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피해 호젓한 봄 맞이 여행

유기방가옥 뒷동산 수선화 “과연 천하의 큰 구경거리”

정리/김수정 기자 | 기사입력 2020/03/20 [12:04]

사람 피해 호젓한 봄 맞이 여행

유기방가옥 뒷동산 수선화 “과연 천하의 큰 구경거리”

정리/김수정 기자 | 입력 : 2020/03/20 [12:04]

새로운 유형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호흡기 감염질환(코로나19)이 전 세계를 집어삼킬 태세다. 우리나라는 확진자 숫자가 눈에 띄게 줄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고 있다. 인파가 북적이는 곳을 피하려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과 일터만 오가며 웅크린 채 살아가고 있다. 그 여파로 소비심리마저 얼어붙어 경제가 죽어가고 있다.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대신 집에 콕 갇혀 지내느라 몸이 뒤틀릴 지경이다. 그러나 엄마 아빠가 회사에 가지 않는 주말에도 외출 금지령은 계속된다. 두 달 넘게 외출조차 마음놓고 하지 못해 대한민국은 지금 집단 우울증을 앓고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무기력한 생활만 계속할 것인가?

 

이번 주말에는 사람 많은 곳에는 가지 않더라도 한적한 야외로 나가 ‘코로나19’ 공포를 잠시 잊자. 고즈넉한 한옥과 노란 수선화를 가득 심은 언덕이 그림처럼 어우러진 충남 서산 유기방가옥으로 봄 마중을 떠나보자. 국내 최대 할미꽃 자생 군락지로 유명한 전남 장흥 한재공원으로 이른 꽃구경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코로나19’에 빼앗긴 들에도 분명 봄은 오고 있을 테니….

 


 

고즈넉한 한옥과 노란 수선화 가득한 언덕 그림처럼 어우러져
추사 김정희 “산과 들에 핀 수선화, 흰 구름 질펀하게 깔린 듯”


보송보송 솜털로 뒤덮인 할미꽃 수줍은 듯 땅을 보며 피어나고
붉은 꽃만 아름답다 여겼거늘, 동백 잎도 이토록 근사할 줄이야

 

1. 서산의 수선화


한동안 봄꽃 하면 자연 그대로 아름다운 동백꽃과 매화, 벚꽃 정도를 떠올렸다. 몇 년 새 풍경을 상품화하는 경관 농업이 관심을 끌고 대규모 유채꽃 단지와 청보리밭, 매실 농장 등이 인기 관광지가 되면서 봄빛이 다양해졌다. 수선화의 아름다움도 재발견됐다. 특히 충남 서산 유기방가옥(충남민속문화재 23호)은 고즈넉한 한옥과 노란 수선화를 가득 심은 언덕이 그림처럼 어우러진다.

 

▲ 영롱한 빛깔과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수선화. 


수선화의 영어 이름은 나르시서스(narcissus)다. 자연스레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미소년 나르키소스가 떠오른다. 호수에 비친 자신과 사랑에 빠져 목숨을 잃은 나르키소스가 꽃으로 피어난 것이 바로 수선화다. 수많은 요정의 마음을 흔든 소년을 닮아 수선화는 영롱한 빛깔과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언뜻 이국의 꽃으로 느껴지지만, 옛 선비들의 문인화에서도 수선화를 흔히 만난다. 추사 김정희는 제주 유배 시절 수선화를 보고 단번에 매혹됐다. 그는 <완당집>에 “수선화는 과연 천하의 큰 구경거리”라며 “그 꽃이 정월 그믐부터 2월 초에 피어 3월에 이르면 산과 들, 밭둑 사이가 마치 흰 구름이 질펀하게 깔린 듯하다”라고 적었다. 수선화를 묘사한 시와 그림도 남겼다.


해마다 3~4월이면 유기방가옥에서 수선화축제가 열리고, 4월 중순까지 만개한 꽃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축제가 열리지 못했다. 코로나19 확산을 위해 3월25일까지는 관광버스 단체관람도 제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무렵 유기방가옥 뒷동산은 추사의 표현을 빌리면 샛노란 구름이 질펀하게 깔린 듯하다. 산등성이엔 울창한 솔숲이 이어져 수선화의 노란빛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고택 바로 뒤 언덕과 산자락을 따라 드넓게 펼쳐진 꽃밭에 놓인 의자가 포토 존으로 인기다.

 

▲ 언덕과 산자락을 따라 펼쳐진 꽃밭에 놓인 의자가 포토 존. 


수선화 언덕에서 나르키소스 못지않은 인생 사진을 건졌다면, 유기방가옥도 찬찬히 둘러보자. 1900년대 초에 지은 고택은 서산 지역 전통 양반 가옥의 배치를 그대로 따른다. 누각형 대문에 여미헌(餘美軒)이라는 현판이 걸렸는데, 이 지역이 운산면 여미리에 속한다. 안으로 들어서면 부엌과 방, 대청, 건넌방으로 이어지는 ‘一자형’ 안채가 양반가다운 규모를 드러낸다. 예전에 안채 앞으로 중문채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헐어낸 상태다.


대청에 앉으면 후원에 만발한 수선화가 한 폭의 그림 같다. 안채 왼쪽에 행랑채, 오른쪽에 사랑채가 있어 전체적으로 마당을 가운데 둔 ‘ㅁ자형’이다. 덕분에 크기가 상당한 가옥인데도 아늑한 인상이다. 꽃밭과 고택을 구분 짓는 ‘U 자형’ 토담도 수선화의 동양적인 매력을 더한다.

 

▲ 수선화의 동양적인 매력을 더하는 토담. 


유기방가옥은 2018년에 방영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촬영지로도 알려졌다. 고종의 최측근인 궁내부 대신 이정문의 집으로 등장했는데, 꼿꼿하고 거침없는 집주인의 성격을 고스란히 담아낸 공간으로 눈길을 끌었다. 현재 한옥 체험을 운영해, 전화로 예약하면 안채와 사랑채 등에서 숙박이 가능하다.


고택에서 나와 오른쪽 언덕으로 올라가면 수령 350년에 가까운 비자나무가 있다. 기록에 따르면 1675년 제주도에서 가져와 심은 나무라고 한다. 지금도 왕성한 생명력을 뽐내듯 잎마다 윤기가 흐른다. 높이 20미터에 둘레도 240cm가 넘는다. 제주에서 군락을 이루는 비자나무는 전라도 백양산과 내장산에서 자생하는 게 전부다. 중부지방 이북에서 이처럼 장수하는 고목이 흔치 않아, 산림학적 가치도 매우 높다.


유기방가옥이 자리한 여미리엔 고려 시대 석불과 수령 250년을 자랑하는 느티나무 등 걸음마다 볼거리가 풍성하다. 최근 예술가들이 하나둘 자리 잡으며 ‘달빛예촌’이란 이름으로 활기를 불어넣는데, 그 중심에 여미갤러리가 있다. 10년 넘게 방치된 정미소를 리모델링한 이곳은 다양한 기획전은 물론, 마을 사람과 예술가들이 어우러지는 마을 예술제도 운영한다. 여행자에겐 잠시 걸음을 쉬었다 갈 수 있는 카페를 겸한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책장에 각종 디자인 관련 전문 서적이 빼곡해 북카페로도 손색없다.


서산을 대표하는 여행지 해미읍성과 개심사가 유기방가옥에서 자동차로 20분 내외 거리다. 지난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해 화제를 모은 서산 해미읍성(사적 116호)은 천주교 성지로 이름이 높다.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를 거치며 천주교도 수천 명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당시 해미고을은 서산과 당진, 홍성과 예산을 아우르는 내포 지역의 중심지로, 현감에게 군사력과 독자적인 처형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토록 비극적인 사연을 품었으나, 봄날의 해미읍성은 평화롭기만 하다. 드넓은 잔디밭이 연둣빛을 띨 무렵이면 벚꽃도 흐드러지게 핀다. 복원한 옥사와 천주교도를 매달아 고문했다는 회화나무(충남기념물 172호) 한 그루가 목숨과 맞바꾼 신념을 기억할 뿐이다.


백제 시대 사찰로 알려진 개심사는 푸른빛을 띠는 청벚꽃으로 유명하다. 산속 깊숙이 자리해 평지보다 한참 늦은 4월 하순에나 벚꽃이 만발한다. 꽃송이가 탐스러운 겹벚꽃도 함께 피어 봄의 절정을 알린다.

 

▲ 벚꽃이 아름다운 개심사의 봄. 


오붓한 산길을 조금 걸어 올라가면 돌계단이 나오는데, 하나하나 가지런한 모양새가 꽤 정성을 들인 느낌이다. 수백 개나 되는 돌계단이 산세를 따라 ‘갈 지(之) 자형’으로 놓여 그 끝을 짐작할 수 없다. 그저 묵묵히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다 보면 선물처럼 개심사가 눈앞에 나타난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것도 이와 같지 않을까. 개심사(開心寺)로 오르는 길은 그 이름처럼 마음을 여는 과정이다.

 

<글·사진/권다현(여행작가)>

 

2. 장흥의 할미꽃과 동백


3월은 새내기 봄이다. 세상의 빛깔이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는 기점이다. 새내기 봄은 꽃의 도움을 받아 무채색 세상에 점점이 색을 입힌다. 3월의 봄꽃은 아직 가시지 않은 추위를 이겨내고 절절하게 꽃망울을 틔운다.


남들보다 빨리 꽃 마중을 하고파 남도로 향한다. 장흥에서도 남쪽 바닷가로 내려가 한재공원에 이른다. 득량만 바다가 내다보이는 언덕에 있는 한재공원은 국내 최대 할미꽃 자생 군락지로 유명하다. 약 10만 제곱미터에 할미꽃이 자유롭게 피어오른다. 언덕 중턱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군락지를 돌아본다.


할미꽃은 흐드러지게, 화려하게 피는 여느 봄꽃과 달리 소박하게 꽃을 피운다. 땅에서 낮게 피어오르기 때문에 발걸음에 신경 써야 한다. 자칫하면 꽃을 밟거나 놓칠 수 있다. 걸음을 늦추고 허리를 낮춰 조심히, 세심히 할미꽃을 바라보자. 할머니 흰머리처럼 흰 털이 있고 할머니 허리처럼 꼬부라졌다고 할미꽃이라 불린다. 피자마자 할미꽃이고 시들어도 할미꽃이다. 보송보송 흰 솜털로 뒤덮인 꽃은 수줍은 듯 땅을 바라보며 피어난다. 흰 솜털 속에서 붉은빛 감도는 자주색 꽃잎이 반짝거린다.

 

▲ 흰 솜털 속 자줏빛 꽃잎이 반짝이는 할미꽃. <사진제공=장흥군청> 


한바탕 꽃구경을 한 뒤 공원 내 정자에서 잠시 쉬자. 멀리 바다가 내다보인다. “한식 지내러 왔다가 한재 고개 번덕지 풀밭에 엉덩이 붙이고 앉는다. 고살바위 주위로 진달래꽃이 불처럼 타오른다.” 한재공원 아랫마을 신덕리 출신 문인 한승원이 쓴 ‘한재 고개’ 시구처럼 불타오르는 진달래꽃 구경은 덤이다.


장흥의 3월은 동백꽃도 아름답다. 지리산, 내장산 등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으로 꼽히는 천관산에는 20만㎡에 이르는 동백숲이 있다. 우리나라 최대 천연 동백 군락지며,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관리된다.

 

▲ 천관산 동백숲은 원시림 분위기가 살아 있다.  


천관산자연휴양림으로 향하는 임도를 따라가면 ‘천하제일 천관산 동백숲’이라는 대형 표석이 나타난다. 표석 오른쪽에 2007년 국내 단일 수종 최대 군락지 기록을 기념하는 비가, 왼쪽에 ‘천관산 동백숲’ 노래비가 있다. “천관산 골짜기 동백꽃 보러 갔더니 비단 치맛자락 사방팔방 반짝이네. 정남진 동백꽃 붉은 사랑 곱고 곱다…”로 시작하는 노래다. 노랫말은 많은 환경 노래를 만든 시인이자 환경운동가 고 김황희가 썼다.


표석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전망대가 보인다. 이곳에서 동백숲을 한눈에 담아야 한다. 햇살 좋은 날이면 반질반질한 동백 잎이 끝없이 반짝거린다. 붉은 동백꽃만 아름답다 여겼거늘, 초록빛 동백 잎도 이토록 근사할 줄이야. 이곳에서 동백숲의 아름다움에 눈뜬다.

 

▲ 3월에 더 아름다운 천관산 동백숲. 


밖에서 보는 숲만큼 안에서 접하는 숲도 매력적이다. 숲에 들어서면 동백 잎이 무성해 하늘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상부 전망대에서 출발하면 내리막 코스로 돌아본다. 다시 출발점으로 가려면 그만큼 오르막길을 걸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자. 탐방로는 나무 데크로 된 구간도 있지만 대부분 흙길이고, 졸졸 계곡물이 흐른다. 인위적으로 정돈하지 않은 원시림 분위기가 살아 있다. 숲을 걷다 보면 계곡이나 흙길에 무심히 떨어진 동백꽃에 마음이 간질간질하다.


천관산 동백숲은 우리가 흔히 보던 동백숲과 결이 좀 다르다. 이곳 동백숲은 주민들의 삶과 밀접하다. 수십 년 전 그들에게 동백나무는 생계용이었다. 마을에서 엿을 생산했는데, 이때 동백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했다. 동백나무로 숯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동백숲 내 가마터가 여러 곳 발견돼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됐다. 당시 무분별한 벌채로 숲이 훼손됐고, 보호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후 주민들이 창립한 천관산동백숲보존회와 산림청이 앞장서 다시 짙푸른 숲이 됐다. 동백나무는 벌채의 흔적을 이겨내고 줄기를 키우고 잎을 피워 건강한 숲을 지켜간다.


장흥에는 유채꽃 명소도 있다. 장흥 출신 작가 이청준이 쓴 단편소설 〈선학동 나그네〉의 배경이 되는 선학동마을이다. 임권택 감독이 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천년학〉도 마을에서 촬영했다. 이 작가는 소설에서 “포구에 물이 차오르면 관음봉은 그래 한 마리 학으로 물 위를 떠돌았다. 선학동은 날아오르는 학의 품 안에 안긴 마을인 셈이었다. 동네 이름이 선학동이라 불리게 된 연유였다”라고 썼다.

 

선학동은 소설 속 지명인데, 실제 배경인 산저마을이 영화 촬영 후 선학동마을로 이름을 바꿨다.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최수종·하희라 부부가 한 달 살기 프로젝트를 진행한 곳이기도 하다. 4월 말부터 5월 초에는 유채꽃이, 가을에는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장흥 대표 명소 중 하나인 정남진전망대에서는 득량만을 중심으로 고흥 소록도까지 내다볼 수 있다. 건물은 지하 1층에 지상 10층 규모로, 떠오르는 해와 황포돛배를 형상화한 외관이 인상적이다. 10층과 9층에 전망대와 카페가 있고, 나머지 각층은 북카페, 문학영화관, 추억여행관 등 테마관으로 조성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갔다가 계단으로 내려오면서 각층을 돌아보면 된다.


‘육해진미’로 여행을 마무리하자. 장흥 땅과 바다에서 나는 대표 먹거리로 구성한 장흥한우삼합을 추천한다. 청정 자연에서 자란 질 좋은 한우, 장흥 대표 농산물인 표고버섯, 득량만의 싱싱한 키조개 관자가 모여 장흥한우삼합을 완성한다. 은은한 표고 향에 보드라운 키조개 관자, 육즙 진한 한우가 따로 또 같이 입안에서 매력을 발산한다. 정남진장흥토요시장을 비롯해 장흥 일대에서 삼합을 맛볼 수 있다.

 

<글·사진/김수진(여행작가)>
<콘텐츠 제공=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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