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렌트’ 헤로인 아이비

“뮤지컬 배우로 사는 게 좋아…천직인 것 같다!”

이재훈(뉴시스 기자) | 기사입력 2020/05/29 [14:07]

뮤지컬 ‘렌트’ 헤로인 아이비

“뮤지컬 배우로 사는 게 좋아…천직인 것 같다!”

이재훈(뉴시스 기자) | 입력 : 2020/05/29 [14:07]

뮤지컬 배우 아이비(38·박은혜)는 뮤지컬 <렌트>에 한 번도 출연한 적이 없지만, 주인공 ‘미미’ 역에 안성맞춤이라는 얘기는 수없이 들어왔다. 9년 만에 공연하는 <렌트>의 미미 역할에 그녀가 캐스팅됐을 때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 이유다. 미미는 클럽 댄서로 겉보기에 밝고 섹시하며 강렬하지만, 속으로는 한없이 순수한 캐릭터. 최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만난 아이비는 “개구지고 에너제틱한 면모가 미미랑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가 참 궁금했는데 드디어 만났다”며 설레는 표정을 지었다.

 


 

‘렌트’에서 섹시하면서도 순수한 ‘미미’ 역 맡아 의욕 충만
“예쁜 역 원 없이 맡아…이제는 파괴하는 역할도 해봤으면”

 

▲ 뮤지컬 ‘렌트’에서 미미 역을 맡은 아이비가 5월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시스> 

 

새 뮤지컬 <렌트>는 이탈리아 작곡가 지아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을 뮤지컬로 옮긴 작품이다. 요절한 천재 작곡가 조너선 라슨의 자전적 뮤지컬이기도 하다.


1996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했다. 당시 에이즈와 동성애, 마약 등 파격적 소재를 다뤄 주목받았다.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 뒷골목의 예술가들 이야기를 1세기 뒤 미국 뉴욕 이스트 빌리지로 옮겨왔다.


시인 로돌포는 음악가·화가, 마르첼로는 비디오 아티스트 등으로 변주됐다. 모여 살고 있는 가난하지만 젊은 예술가들의 사랑과 우정, 꿈 그리고 열정을 그리며 희망을 이야기한다.


<렌트>는 ‘빌려(Rent) 삶을 사는 듯한’ 젊음의 공허함을 덧없는 시어들로 노래한다. 신기루일 뿐인 내일은 없고 “오늘만 있다”고 울부짖는다. 사실 <렌트>는 ‘미완성의 유작’으로 통한다. 라슨이 개막 하루 전 대동맥혈전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라보엠>이 원작이지만, 그와 자신의 친구들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라슨이 정확히 무엇을 의도했는지 불분명한 장면이 많다.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그런 면모조차 작품의 분위기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상처로 점철된 젊음 자체를 표상하니까.

 

“이 멋진 여정 잘 표현하고파”


아이비는 한국 초연 20주년을 맞은 <렌트>에서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공포 그리고 사랑을 보고 있다.


그녀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하고 있”다면서 “모든 캐릭터를 경험을 기반으로 삼아 표현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험해보지 못한 캐릭터를 어떻게 인정하고 납득하고 표현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노래로만 이뤄진 형식을 가리키는 성 스루(Sung Through) 뮤지컬로 <시즌 오브 러브>를 비롯해 <아웃 투나이트> <어나더 데이> 등 주옥 같은 음악들이 즐비하다.


성 스루 뮤지컬 출연은 처음인 아이비는 “멜로디에 속게 돼 어렵다”고 털어놨다.


“분명 가사랑 멜로디는 슬픈데 메시지는 단순히 슬픔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계속 정서가 부딪히는 느낌이라 연출님에게 계속 물어보고 있다. 철학적인 작품이다.”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측정하나요?”라고 노래하는 <시즌 오브 러브>로 대변되는 <렌트>는 결국 각각의 사랑 풍경을 존중한다. 아이비 역시 “결론은 사랑”이라면서 “주어진 시간이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여러 계절과 다양한 방식을 노래한다”고 봤다.


원작에서 미미는 폐결핵으로 로돌포의 품에 안겨 죽는다. 하지만 <렌트>에서 미미는 기적적으로 살아남는다.


“라슨이 꼭 미미는 살려야 한다고 했다. 삶과 죽음을 상징하는 심벌 같은 캐릭터다.”


하지만 그 결말까지 가는 과정은 쉽지 않다.


“미미는 거친 캐릭터다. 무대 위에서 뛰어내리고, 올라타고, 부수기도 하고, 난간에 서 있고, 다칠 만한 요소가 많아 무섭고 식은땀이 나기도 한다. ‘다치지 않으면서 이 멋진 여정을 잘 표현해보자’는 마음이 크다.”


새롭게 마음을 다지고 있는 아이비에게 올해는 특별한 해다. 2010년 <키스 미, 케이트>로 뮤지컬에 입문한 그녀가 뮤지컬 데뷔 10주년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아이비는 <시카고> <고스트> <유린타운> <위키드> <아이다> <벤허>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레드북> <지킬 앤 하이드> 등에 출연하며 명실상부 뮤지컬계를 대표하는 배우가 됐다.


“10년 동안 이 세계에서 잘 살아남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그만큼 관객들이 예쁘게 봐준 것 같다.”


2005년 가수로 먼저 데뷔해 정상의 자리에 올랐던 아이비는 여러 단맛, 쓴맛을 봤다. 처음에는 뮤지컬도 비슷한 분야일 줄 알았는데 너무 다른 분야라서 놀랐다고 했다.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이 행복하다.


데뷔작인 <키스 미, 케이트>를 비롯 신시컴퍼니 작품에 연달아 출연하며(<렌트>도 신시컴퍼니 작품) ‘신시 공무원’으로 불리기도 한 아이비는 “친정(신시컴퍼니)에서 걸음걸이부터 제대로 배웠고, 많은 선배들로부터 조언을 받았다. 나도 후배들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뮤지컬 배우로서 변곡점은 2016년 <아이다>였다.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 역에 캐스팅됐는데 이 역할은 그전까지 뮤지컬 배우 정선아의 캐릭터로 각인돼 있었다.


“정선아의 팬으로서 너무 부담스러웠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무서웠다. 무대에 서는 걸 한 번도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난해 말 다시 오른 <아이다>에서 정선아와 함께 ‘암네리스’를 번갈아 연기하며 그녀와 다른 색깔의 암네리스를 보여줬다.


아이비는 “선아씨랑 더블 캐스팅이라서 즐거웠고 그녀 덕분에 더 단단해졌다”고 미소 지었다. 그러면서 “뮤지컬 배우는 비교 당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캐릭터 자체로 인정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도 했다. 그래서 서울 공연 이후 3~4월 예정됐던 부산 공연이 코로나19로 무산된 것이 더 아쉽다고 했다.

 

“더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


그런데 처음에는 마냥 즐거웠던 뮤지컬 출연 자체가 이제는 무서워진다고 했다.


여전히 제일 좋아하는 일이지만, 기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더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다. 아이비는 “사실 나는 행운아라서 그간 예쁜 역할은 원없이 맡았다”면서 “이제는 남녀노소를 파괴하는 역을 맡고 싶다”며 싱글벙글이다.
무엇보다 ‘뮤지컬 배우가 되는 것을 잘했다’는 마음에 감사하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이렇게 오랫동안 할지 상상도 못했다. 뮤지컬 출연 전까지는 솔로 활동을 해서 외로웠다. 그런데 뮤지컬을 시작하면서 내가 ‘단체생활’ 체질이라는 것을 알았다. 경쟁이라는 스트레스도 없고, 내 할 일만 잘하면 되는 거니까. 그 다음 호흡을 맞추는 재미가 가득하다. 직업 만족도가 정말 높다. 아무래도 천직인 것 같다!”


한편, <렌트>는 6월16일부터 8월23일까지 서울 신도림역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로저 역에는 오종혁과 장지후, 미미는 아이비와 김수하가 나눠 맡는다. 브로드웨이 협력 연출 앤디 세뇨르 주니어도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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