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째 자선단체 이끄는 마리안 세바스찬 인터뷰

“입을 열면 우리 안의 ‘외침’ 터져나옵니다”

이제훈(뉴시스 기자) | 기사입력 2020/01/31 [14:34]

27년째 자선단체 이끄는 마리안 세바스찬 인터뷰

“입을 열면 우리 안의 ‘외침’ 터져나옵니다”

이제훈(뉴시스 기자) | 입력 : 2020/01/31 [14:34]

목소리와 음악을 힐링 도구 삼아 자선단체 ‘자유로운 목소리’ 창립
볼리비아에서 학대당한 아이들 치료 후 전 세계 돌며 ‘기적의 공연’

 

▲ 27년째 자선단체 ‘자유로운 목소리’를 이끄는 스위스 국적의 소프라노 마리안 세바스찬. 

 

“저는 부정당한 것에 대해 싸워왔어요. 그런데 정당함을 회복시키려면 우선 마음 속 부당함을 정화시켜야 합니다.”


소프라노 출신으로 자선단체 ‘자유로운 목소리’를 창립한 스위스 국적의 마리안 세바스찬은 목소리와 음악을 ‘힐링 도구’로 삼는다.


자신의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청각 장애와 언어 장애를 갖고 있는 농아(聾啞)로 태어난 아들을 위해 ‘수화 테크닉’을 개발하면서 더 많은 이들을 돕게 됐다. 성인이 된 그녀의 아들은 프랑스어와 영어를 구사하는 건축가가 됐다. 

 

말 못 하는 아이들 치료와 구제


최근 서울 상암동에서 만난 세바스찬은 “제 아이가 태어나 10년 동안 침묵 속에서 살았어요. 모든 의사들은 평생 말을 할 수 없다고 단정했습니다”라고 돌아봤다.


하지만 몸짓으로 특정 단어를 표현하는 것을 넘어 손짓으로 음성까지 표현하는 세바스찬식 수화는 아들에게 목소리를 되찾아줬다.


“정말 꿈 같은 놀라운 일이죠.”


세바스찬의 기적은 개인에게 한정되지 않았다. 우연히 방문한 볼리비아에서 그 기적은 넓게 퍼져나갔다. 당시 볼리비아로 여행을 떠났는데 탄광과 쓰레기 더미에서 일하는 열 살 안팎의 어린아이들을 만나고 경악했다. 


이후 사명감을 갖고 스위스로 돌아가 그동안 저축한 모든 돈을 털어 1993년 ‘자유로운 목소리’를 창립한다. 이후 탄광에서 살며 탄광과 쓰레기 더미에서 일하며 학대를 받아 말을 하지 못하게 된 볼리비아의 어린이들을 치료했다.


이 단체에는 40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는데 학대를 받던 어린 시절 구제를 받은 이들이다. 음악가, 변호사, 건축가, 엔지니어가 됐다. 아프리카, 인도, 루마니아, 인도네시아 등에서 일한다. 27년이 된 이 단체는 세계 자선단체 중 58위 규모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250만 명에게 도움을 줬단다. 


세바스찬은 “가슴 속에서 혁명이 먼저 일어나지 않는 한 사회적인 혁명도 일어나지 않는다”면서 “자유로운 목소리는 볼리비아 아이들의 존재 가치를 찾아주는 것을 통해 사회적 존재를 인정받게 했다”고 말했다.


“학대를 받아 자신에 갇혀 있던 아이들의 영혼이 터지는 경험을 하게 만든 거죠.”


세바스찬이 이번에 처음 한국을 방문한 이유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서다. 최근 보육원 등을 돌며 봉사 차원에서 비영리로 아이들을 돌보고 자신의 수화 방법 등을 전파했다. 


세바스찬이 치료를 위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아이들과 심정적으로 동화되는 것이다. 보육원에서 아이들과 나눈 대화가 그 예다. 세바스찬은 아이들에게 가장 우아한 곤충이 무엇이냐고 묻자 아이들 사이에서 “나비”라는 답이 나왔다. 


세바스찬은 “나비가 왜 우아하고 행복한지 아느냐?”고 아이들에게 되물었다. 아이들은 궁금증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부모가 없어서 그래요. 애벌레에서 나비가 되잖아요.”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단다.


“자유로운 목소리 역시 마찬가지에요. 아이들을 위한 단체가 아니라 아이들의 힘으로 이끌어 가는 단체입니다.”


세바스찬이 아이들을 치료하는 방법 중 하나는 음악치료다. 자신이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에 맞춰 소리를 내지 못하는 아이들을 소리 내게 만든다. 입으로 소리를 내는 동안 평소 안에 억눌려 있던 것들도 밖으로 터져 나온다.


말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처음에 입을 제대로 열지 못한다. 그래서 세바스찬은 코르크 마개를 입에 물게 한단다.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같은 방식으로 치료한다. 지난 1월17일 tbs FM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출연 당시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도 잠시지만 세바스찬의 치료를 받았다. 김철웅은 세바스찬의 이끌림에 따라 점점 크게 소리를 냈다.


세바스찬은 “노래를 시작하면 자신도 모르게 내는 소리에 사람들이 깜작 놀라요. 억눌려 있던 화 밑에 고통이 딱딱하게 쌓여 있는데 그것이 터져 나오거든요. 거의 모든 사람이 영혼의 상처를 갖고 있죠”라고 말했다. 

 

“한국에 이웃돕기 전파하고파”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김철웅은 피아니스트 임현정과 함께 ‘영천 아리랑’을 연주했다. 경북 영천에 살던 사람들이 일제강점기 만주에 끌려가 고향을 그리면서 부르던 아리랑이다. 아리랑은 우리에게 한의 노래이자 치유의 노래다.


이 노래를 들은 세바스찬의 반응은 “전쟁 때문에 고통을 받은 한국 사람들의 고통과 한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렇게 힘겨운 삶을 살았던 민족이 어떻게 세계에서 선두를 달리는 나라가 됐는지 신기해요. 한국 사람들의 비상한 머리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한국이 너무 좋다는 그녀는 “여생을 한국에서 마감하고 싶을 정도예요. 기회가 되면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이어나가고 싶어요”라고 했다. 

 

▲ 세바스찬은 ‘영천 아리랑’ 노래를 들은 후 “전쟁 때문에 고통을 받은 한국 사람들의 고통과 한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세바스찬과 한국 사이의 가교 역을 한 이는 임현정이다. 그녀는 프랑스어 통역도 도맡고 있다. 한국인 최초로 스위스 ‘뉴샤텔 국제문화상’을 받는 등 스위스에서 살며 다양한 문화, 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임현정은 2019년 12월 세바스찬의 강의를 듣고 팬이 됐다고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세바스찬도 임현정의 팬이었다. 임현정이 펴낸 음악과 영성에 관한 에세이집 <침묵의 소리>를 너무 좋아해 침실과 부엌에 각각 놓아두고 달달 외울 정도로 읽는다는 것이다. 


임현정은 “세바스찬은 제 롤모델이에요. 음악으로 사람들을 힐링시키는 것에 감동을 받았어요. 음악은 공연장을 초월해서 가장 필요한 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만드셨죠”라고 말했다. 


말을 하기 위해 침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들 치료와 임현정의 책 <침묵의 소리>를 읽고 깨달았다는 세바스찬은 “입을 열면 우리 안의 것이 다 열린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외치지 못했던 외침들이 다 안에 갇혀 있거든요. 그것이 쏟아지지 않고 갇혀 있기만 하면 부으면서 점점 더 커지고 억압이 됩니다. 입을 완벽하게 벌리는 순간, 자신 안에 있던 걸림돌이 다 사라져요. 마음 안에 있는 것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죠. 망설이지 말고 소리를 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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