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 장편소설 '형제복지원-회색 구슬 속의 산 18번지 왕국' 제10회

“그 지옥 직접 겪어 봤더라면 단말마의 실상을 알련만…”

글/김영권(소설가) | 기사입력 2020/08/21 [11:49]

김영권 장편소설 '형제복지원-회색 구슬 속의 산 18번지 왕국' 제10회

“그 지옥 직접 겪어 봤더라면 단말마의 실상을 알련만…”

글/김영권(소설가) | 입력 : 2020/08/21 [11:49]

‘한강의 기적’이란 말을 저 강은 과연 어떤 심정으로 듣고 있으려나?
이 땅에 존재했던 강제수용소들이 자행한 인간 말살의 실상 캐고 싶다

 

국회는…왜  마귀들로부터 당한 영혼의 상처를 치유해주지 못하는가?
형제복지원 피해자의 말은 저 거창스런 국회의사당보다 진실해 보였다

 

▲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가 2019년 11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 9호선 국회의사당역 지붕에 올라가 농성을 벌이는 모습. <뉴시스> 

 

제3부 <3>틀니의 말


지하철은 지상으로 뛰어올라 한강 철교를 달리고 있었다.
창문 밖 저 멀리 푸르무레한 강물이 소리 없이 흘렀다. 많이 정화됐다곤 해도 아직 제 빛을 되찾지 못한 듯싶었다.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왜 혈맥이자 젖줄 같은 저 강을 머저리들처럼 더럽히고 폄훼하는가? 황하와 양쯔 강이 유장하다느니 세느 강이 아름답다느니 입바른 소릴 나불대면서 왜 한국인들은 자기네 강을 스스로 오염시킬까?….


아냐, 한국인들이 더럽히는 게 아냐. 저 강을 자기네의 욕망으로 파괴해온 건… 정신이 오염된 정치꾼과 경제 사업가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는 이기적인 족속들이지,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국민이 아니야. 음, 하지만… 강을 아름답게 가꾸진 못할 망정, 살해하듯 칼춤 춘 망나니들을 좌시한 과오는 강물 따라 흐르겠지.


그 자들이 내세우는 한강의 기적이란 말을 저 강은 과연 어떤 심정으로 듣고 있으려나… 모르긴 몰라도, 서울뿐 아니라 한민족의 엄마 같은 한강은 잘난 자식이든 못난 자식이든 차별없이 두루 잘살길 바라겠지… 하지만 모정을 능욕한 패륜아들은 형제 자매들을 저 강 속에 빠뜨려 죽이곤 제 혼자 천국의 행복을 거머쥐려 발버둥이지. 죄는 무엇이고 악은 대체 무엇일까? 오랜 세월 동안 저 강물은 묵묵히 흐르며 얼마나 많은 자들의 악업을 대신 삼켰을까….


한강의 기적이라 칭송하지만… 아, 대체 얼마나 많은 일반 국민들이 선진 부국 건설이란 미명 아래 저 희뿌연 강물 속에 수장되었을까. 육신도 그러려니와 영혼 또한 더 그러하리라.


강은 슬픈 한국인들의 꿈뿐만 아니라 원한마저 품고 흐르는지 모른다.


사실 내가 밤 마실을 가는 건 꼭 형제복지원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땅에 존재했던 무수한 강제수용소들이 자행한 인간 말살의 본질적 실상을 캐내어 보고 싶었다.


인간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존재는 저마다 독특하련만, 일당 독재 사회와 그 속 수용소는 반대 방향을 지향한다. 하늘이 내려준 권리마저 사취해 자기네의 불쏘시개로 활용한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사용….


난 솜희의 하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오래 된 전설을 하나 얘기해 줄까?”


“응, 아이 간지러워….”


“가만 있어 봐.”


“그래두 간지러운걸.”


난 그녀의 귓불을 살짝 깨물고 나서 얘길 꺼냈다.


“옛날 옛적 1961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사회명랑화 사업’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전국을 떠도는 노숙자와 부랑아, 전과자, 윤락 여성 등을 잡아들였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자들을 반강제적으로 순화시켜 사회를 맑고 밝게 한다는 것이었지… 군사정권은 이들을 충남 서산군 모월리의 폐허에 집단 이주시켰어. 앞바다 일대의 갯벌과 폐염전을 메워 농사 지을 땅을 넓혀서 이들을 정착시킨다는 계획이었대. 이 대규모 간척사업에는 ‘대한 청소년 개척단’이란 그럴싸한 이름이 붙었어.”


“응….”


“그 개척단의 사업자로 선정된 것은 서울에서 자동차 조립공장과 대한청소년 기술보도회를 운영하고 있던 민정식이란 사람이었어. 그는 공장을 경영하는 한편으로 정비공장에 청소년들을 고용하기도 했지. 그러다가 청소년개척단을 운영하게 되면서 많은 돈이 들어오자 그는 자기 마음대로 떼먹기 시작했대… 그는 자기가 박정희 대통령의 동서라고 거들먹거렸으며, 정부로부터 미국산 잉여농산물을 지원받을 명분으로 청소년개척단을 이용했어.

 

그렇게 지원받은 농산물을 열차로 수송하다가 경유지인 홍성역에서 슬쩍 내려 민간업자들에게 팔아먹었대. 경찰들을 밀실에 불러 놓고 가방에서 돈을 꺼내 건네면 경찰이 모른 척 그 돈을 받기에 바빴다지. 당시 민정식은 박정희 대통령의 밀사 취급을 받았어.”


“어머,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 꼴이네.”


“그리고 형제복지원과 비슷한 수법으로… 길 잃은 아이를 유괴하거나 통행금지 어겼다고 멀쩡한 청소년들까지 끌고 갔어. 흠, 여자들의 경우는 ‘좋은 공장이 있는데 거기 가면 돈을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벌 수 있다’[는 식으로 사기를 쳤다더군.”


“어쩜….”


“외할머니 댁에 가려고 혼자 기차를 탔던 아홉 살짜리 어린이가 끌려올 정도로 민정식은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끌어 모았대. 이후 개척단은 남녀를 합쳐 2000여 명으로 불어날 만큼 규모가 커졌어. 15세 이하의 어린 소년 소녀도 200여 명이나 수용되었대.”


“나라에서….”


“캠프도 부실하기 짝이 없어서 얼기설기 세운 천막에 수백 명이 콩나물처럼 늘어져 자는데, 비가 오기라도 하면 낡은 천막 사이로 빗물이 마구 튀었대. 수용자들 중 100여 명이 추위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지만 수용자 수는 급속도로 불어났어. 매일 사회에서 방황하는 이들은 실어 왔기 때문이지. 도주하지 못하도록 밤에는 서치라이트까지 이용해 감시를 할 정도로 분위기는 살벌했으니 자유는 없었어. 말 그대로 창살 없는 감옥과도 같았다지.”


“….”


“수용자들은 새벽 5시에 눈을 뜨면 점호를 하고 구보한 뒤 곧바로 강제노역에 동원되었어. 군용 작업복을 입은 채 철저히 군대처럼 움직이며 돌을 날라 바다를 메우는 반복노동… 당시는 중장비가 드물던 시절이라 수용자들은 인근 야산에서 손으로 채굴한 석재를 일일이 바닷가로 날라 방조제를 축조해야 했지. 그런데도 식사는 부실하기 짝이 없어서 보리밥 한 그릇에 반찬이라곤 짠지와 소금국이 전부였어.

 

그러다 보니 먹을 것이라면 혈안이 되었는데, 원래 소에게 줄 콩 사료를 빼돌려 단원들이 먹다 보니 소가 굶는 웃지 못할 광경이 벌어지곤 했대… 만일 할당된 작업량을 채우지 못하면 발가벗겨 놓고 때리며 한겨울에 찬물을 끼얹기까지 했어. 그 인간 재생공장이 싫어 탈출하다 붙잡힐 경우에는 샌드백 속에 집어넣은 뒤 죽을 때까지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더군.”


“가엾어….”


솜희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언젠가 대한 청소년 개척단 광장에서 200여 쌍의 합동 결혼식이 있었대. 이른바 ‘불량 청년들과 윤락녀였던 사람들의 결혼식’이라고… 결혼식이라 해봤자 사실상 보여주기 위한 요식행위였지. 운동장에다가 남자 수용자와 여자 수용자들을 쭉 늘어세운 뒤, 여자들에게 가서 아무나 파트너를 찍으라 하고 강제로 그 짝과 결혼시키는 식…

 

만약 그게 싫다고 하면 거부하지 못하도록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뒤 심지어 싫다고 우는 여자도 강제로 짝지었다니… 그들은 배우자를 선택할 자유조차 박탈돼 버린 일종의 동물들로 취급당한 셈이지. 더 가관인 건 강제로 짝지어진 사람 중 절반 가까이는 이미 배우자가 있는 채로 끌려온 사람들이었대. 무슨 억지춘향 사회적 실험도 아니고….”

 

▲ 2019년 9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 전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위원회 관계자가 행안위 회의실로 들어가 의원들에게 인사를 하다 국회 관계자들에 의해 회의실에서 쫓겨나고 있다.   <뉴시스> 


“여의도역이래요.”


솜희가 내 새끼손가락을 간질이다가 잡은 채 일어섰다.
지하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갔다.


어스름이 점차 짙어지고 지상의 불빛이 가짜 별인 양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여의도 광장 시멘트 바닥엔 깨진 유리별 조각이 나뒹구는 듯싶었고, 거창스런 돔형 지붕의 국회의사당은 시대의 중요한 문제를 잊은 채 몽상에 빠져 희희덕거리는 게 아닌지 의문스러웠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예상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에서 단식 투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윙윙 불어대며 낡아빠진 비닐 천막을 뒤흔들었다. 1년 전에 비해 훨씬 더 을씨년스런 모습이었다.


저 겉으로만 웅장스러워 보이는, 실상은 도깨비집 같은 국회는… 왜 이미 다 알려진 사실과 피해자들의 증언을 모아 진상을 밝히고 긴급 법규를 만들어 마귀들로부터 당한 영혼의 상처를 치유해 주지 못하는가? 민주시대라 해도 저 복마전 속의 선량님들은 시민을 이용해 먹기만 할 뿐 결코 자기네와 같은 인간으로 여기진 않는 성싶었다.


너덜너덜한 비닐 문을 열고 겨우 천막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곳엔 세 명의 남자와 한 여자가 웅크려 앉아 있었다. 붉은 담요 한 장으로 다리를 함께 덮은 채 숨을 나누었다. 목숨. 말하거나 숨쉴 때마다 허연 입김이 풀풀 흘러 나왔다.


안면이 있는 사람은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담요를 끌어 덮어 주기도 했지만, 낯선 얼굴들은 경계하거나 적의가 깃든 불쾌한 기색을 슬쩍 띠기도 했다.


으스산한 분위기를 깨고 붉은 빵모자를 푹 눌러 쓴 여자가 말했다.


“여기 오빠들이 무뚝뚝해도 원체루 세상살이에 시달려 그렇지 본래는 정 많은 사람들예요. 너무 쫄지 말구 우선 담요 속에 발을 넣으세요. 그러면 맘도 쫌 풀릴 거예요.”


“예, 고맙습니다.”


“에휴, 내가 만약 소설가라면… 그 지옥 형제복지원에 대해 만리장성 같은 회한을 풀어 볼 텐데….”


“지금부터라도 한번 시작해 보세요.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잖아요.”


“그래요, 그러고 싶어요… 하지만 나 자신에게조차 내 삶의 고통을 뱉어내지 못하겠더라구요. 마치 검은 물 속에 머리부터 거꾸로 잠겨 버린 듯….”


“이해해요. 한 낱말, 한 문장이라도 우선 써 보시죠 뭐.”


“후후, 그것마저 힘들던걸요. 아!… 세상의 풍파가 매몰차다 한들, 젊은 시절을 형제원 같은 곳이 아닌 보통 땅 위에서 산 사람들은, 자기소개서를 쓸 때 얼마나 흐뭇할까요. 그리구 이미 성공해서 유명해진 분들은, 인생을 뒤돌아보며 자서전을 한 줄 한 줄 적어 나갈 때 너무 행복할 것만 같아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더라구요. 진실을 고백하는 건 동서고금 어느 시대에나 어려운 일이니까요. 유명인이든 무명인이든 자기 가슴속의 과오를 토로하는 건 무척 두려울 듯싶어요. 자기뿐만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으니까요. 우선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아마 누구든 자기 그릇만큼만 고백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음, 그래도 유명한 분들은 자기 과거의 오점을 일반인들에게 팔아먹기도 하잖아요.”


“거울 보고 자기 결점을 속삭이기도 힘든데, 타인에게 비밀을 밝히는 건 도박성이 섞이긴 했겠죠. 유명한 분들의 경우, 현실과 사실과 진실만 얘기하기보다 살짝 달콤한 허구와 몽상과 마약을 섞어 대중의 관심을 끄는 방법도 없잖았겠지만… 큰 그릇답게 큰 진실을 고백하는 건 역시 대단해요. 개인의 과오를 넘어 인류사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니까요.”


“대체 뭐가 더 궁금해서 그러시우? 우리에 대한 건 이미 많이 알려졌건만….”


눈썹 위에 검은 점이 돋은 남자가 누런 이빨을 내보이며 말했다.


“뭔가 세상에 전달하고 싶은 게 있어서… 국회의원들이 무시하는데도 오랜 동안 여기 웅크린 채 단식하는 게 아닌가요? 물론 피해자들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일차적인 목적이겠으나, 저변의 잠재의식 속엔 인간답게 대접받고 싶다는 소망이 깃들어 있지 않을까요?”


“허흐 참… 그 지옥을 직접 한번 겪어 봤더라면 잔말 두말 필요없이 단말마의 실상을 알련만….”


“그렇겠지요. 저도 사실 오늘 뭐 특별한 얘기를 들어 보려는 꿍심으로 여기 온 건 아닙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어떤 상황인지 한번 보고 느껴서 저 자신 중심을 잡고 싶었던 것이랄까요.”


“우리도 중심이 필요한데 지금 현실은 마치 센 바람 앞의 허새비 꼴이에요.”


빵모자 쓴 여자가 중얼거렸다. 얼굴을 살짝 돌리는 순간 하얀 이마 옆쪽에 불그스름한 흉터가 보였다. 머리 위쪽으로 더 심한 상처가 숨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붉은 빵모자에 가려….


난 그만 밖으로 나가 버리려고 반쯤 일어섰다. 그런데 그때 솜희가 비닐 문을 톡톡 두드리더니 족제비처럼 기어들었다.


사람들은 의아스러워했으나 거부감 혹은 적대심은 그닥 없어 보였다. 가져온 작은 박스에서 비타민 강화 드링크 류를 꺼내 하나씩 건네자 친숙한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단식 중이라 해서 이것뿐이에요. 혹시 단식이 빨리 끝나면 이건 그때 드세요.”


솜희는 발그레한 얼굴로 말하며 외투 주머니에서 군밤 봉지를 꺼내 놓았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손가락이 하나 없는 사내가 그걸 집어 향기를 맡으며 중얼거렸다.


“흐흐, 죽은 분들이 제사상에서 흠향하는 기분이구먼. 하지만 그럴 수도 없는 게 지옥 중생의 신세지.”


“아이 참, 그냥 뚜껑 따서 꿀꺽꿀꺽 드세요. 단식엔 물도 못 먹는대요?”


“흐흣, 우리도 산 목숨이라 물은 마시고 있죠. 그런데 얼마 전 어떤 기자가 취재한답시고 와선, 우리가 현재 처한 삭막한 상황보다… 정말 비스킷 한 쪼가리도 먹지 않느냐고 꼬치꼬치 캐묻더라고요. 꼴통 보수로 잘 알려진 신문사 놈이었는데, ‘진실을 밝힌다면서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라고 충고까지 지껄이던걸. 정말 입에 머금은 물을 낯짝에 뿜어 버리고 싶더구먼. 흐흣….”


“그 기자는 아마 단식의 본질을 모르는 사람일 거예요. 인생의 본질도 자기 자신의 본질도 잘 모르지 않을까 싶네요. 제 생각에… 단식의 본질은 비스킷 한 조각을 먹느냐 안 먹느냐 하는 문제보다… 정신과 마음 속에서 거짓 식욕을 몰아내고 참을 되찾는 게 아닐지요?”


솜희가 흰 이마에 주름살을 잔뜩 모은 채 종알거렸다. 내가 쓴 원고에 나오는 말 같았다.


“후훗, 세상 쓴맛을 아직 맛보지 않았을 텐데, 이쁘장한 아가씨가 기특한 얘길 하네.”


“아녜요, 전 사실 무서운 세상을 많이 경험했어요. 지금도 반쯤 감금돼 있는 상태인걸요.”


난 제물에 깜짝 놀라 솜희를 슬쩍 노려보았다. 그녀는 옆얼굴만 보인 채 시치미를 뗐다.


“어머, 정말요? 대체 어떤 사연인지 궁금해.”


빵모자를 벗어 버린 여자가 말했다. 붉은 상처 자국이 옆머리를 거쳐 정수리까지 굴곡져 뻗어 있었다.


“저사람 때문이죠 뭐.”


솜희는 입을 뾰로통 내밀며 나를 지목하곤 부드러운 손길로 중년 여자의 붉은 상처를 어루만졌다.


“음, 사랑의 감옥을 말하는구나. 흥, 나도 한번 갇혀 보고 싶어. 호홋….”


솜희는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말없이 미소 지었다.

어느 결인지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반지하 골방보다 더 삭막한 아스팔트 위의 비닐 천막 속에서 아기자기 얘기꽃이 피어났다. 솜희가 궁금한 점을 물어 보면, 그들은 마치 어린 누이에게 가르쳐 주듯 자세히 설명했다.


어눌한 목소리엔 오래 묵은 핏덩이가 섞인 듯도 했다. 그 속에서 무엇이 과장됐는지 또 얼마나 왜 축소되는지 살펴봐야 하는 게 내 임무가 아닐까?


하지만 그들의 말 속에 설령 허풍이 좀 섞였을지언정, 저 백분 가루로 짙게 화장한 듯한 거창스런 국회의사당보다는 더 진실해 보였다. 미국 국회를 모방했지만 훨씬 천박스럽고 속이 빈 사이비 같은 건물. 더구나 그 속에서 주인 행세나 하며, 어떻게든 조선시대 양반의 권세는 챙겨먹고 선비의 책무는 방기해 버리려는 놈들의 소굴….


물론 국민의 세금으로 지은 의사당을 폄훼해서는 안 되지만, 인간 아닌 악머구리들이 우글거리는 곳보다는 낡은 비닐 천막 속이 더 다정스럽게 느껴졌다.


내리던 눈이 진눈깨비로 변해 휘날리다가 툭툭 부딪쳐 눈물 방울처럼 흘러내리는 비닐 막 속에서 난 묵묵히 그들의 얘기를 들었다. 

 

<다음 호에는 ‘원생 장사’가 이어집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포토뉴스
3월 다섯째주 주간현대 1245호 헤드라인 뉴스
1/3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