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겨울 음식 여행

“남도의 싱그러운 내음, 그 바닷가 바람 다 담긴 바로 그 맛”

정리/김수정 기자 | 기사입력 2020/02/14 [12:11]

이야기가 있는 겨울 음식 여행

“남도의 싱그러운 내음, 그 바닷가 바람 다 담긴 바로 그 맛”

정리/김수정 기자 | 입력 : 2020/02/14 [12:11]

예로부터 먹고사는 일은 인생 최대의 화두 거리다. 그리고 식도락은 인간에게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즐거움을 선사한다. 오늘날의 미디어들은 쉽게 맛을 내는 레시피를 공개하고, 유명 셰프들은 저마다 발군의 요리 솜씨를 뽐내며 소위 ‘쿡방’과 ‘먹방’으로 트렌드를 이끌어나간다.

 

그래서인지 전국 곳곳의 맛있는 식당을 찾아가는 맛집 열풍은 식을 줄 모른다. 식도락은 인간에게 손꼽히는 즐거움. 텔레비전에서도, 서점가에서도, 전국 곳곳의 맛있는 식당을 소개한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동장군이 영 맥을 못 췄지만 그래도 겨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비가 내리고 나면 싹이 트는 절기라는 우수가 지났지만 여전히 뜨끈한 음식으로 추위를 달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관광공사에서는 2월에 가볼 만한 곳으로 ‘이야기가 있는 겨울 음식 여행’을 추천하고 있다. 지금 꼬막과 매생이가 제일 맛있다는 전라남도 벌교와 장흥으로, 메밀전병과 콧등치기 국수로 유명한 고장 강원도 정선과 영월로 미감 여행을 떠나보자.

 


 

부드럽고 쫄깃한 맛 일품인 꼬막은 지금 가장 맛 좋은 시기
뜨끈한 매생이탕 한술 떠 입안에 넣는 순간, 바다 내음 가득

 

면이 굵고 투박한 메밀국수, 후루룩 빨아들이면 콧등을 칠 만
영월서부시장은 ‘메밀전병의 성지’…심심한 맛인데 은근 중독성

 

1. 벌교 꼬막과 장흥 매생이


겨울바람이 제법 차다.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에 가시가 달린 듯, 절로 목이 움츠러든다. 겨울바람이 차가울수록 겨울 바다는 오히려 맛이 깊어진다. 기름진 갯벌에서 조개는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바닷물고기는 튼실해지며, 차가운 물속에서 해초는 연하고 부드러워진다.

 

지금이 아니면 맛보지 못할 바다의 겨울 진미가 있으니, 바로 꼬막과 매생이다. 냉장·냉동 기술이 발달해 사시사철 먹을 수 있다지만, 제철에 먹는 맛에 비할 바 아니다.


‘꼬막’ 하면 떠오르는 곳이 벌교다.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맛이 일품인 꼬막은 지금이 가장 맛 좋고 많이 날 시기다. 지난 주말에 찾은 벌교에는 꼬막 자루가 장거리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꼬막은 세 종류가 있다. 우리가 흔히 먹는 새꼬막은 ‘똥꼬막’이라고도 하며, 껍데기에 난 골의 폭이 좁고 표면에 털이 있다. 제사상에 오르기 때문에 ‘제사 꼬막’으로도 불리는 참꼬막은 고급 꼬막으로, 껍데기가 두껍고 골이 깊다.

 

▲ 우리가 흔히 먹는 새꼬막(왼쪽)과 즙이 많은 참꼬막(오른쪽).  ©

 

새꼬막은 배를 이용해 대량으로 채취하고, 참꼬막은 갯벌에 1인용 ‘뻘배(널)’를 밀고 들어가 직접 캔다. 완전히 성장하는 데 새꼬막은 2년, 참꼬막은 4년이 걸린다. 값도 참꼬막이 새꼬막보다 5배 정도 비싸다. 새꼬막은 쫄깃해서 무침이나 전으로, 참꼬막은 즙이 많아 데쳐서 먹는다. 피꼬막은 새꼬막이나 참꼬막보다 2~3배 이상 크다.


벌교에서 꼬막을 먹는 가장 대중적인 방법은 꼬막정식을 내는 식당에 가는 것이다. 한 집 건너 하나가 꼬막정식을 파는 식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1인당 2만 원 정도면 꼬막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 데친 참꼬막, 꼬막을 듬뿍 넣고 부친 전, 갖은 채소를 곁들여 매콤하고 새콤한 회무침, 새꼬막을 푸짐하게 넣은 된장찌개 등이 나온다. 나중에 공깃밥을 주문해 참기름 한 숟가락 둘러 비벼도 별미다. 꼬막탕수육은 아이들이 좋아한다. 식당 주인은 꼬막을 넣고 끓이다가 거품이 나면 바로 건져야 맛있다고 귀띔한다. 꼬막이 껍데기를 벌릴 때까지 삶으면 질겨지니 주의한다.

 

▲ 데친 참꼬막, 꼬막전, 꼬막회무침, 꼬막된장찌개, 꼬막탕수육 등이 한 상에 나오는 벌교 꼬막정식. 


벌교는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이 된 곳이다. 벌교역 앞으로 ‘소설태백산맥문학기행길’이 있다. 2011년 조성된 이 거리에는 피아노학원, 문방구 등이 개화기 건물 속에 들어섰다.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구 보성여관(등록문화재 132호)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은 목조건물로, 판자벽에 함석지붕을 올렸다. <태백산맥>에서는 ‘남도여관’으로 등장했으며, 빨치산 토벌대장 임만수와 대원들의 숙소로 사용됐다. 보성여관은 복원 사업을 거쳐 2012년 카페와 숙박 시설로 다시 태어났다.


보성여관 옆 삼화목공소는 1941년에 지은 건물로, 지금은 목수 왕봉민씨가 운영한다. 1955년 선친이 운영하던 목공소를 물려받았다. 골목을 따라 조금 가면 화폐박물관으로 운영되는 보성 구 벌교금융조합(등록문화재 226호) 건물이 있다. <태백산맥>에서는 금융조합장 송기묵과 현 부자네 집안사람인 남도여관 주인 현준배가 염상진 부대의 손에 죽는다. 태백산맥문학관, 소화의집, 현부자네집 등 <태백산맥>의 무대를 답사해도 의미 있을 듯싶다.


벌교 옆 장흥에서는 매생이가 한창이다. 매생이는 장흥과 완도, 고흥 등에서 나지만, 올이 가늘고 부드러우며 바다 향이 진한 장흥 내전마을 매생이를 최고로 친다. 내전마을에서는 모두 24가구가 매생이밭 35ha를 일군다.


매생이도 다른 바다 작물처럼 나는 기간이 점점 줄어든다. 예전에는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채취했지만, 올해는 2월 중순까지 채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바다가 따뜻해졌기 때문이다.

 

▲ 매생이를 채취하는 어민. 

 

십수 년 전만 해도 김을 양식하는 주민은 매생이를 ‘웬수’로 여겼다. 김발에 매생이가 붙는데, 매생이가 섞인 김은 반값도 못 받기 때문이다. 이제는 매생이가 김과 자리를 바꿨다.


남도 사람들은 매생이를 주로 탕으로 먹는다. 옛날에는 돼지고기와 함께 끓였다는데, 요즘은 대부분 굴을 넣고 끓인다. 방법은 간단하다. 민물에 헹군 매생이에 물을 붓고, 굴과 다진 마늘을 넣고 끓인다. 소금이나 조선간장으로 간을 하고, 참기름 한두 방울과 참깨를 뿌려 낸다. 오래 끓이면 매생이가 녹아 물처럼 되기 쉬우니, 한소끔 끓자마자 불을 꺼야 한다.

 

장흥 토박이들은 “매생이탕에 나무젓가락을 꽂았을 때 서 있어야 매생이가 적당히 들어간 거예요. 매생이는 젓가락으로 건져 먹어야죠”라고 설명한다. 정남진장흥토요시장에 매생이탕과 매생이떡국을 내는 식당이 여럿이다.

 

▲ 젓가락으로 건져 먹는 매생이탕. 


최근 들어 매생이가 많이 알려져 홍어나 과메기처럼 ‘전국 음식’이 됐다. 서울 같은 대처 음식점에서도 간간이 맛볼 수 있다. 일부 식당에선 매생이로 만든 칼국수, 부침개, 달걀말이 등을 낸다. 뜨끈한 매생이탕을 한술 떠서 입안에 넣는 순간, 바다 내음이 가득 퍼진다. 안도현 시인은 이 맛을 “남도의 싱그러운 내음이, 그 바닷가의 바람이, 그 물결 소리가 거기에 다 담겨 있었던 바로 그 맛”이라고 표현했다.


요즘 장흥에서 가장 떠오르는 여행지는 정남진편백숲우드랜드다. 장흥군이 억불산 편백 숲에 조성했으며, 숙박 시설과 산책로 등을 갖췄다. 편백 숲을 걸으며 상쾌한 피톤치드 향을 가득 마시다 보면 도심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우리나라에 선종이 제일 먼저 들어온 보림사에도 가보자. 가지산 자락에 울려 퍼지는 범종 소리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김영남 시인은 보림사의 범종 소리를 듣고 〈참빗〉이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먼 보림사 범종 소리 속에/가지산 계곡 솔새가 살고/그 계곡 대숲의 적막함이 있다/9월 저녁 햇살도 비스듬하게 세운.//난 이 범종 소리를 만날 때마다/이곳에서 참빗을 꺼내/엉클어진 생각을 빗곤 한다.”

 

<글·사진/최갑수(여행작가)>

 

2. 정선·영월 시장의 味담


시장이 주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먹을거리다. 추위를 이기려고 국수 한 그릇 서둘러 말아 먹거나, 출출함을 면하려고 막 튀겨낸 도넛을 베어 물 때, 만든 이의 인생을 맛보는 것 같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생의 미감이다. 강원도 재래시장은 먹을거리의 재료가 지역의 삶이다. 정선아리랑시장이나 영월서부시장이 대표적이다.


정선아리랑시장은 1999년 정선5일장관광열차가 개통하며 오늘의 명성을 얻었다. 2015년부터 정선아리랑열차(A-train)가 그 바통을 잇고 있다. 끝자리 2·7일에 열리는 오일장은 변함없이 북적거리고, 상설시장은 여행의 목적으로 부족함이 없다. 정선아리랑시장 동문과 서문 어느 쪽으로 들어가든 ‘메밀이야기’ ‘곤드레이야기’ ‘콧등치기이야기’ 등 먹자골목이 반긴다.


메밀전 부치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골목을 나눴지만 콧등치기, 곤드레밥, 올챙이국수 등을 한집에서 판다. 전은 메밀부침과 전병, 수수부꾸미, 녹두전 등 모둠전 형태로 5000원 선이다. 시장 음식의 진가를 맛볼 수 있다.


정선아리랑시장의 먹을거리는 재료가 지역을 말한다. 토양이 척박한 강원도는 논농사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메밀, 옥수수, 감자 등 구황작물이 꿋꿋하게 자랐다. 강원도 사람들은 메밀로 전병과 콧등치기를, 옥수수로 올챙이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먹은 음식이다.

 

▲ 콧등치기는 면발이 콧등을 치게 먹어야 제맛. 


재미난 이름 역시 사연이 있다. 콧등치기는 장국에 말아 먹는 메밀국수다. 막국수와 달리 면이 굵고 투박하다. 후루룩 빨아들이면 면이 콧등을 칠 만하다. 올챙이국수는 옥수수 녹말을 묽게 반죽해서 구멍 뚫린 바가지에 내린다. 찰기가 적으니 툭툭 끊어져 올챙이묵처럼 생겼다. 콧등치기나 올챙이국수는 술술 넘어간다. 급하게 허기를 채우고 서둘러 일터로 돌아가던 아우라지 떼몰이꾼과 민둥산 화전민의 뒷모습이, 정선 사람들의 하루가 보이는 듯하다.

 

▲ 콧등치기에 들어가는 메밀국수 삶는 모습. 막국수와 달리 면이 굵고 투박하다. 


새로운 공간도 생겼다. 정선아리랑시장 골목 안쪽에 ‘청아랑몰’이 있다. 청춘과 아리랑을 합친 이름이다. 3층 컨테이너 건물은 1층 푸드 코트, 2층 액세서리 숍과 공방, 3층 퍼브(pub)로 구성된다. 김밥이나 떡볶이 같은 분식에서 마카롱, 과실주, 수제 맥주까지 작지만 알차다.


정선의 자연이 보고 싶다면 아리힐스-스카이워크가 좋다. 뱅뱅이재라고도 불리는 해발 583미터 병방치 전망대에 길이 11미터 ‘U 자형’ 스카이워크를 설치했다. 강화유리 바닥 아래는 아찔한 절벽이고, 눈앞에 한반도 지형과 어우러진 동강이 압도한다. 눈 내린 다음 날이 아름답지만, 도로 상태에 따라 출입을 통제하기도 한다.


아리랑브루어리는 영월과 가까운 신동읍에 있다. 맥주의 쓴맛을 폐광 지역 광원 이야기에 녹여냈다. 브랜드 이미지도 광원이다. 현재 수제 맥주 5종을 선보인다. 평일에 맥주 5종 시음이 포함된 양조장 견학 프로그램(약 20분 소요, 1만원)을 운영한다. 50석 규모 퍼브를 갖춰, 오후 햇살 아래 맥주 한잔 즐기며 쉬었다 갈 수 있다.


정선아리랑시장이 강원도 시장 음식 여행의 대표 주자라면, 영월서부시장은 떠오르는 강자다. 영월은 한동안 박물관 여행지로, 영화 〈라디오 스타〉 촬영지로 불렸다. 근래에는 영월서부시장이 대세다. 〈라디오 스타〉의 정서가 녹아든 소도시 시장이 ‘먹부림’으로 특화되며 찾는 이가 부쩍 늘었다.


영월서부시장은 영월서부아침시장과 서부공설시장, 영월종합상가가 합쳐 한 시장을 이룬다. 1959년에 정식 허가를 받았으니 60년이 넘었다. 영월 사람에게 여전히 동네 시장이지만, 여행자에게는 ‘메밀전병의 성지’다. 메밀전병 맛집은 영월서부아침시장 자리에 모여 있다. 농부들이 아침에 농산물을 팔고 돌아가서 아침시장이란 이름이 붙었다.

 

▲ 메밀전병에 볶은 김치와 당면 등으로 만든 소를 넣는다. 

 

그 자리에 메밀전병 맛집이 다닥다닥하다. 입구부터 메밀전병 부치는 냄새에 군침이 돈다. 자그마하게 내건 간판에는 ○○집, ○○분식 같은 상호가 메밀전만큼이나 정겹다.


조금씩 다른 음식을 낸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모두 메밀전병과 메밀부침개 맛집이다. 철판에 기름을 쓱 두르고 묽은 반죽을 얇게 부친 다음, 볶은 김치와 당면 등으로 만든 소를 얹어 둘둘 만다. 심심한 맛인데 한 점씩 먹다 보면 금세 바닥이 드러난다. 가게마다 전 부칠 때 쓰는 기름, 볶은 김치의 매운맛, 전의 두께와 색깔이 다르다.


여행자는 방송에 나온 맛집을 찾고, 영월 사람은 미세한 맛의 차이를 알아채니 각자 단골집이 따로 있다. 하지만 ‘오픈 키친’에서 부친 메밀전을 입안 가득 넣고 먹을 때 행복감은 별반 다르지 않다. 주인은 할머니가 많은데, 무뚝뚝해 보여도 막상 앉으면 친절하다.


메밀전병과 더불어 영월서부시장 먹부림 양대 산맥의 하나는 닭강정이다. 메밀전병이 추억을 더해 은은한 맛을 빚는다면, 닭강정은 직설적이다. 매콤하고 달콤한 자극으로 매혹한다. 영월서부시장의 닭강정은 땅콩 가루를 넉넉히 묻혀 고소한 맛이 더하다. 시장 내 유명한 집들이 있는데, 바삭하게 씹히는 맛이 조금씩 다르다. 반대편 출구 영월종합상가 쪽에는 영화 〈라디오 스타〉의 주인공 안성기와 박중훈 벽화가 숨은 볼거리다.


영월에 가면 동강사진박물관에 꼭 들러볼 일이다. 박물관은 2005년에 문을 열었지만, 2001년 사진 마을을 선포하며 시작된 영월의 사진 역사가 고스란히 담겼다.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진가들의 작품이나 동강국제사진제 수상작 등을 전시한다. 야외회랑은 겨울 추위에도 회랑을 거닐며 작품을 감상할 만하다.


젊은달와이파크는 요즘 영월에서 주목 받는 예술 공간이다. 최옥영 작가가 술샘박물관을 개조해 복합 문화 공간으로 꾸몄다. 젊은달와이파크는 ‘영(young, 젊은)+월(月, 달)’에서 따온 이름이다. ‘붉은 대나무’ ‘목성’ 등 공간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작품을 비롯해, 젊은 층이 공감할 만한 감각적인 요소가 많다. 젊은달와이파크 전체가 포토 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사진/박상준(여행작가)>
<콘텐츠 제공=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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