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피해 호젓한 봄 맞이 여행

겨울 끝자락, 봄의 전령 변산아씨 수줍게 “삐죽~”

정리/김수정 기자 | 기사입력 2020/03/13 [14:35]

사람 피해 호젓한 봄 맞이 여행

겨울 끝자락, 봄의 전령 변산아씨 수줍게 “삐죽~”

정리/김수정 기자 | 입력 : 2020/03/13 [14:35]

새로운 유형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호흡기 감염질환(코로나19)이 온 나라를 집어삼킬 태세다. 사람 북적이는 곳을 피하려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과 일터만 오가며 웅크린 채 살아가고 있다. 그 여파로 소비심리마저 얼어붙어 경제가 죽어가고 있다.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대신 집에 콕 갇혀 지내느라 몸이 뒤틀릴 지경이다. 그러나 엄마 아빠가 회사에 가지 않는 주말에도 외출 금지령은 계속된다. 두 달 넘게 외출조차 마음놓고 하지 못해 대한민국은 지금 집단 우울증을 앓고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무기력한 생활만 계속할 것인가?

 

이번 주말에는 사람 많은 곳에는 가지 않더라도 한적한 야외로 나가 ‘코로나19’ 공포를 잠시 잊자. 곱고 청순한 모습 덕분에 ‘변산아씨’란 별칭으로도 불린다는, 봄의 전령 변산바람꽃과 복수초를 만나러 남녘으로 가보는 건 어떨까?

 


 

거무튀튀 겨울 산에서 하얀 꽃 고개 내미는 모습 ‘경이’
낙엽에 숨은 채 복수초 방끗…광택 나는 꽃잎 ‘노란 인사’

 

칠곡 가산산성 천천히 오르면, 동문 아래 복수초 군락지
땅 위에 불쑥 올라온 노란 꽃잎 가운데 진노랑 꽃술 빼곡

 

1. 변산바람꽃과 복수초


변산바람꽃은 이른 봄에 피는 대표적 야생화다. 겨울 끝자락인 2월 초부터 3월까지 산속에서 은밀하게 핀다. 거무튀튀하고 황량한 겨울 산에서 하얀 꽃이 고개를 내미는 모습이 경이롭다. 변산바람꽃은 너도바람꽃, 홀아비바람꽃, 꿩의바람꽃 등 여러 바람꽃 가운데 하나로 내변산에서 발견되어 붙은 이름이다. 곱고 청순한 모습 덕분에 ‘변산아씨’란 별칭으로도 불린다. 변산바람꽃 자생지는 내변산 일대인데, 그중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청림마을이다.

 

▲ 변산아씨’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변산바람꽃. 


내내 따뜻한 겨울이 이어지다가 입춘 한파가 매서웠다. 하필 한파를 뚫고 변산으로 가는 길, 왜 그런지 콧노래가 나왔다. 봄의 전령 변산아씨를 만나기 때문이다. 3시간쯤 달려 서해안고속도로 부안 IC로 나왔고, 상서면 청림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마을로 들어서니 집들 너머로 쇠뿔바위봉이 우뚝 솟았다. 청림마을은 수려한 내변산의 암봉을 품은 마을이다. 쇠뿔바위봉에는 등산 코스가 있어 종종 사람들이 찾는다.


이른 봄 청림마을에는 변산바람꽃을 보러 오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청림영농조합 건물을 지나 만나는 갈림길에서 좌회전, 다시 200미터쯤 골목을 따라가면 최봉성 할머니 댁이 나온다. 외벽에 할머니와 변산바람꽃 사진이 걸렸다. 할머니를 뵙고 싶은데 방문이 굳게 닫혔다. 집 앞 보리밭이 푸릇푸릇하다. 보리밭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계곡이 변산바람꽃 자생지다.

 

▲ 눈송이처럼 작은 변산바람꽃을 촬영하는 모습. 


눈을 크게 뜨고 낙엽을 헤치며 꽃을 찾는다.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고개를 내민 한 송이가 눈에 들어왔다. “꽃이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키 10cm 안팎에 희고 손톱만 한 꽃. 바람이 제법 쌀쌀한데도 용케 꽃이 피었다. 톡톡 꽃을 건드리며 인사를 건네니 따뜻한 봄의 생명력이 내 안으로 흘러드는 느낌이다.


계곡 안쪽으로 들어가 다시 풀숲을 헤치다가 사이좋게 핀 여러 송이를 발견했다. 낙엽 이불을 덮은 모습이 앙증맞다. 자세히 보면 꽃잎같이 생긴 하얀 잎 5장은 꽃받침이다. 꽃술 주변을 둘러싼 노란색 주걱처럼 생긴 기관 10개 안팎이 퇴화한 꽃잎이다. 이는 화려하게 보여 가루받이를 쉽게 하려는 꽃의 전략이다.

 

변산바람꽃은 이름도 특이하다. 1993년 전북대학교 선병윤 교수가 변산 일대에서 발견한 신종을 학계에 보고해, 이름에 지명이 들어갔다. 다시 계곡을 거닐면서 꽃을 찾아보지만, 더는 발견하지 못했다. 날이 추워 낙엽 이불을 덮고 꼭꼭 숨어서 자는 모양이다. 밖에 오래 있으니 코가 찡하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꽃을 피우다니 새삼 경이롭다.


청림마을에서 차로 5분쯤 가면 내변산탐방지원센터가 나온다. 여기서 직소폭포까지 거의 평지에 가까운 트레킹 코스(2.3km, 약 1시간 소요)가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변산탐방지원센터를 지나 5분쯤 가면 변산바람꽃다리를 만난다. 다리 건너 변산바람꽃 개방 자생지가 있다. 이곳 변산바람꽃은 대개 3월쯤에 피는데, 내변산탐방지원센터에 신청하면 꽃을 볼 수 있다.


변산바람꽃다리에서 널찍한 숲길을 10분쯤 가면 부안 실상사지(전북기념물 77호)와 만난다. 한눈에도 볕이 잘 드는 명당이다. 실상사는 변산 6대 사찰 가운데 하나로, 689년 초의선사가 창건했다. 실상사 터를 지나면 청아한 물소리가 적막을 깨뜨리는 호젓한 계곡이 이어진다.


직소보 전망대에 올라서면 시야가 넓게 열린다. 관음봉을 비롯한 내변산 암봉이 병풍처럼 저수지를 둘러싼다. 길은 호숫가로 이어지고, 야트막한 언덕에 오르면 쏴~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직소폭포가 내려다보인다. 높이 약 30미터에 이르는 물줄기가 일부는 얼었고, 일부는 쏟아져 내린다. 폭포 앞에는 수천 년 세월 동안 곤두박질친 물줄기가 ‘실상용추’라는 거대한 소를 만들었다. 과연 내변산 최고 절경이란 찬사가 아깝지 않다.


직소폭포를 감상한 뒤에는 복수초를 찾아가자. ‘복을 많이 받고 오래 살라’는 뜻이 담긴 복수초(福壽草)는 내소사 뒤 청련암 오르는 길에 자생한다. 내소사 일주문을 지나면 전나무 숲길이 펼쳐진다. 눈을 감고 그윽한 향을 맡아본다. 600미터쯤 이어진 전나무 숲길이 끝나면 벚나무와 단풍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그 길 끝 사천왕문으로 들어서면 비로소 전각이 보인다.

 

▲ 청련암 근처 숲에서 봄을 전하는 복수초를 만날 수 있다. 


내소사 대웅보전(보물 291호)은 단청을 입히지 않아 소박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우물천장과 후불탱화 등의 색감이 화려하기 그지없다. 우물천장에는 춤추는 백학, 법열에 넘쳐 춤과 음악으로 공양 올리는 모습, 황룡을 타고 경전을 모셔오는 모습 등이 장엄한 극락세계를 연출한다.

 

▲ 내소사 일주문을 지나면 펼쳐지는 전나무 숲길. 


청련암으로 가려면 템플 스테이 건물을 찾는다. 그쪽에 안내판을 따르면 가파른 시멘트 도로가 나온다. 10분쯤 오르면 관음전이 보이고, 관음전 앞마당에서 내소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관음전에서 15분쯤 더 오르면 울창한 대숲 너머에 청련암이 자리한다. 청련암 마당에서 뒤쪽 내변산 암봉이 손에 잡힐 듯하고, 멀리 곰소항 일대 바다가 아스라이 펼쳐진다. 마당 의자에 앉아 산과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해도 수행이 될 듯하다.


이제 복수초를 찾아볼 차례다. 도로를 따라 천천히 내려오면서 숲을 자세히 보면 노란색이 눈에 띈다. 다가서자 낙엽 속에서 복수초가 방끗 웃고 있다. 주변으로 두세 송이 핀 꽃이 보인다. 사이좋은 형제자매처럼 여러 송이가 함께 피었다. 광택이 나는 꽃잎 때문에 노란색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

 

복수초를 보고 있으면 왠지 봄이 주는 복을 듬뿍 받는 것 같다. 야생화 탐방을 할 때 주의할 점이 있다. 꽃을 캐지 말고, 서식지가 파괴되지 않게 조심조심 다녀야 한다. 집으로 가져가려고 꽃을 캐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야생화는 서식지를 떠나면 살지 못한다.


부안에서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곰소항이다. 곰소염전 앞에 ‘슬지네찐빵 슬지제빵소’가 있다. 이곳 찐빵은 우리밀과 부안 특산물 오디, 쑥 등으로 만들어 몸에 좋고 맛도 그만이다. 제빵소는 카페처럼 꾸몄는데, 2층 베란다에서 곰소염전이 잘 보인다. 입안에서 살살 녹는 찐빵을 먹으며 부안 여행을 마무리한다.

 

<글·사진/진우석(여행작가)>

 

2. 복수초 찾아 떠난 여행


추운 겨울이 지나고 화사한 봄이 왔다. 봄과 함께 반가운 꽃도 얼굴을 내민다. 그중에서 희망을 안겨주는 노란 복수초가 눈에 띈다. 경북 칠곡군에 자리한 가산산성(사적 216호)에 봄의 전령 복수초 군락지가 있다. 걷기 좋은 숲길이 이어져 요즘은 트레킹 명소로 인기를 끄는 곳이다. 봄이면 가산산성에도 여러 꽃이 고개를 들지만, 가장 사랑받는 꽃은 복수초다. 땅 위에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며 힘든 계절을 이겨낸 생명력을 느끼게 해준다.


복수초가 등산객을 맞이하는 가산산성은 칠곡을 대표하는 역사 유적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 인조 때 축조하기 시작했다. 인조와 숙종, 영조 때 각각 내성과 외성, 중성을 차례로 쌓았다. 한국전쟁 당시 이곳에서 혈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가산산성 성곽 실측 조사에 따르면, 둘레 11.1km에 면적 2.2㎢로 규모가 크다.

 

▲ 복수초는 칠곡 가산산성에서 가장 사랑받는 봄꽃이다. 


진남문에 주차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진남문은 가산산성 입구 역할을 하는 문으로, ‘영남제일관방’이라는 현판이 위풍당당하다. 복수초를 보려면 진남문에서 동문까지 약 3.6km 올라야 한다. 길이 험하지 않고 서어나무, 층층나무, 물푸레나무 등 숲이 우거져 등산하기 좋다. 중간에 암석이 수북하게 쌓인 암괴류와 서로 꼭 안은 혼인목 등 볼거리가 있어 심심하지 않다.


2시간쯤 천천히 오르면, 동문 아래 펼쳐진 복수초 군락지에 닿는다. 숨을 고르며 땅 위에 불쑥 올라온 노란 꽃과 눈을 맞춘다. 위성 안테나처럼 활짝 핀 꽃잎 가운데 진노랑 꽃술이 빼곡하다. ‘영원한 행복’이라는 꽃말처럼 명랑하게 피었다. 복수초(福壽草)는 ‘복 많이 받고 오래 살라’는 뜻이다. 눈을 녹이며 핀다고 눈색이꽃, 눈 속에 피는 연꽃 같다고 설연화(雪蓮花), 설날 무렵 꽃을 피운다고 원일초(元日草), 황금 잔처럼 보인다고 측금잔화(側金盞花) 등 이름이 많다.

 

▲ 눈을 녹이며 핀다고 ‘눈색이꽃’, 눈 속에 피는 연꽃 같다고 ‘설연화’라고도 하는 복수초. 


제주에서는 복수초가 2월에도 피지만, 산속에 있는 가산산성 복수초는 3월에야 볼 수 있다. 복수초가 가장 많이 피는 시기는 4월로, 5월이면 사라진다. 시간도 챙겨야 한다. 해가 나면 꽃잎을 조금씩 열기 시작해, 해가 떠 있는 동안 피고 해가 지면 꽃잎을 닫는다. 흐린 날이나 비 오는 날에도 햇빛이 없으면 꽃잎을 열지 않는다. 활짝 핀 복수초를 보고 싶다면,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에 찾아가자.


안타깝게도 복수초 군락지 앞에 출입 금지 팻말이 있다. 무분별한 채취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눈으로만 보고 만지지 마세요. 여기에서 계속 사랑받고 싶어요’라는 문구가 애처롭다. 가산산성 복수초는 자생종으로, 잘 보호하지 않으면 개체 수가 준다. 자연은 제자리에 있을 때 진정한 아름다움을 만나는 법. 복수초를 오래 보려면 우리가 먼저 보호해야 한다.

 

▲ 칠곡 가산산성을 2시간쯤 천천히 오르면, 동문 아래 펼쳐진 복수초 군락지에 닿는다. 


복수초 감상을 마친 뒤에는 동문을 돌아본다. 예스러움이 남은 동문과 날개처럼 뻗은 성곽이 인상적이다. 동문 근처에 180년 동안 유지된 산성마을 터와 관아 터도 있다. 산속에 마을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지금은 터가 남았을 뿐이지만, 점차 복원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놓치면 안 될 곳이 가산바위다. ‘가암’이라고도 불리는데, 수십 명이 앉아도 될 만큼 널찍하다. 가산바위에 서면 유학산과 황학산, 도덕산 등 칠곡 일대 산과 대구 시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주변을 둘러보기만 해도 가슴이 확 트인다.


지난해 방영한 tvN 드라마 〈왕이 된 남자〉도 이곳에서 촬영했다. 가산바위에서 시계 방향으로 좀 더 걸으면 북문에 닿는다. 북문 근처에도 복수초 군락지가 있다. 북문은 등산객이 많이 찾지 않아 한적하게 복수초를 만나기 좋다. 동문까지 이어진 길에 비해 험하니 주의가 필요하다.


가산산성 근처에 유서 깊은 송림사가 있다. 신라 진흥왕 때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창건한 고찰이다. 대웅전에 높이 약 3m에 달하는 송림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보물 1605호)이 있다. 대웅전 앞마당에 당당히 선 오층전탑(보물 189호)도 눈에 띈다. 통일신라 시대 전탑으로, 금동 상륜부를 주의 깊게 봐야 한다. 1959년 해체 복원 때 녹색 사리병과 유리잔 등 여러 가지 유물이 발견됐다.


칠곡군은 가톨릭 성지가 많다. 대표적인 곳이 가실성당(경북유형문화재 348호)으로, 120년이 넘는 역사를 품고 있다. 1895년에 조선 교구 열한 번째 성당으로 시작해, 한국전쟁 때는 병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현재 성당은 프랑스 박도행 신부가 설계한 건축물로, 웅장한 신로마네스크 양식이 돋보인다. 성경 속 이야기를 담은 내부 스테인드글라스도 아름답다.


칠곡 여행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곳으로 구상문학관이 있다. 프랑스 문인협회가 선정한 ‘세계 200대 문인’에 든 구상 시인을 기념하는 공간이다. 구상 시인은 한국전쟁 이후 왜관에 정착해 문학 활동을 펼쳤다. 문학관은 시인이 창작 활동을 한 관수재와 문학 세계를 담은 전시실로 구성된다. 〈강〉 연작시 60여 편을 발표한 시인이 강을 보며 시상에 잠기고, 시인이 사용한 타자기가 전시된 관수재에서 그 흔적을 더듬어 보자.

 

<글·사진/채지형(여행작가>
<콘텐츠 제공=한국관광공사>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포토뉴스
7월 첫째주 주간현대 1149호 헤드라인 뉴스
1/3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