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 장편소설 제1회 '형제복지원-회색 구슬 속의 산 18번지 왕국'

“지옥원을 복지원이라 거짓 선전…인간 살육 도박판 벌였다”

글/김영권(소설가) | 기사입력 2020/05/29 [11:22]

김영권 장편소설 제1회 '형제복지원-회색 구슬 속의 산 18번지 왕국'

“지옥원을 복지원이라 거짓 선전…인간 살육 도박판 벌였다”

글/김영권(소설가) | 입력 : 2020/05/29 [11:22]

“그놈들은 사람의 꿈과 희망 탈취…인간 아닌 짐승으로 만든 전문가”
“겉과 속 다른 인간 살육은 요즘도 색깔만 살짝 달리해 판을 벌이고”

 

증오감 넘쳐 두 손아귀로 목 조르거나 시퍼런 칼로 찔러 죽이는 공상
꽤 중화되었건만 아직 과거의 살기 마음속에 남았는지 손가락 파르르

 

▲ 형제복지원 관계자가 2019년 11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지하철 입구 지붕 위에 올라가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는 모습. <뉴시스>  

 

제1부<1> 꽃과 비수


한겨울 바람이 불어대며 창문을 마구 흔든다. 그래도 붉은 벽돌집은 끄떡없다.
천국 속에 지옥이 있고 지옥 속에 천국이 있다는 낡아빠진 말을 나는 그닥 믿지 않았다. 삶이 하도 팍팍해선지.


하지만 지금은, 비록 일순간일지언정, 믿음 여부를 떠나 그저 존재하는 대로 향유한다. 마음속의 환상이 아니라 현실의 물질인 푹신한 소파 위에서 명료히….


“얘, 이리 와.”


나는 부드럽게 명령한다.


“네, 알았어요. 그런데 뭘 해달라구요?”


계집애의 목소리엔 애교가 살짝 스며든다.


“이미 말했잖아. 어서 이리 와!”


“네, 낭군님… 하지만 지금 낭군님의 책을 읽고 있는데….”


“그 따윈 다 허위니까 집어던져 버려!”


“아이 참, 책이 아니라 낭군님 책 원고를 타이핑하면서 읽고 있다니까요. 무서운 강제수용소. 호호….”


“….”


“그런데 속여서 형제복지원이라구 했죠.”


“흠, 양두구육이라고나 할까. 지옥원을 복지원이라 거짓 선전 해대며 전대미문의 인간 살육 도박판을 벌여… 두당 수백만 원씩, 요즘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물질적·정신적 사리사욕을 편취해 챙기고 온갖 해악을 끼친 악마의 소굴…. 인간 꿈의 가치는 과연 얼마나 될까?”


“만약 꿈이 없다면 온종일 파르르 떨다가 죽어 버릴 것 같아….”


솜희는 눈살을 살짝 찡그린 채 고갤 흔들었다.


“그놈들은 사람의 꿈과 희망을 탈취하고 짓밟아, 인간 아닌 짐승으로 만든 전문가야.”


“어머, 무서워….”


“뭐가 무섭다고 그래? 나도 그놈들과 비슷한 악마 새낀지 몰라.”


솜희는 눈을 꼭 감은 채 도리질을 하더니 물었다.


“그런데… 원고에 씌어 있는 내용이 사실이에요, 아님 상상도 포함된 건가요? 정말 놀라워요!”


“놀랍긴 뭐가…. 그건 약과야. 스토리를 요약해 놓은 것에 불과하니까. 지금 내가 고민하는 건 사실이냐 상상이냐 하는 문제가 아냐. 사실이 너무 엄청나서 상상이 끼어들 여지가 거의 전혀 없다는 게 불만이라면 불만이랄까.”


“아! 옛날 일이라지만 어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글쎄, 흐흐… 겉과 속이 다른 양두구육과 인간 살육은 요즘도 이 세상에 늘 색깔만 살짝 달리해 판을 벌이고 있잖아. 그러니 엄살 그만 떨고 이쪽으로 와 봐.”


“그래두….”


“흠, 그건 혹시 안 쓸지도 몰라. 흐흣, 좀 지나면 허섭쓰레기가 될 테니…. 신경 끄고 어서 이리 와.”


“응, 알았어요. 낭군님도 참….”


솜희는 사뿐사뿐 걸어와서 무릎을 꿇고 다소곳이 앉는다. 그리고 늘 물기가 약간 어려 있는 듯한 큰 눈으로 내 눈을 지그시 올려다본다. 나는 냉담하게 내려다보다가 아예 슬쩍 외면해 버린다.


겉으론 멀쩡해도 실은 살짝 미친 년이기 때문에 예쁠지언정 정을 주면 안 된다. 살짝 미쳐서는 삶의 진실에 가 닿을 수가 없다. 오히려 계집앤 엄혹한 현실을 주관적으로 재구성해 희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완전한 광녀보다는 살풋 미친 계집이 시녀로 부리기엔 더 좋은 게 사실이다.


솜희는 다소곳이 고개 숙인다. 긴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하얀 목덜미가 드러난다.


한땐 증오감이 넘쳐 두 손아귀로 목을 조르거나 시퍼런 칼로 찔러 죽이는 공상에 잠기기도 했지. 이젠 꽤 중화되었건만 아직 과거의 살기가 마음속에 남았는지 손가락이 파르르 떤다. 손은 무의식중에 가녀린 흰 목으로 기어가 살살 쓰다듬는다. 지금 이 순간 두 손아귀로 목을 꽉 움켜쥔다면 어찌 될까?


흠, 수많은 공상을 해보지만, 결국은 다 무산되고, 심리와 현실에 가장 적합한 한 가지로 귀착될 뿐이리라. 혹은 진저리치도록 부적합한 것으로…. 쾌감이 점점 증폭돼 천국으로 들어가기보다는 살인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져 내릴 가능성이 더 크다. 결코 그럴 순 없다. ‘복수 목록’이 거의 사문화되었다고 치더라도 뇌리엔 아직 생생히 살아 숨쉬는 듯하니까 말이다. 예전에 종이쪽에다 적어둔 목록보다 머릿속에 넣어둔 채 상황이나 기분 따라 새롭게 변경해 맛보는 것이 훨씬 감미롭다.


솜희는 처음엔 좀 볼을 붉히며 겸연쩍어 하기도 했으나 차츰 미친 년 특유의 윤리의식을 망각한 무아경에 빠졌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배꼽 부근을 간지르고 뜨거운 입김과 따스한 혀가 서서히 쾌감을 모아 단전을 자극한다.


하지만 나는 신음소리를 내지 않는다. 손가락으로 계집애의 귀를 부드럽게 매만진다. 가운뎃손가락 끝으로 귓구멍을 살살 쑤시자 오히려 계집이 먼저 달뜬 암코양이 목청을 흘려낸다.


“이년, 깨물진 마!”


냉엄한 명령에 솜희는 옴찔한다. 이따금 사랑스럽기도 하지만 표현하고 싶진 않다. 쾌락보다는 복수가 더 중요하다.


만약 증오감과 복수심이 다 사라지고 나면 어찌 될지 가끔 좀 두려워지기도 한다. 옛 상처처럼 심장이 간혹 뜨끔뜨끔 아프지 않는다면 이런 짓을 굳이 할 필요도 없으리라. 심장 속에 든 독기를 빨아내기 위해서라도 이따금 이런 짓을 시키는 셈이다.

 

솜희를 처음 본 건 3년쯤 전이었다.


소소한 일상생활의 소음을 제외하면 꽤 조용한 집이고 동네였는데, 언제부턴가 개 짖는 소리가 귀청을 무척 자극하기 시작했다.


내가 좀 예민한 편이긴 해도, 도시의 한 귀퉁이 지하방에 둥지를 튼 이상 웬만하면 참아냈다. 사람들이 살면서 내는 일상적인 소리엔 관대할 정도였다. 특히 중요한 이해관계를 놓고 벌이는 싸움, 부부나 연인 혹은 형제 자매 간의 투쟁 따윈 심각할수록 더욱 흥미로웠다. 만일 살인사건이라도 벌어진다면 훨씬 감미로워 천국에 들어간 기분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난 천국도 지옥도 싫었다. 그냥 조용히, 남의 불행을 바라지 않고 소박한 내 꿈을 가꾸어 나갈 수 있는 환경이라면 그게 천국이었다.


그런데 개 한 마리 때문에 천국의 가능성이 짓밟힌 채 지옥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강아지가 자랄수록 목청이 점차 커져 불현듯 한바탕 짖을 때마다 심장이 놀라 펄떡거리고, 작업 구상이나 명상이 산산조각나 버리곤 했다.


외출하는 길에 작심하고 1층 집의 벨을 눌렀다. 아마 내 얼굴은 창백하게 긴장한 채 일전을 불사할 각오로 파르르 떨고 있었을 것이다.


사납게 왈왈 짖어대는 개를 진정시킨 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이웃집 사람인데 잠시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한동안 침묵이 이어지더니 벨을 다시 누르려는 찰나 문이 빼꼼히 열리곤, 하얀 얼굴에 쌍꺼풀진 검은 눈과 핑크빛 입술이 살짝 나타났다.


“무슨 일이세요?”


맑지만 약간 겁먹은 듯 기어드는 목소리였다.


“혹시 여긴 하수도 물이 잘 내려가나요? 수챗구멍이 막혔는지 어쩐지 좀 시원찮아서… 관이 연결돼 있을 텐데….”


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소릴 중얼댔다. 개 짖는 얘기부터 꺼냈다가 만약 문이 닫혀 버린다면 낭패였다.


“그건 잘 내려가는 것 같아요.”


계집애의 천연적인 연분홍빛 입술이 대꾸했다.


“그런데… 이 빌라엔 아름다운 전통이 있더군요. 이사 가거나 올 때, 자기 나름의 형편에 따라 선물을 돌리던데 쪼끔은 감동적이었어요. 그래서 약소하나마 저도 이걸 드리려고….”


그건 사실이었다. 얼마 전 2층 사람이 문을 두드리더니 이사 간다면서 유자청 한 병을 불쑥 내밀었다. 별 안면이 없는 남자인지라 사양하자, 그는 자기도 처음엔 꽤 의아스러웠으나 지나고 보니 정겨운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며, 고향에서 직접 만든 특산물이라며 억지로 떠맡기곤 가버렸다. 혹시 선전용 샘플로 내돌리는 게 아닐까, 독극물이 든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가끔 따스한 물에 타 한잔 마시면 남국의 향수를 자아내며 향기로웠다.


“전 잘 모르겠어요. 나중에 엄마가 오면….”


계집애의 살구꽃빛 입술이 옴질거렸다. 표지 디자인이 멋진 책을 내밀자 문이 좀더 열렸으나 차단 고리는 벗겨지지 않았다. 망설이다가 선물을 받아든 그녀는 생긋 웃더니 곧 문을 닫아 버렸다. 한 순간의 영상처럼 꺼져 버린 그 모습은 차츰 상상의 힘을 빌어 한결 더 선명해졌다.


골목길을 걸어 내려가며 고개를 세게 흔들었지만 사라지긴커녕 뇌리 한 구석에 둥지를 튼 채 어여삐 미소지었다. 문득 나의 졸렬함을 비웃는 듯 느껴지기도 해 위악적으로 낄낄거려 보았다. 여고딩(또는 재수생)인지 여대생인지 뭔지 잘 분간할 수 없었다. 단발머리에 아담스런 몸매, 살짝 쌍꺼풀진 눈과 창백한 안색 때문인지, 죽은 첫사랑 소녀가 회상되곤 했다.

 

그 소녀는 절름발이였다.


무거운 백팩을 맨 채 절뚝절뚝 걷는 모습을 보노라면 내 가슴속의 금선이 파르르 떨렸다. 엄마만큼 심한 편은 아니었기에 귀여운 느낌마저 들 지경이었다. 마치 피아노 건반을 밟으며 특이하고 감미로운 무음곡(無音曲)을 연주하는 듯싶었다.


건강하지만 평범스런 무수한 다리보다 그 소녀의 걸음이 내겐 더 뇌쇄적이었다. 육체적 욕망보다 정신적 갈망이 훨씬 심했다. 창백한 볼에 분홍빛이 살짝 피어오르면 난 미의 감옥에 갇혀 든 성싶었다.(미적 황금률이란 게 있는 모양이던데, 일단 사랑에 빠지게 되면 그 기준점이 변화하거나 사라지는 것 같다. 미뿐만 아니라 진과 선도 비슷하지 않을까?)


아마 그녀의 다리가 더 심하게 절뚝거리거나 얼굴이 한결 붉게 인디언 소녀처럼 물들더라도 애정은 스러지긴커녕 꽃불처럼 활활 타올랐으리라.


하지만 그녀는 여고 1학년생 시절을 다 마무리하지도 못한 채, 죄 많은 육신을 벗어나 영혼의 안식처로 간다는 유서를 남기곤 자살하고 말았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진 않을 만큼 고운 성격이라 생각했건만 현실은 상상 외로 가혹스러웠던 모양이었는지….

 

그 이후 며칠 동안 개새끼는 여전히 징글맞게 짖어댔으나 내 마음속엔 별로 증오감이 들지 않았다. 똑같은 소리인데도 그닥 소음으로 느껴지지 않을 뿐더러, 때론 그저 한 마리 개의 존재론적인 앙칼스런 의사표현 또는 그저 우울감에 젖은 앙징맞은 신세 한탄처럼 들렸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득 연민의 정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이틀도 가지 못했다. 그녀를 생각해 가능하면 긍정적으로 수용해 보려 했으나 마침내 저절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단잠을 깨우고, 명상을 방해하고, 글쓸 때 홀연 떠오른 천재적인 아이디어를 끊어 버리고, 독서마저 컹컹 훼방 놓는 놈의 작태가 얄미움을 넘어 점점 증오스러워졌다.


‘죽이고 싶지만, 일단 이성과 감정을 분리시키는 게 좋겠다. 우선 애완견은 놔두자. 그녀 혹은 그녀를 닮은 사람들에겐 나름대로 애정일 테니까. 그러나… 저 천방지축 무지스레 짖어대는 개소리는 사람이 만들어낸 게 아닐까? 아마 저건 개의 외피를 뒤집어쓴 인간들의 악종(惡腫)을 죄다 모아 조작해 놓은 좀비 로봇이 내지르는 소리일 거야. 즉, 사람이 더욱 문제란 얘기지.’


다음날 다시 1층 집으로 가서 초인종을 울렸다. 지난번 같은 증오보다는 모종의 우울감이 마음속에 감돌았다. 상황에 따라서는 극단적으로 폭발할 수도 있기에 내심 조심스러웠다. 그러면서도 그 소녀의 어여쁜 미소가 내 울화를 잠재워 주길 은근히 바랐다.


그런데 문을 열고 나타난 건 웬 뚱뚱한 중년 여인이었다.


“무슨 일이시죠?”


“아, 네… 강아쥐가 요즘 꽤 좀 시끄러워서요.”


영혼을 갉아먹고 양식을 훔쳐 가는 쥐새끼, 라고 덧붙이려다가 그만두었다.


“애구머니나, 죄송스러워요. 저도 퍽 골칫거리예요! 어디 갖다버리고 싶은데….”“그런데요?”


“실은… 우리집 딸애가 너무 숫보기라서… 알아보니까 애완동물을 키우면 개선될 수가 있다더라구요.”


“가끔씩 들려오는 목소리나 웃음소리는 쾌활하던데요?”


“그건 방구석에서나 그렇지, 밖에 나가면 완전 숙맥이 돼 버리니 큰 걱정거리죠. 그래서 결국 다니던 대학도 휴학을 하고 지냈는데, 지난번에 복학 신청을 했다더니만 사실은 하질 않아 퇴학당하고 말았어요. 어휴, 미친 기집애….”


중년 여인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너무 그렇게 과장하지 마세요. 제가 개소음 때문에 겪는 고통은 지극히 현실적이니까요. 아무튼 개를 키우는 건 좋아요. 문제는 개가 아니라 개소리니까요. 이웃 사람에게 피해를 안 주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잖아요?”


“방법한다… 그건 너무 잔인해서….”


“아니죠. 인터넷에 나오는 그런 미신적인 방법 말고 합리적인 방법을 말하는 겁니다. 양심이니 에티켓이니 하는 한물 간 고상스런 말보다는…. 그저 민주사회 시민의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감과 의무랄까… 한 마디로 말해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거죠. 이 황금률, 동서고금 만고불변의 진리를 존중한다면….

 

설령 어떤 부득이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성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얘깁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시중에 나와 있는 방법을 써 보세요. 개한테 좀 불편을 주긴 해도, 죄 없는 이웃 사람에게 지옥을 선사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알았어요. 방법을 한번 찾아볼게요.”


“한번 찾아보는 정도론 안 되지요. 적당한 방법을 꼭 실행해야만 합니다. 성대 수술, 목걸이, 입마개, 애견훈련 센터 등등 방법은 많으니까 부디 좀….”


“글쎄, 알았다니까요. 그런데… 남자분이 너무 예민해도 세상 살아가기 힘들어요.”


“남자든 여자든, 남의 고통에 둔감한 건 죄악의 소지가 있지 않을까요?… 교회 다니시는 것 같던데 이웃을 사랑하진 못할지언정 증오의 씨앗을 계속 뿌린다면 하느님께서 벌을 내리실 거예요. 아니, 제가 먼저 나서서 응징할 테니 명심하세요…. 흠, 물론 칼이나 총을 사용하진 않아요. 하지만 훨씬 더 고통스러울걸요.

 

따님에게 우퍼가 뭔지 한번 검색해 보라고 하세요. 층간 소음에 대한 복수용으로 인기가 있는 물건인데, 난 가능한 한 사람에겐 피해가 가지 않게끔 일단 호랑이와 사자의 포효 소릴 장착해 하루 종일 쏘아댈 거예요. 그러면 수일 내에 사랑스런 애견님께서 죽지 못해 미쳐 버릴 수도 있어요. 광견이 되는 거죠, 후후….”


“알았으니 이제 그만두세요!”


여자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며 문을 쾅 닫아 버렸다.


<다음 호에는 ‘처녀의 방’이 이어집니다>

 

 

연재를 시작하며 ‘작가의 말’…“형제복지원 본질적 진실 탐구하고 싶었다”

 

그동안 선감도 어린이 강제수용소, 청소년 북파공작원, 몽키하우스 등 예사롭지 않은 소재를 소설화해 왔지만 왠지 형제복지원에 대해서는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이유였던가? 지금도 명백히 지적하긴 어렵다.


우선 한 가지를 들어 보자면, 그 희대의 인간 말살 지옥이 오래 전 한때 언론 방송의 집중조명을 받긴 했으되, 피상적인 폭로성 기사와 일과적 멘트로 끝났을 뿐 악의 근원에 대한 탐찰이 미진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 보니 꽤나 알려지긴 했음에도 폭로 이후 형성된 딱딱한 선입견이 더 이상 내부로 진입해 진실을 파내려는 의지와 흥미 자체를 막아 버린 건 아닐까?


혹은 형제원이 부산 시내에 또아리 틀고 있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대한민국 제2의 대도시 속에 그런 악마 제국이 존재할 리 없다는 선입견 탓에, 당시 길 가던 시민들마저 그 건물을 무슨 유익한 사회 시설로 생각했고, 언론 보도를 보면서도 국민 모두가 예사로운 한국의 불법적 초상(肖像)으로 지레짐작했는지 궁금한 노릇이다.


어쨌든 자료수집만 잔뜩 해놓은 상태에서 나는 쉬이 착수할 수가 없었다. 이미 너무 알려진 소재로 글을 쓸 경우 별 효과도 없이 눈 밝은 독자 대중들로부터 욕만 잔뜩 얻어먹을 우려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형제원 피해 생존자 스스로 체험수기를 써서 악랄무비한 진상을 알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목표인 사실 조사와 잃어버린 인생에 대한 보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기에 국회의사당 앞에서 몇 년간 단식 중이었다.


그들은 고육지책으로 인기작가들을 찾아가 형제복지원 참상을 소설화해 주길 부탁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대체 왜 그랬을까? 조금만 특이한 소재로 보여도 마치 피라냐처럼 달려들 성싶은데 왜? 더구나 생존 피해자들이 모든 체험담을 다 제공하겠다는데도…. 아마 역시 너무 알려져 ‘범상’해져 버렸기에 굳이 나서서 귀중한 정력을 낭비하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오래 전 취재차 부산 주례동까지 가보았으나 그 당시의 지옥 현장은 사라지고 고급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어 막막했다.


‘형제복지원은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 또한 유령인 양 떠돌았다. 만약 한겨울 폭설 속에 비닐 천막 하나 쳐놓고 단식하는 피해 생존자들을 직접 만나 보지 않았다면 나도 그냥 지나쳐 버렸으리라.


고심 끝에 작업에 착수했는데, 일반적인 방법으로 이 사건을 다루는 건 그닥 마땅치 않다는 느낌은 여전했다. 최소한의 어떤 주목을 끌기 위한 장치가 필요했다. 요즘 유행하는 황당무계한 일개 장르 방식보다는 본질적으로 진실에 접근 가능한 자연스런 길….


그건 가공된 이야기 소설(Fiction Story)이 아니라 나 스스로 보고 듣고 탐구한 것이어야 했다. 그러자니 나 자신이 추악스런 모습까지 까발려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독자님들의 너그러운 양해를 빌며, 부디 겉치장보다 내용의 진실에 주목해 주시길 바란다.


끝으로, 백척간두 같은 상황에서 짧은 얘기나마 들려 준 여러 피해 생존자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2020년 초여름
연신내에서 김영권

 

<작가 김영권은 누구?>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소>가 당선되고『작가와 비평』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지옥극장-선감도 수용소><지푸라기 인간><몽키하우스>(문예지 연재) 그리고 청소년 장편소설 <보리울의 달><동상의 꿈> 등이 있다. nammuns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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