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 새로 쓰는 古今疏通-병귀신속

작전도 공격도 빠름·빠름…군은 신속을 으뜸으로 삼는다

글/이정랑(고전연구가) | 기사입력 2020/02/14 [14:30]

다시 읽고 새로 쓰는 古今疏通-병귀신속

작전도 공격도 빠름·빠름…군은 신속을 으뜸으로 삼는다

글/이정랑(고전연구가) | 입력 : 2020/02/14 [14:30]

신속한 행동과 전광석화 같은 공격은 ‘전쟁의 진정한 영혼’
전쟁에서는 ‘시간이 곧 군대’…단 하루면 제국의 운명 결정

 

고요한 군대가 승리하고, 힘과 마음 통일한 나라가 승리
힘 분산되면 약해지고, 마음에 의심 생기면 배반하는 법

 

▲ 조정이 부패하여 백성들이 도탄에 빠진 후한 말기 상황을 그린 영화 ‘삼국지: 황건적의 난’ 한 장면. 

 

1. 병귀신속(兵貴神速)


병귀신속(兵貴神速). 군은 신속함을 으뜸으로 삼는다.


이 말의 근원은 <손자병법> 구지편의 ‘작전은 신속한 것이 으뜸’이라는 ‘병지정주속(兵之情主速)’에 있다. <삼국지> 위서(魏書) 곽가전(郭嘉傳)에 보면 “태조가 원상(袁尙) 및 삼군(三郡)의 오환(烏丸)을 정벌하고자 했다. 곽가는 ‘병은 신속함이 으뜸’이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무릇 모든 용병 작전에서 선수로 상대방을 제압할 때도 신속함이 중요하며, 주동적인 공격에도 속도가 중요하며, 전기를 포착할 때도 빠름이 중요하다. 끈질기게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내선(內線) 작전에서도, 전투를 진행해야 하는 외선(外線) 작전에서도 속전속결은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천둥과 번개는 귀를 막을 틈도, 눈 깜짝할 틈도 주지 않는다. 군대가 오랫동안 굳게 지키고 있는 성 아래에 노출되어 있으면 날카로움이 꺾여 둔해질 수밖에 없다. 속전속결해야 비로소 파죽지세를 살릴 수 있다. 따라서 “병은 교묘하지만 느린 것보다 거칠지만 빠른 것을 중요시한다. 빠르면 기회를 타겠지만, 느리면 변화가 발생한다.”(명나라 <등단필구 登壇必究>)고 말하는 것이다.


명나라 때의 ‘찬집무편(纂輯武編)’에서는 “병은 빠른 것이 상책이다. 전기(戰機)는 그 빠름 속에 숨어 있다. 마치 매로 토끼 사냥을 할 때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놓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러시아의 유명한 군사령관 수보로프는 군대의 신속한 행동과 전광석화와 같은 공격을 ‘전쟁의 진정한 영혼’이라고까지 말했다. “1분이면 전투가 결정 나고. 한 시간이면 전쟁 전체의 승부가 결정 나며, 하루면 제국의 운명이 결정 난다”는 말은 그가 처해 있던 시대적 상황에서 나온 당찬 목소리였다.


엥겔스는 이 점에 대해 더욱 분명하고 철저한 논의를 펼치고 있다. 그는 ‘터키 전쟁의 진행 과정’이라는 글에서 “나폴레옹이 그렇게 하고 난 연후에 모든 군사 담당자들은 행동의 신속함이 군대의 부족함을 보충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적이 미처 병력을 집중시키기 전에 습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돈’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전쟁에서는 ‘시간이 곧 군대’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군대의 신속한 행동은 강한 기동력의 표현이다. 그리고 이는 군 장비의 발전을 기초로 한다. 이것은 동시에 고도의 조직과 지휘술(통솔력)의 표현이기도하다. 지휘관은 갖가지 계략으로 판단을 내리고 과감하게 일을 처리해야 함은 물론, 규범을 깨는 행동으로 속도 면에서 우세를 차지할 수 있어야 한다.


227년, 위나라의 신성(新城, 지금의 호북성 방현) 태수 맹달(孟達)은 비밀리에 촉·오와 결탁하여 반란을 꾀했다. 당시 완성(宛城, 지금의 하남성 남양시)에 주둔하고 있던 사마의는 이 중요한 정보를 듣고 맹달을 토벌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었다.

 

관례대로라면 사마의가 반란을 평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낙양에 있는 군주에게 보고를 올려 승낙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완성에서 낙양까지는 왕복 1600리로 가는 데만 보름 이상이 걸리고, 완성에서 맹달이 반란을 꾀하고 있는 상용성(上庸城)까지는 1200리로 가는 데만 약 열흘이 걸린다. 만약 군주의 허락을 받은 다음에 반란을 평정하러 나설 경우, 맹달이 거사한 후 한 달이 지나야 상용성을 구경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위군과 맹달의 병력은 수적인 면에서 4대 1로 위군이 절대 우세했지만, 위군의 식량이 1개월 분량도 남아 있지 않은 반면에 맹달의 식량은 1년을 버틸 수 있을 만큼 많았다.

 

다시 말해 위군이 낙양으로부터 허락이 떨어진 다음 움직인다면, 상용성에 도착할 무렵에는 이미 식량이 바닥 날 판이었다. 그리고 맹달은 이 한 달 동안 응전 준비를 충분히 갖출 것이다. 요컨대, ‘시간’이 쌍방 간에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관건이었다.


지혜롭고 꾀 많은 사마의는 시간을 벌기 위해 속도전으로 승부를 가렸다. 그는 관례를 무시하고 위왕의 진군 명령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몰래 대군을 이끌고 반란군을 토벌키로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삼군을 여덟 부대로 나누어 이틀 거리를 하루에 행군하여 8일 만에 상용성 앞에 이르렀다.


한 달 이상 준비 기간을 벌었다고 만족해하던 맹달은 깜짝 놀라 “거사한 지 8일 만에 저쪽 군대가 성 밑에 이르다니 대체 얼마나 빠르기에!”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맹달은 준비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고 성을 수리하는 공사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세한 위군의 공격을 받자 군심이 동요되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맹달의 조카 등현(鄧賢)과 부장 이보(李輔) 등은 성문을 열고 나가 항복했고, 성 안으로 진입한 위군은 맹달의 목을 베었다. 1만 명 이상이 포로로 잡혔고, 난은 불과 16일 만에 평정되었다.


사마의의 신속한 행동은 식량 부족의 단점을 피하고 우세한 병력의 장점을 잘 살린 것이었다. 반면에 맹달은 식량이 풍족한 우세한 조건을 발휘하지 못함으로써, 견고하지 못한 성과 열세인 병력을 메울 시간도 놓치고 말았다.


현대 전쟁에서는 신속함을 더욱 강조한다. 소련이 체코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사례는 신속함의 중요성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3000만 인구에 평소 10만 정도의 군인을 보유하고 있던 이스라엘이 48시간 내에 무려 40만에 달하는 대군을 전선에 내보낸 것은 전쟁 동원의 속도 면에서 전 세계를 경악시킨 경우였다.


이상은 ‘병귀신속’이 승리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말해주는 좋은 사례들이다.

 

2. 병이정승(兵以靜勝)


병이정승(兵以靜勝). 고요한 군대가 승리한다.


전국시대의 책으로 알려진 ‘울료자’ ‘정권(政權)’을 보면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구절이 나온다.


고요한 군대가 승리하고, 힘과 마음을 하나로 통일한 나라가 승리한다. 힘이 분산되면 약해지고, 마음에 의심이 생기면 배반한다.


이 계략의 요지는 고요한 군대가 적을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회남자>에서는 “군대가 냉정·침착하면 견고해진다”고 했다. 또 ‘초려경략( 草廬經略)’ ‘상정(尙靜)’에서는 “무릇 3군이란 시끄러우면 혼란에 빠지고, 고요하면 잘 다스려진다”고 했다. <병뢰> 정(靜)에서는 이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다.


병(兵)이란 무(武)를 다루는 일이다. 따라서 고요함을 위주로 한다. 고요하면 형체가 없지만, 움직이면 형체가 드러난다. 호랑이나 표범이 움직이지 않으면 함정에 빠지지 않고, 사슴이나 고라니가 움직이지 않으면 덫에 걸리지 않고, 날아다니는 새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물에 걸리지 않고, 물고기가 움직이지 않으면 새의 부리 따위에 쪼이지 않듯, 모든 움직이는 물체는 제압당하게 마련이다.

 

때문에 옛 성인들은 고요함을 중요하게 여겼다. 고요하면 서두르지 않는다. 그런 다음에 서두름에 응할 수 있다.


한 군대가 고요함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까닭은 첫째, 고요하면 형체가 없어, 적이 나의 행적을 종잡을 수 없고, 따라서 나의 의도와 허실을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어디를 막고 있는지 나의 어디가 약한지 모르기 때문에 어디로부터 나를 공격해야 할지 모른다. 또 내가 어디를 공격해 들어갈지 모르기 때문에 어디를 막아야 할지 모른다.


둘째, 고요하면 서두르지 않아, 자신의 약점을 쉽게 드러내지 않기에 적이 기회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장수기 냉정하고 꼼꼼히 문제를 살펴 판단을 내리고 ‘기계(奇計)’를 구사하면 ‘승산이 큰 싸움’을 벌일 수 있다. 군대가 훌륭한 방어 태세, 엄격한 규율과 질서를 유지하면 명령을 확실하게 집행하고 긴밀한 협동 체제를 세울 수 있다.


기원전 154년, 오(吳)·초(楚) 등 7국이 서한(西漢) 정권에 반기를 들고 일어났다. 이른바 ‘오초 7국의 난’이다. 주아부(周亞夫)는 명령을 받고 반란군 정벌에 나서 창읍(昌邑, 지금의 산동성 금향 서북)에 이르러 튼튼한 성을 거점으로 수비 태세에 들어갔다. 오·초 군은 양(梁)의 수양으로 진군했다. 양에서는 사신을 보내 주아부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한 경제(景帝)도 주아부에게 양을 구원하라고 했다.

 

그러나 주아부는 병력을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날랜 기병 한 부대를 보내 오·초의 식량 보급로를 차단했다. 오·초 군의 공격은 계속되었지만 상황은 좀처럼 진전이 없었다. 거기에다 식량이 떨어지자 오·초는 결전을 서둘렀다.

 

그러나 주아부는 출전하지 않고 수비에만 치중했다. 오·초 군은 싸움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굶주림에 시달려 사기가 급속도로 떨어지자 하는 수 없이 퇴각하기 시작했다. 이때를 놓칠세라 주아부는 정예병으로 오·초 군을 맹렬히 공격하여 대파했다.


317년, 봉기군의 수령 두증(杜曾)의 군대가 전국에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진(晉)의 원제(元帝)는 예장(豫章) 태수 주방(周訪)을 파견하여 토벌케 했다. 당시 봉기군의 사기는 왕성하여 파죽지세였다. 싸움이 시작되자 주방은 몸소 중군을 이끌면서 군심을 안심시키고, 자신은 후방에서 사냥이나 하면서 여유를 보였다. 그는 이미 마음속으로 전투의 손익계산서를 다 세우고 있었고, 따라서 위기에 처해서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던 것이다.

 

전투가 격렬해지자 주방은 정예병 800 명을 뽑아 술과 음식을 마음껏 들게 한 다음, 절대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고 명령했다. 봉기군의 수령 두증이 빠른 속도로 주방의 30보 앞까지 접근하자, 주방은 그제야 몸소 북을 울리며 병사를 격려해 나가 싸우도록 했다.

 

두증은 이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크게 당황했고 군사들도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이 틈에 주방은 창을 휘두르며 맹공을 가해 두증을 무당(武當)으로 패주시켰다.


‘정(靜)’은 ‘동(動)’과 모순되는 양면이다. 그리고 절대적인 ‘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병이정승’이 강조하는 바는 정(고요함)으로 동을 제압하고, 정으로 이기는 것이다. 먼저 고요한 다음 움직이자는 것인데, 그 속에도 움직임이 있다. ‘정’은 결국 ‘동‘을 위한 것이다. ‘동’이 없다면 ‘정’은 그 의미를 잃고 만다.

 

전쟁의 최종 승부는 적과 나 사이에 벌어지는 일련의 세력 활동으로 결판난다. 주아부가 양의 구원요청과 황제의 명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병력을 움직이지 않은 것은 총체적으로 보아 ‘정’이지만, 동시에 날랜 기병을 보내 식량 보급로를 차단한 것은 ‘정’ 가운데 ‘동’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정’이 안고 있는 의미를 깊게 이해해야 ‘병정이승’의 모략을 펼칠 수 있다.

 

예를 들어 깊은 연못을 지나가거나 얇게 언 얼음 위를 지날 때 절대로 경거망동해서는 안 되듯, ‘정’을 보수적이고 소극적인 것으로 이해하여 마냥 기다리거나 관망만 하고 있다가 전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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