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 세태풍자 소설 ‘불 꺼진 무인등대’ 제2부 <마지막 회> 화투 예술

“인생이란 30년 살든 60년 살든 헤아리기 어려울걸”

글/김영권(소설가) | 기사입력 2020/05/15 [09:32]

김영권 세태풍자 소설 ‘불 꺼진 무인등대’ 제2부 <마지막 회> 화투 예술

“인생이란 30년 살든 60년 살든 헤아리기 어려울걸”

글/김영권(소설가) | 입력 : 2020/05/15 [09:32]

“나쁜 창조자는 주인으로 군림하지만 좋은 모방자는 노예로 무시당해”
“시장은 삭막한 도시 속 오아시스…변하는 듯 변치 않는 풀꽃을 닮아”

 

백화무당 왈 “하늘은 스스로 돕는 세상 만물을 도우려 늘 애쓰신다네”
“누군 늘 행복하고 누군 불행해 보이는데, 그건 일시적 착각일 뿐…”

 

잠시 후 Q가 물었다.


“조영남씨 화투 그림 대작 사건에 대해 법원 판결이 났던데…어찌 생각하세요?”


“글쎄, 뭐…소재와 표현, 아이디어와 형상화의 문제는 그림뿐 아니라 모든 동서고금 예술가들의 중심적인 고민이니까. 소재나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더라도 그걸 잘 표현해서 하나의 작품으로 형상화할 만한 기량과 피땀 어린 노력이 모자란다면 졸작이 되고 말겠지.”


“법원에선 소재와 아이디어 편을 들어줬잖아요?”


“허허…만일 베토벤이 어떤 악상을 가지고 밤잠 잊은 채 고뇌하지 않았다면, 미켈란젤로가 이미 잘 알려진 소재로 직접 땀 흘리며 망치를 두드리지 않았다면, 어떤 실존 여인을 다빈치가 직접 그리지 않았다면…과연 모나리자와 운명교향곡과 피에타 같은 작품이 창작돼 우리의 심금을 울릴 수 있었을까? 그리고 봄이면 늘 이 땅 산야를 붉게 물들이며 피어나는 진달래를 두고 소월이 각혈하며 한 낱말 한 낱말 직접 적지 않았다면 우리의 애송시가 과연 태어날 수 있었을까?”


“일개 화투 그림을 그런 명작들과 비교하는 건 좀….”


“흐흐, 어쨌든…여기 이 시장통 목로주점들의 일상적이고 정겨운 풍경을, 구도만 대충 잡아준 뒤 조수에게 촬영케 해서…내 이름으로 전시하고 터무니없는 가격에 팔아먹는 다면 파렴치한 인간이 아닐까?”


“외국에서는 조수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잖아요. 법원에서도 그걸 인용하고….”


“법원뿐 아니라 한국 사람은 참 문제가 많아. 선진국의 좋은 점은 배우지 않고 흉내만 겨우 내면서 나쁜 점은 뺨치게 능가하거든. 미국이나 프랑스의 몇몇 유명 화가들이 조수를 쓰는 건…말하자면 독창적인 필요성에 의해 마지못해 그러는 거야. 자기 나름의 모색과 고뇌를 거쳐 나온 방식이라는 거지. 그런데 우리는 남이 한다면, 특히 미국이 한다면 맹목적으로 쌍수를 들고 따라하는 거야. 나쁜 창조자는 주인으로 군림하지만 좋은 모방자는 노예로 무시당하지. 흐흐….”

 

▲ 2011년 ‘한국국제아트페어’를 찾은 참관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뉴시스> 


“현대 예술에서는 창조와 모방의 경계가 희미해져 버렸잖아요.”


“흐흐, 모방이 창조를 혓바닥 날름대며 잡아먹는 세상이지. 하지만…진심으로 창조를 부정하는 예술가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자기의 작품도 무시해 버리거든. 그냥 장난이나 놀이에 불과하니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는 얘기지!

 

그런데 한국의 예술가인 척하는 놈들은…남의 고유한 창작은 곧잘 무시하면서 한갓 유행 따라 개발새발 그린 지 작품은 무척 소중히 여기거든. 그리고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지. 허위의 명예랄까…예전에 포스트 모더니즘이니 뭐니 지랄할 때, 이××라는 작자가 남들의 작품에서 좋은 구절을 슬쩍 뽑아내 짜깁기해서는 불세출의 신창작이라고 떠벌려댔잖아. 그건 좋아,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니까.

 

헌데 그 뒤가 구렸지…무의미의 의미를 계속 추구해도 모자랄 판에 대중의 인기를 올라타고 의미의 욕망에 들러붙어서 박정희 찬가를 뻔뻔스레 외치기 시작한 거야. 그 자도 지금은 화려한 날개를 접고 권력자의 하수인 노릇을 한 죄로 감방에 들어가 있는지 출소해 다른 방식을 모색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지난 번 구속될 때 사진을 보니까 자기는 무척 억울하다는 표정이던데요.”


“본인이야 그렇겠지. 본질은 진실의 문제니까, 아전인수만 하지 말고 내면적으로 성찰을 한다면 재생의 길이 열릴 수도 있겠지 뭐.”


“진실을 실행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흥, 나 같은 거렁뱅이라면 몰라도…이 시대의 대표입네 자임하는 분네들은 그러면 안 되지.”

 

“김××이란 평론가가 고은 시인의 성추행 시비 문제에 대해…예술가는 일반적인 도덕윤리 관념을 넘어 창조하는 존재이므로 세속적인 잣대로 단죄해선 안 된다는 취지로 변호했던데 어찌 생각하세요?”


“글쎄…그럴 수도 있겠지. 헌데, 만약 그 시인이 진정한 예술가라면 자기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겠지. 나도 언젠가 인사동 술집에서 그런 추태를 본 적이 있는데 전혀 아니라고 부정하면 섭섭하고 황당하지 뭘.

 

차라리 술집에서처럼 발가벗은 마음으로 인간 본성의 욕망을 인정하고, 시대적인 억압 속에 갇힌 인간애의 진실과 자유를 추구했노라고 강변했다면, 그리고 솔직스레 여성들에게 불찰에 대한 용서를 구했다면 어땠을까 싶어. 혹은 과거 승려 시절에 배운 색즉시공의 진리에 따라 삶도 공이요 정욕도 공이라고 토로하며 스스로 공으로 돌아갔다면 아수라도를 헤매는 중생들에게 하나의 메시지라도 던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조만간 노벨문학상을 타게 되면…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식으로 영웅화되리라고 아전인수하지 않았을까? 영웅호색이란 말도 있으니 말야. 어쩌면 지금 현재 영웅이나 위인이 된 마인드로 그깟 성추행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지.”


“그래도 고민이 많겠죠. 문학적으로 승화시킬 기회가 있으려나….”


“아, 이건 너무 멀리 나온 것 같네요. 자, 일단 한잔 하시고 나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죠.”


“어허, 그래. 으음, 막걸리 참 시원허군…암튼, 조영남 대작 사건은 1심에선 유죄 판결이 나고 항소심에선 무죄 판결이 나서 막 웃어대더라만 앞으로 대법원에서 어떤 판결이 날진 모르지 뭐. 법엔 정의가 있어야 하고 예술가의 마음엔 양심과 진실이 있어야 할 텐데, 다 변질돼 버린 세상이니까.

 

선진국 예술가처럼 조수를 부려먹었으면 합당한 보수를 지급해얄 텐데…슬쩍 덧칠이나 하고 사인한 뒤에 터무니없이 비싼 값에 팔아먹곤 대작료를 쥐꼬리만큼 주었으니 사달이 날 밖에. 흠, 결국 인간성과 양심의 문제야.

 

그 양반이 원래 딜라일란가 뭔가 하는 미국 번안곡으로 단번에 히트를 쳐서 잘나가는 인기가수가 되었거든. 혹시 각고의 노력으로 창작곡을 불러 거품 없이 참된 가수로 살았다면 화투 그림 대작 따위로 스캔들을 일으키진 않았겠지.”


“미국 같으면 어떨까요?”


“모르지 뭐. 적어도 뻔한 거짓말을 뇌까리거나 사기를 친다면 악마 새끼라며 짓밟아 버릴걸. 미국인들은 띄워줄 때 화끈하게 띄워주는 만큼 추락시킬 때도 가차없잖아. 세속에 밝으면서도 청교도의 후예라는 자부심을 못 버려서 그런지…대작도 좋다, 대필도 좋다, 모작도 좋다, 다만 사실을 밝혀라!”


“그들은 대필하면 대필작가 이름을 밝히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죠.”


“사실상 대작(代作)을 한 사람과 시킨 사람은 같은 모방자 통속에 든다고 할 수 있겠지. 특히 색즉시공의 공보다는 색에 눈알을 밝히는 자들은…화투를 가지고 가지각색의 아이디어를 내는 건 좋지만, 그걸 자기만의 유니크한 발상이라고 고집한다면…원래 화투 그림을 그린 옛 무명화가는 뭐라 하시려나?…개새끼, 잘난 니 똥이나 처먹고 정신차려! 그러시지 않을까….”


“자, 또 한잔하시죠.”


“그럼 좋지.”


둘은 꿀꺽꿀꺽 술을 들이켰다.


“시장에 오면 왠지 편해요.”


“삭막한 도시 속의 오아시스랄까.”


“변하는 듯 변하지 않는 것이 민초의 풀꽃을 닮았어요.”


“가끔 대기업 상권에 밀려 싹 없어져 버리면 얼마나 허전할까 걱정스럽기도 해.”

 

▲ 사람들로 북적이는 재래시장 모습. <뉴시스> 


“민들레나 질경이 꽃처럼 나름 살아 보려고 애를 쓰고 있더라구요. 제가 지지난해에 수유리 시장을 구석구석 탐문하고 상인들과 인터뷰해서 르포집을 한 권 낸 적이 있는데요…행인들의 관점에서 느낄 법한 모종의 거품 같은 낭만성은 가능한 한 걷어내 버리고…손님과 상인의 입장을 반영해 객관적 실상을 파헤쳐 보려는 시도였지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조금 차이가 있을 뿐 과거나 현재나 비슷하다고 그들은 말하더군요. 미래는 어떨까? 그건 모를 일이죠…하하, 책이 좀 팔렸으면 잔치라도 한번 했을 텐데, 그닥 변변찮았는지 절판돼 버리고 말았어요.”


“사진을 넣었다면 효과가 제법 있었을 텐데….”


“넣긴 넣었는데 제가 아마추어 수준이라…혹시 다음에 개정판을 낼 기회가 오면 천 선생님께서 활약해 주세요.”


“흠, 나야 뭐 대환영이지.”


그러면서 사내는 양손으로 카메라를 만들어 찍는 시늉을 하며 들릴락말락 한숨지었다.
Q는 술잔을 들어 목을 축인 후 물었다.


“예전에, 강화도 계신 백화 무당님의 굿 장면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만나뵙고 얘길 나눠 보셨어요?”


“당연하지. 감로주까지 한잔 얻어 마셨는걸.”


“어떻던가요? 인상이라든지 또는….”


“음…평소엔 무골호인 시골 할머니 같다가도…일단 무복을 걸치고 춤출 땐 선녀인 양 하늘거리고…무슨 명령을 내릴 땐 서릿발 뿌리듯 엄정하더군.”


“아마 소중한 기회를 버리진 않았겠죠?”


“응?”


“인생의 운명에 대해….”


“음, 젊을 때라 그런 걸 무시하긴 했지만, 삶이 자꾸 꼬이다 보니 도대체 왜 이럴까 싶어 궁금하긴 했었지. 조용한 기회를 틈타 슬쩍 물어 보려는데 그 할망께서 딱 한마디로 선수를 치더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세상 만물을 도우려 늘 애쓰신다네라고…흐흣, 그 당시엔 퍽 실망스러웠으나, 요즘 생각해 보면 나에게 꼭 알맞은 격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


사내는 구슬픈 표정으로 술잔을 들어 마시곤 말을 이었다.


“예전에 <들장미 소녀 캔디>라는 만화가 있었다우. 고아원에서 자란 어린 캔디가 주어진 열악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밝은 마음으로 진실히 살아가는 이야기였지. 아마 그앤 내 서글픈 운명과 낡아빠진 카메라를 쥐어주더라도 잘 활용해 멋진 삶을 만들어 갔을 거야. 그런데 난…불평불만이나 늘어놓으며 허송세월이나 하구. 부끄러워….”


“그건 어쨌든 만화잖아요. 지금부터라도 잘하면 되죠 뭘.”


“지금부터 잘하는 것, 그게 사실상 가장 어려운 문제지. 젊은 시절에 자기 힘을 과신하다가 다이아몬드 타임을 잃어버리고, 늙으면 습관의 괴력에 짓눌려 더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셈이랄까. 흐흐, 변명 같지만…들장미 캔디도 만일 한국 땅의 현실에서라면…아마 별빛보다는 유리조각에 눈을 찔려 떠돌다가 자살하거나, 범죄의 희생물이 되거나, 혹은 스스로 어린 반항적인 범죄자가 돼 감방에 갇혀 있을지도 몰라.”


사내는 자신의 한쪽 손바닥을 펴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한동안 기다리다가 Q는 물었다.


“잘했고 못했고를 떠나…인생 육십 갑자를 살아 넘기셨는데…과연 인생이란, 인간의 운명이란 무엇일까요?”


“인생이란 30년을 살든 60년을 살았든 100년을 살든 헤아리기 어려울걸.”


“그래도 이미 지나왔으니 운명의 길목을 약간쯤 살필 수 있진 않을까요?”


“그랬으면 오죽 좋으련만…여전히 오리무중이라우. 혹시 죽을 임시엔 번갯불처럼 진실의 편린이 비칠지 모르지만….”


“그 순간에 흐뭇이 웃을 수 있다면 참 좋겠군요.”


“후회와 회한에 젖어 구슬퍼 하는 인간도 있겠지. 그 찰나가 곧 지옥이 아닐까? 영원한 찰나….”


“사진이야말로 찰나와 영원이 함께 조화를 이룬 예술 아닐까요?”


“응, 그게 촬영의 매력이겠지. 형 얘길 듣다 보니 다시 욕심 없는 순수한 맘으로 사진을 찍고 싶어지는군. 셔터를 누르는 그 찰나만큼은 득도한 선사님들 같은 마음이지. 흐흐…내일부턴 뭔가 좀 알아봐야겠어. 어차피 이런 꼴이 된걸. 내 자신의 고집이나 고정관념 따윈 싹 다 버리고 삶과 죽음의 접점에 포커스를 맞춰 볼까 싶군.”


“기대되는군요.”


“아냐. 형, 첨부터 너무 욕심 내면 안 돼. 서울역 앞 동자동이나 후암동의 쪽방 골목으로 가서…외로운 빈민들의 영정 사진을 찍어 드리거나…그들의 고뇌와 번민 그리고 단말마와 함께 시작되는 임종의 순간을 필름 속에 남기는 것도 의미있는 일인 것 같아.”


“그래요.”


“시체를 염하는 모습, 장의사들의 일상, 장례식의 한 장면을 리얼하게 포착하는 것도….”


“그렇다고 너무 그쪽으로만 빠지진 마세요.”


“흐, 어차피 별로 아까울 것도 없는 여생인데…생사 간의 접점을 실감할 때까지 한번 가보는 것도 나쁘잖겠지 뭘. 흐흐, 절묘한 순간은 영원과 통한다…가슴을 적셔 주는 명언이군.”


“아, 좀 진정하세요. 술 몇 잔에 취해 몽상의 거리를 헤매실 거예요?”


“형, 고마워, 미안해…하지만 그리 염려하진 마. 형처럼 순수한 후배님과 함께 한잔하는 이 순간 또한 영원과 통하지 않겠어, 응?…다른 누군가가 이 장면을 멋지게 한 컷 찍어주었으면 좋겠구먼.”


“마음의 카메라에 찍히겠죠 뭐.”


“흐흣, 멋있군.”


“실상 모든 분야가 그렇지 않을까 싶네요. 꽃과 나비가 만난 그 순간도 영원으로 통하고…득도한 선사님들의 삶도 그렇고…섹스의 클라이막스도…그리고 또한 감동적인 그림이나 시 한 구절, 이름 없는 사람의 아름다운 언행도 어느 누군가의 기억 속에 포착돼 순간과 영원을 이어줄 거예요.”


“건배! 바로 이 순간을 위하여…!”


둘은 잔을 맞댄 다음 마지막 술을 음미하듯 천천히 들이켰다.

 

에필로그-神人과 人犬


거처인 지하방이 있는 달동네를 향하는 Q는 가파른 길을 천천히 걸어올랐다.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평지의 고급 아파트와 달동네 지하방 중 과연 어디가 더 높을까?”
그는 웃음을 섞어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걸음을 좀 늦춰 쉬엄쉬엄 내딛으며 하늘을 쳐다보면서 철 지난 유행가를 흥얼댔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서녘 하늘가엔 달 대신 석양이 가까스로 걸려 아름다움인 듯 설움인 듯한 노을을 펼쳐내고 있었다.


“아, 저 그림은 누구의 피를 물감으로 사용한 것인가! 인간의 것이기보다…혹시 신의 피눈물로 그려낸 게 아닐까? 참된 울음을 잃어버린 인간을 대신해서…울고 계신지도 몰라, 영혼을 잊고 사는 인간을 위해 잠시 잠깐 하느님 자신의 성혈을 보여 주는지도….”


그는 다시 비탈길을 걸어 올랐다.


“음…인간이든 동물이든 애완견이든 승용차든, 고난이 없으면 영혼을 느끼지 못한다는 얘기야. 신은 우리 인간뿐 아니라 모든 존재에게 좋은 것과 함께 나쁜 것도 덤으로 주신다잖아. 영혼을 성장시키기 위해서일까?…그리고 고통 총량의 법칙이란 것도 있지….”


그는 잠시 멈춰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 늘 행복하고 누군 불행해 보이는데, 그건 일시적인 착각일 뿐…인생 전체를 놓고 따져 보면 결국 행불행의 무게가 누구든 똑같다는 얘기인데…과연 그럴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자는 평생 호화저택에서 호의호식하고, 놋수저 들고 나온 놈은 나름 노력해도 늘 지옥에서 궁색하게 살아가야 하는 현실…물론 개중엔 제 능력으로 구렁창을 바락바락 기어오르는 초인도 있다지만…그들 또한 대부분 행복의 열매를 맛보기도 전에 조락해 버리는 엄혹 살벌한 현실이 아닌가?”


서쪽 하늘의 노을은 홍시처럼 불그스름해졌다가 연보라색을 거쳐 어느 새 잿빛으로 점차 스러져 갔다.


“공중부양을 하고 축지법을 쓴다는 자칭 신인 허본좌는 선행선과(善行善果) 악행악과(惡行惡果)의 업보설을 너무 유창스레 설교하던데, 현실에서는 ‘선행악과 악행선과’의 어처구니도 꽤 많이 발생한단 말야. 나쁜 연놈들이 오히려 더 잘살아가는 이 세상의 부조리를 그들은 허구적인 전생과 내세를 만들어 손쉽게 해결하더군. 그 논리가 현세에서 지은 죄악을 처벌하고 넘어가는 것과 별로 상충되지 않는데도 그들은 이현령 비현령 식으로 적용해서, 자기네의 이해득실을 따져 곧잘 아전인수하더군.

 

이를테면 자기 이익에 방해되는 적은 즉결처분하되, 만일 도움 된다면 성폭행 살인범이라도 업보설을 적용해 용서해야 옳다는 식이지. 부처님처럼 살신성인해서 일관성 있게 이타자리(利他自利)를 실천하는 경우라면 모르지만, 사리사욕에 찌든 자들이 업보설을 들먹이는 건 모기와 파리도 웃을 노릇이야….”


그는 집이 가까워지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디선가 개소리가 컹컹 들려왔다.


“사람이 고성방가를 하면 경찰에 잡혀가는데 개는 아무리 짖어대도 왜 그럴 수 없는가? 아름다운 미래를 설계하며 공원에 산책 나왔다가 맹견에 물려 죽은 사람은 어떤 신이 구제해 주는가?”


며칠 전, 어떤 사람이 잘못 풀어 놓은 개 한 마리를 피하려다 화재 현장으로 인명 구조하기 위해 출동하던 앰뷸런스가 뒤집혀 꽃다운 청춘 세 명이 스러져 간 사고의 의미를 되새기며 Q는 비탈길을 걸어올랐다.


“아, 내일 하루는 또 어떨는지…개 한 마리 때문에 증오와 죄악으로 마음이 물들지 않고 살 수 있으면 행복하련만….”


그는 중얼거리며 어두운 골목 속으로 사라져 갔다.

 

<끝>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포토뉴스
3월 둘째주 주간현대 1244호 헤드라인 뉴스
1/3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