)?입장(立將)’에 나온다.


요컨대 자기 군대의 숫자가 많다고 하여 적을 깔보지 말라는 말이다. 창이나 칼 같은 냉병기로 싸우던 시대에 무기나 군 장비는 기본적으로 그다지 다를 게 없었고 작전 형식도 단순했다. 따라서 승부는 일반적으로 군대의 수에 달려 있었다. 그래서 <관자(管子)> ‘칠법(七法)’에서는 “많은 수로 적은 수를 치면 10전 10승이요, 100전 100승”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인류의 지략과 연계되어 왔고, 역사상 소수로 다수를 물리친 예는 얼마든지 있었다. 이 경우 승리를 거둔 쪽은 늘 지혜와 책략으로 승리를 거두었고, 패한 쪽은 대부분 지혜가 부족했거나 적을 깔보았거나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었다.


전쟁은 국가의 생사 존망에 관계된다. 장수가 명을 받고 군을 통솔한다는 것은 국가 존망의 큰 책임을 짊어지는 것으로, 승리하면 국가가 생존하겠지만 패배하면 나라가 망한다. 따라서 언제 어디서든지 “이익에 합치되면 움직이고, 그렇지 않으면 멈춘다”(<손자병법> ‘모공편’)는 기본 전략을 상기하고, 군을 자신의 개인 병력으로 여겨서도 안 되며, 숫자가 많다고 적을 얕잡아 보아서도 안 된다. 그러지 않았다가 패하고 나면 천고의 역적 내지는 만고의 죄인이 되어 버린다. 장수는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삼국시대 유명한 관도(官途) 전투에서 원소(袁紹)는 정예보병 10만과 기병 1만으로 허창(許昌)을 공격하려 했다. 대장 저수(沮授)는 우리 힘을 기르면서 상대가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공격한다는 합리적인 계획을 건의했다. 모사 전풍(田豊)도 상대방이 미처 예상치 못한 기묘한 책략으로 제압하자며 습격을 제안했다.


그러나 원소는 병력 수만 믿고 조조를 ‘손바닥 뒤집듯 쉬운’ 상대로 깔보았다. 조조의 병력은 1만에 지나지 않았지만 계략을 잘 활용하고 또 측근의 건의를 잘 받아들여, 때와 대세를 살피면서 기민한 작전을 구사함으로써 주도권을 장악해나갔다. ‘성동격서’의 전략으로 원소의 군이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끝내 원소를 크게 물리쳤다. 원소는 무려 7만여 병사를 잃었다.


382년, 전진(前秦)의 왕 부견(符堅)은 동진(東晋)을 공격하려고 했다. 이때 누군가가 동진은 장강(長江)이라는 험난한 지역을 확보한 데다가 백성들도 기꺼이 앞장서서 힘을 내고 있어 승리하기 힘들다며 공격하지 않는 게 좋다고 건의했다. 그러나 부견은 우리 쪽 숫자가 많아 “말채찍만 던져도 강을 막을 수 있고, 발만 담가도 그 흐름을 끊을 수 있는데” 동진이 무슨 수로 우리를 막느냐며 충고를 무시했다.


이듬해 부견은 무려 87만이라는 대군을 이끌고 동진을 공격, 비수에서 전투를 벌였다. 결과는 87만 대군이 8만 군에게 대패를 당했다. 자기 숫자만 믿고 상대를 얕잡아본 결과였다.


537년, 동위(東魏) 고환(高歡)은 20만의 대군으로 서위(西魏)를 공격했다. 당시 서위의 승상 우문태(宇文泰)의 군은 1만이 채 안 되었다. 고환은 숫자만 믿고 충고도 듣지 않은 채 곧장 진격해 들어갔다. 전략·전술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작정 밀고 들어갔다.


반면에 우문태는 중과부적의 형세에서 적의 정황을 면밀히 정찰한 다음 지형을 교묘히 이용했다. 숲 속에 병사를 매복시켜놓고 동위의 군대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가, 잡자기 북을 울리며 공격해서 동위 군을 대파했다. 동위군은 8만 명이 전사했고 갑옷과 무기 18만 점을 잃었다.


군이 국가의 안위와 직결됨에도 고환은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이 싸움에 앞서 후경(侯景)은 고환에게 이번 출병은 규모가 방대하기 때문에 만에 하나 실패할 경우 그 후환이 엄청날 것이라고 충고했다. 고환이 이 말을 받아들여 신중하게 군사를 활용했더라면 승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만약 고환이 대를 기다렸다가 공격하자는 장사(長史) 설숙(薛琡)의 건의를 받아들였거나, 점진적으로 조금씩 공격해 들어가자는 후경의 전략을 따랐다면 결과는 고환의 승리로 끝났을 가능성이 컸다. 고환은 그저 ‘삼군의 숫자만 믿고 적을 얕잡아 보아’ 합리적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독단적으로 군을 움직이는 바람에 대패하고 말았다.


이상의 몇몇 사실들은 ‘삼군이 많다고 해서 적을 가볍게 본’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숫자만 믿고 적을 깔보는 것은 장수라면 가장 기피해야 할 사항인 바, 장수 된 자들은 이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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