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 장편소설 제7회 '형제복지원, 그 폭력과 악의 근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글/김영권(소설가) | 기사입력 2020/07/17 [12:01]

김영권 장편소설 제7회 '형제복지원, 그 폭력과 악의 근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글/김영권(소설가) | 입력 : 2020/07/17 [12:01]

권력자들은 국민세금 착복으로도 모자라 기업체로부터 거금 받아
형제복지원 같은 비리 묵인하는 값으로 검은 돈 상납받았으리라


각하의 표창장은 국가가 주는 칭찬으로 왜곡, 폭력과 횡령 가리고…
권력 하수인으로 변한 하이에나들은 부랑자 잡아 가둔 채 짐승 취급

 

▲ 모진 고문 끝에 삼청교육대로 들어간 민재. 그곳에서 죄목도 모른채 끌려온 도철, 광팔, 도사 등 힘없는 인간군상이 펼쳐진다. 사진은 영화 ‘나비’ 한 장면. 

 

제2부<4> 멈춘 시계

 

첫눈이 사락사락 내리는 밤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백설에 덮여가는 세상이 경이로웠다.
난 창가에 서서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눈발은 점점 강해졌다. 바람을 받은 창문이 덜커덩거렸다.


문득 왠지 좀 불안스러워졌다. 하얀 눈이 평소의 누추한 마음을 응결시키고 한 가닥 양심을 눈뜨게 했는지도 몰랐다. 너무 깨끗해지면 왠지 불안해 난 목욕도 잘 하지 않았다. 눈이 내려 쌓여 나를 가둘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엄습했다. 눈보라가 치는지 창문이 흰색에 가린 채 더 거세게 덜컹거리자 난 초조감을 못 견뎌 소리쳤다. 마치 그동안 마비돼 있던 죄의식이 머릴 드는 것을 억누르듯.


난 컴퓨터 앞에 앉아 화면을  바라본다. 오래 전, 형제복지원을 본격적으로 다루려고 생각했던 무렵에 써 놓았던 첫 문장이 마치 신구석기 시대의 고인돌 석판에 각인된 고문(古文)인 양 낯설다.

 

청운은 항구의 우중충한 청회색 바다를 잠시 바라보곤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부산은 한국 제2의 도시답게 번화했으나 서울만큼 다채롭진 않은 성싶었다. 도시의 지형이 길쭉해서 그런지 해풍 때문인지 사나이의 가슴속에 왠지 모를 고독감을 안겨 주었다….

 

만일 소설이 요즘처럼 무시되는 시절이 아니거나 혹은 내가 인기작가라면 그렇게 시작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계속 정통적인 소설 기법을 구사하여 그 지옥 형제복지원의 실상을 묘파해 나갔을 터였다.


하지만 이제 아쉬우나마 접어 버리고 새로운 방식을 모색해야만 했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리기도 하고 위기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형제원에만 집착하지 말고 대전 성지원과 대구 희망원도 취재하고, 좀 덜 알려진 성폭행 문제에 초점을 맞춰 보자.


그렇게 생각하며 앞에 쓴 문장을 지워 버렸다.
그런데 보조장치로 사용키로 했던 한 장면은 더욱 또렷이 기억 속에 떠올랐다.


용두산 공원인지 온천동 금강원인지 아슴아슴하지만, 어릴 적 엄마 등에 업힌 채 보았던 괴물 동물원의 비밀스런 광경이었다. 쇠창살 안쪽엔 마이크를 잡고 선 난쟁이 아저씨를 비롯해 머리가 둘 달린 뱀, 다리 셋 송아지, 징그럽게 사람 말을 하며 우는 새, 히히 웃어대는 꼽추 원숭이 등 괴이스런 존재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형제복지원에 끌려가 철장 속에 갇힌 사람들과 공원의 괴이스런 동물들이 왠지 모르게 겹쳐지곤 했다. 다른 것보다 감금된 그들의 고난과 고통이 비슷하게 느껴져서 그런 게 아닐까? 그들을 잡아 가둔 채 괴물로 취급하며 생명을 유린한 박인근 원장 같은 자들이야말로 진짜 괴물 악인일 텐데 말이다.


소름이 끼친다. 그 무렵 그곳(부산)에 살았거나 방랑자로 지나갔던 사람이라면 누구든 괴물이 노리는 인간 사냥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군대에서 하사관으로 복무하다가 제대한 박인근이 복지 빙자 사업을 시작한 1970년대 초반부터 전두환(대통령)의 비호를 받으며 승승장구한 1980년대 후반까지, 부산에 살았던 보통 시민 치고 그 마수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라면 설령 무신론자라도 누구에게든 감사 기도를 드려야 하리라. 어린애부터 백발 노인까지 일단 그물에 걸리면 사설 지옥 왕궁의 인신공양 감이 돼야 했으니….


내가 옛 추억에 젖을 때마다 소름에 떨며, 이미 철 지난 형제자매복지원 사건을 재기록해 보려 안달복달하는 건, 나 또한 철부지 어린 시절에 홀연 그 인간 지옥에 끌려가 죽든지 병신으로 변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 때문이었다. 그들이 살인적인 폭력을 휘둘러 만들어 놓은 괴물 닮은 병신….


그건 삼청교육대도 성지원도 선감원도 희망원도 소록원도 마찬가지였다. 그 폭력과 악의 근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특정한 인간의 악마적인 본성 때문인지, 혹은 권력을 독점한 국가나 사회단체가 복지와 정의를 빙자해 저지른 구조적인 횡포인지 모호한 안개 속이었다.


아무튼 철권 독재자가 국가 권력을 사유화하고 그 일부를 자기 입맛에 맞는 자들에게 깡패 두목처럼 나눠 먹인 건 사실인 성싶었다. 그들이 말하는 정의나 복지엔 보편 타당성이 결여돼 있었다. 주관적인 정의이고 이기적인 복지였다.


권력자들은 국민 세금을 사리사욕으로 착복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기업체로부터 이런 저런 청탁 대가로 거금을 받아 안방 금고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형제복지원 같은 사이비 법인 시설의 운영자들로부터도 부정 비리를 묵인해 주는 값으로 검은 돈을 상납받았으리라.


대통령 각하의 표창장은 국가와 국민이 주는 칭찬으로 왜곡돼, 폭력과 횡령을 가리는 하얀 빛 장막으로 이용되었다. 권력의 하수인으로 변한 하이에나 같은 자들은 부랑자뿐만 아니라 독재 정권의 부정부패를 비판하는 일반 국민까지 불법적으로 마구 잡아 가둔 채 짐승 취급했다.


형제복지원의 경우가 가장 악질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었다. 박인근 원장은 박정희·전두환 등 최고 권력자와 꾸준히 밀착 관계를 유지하면서, 국가 지원금을 착복하고 수용 원생들에게 최소한의 의식주만 제공하는 한편 살인적인 강제노동을 시켜 번 피땀 어린 돈을 수탈하며 일국의 군주인 양 행세했다. 아니, 그 작은 왕국에서는 대한민국 대통령보다 더 막강한 권세를 휘두르며 자기 욕망을 흥청망청 채우고 호의호식했다.


박통의 적자라기보다 일종의 사생아 비슷한 전통령 시대인 1980년대에 들어 박인근 원장은 가장 악랄한 통치자로 변모했다. 전통령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은 바로 그날 저녁, 그는 한 원생이 거수 경례를 좀 삐뚜름히 했다는 이유로 마구 때리고 짓밟아 반주검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여자병동의 어린 소녀를 한밤중에 비밀궁으로 차출해 유린했다는 풍문도 있다.


전통령은 자신의 의붓아비인 박통을 극복했다고 자화자찬하지만, 사실은 그저 모방 혹은 재활용했을 뿐이며, 파렴치와 오만무도함으로 인해 오히려 더욱 악독한 짓이 장본인과 하수인들에 의해 저질러졌다. 한 예로, 삼청교육대는 박통 치하의 재건부대와 유사하면서도 훨씬 더 무지막지한 전마두환 인권 유린의 지옥이었던 것이다.

 

▲ 사진은 삼청교육대 스토리가 등장하는 영화 ‘나비’ 한 장면. 

 

난 컴퓨터 앞을 떠나, 거실에서 인형을 물어 던지며 놀고 있는 개 녀석을 슬쩍 흘겨보곤 바깥으로 나갔다.

찬바람에 흔들리는 눈꽃나무를 보고 섰다가 천천히 지하방 쪽으로 내려갔다.


퇴색한 잿빛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풍겼다. 전에 거주할 땐 맡아 보지 못한 삭막스런 냄새였건만 왠지 정다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고생 속의 한 가닥 추억 때문일까?


사실 고뇌와 외로움 그리고 누추함 속에서도 나름대로 순수하고 진실한 꿈을 꾸었던 공간이었다. 사람이 살만한 데가 아닌 듯싶지만 그 무렵엔 아늑한 둥지였다. 푸른 하늘 향해 날아 오를 상상을 간직했던 곳….


하지만 위층으로 올라가 오히려 추락한 게 아닐까? 정신과 영혼이….


모르겠다. 개 한 마리 때문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서글프다. 차라리 나의 내부에 깃든 악이 외부의 악보다 더 강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겉으론 선량한 척 행세했지만 어떤 악성에 부딪히자마자 잠재돼 있던 본성이 튀어나오지 않았겠는가. 만일 내 속에 죄악이 숨어 있지 않았다면, 대체 어찌 엽기 만화에나 나올 법한 짓을 저지르겠는가! 악마견이나 악귀신이 앙칼맞게 짖어대며 해코지를 하더라도 내 마음이 청정하다면 훨훨 날려 보낼 수도 있었으리라.


현관이라 부르기 어려운 좁은 공간에 낡은 삼선(일명 삼디다스) 슬리퍼가 놓였다. 다시 한 번 신어 볼까 하다가 그냥 거실 바닥으로 올라선다. 솜희 신발인 진짜 아디다스 슬리퍼를 신은 채….


지나고 나서 보니 별것 아니지만 그 당시엔 고민과 슬픔이 명멸했던 공간. 언젠가 장마철에 물이 스민 뒤끝에 부풀어 올라 걸치적거리며 속썩이던 장판을 한번 꾹 밟아 본다. 구겨질지언정 결코 바로 펴지진 않는다.


가스레인지 위엔 계란 찌끄러기가 말라 붙은 프라이팬이 내 인사에 대꾸도 없이 침묵을 지킨다. 싱크대엔 거미가 줄을 쳤고 그 아래엔 바퀴벌레 껍질과 지네의 시체가 달롱거린다. 주인 없는 거미줄에선 공허의 냄새가 풍긴다.


문득 어떤 소리가 들려 귀를 기울이니 냉장고가 헐떡이며 노파처럼 가느다랗게 숨쉬고 있다. 전엔 언제 숨질지 몰라 늘 걱정했는데 아직 살아 있다니 일견 대견스러우면서도 허탈한 기분이다. 코드를 뽑아 놓는다. 내용물을 정리하고 나가면서 깜박 잊었던 모양이다. 낡은 고물은 숨을 턱 놓으며 사물로 변한다.


방문을 열어 본다. 어둑하고 썰렁한 공간. 책상 위의 시계는 멎어 있다.


서가의 책들이 오히려 더 명징하게 내 정신의 시계 역할을 했지. 누군가가 미리 새겨둔 눈금 위를 규칙적으로 돌고 도는 탁상시계는 내가 이 방에 살던 당시에도 별로 귀염을 받지 못했어. 구박을 하며 꿀밤을 먹여도 녀석은 무심무아하게 돌고 돌며 나름대로 내 삶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려 애썼지.


의자에 앉아 하얀 벽을 망연히 바라보다가 침대 위로 시선을 내린다. 때 묻고 추레한 이불이지만, 그 속에 누워 몽상에 잠기곤 하던 고독한 시절이 문득 그리워진다. 내면의 진선미를 찾아 가꾸어 가려고 애쓰던 날들… 그런데 개 한 마리 때문에 인생 항로가 바뀌어 버렸다고 하면 웃겠지만 이미 현실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별 후회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 당시 내게 선택의 여유가 있긴 했던가? 설령 있었다 해도 지하층과 지상층, 지하 인생과 지상 종족과의 사이는 너무 멀거나 각박했다. 이런 경우, 한국 사람들은 예전부터 ‘좀 더 잘 어쩌구 저쩌구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너스레를 떠는데 말짱 입에 발린 개소리일 뿐이다. 좀 잘 해보려 애써 봤자 필경 바보 멍텅구리로 낙찰되고 만다.


그렇다고 선을 무시하고 악에 기대라는 게 아니라, 좀 슬기롭게 남을 속이지도 말고 속지도 않을 만큼 기본적인 약속은 지키자는 얘기다 아! 솜희 엄마인 1층 아줌마는 수십 번에 걸친 내 항의와 간청에 꼭 조처하겠노라 언약했는데도 개는 계속 짖어대지 않았던가? 점점 더, 마치 약올리듯… 만약 계속 기다렸다면 아마 심장이 썩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라도 심사숙고 끝에 악을 행사하지 않을 수 없었던 셈이었다(아마 이 부분이 개선된다면 한국인은 독특한 선진국의 국민이 될 수 있으리라).


물론 지금 와서 변명 따윈 하고 싶지 않다. 애완견 주인이나 개에게 삶의 권리가 있듯 지하방 거주자인 나에게도 최소한의 존재 조건은 인정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도 한때는 내가 제일이라는 생각에 빠져 산 적이 있다. 하지만 그건 망상일 뿐이었다. 안고수비(眼高手卑)라고나 할까 누구든 몽상 속에서는 왕자가 될 수 있겠으나 현실 앞에 나서면 현란스런 베일이 벗겨져 실상을 깨닫는다. 그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은 헛욕망을 잠재의식 속에 묻어둔 채 자기 능력에 맞춰 평범하면 평범한 대로, 현실 유행 따라 살아가고, 탁월한 자는 아예 몽상을 초월해 자신의 욕망을 현실 위에 구현하며 떵떵거린다.


그런데 나 같은 반거충이 꺼병이들은 계속 몽상에 달라붙어 현실을 깔보는 것이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다른 건 차치하고, 내가 생의 진실이라 믿었던 모든 게 거꾸로 바뀌어 거짓의 구렁텅이 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다. 혹시 작은 깨달음이라도 있다면 그걸 붙잡는 게 좋겠지. 구렁창 밑바닥에 떨어져 보면 마침내 홀연 어떤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헤헤, 이 세상엔 각양각색의 진실이 존재한단 말야. 모든 사람에겐 다 자기 나름의 진실과 허위가 있는 셈이랄까. 흐흐, 인생 자체가 모순이지만, 자기 진실을 너무 고집하면 오히려 허위로 전락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지 않던가 말씀이야. 흠, 진실이란 상대적이며 100퍼센트의 순수 진실은 없다구. 50:50, 60:40, 70:30… 식으로 이를테면 진실과 허위가 뒤섞여 있지 않을까. 진실이라 해도 때론 관념적인 90퍼센트보다 실제적인 10퍼센트가 더 진실일 수도 있구 말야. 그게 즉 현실적인 인간이며 인생이다! 그러니만큼 당신 자신의 진실이 아름답고 소중하다면 타인의 진실도 존중해 줘야 하는 셈이란 말씀이지. 하하… 사람뿐 아니라 짐승이나 벌레의 진실도… 벌레 무리에도 배우, 군인, 정치가, 사업가, 노동자, 예술가, 도둑놈, 살해자 따위가 있고 그들도 자신의 진실을 주장하니까.’


아니할 말로 마두라는 별칭으로 지탄받는 어느 전직 대통령도 자신은 이 나라에서 가장 진실했고 지금도 진실하노라고 나불나불 떠벌이잖는가. 민주화니 각성된 국민이니 해도 그 입 하나 막지 못하는 건 진실 자체의 양면 때문인가, 한국민들이 으레 두 주머니를 차고 다니기 때문인가? 진실이 허위로, 허위가 진실로 늘상 뒤바뀌는 세상인걸 뭐 어쩌랴 하고….


이 세상의 일개 부속물에 불과한 내가 쉽사리 단언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난 낡아빠진 의자에 걸터앉은 채 변색되고 곰팡이가 핀 허여무레한 벽을 둘러보았다. 점퍼도 걸치지 않고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인지라 음습한 냉기가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최면 걸듯 포근한 보금자리라고 생각했지만 이따금 지하 감방 같은 느낌이 엄습하기도 했던 곳… 나름대로 노력하는데도 왜 이다지 궁핍하게 살아야 하는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 을씨년스런 감옥에 갇혀 계속 신음해야 하는지 의심스럽기도 했지. 그리고 위층에서 짖어대는 개와 쿵쿵거리는 사람 발소리, 아줌마의 째지는 듯한 고함 소리에 질린 나머지 그들을 인간이 아닌 귀신이라 공상하기도 했어.


마음속에 하느님과 부처님과 공자님과 예수님과 소크라테스를 초청해 놓고 잡귀 퇴치법을 전수받으려 노심초사하기도 했지. 사악한 것들이니 막무가내로 쫓아내 버릴 것이냐, 혹은 잘 지도하고 감화시켜 이용후생할 것인가 약간 고민이 되기도 했어. 흐흐….


그 성현님들은 말씀하시길, 잠귀라도 이해하게 되면 가엾어 보이리라는 거야. 인간의 마음속엔 신성도 존재하며 짐승과 잡귀도 잠복해 있느니만큼, 만일 굳이 쫓아낸다면 나 자신의 일부까지 떨어져 나갈 수 있다는 충고였지.


꼭 성현의 조언이 아니더라도 정신을 투여해야 하는 일인지라 그럴 가능성은 충분했다. 후훗, 그동안 공부한 나름의 내공을 모두 동원해 나 내부의 귀신과 외부의 잡귀를 인정하고 서로 화해시켜 보려 애썼지. 하지만 가능성이 있어 보이다가도 위층의 잡귀들이 제멋대로 준동할 땐 도무지 참아낼 수가 없더군. 그래서… 차라리 내가 악한이 되어 잡귀에 빙의된 그들을 응징하기로 결심했는지도 몰라. 흐흣….

 

난 지하방을 빠져나왔다.

겨울바람 부는 바깥이 오히려 더 화창하고 시원하게 느껴졌다. 대비 효과라고나 할까.


내가 지하 1층과 지상 1층 사이에서 고뇌하는 동안 어떤 사람은 2층 3층을 넘어 마천루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 그리고 내가 골방 속에서 몽상하던 세계여행을 누군가는 한껏 휘돌아 마치고 이젠 우주 유람을 계획하고 있으리라. 설령 바보 멍청이라도 세계 일주를 한번 하고 나면 아마 나보다는 훨씬 똑똑해질 것이다.


왠지 난 예전부터 1층은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생각했었다. 물론 세상 물정 모르는 나의 착각일 뿐이다.


하긴 1층은 건물의 기본 토대로서 생활 현실과 가장 가깝고 또 편리하다. 이상과 상상을 선호하는 3층이나 옥탑방 거주자에 비해 그들은 현실 추종적인 성격이 좀 더 강한 듯싶었고, 같은 관점에서 지하방 거주인들을 하찮은 몽상과 망상에 빠진 상식 이하의 동물로 무시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덜떨어진 공상일 뿐이다. 지하실은 포도주 저장고로는 유익할지 몰라도 사람이 살 만한 공간은 결코 아니다. 1층에 사는 경우 필요하다면 검은 커튼이나 여타 도구를 사용해 충분히 지하방 같은 그윽한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겠으나, 사시장철 어둑스레한 지하실에선 습기와 곰팡이와 바퀴벌레 따위가 영혼을 항상 지옥으로 끌어내리려는 것이다. 지하 골방이 인간 정신을 비범하게 해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직접 경험한바 적어도 한국에서는 허구적 망상에 불과할 뿐이다. 설령 비범한 면이 있을 지라도 그건 1층이라는 한국인의 상식선을 넘지 못한 채 찌부러져 기괴해져 버린 구슬픈 비범에 지나지 않으리라.


돈, 돈이 없다는 대죄 때문에, 대한민국 땅에 살면서도 조선시대의 양반이 상놈을 대하듯 무시하는 눈길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이건 그저 내 피해망상에 불과한 걸까?


어쨌든 결코 평범하지 않은 조금쯤 비범한 방법으로 1층에 기거하게 된 나로선 옛날 옛적 지하방에 살던 나 자신이 불쌍스런 꺼병으로 여겨지는 게 사실이었다.

 

<다음 호에는 ‘신의 침묵’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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