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 장편소설 '형제복지원-회색 구슬 속의 산 18번지 왕국' 제11회

박인근 원장은 염라대왕보다 더 큰 권력 지닌 존재였다.

글/김영권(소설가) | 기사입력 2020/09/11 [13:17]

김영권 장편소설 '형제복지원-회색 구슬 속의 산 18번지 왕국' 제11회

박인근 원장은 염라대왕보다 더 큰 권력 지닌 존재였다.

글/김영권(소설가) | 입력 : 2020/09/11 [13:17]

전두환 훈장 두 번이나 받은 원장은 무소불위 권력으로 형제원 통치
복지원에 감금된 원생들은 대부분 부랑자 아니라 일반 서민들이었다


동료가 피 흘리며 시체로 변하는 장면 목격한 원생들은 공포감에 세뇌
내일의 자유를 향해 촛불을 들기보다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게 다급

 

▲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스트레이트’가 2019년 12월9일 1975년 설립돼 1987년 폐쇄될 때까지 공식 사망자만 500명이 넘는 ‘한국판 아우슈비츠’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다뤄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제3부 <5>물방울


바다에서 파도쳐 튀어오른 물방울 하나가 대양을 내려다보며 ‘하하핫, 난 너희 평범한 멍청이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이노라!’ 하고 자만감에 젖어 날뛴들 몇 초 동안 공중에 떠 있겠는가? 3초 후 추락하는 순간에도 그 물방울은 자기애의 쾌감에 빠져 부르르 떨지 모른다. 결과는, 그 자신에겐 아마 죽음으로 느껴지리라. 자기를 버림으로써 자연스레 바다가 됨도 모르리라.


파도가 맥동쳐 바위 절벽을 오랜 세월 깎고 쓰다듬어 장엄한 예술품으로 만들 때 무념무상 하얀 물거품 또한 일조했음도 모를 것이다. 자의식을 버려야 진정한 자신을 꽃처럼 표현할 수 있다는 만고불변의 진리….


그런데도 한국에선 나름 뛰어난 인간들이 제 잘났다는 ‘물방울 자만심’과 과대망상에 젖어 동서고금의 전례로부터 배우지 못한 채 인신(人神)인 양 행세하다가 대부분 인간 이하로 추락하거나 비명횡사하고 만다. 과연 그들을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표본이라 말할 수 있을까? 감옥에 갇힌 전직 대통령들과 수하들에게 들려준다면 대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악기 강한 전두환은 여전히 콧방귀를 팅팅 뀌면서 살인마적 과오를 부인하지만 그 말로가 좋을 리 없다. 그들 패거리가 싸지른 악취 고약스런 똥은 아직까지 남아 국민들의 뇌리를 더럽히며 진저리치게끔 만들고 있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두 번이나 받은 박 원장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형제원을 통치했다.


그와 수하 졸개들은 국가로부터 받은 소임을 사리사욕이 아닌 척 악용해, 양두구육 식으로 복지원 간판을 내건 채 실제론 인육을 팔아 먹었다. 막대한 국가 지원금(국민 세금)을 꼬박꼬박 챙기고도 검은 뱃속이 덜 찼던지 그들은 병사자와 타살자(자기들이 죽인)의 시체마저 1구당 몇백 만 원씩 받곤 부산대나 동아대 의대에 실험 실습용으로 팔아넘겼다.


그 시신에 만약 혼이 붙어 있었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모를 노릇이다. 혹시… 그들의 검푸른 입술은…. ‘약육강식이니 적자생존이니 거짓말 지껄이지 말고, 사회구조를 강육약식하고 부적자(不適者)와 공생하는 파라다이스로 바꿔라. 그게 곧 참진리의 입구이리라!’라고….


하지만 자기애 망상에 빠진 최고 권력자와 그의 주구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뻔한 진실을 외면한 채 악행에 광분하다가 비명횡사하는 것이다.

 

박 원장은 특히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을 강조했다.


하기사 그 당시나 지금이나 그건 대한민국의 국시 혹은 국훈 같은 구절인지라 개인들 또한 좌우명처럼 가슴속에 은근슬쩍 품었다고 해서 탓하긴 어려우리라.


그런데 박 원장의 경우는 좀 다르다. 그는 군사독재 시절의 장기복무 하사관 출신답게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 살아남는 자만이 존재할 가치가 있으며 그 외엔 쓰레기다!’라고 외쳐댔다. 작업장이나 운동장에서 병약자를 보게 되면 더 심한 일을 시키거나 폭행(기합)을 가해 반죽음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원생들에게 겁을 줄 속셈인지 자신이 공수부대 장교 출신이라고 허풍치기도 했단다. 사람 좋게 껄껄 웃으며. 그는 염라대왕보다 더 큰 권력을 갖고 있는 존재였다. 적어도 형제복지원 내에서는….


부산 시내로부터 외떨어진 산기슭의 거대한 회색 시멘트 건물 속엔 부랑자로 낙인 찍힌 4000여 명의 인생이 강제 수용돼 있었다.


부랑자란 대체 무엇인가? 그들은 일종의 궁핍한 자유인이다. 집시, 히피족, (나 같은) 무명 예술가마저 독재국가에선 부랑인으로 분류될 수 있다. 정신이 또록또록 박인 사람일지언정 독재자를 독재자라고 말하는 순간 붙잡혀 가서 고문당해 죽거나 정신이상 부랑자로 변해 떠돌았다.


복지원에 감금된 대부분의 원생들은 부랑자가 아니라 일반 서민들이었다. 깡패, 소매치기, 앵벌이 따위도 물론 있었지만 구두닦이나 노점상 등 열심히 살아 보려다가 억울하게 끌려온 경우도 많았다. 잔업을 마친 후 밤 늦게 퇴근하다 걸린 공원(工員), 술 한잔 걸친 기분에 햄릿 역을 맡은 양 즉흥 연기하던 무명 배우마저 일순간 부랑자 신세로 바뀌어 거대한 지옥극장의 담벼락 속에 갇힌 채 신음했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일반 국민이면서도 다만 빈궁하고 ‘백’이 없는 무골충 지렁이였기에 악마의 밥이 되었다.


반면 깡패나 불량배 족속은 그 지옥 왕국 속에서 도리어 충신 열사로 돌변해 중대장·소대장·조장 등등 완장을 찬 채 박 원장의 지시에 따라 원생들을 벌레처럼 짓밟았다(구체적인 사례를 묘사하고 싶지만 자제하겠다. 내 보기엔 지옥도인데, 요즘 극악스런 인터넷 게임이나 동영상에 중독 혹은 면역된 사람들이 얼마쯤 실감할지 의문스럽고 오히려 반작용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겨우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래…이런 씁쓸한 반응…).


또한 이 소설은 엽기적이고 일상적이었던 살상(殺傷) 뒷면에 도사린 형제원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이비 복지원의 근본 구조를 탐색하는 데 목적이 있으므로 여기선 일단 슬쩍 넘어가려 한다.


(악랄한 폭력 참상에 더 관심 있는 분은 피해 생존자 체험수기인 ‘살아남은 아이’ ‘숫자가 된 사람들’ 등을 읽어 보길 바란다.-지은이 주)

 

▲ 박정희·전두환 정권은 사회정화를 명목으로 ‘부랑인’들을 적극적으로 시설에 수용하라고 지시했다. 사진은 형제복지원 실상과 진상이 규명되지 않는 현실을 추적한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스트레이트’ 방송 장면. 


선한 사람은 자기가 겪은 인생 고난을 기준 삼아 남에게 더 선하게 베풀고, 악인은 한층 더 사악해져 인간들에게 해악을 끼친다. 박 원장이 바로 그런 족속이었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한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했던 시기에 군복무를 마친 그는 사회 현실과 병영을 쉽사리 구분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잘 알면서, 국가 지원금을 타내어 자신이 꿈꾸는 왕국을 건설키 위해 분투 광분했는지….


형제복지원은 군대보다 더 지독스러웠다. 원생들은 새벽 4시쯤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기상 나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나 고달픈 하루를 시작했다. 인원 점검 후 소대 별로 세면실로 향했다. 국가 지원금 속엔 분명 칫솔과 치약 값이 포함됐을 텐데 원생들은 굵고 거무튀튀한 막소금으로 대충 양치질을 하곤 양손바닥을 모아 받은 물 한 조끔으로 세수까지 끝낸 다음 운동장에 모였다.


박박 깎은 머리에 퍼런 트레이닝을 입고 검정 고무신을 신은 꼴이 영락없는 죄수의 모습이었다. 아침 점호를 받고 나서 대열을 맞춰 몇 바퀴 구보하며 새마을 노래와 군가를 불렀다. 


그들은 숨을 헐떡거리며 식당 밑에 정렬해 있다가 차례가 되면 즉시 올라가 식판에 받은 밥을 재빨리 우걱우걱 씹어 삼켰다. 빨리 먹고 뒷줄을 위해 비켜 줘야 했다. 3000여 명이 1시간 만에 허기를 채워야 하기에 느적거리다간 조장들에게 밥을 뺏길 뿐 아니라 피 터지게 얻어 맞았다.


아침 7시부터 원생들은 각종 작업장으로 끌려가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철공반, 목공반, 미용반, 액세서리반(낚싯줄 묶기, 예수상에 금박 물감 칠하기, 인형 눈알 박기 등)이 있었다. 일정 할당량을 채워야 하기에 모두 다 살인적인 노역이었다.


작업반 책임자는 박 원장의 동생과 처남들이었다.


특히 야외 작업반에선 돌발 사고로 인해 즉사하거나 중상을 입는 상황이 많이 벌어졌다. 그들은 산중턱을 깎아 새 건물을 짓는 일에 동원되었다. 바윗돌을 채굴해 석재로 사용했다. 안전장치도 없이 파들어가다가 굴이 와르르 무너져 수십 명이 죽고 다쳤다. 위험이 상존했기에 그곳은 ‘악마의 발톱’이라 불리는 기피 지역이 되었다. 혹시 공상 속의 아오지 탄광이 그럴까. 모두 두려워했다. 언제 죽을지 자기 자신도 모르는 지옥!


다른 근로소대에 있다가 조장이나 소대장에게 찍혀 아오지로 내려오는 경우도 있었고, 뭔가 선물로 상납하면 1급 지옥보다 좀 나은 2급 지옥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반항 기질이 심한 꼴통 원생들은 그곳에 차출돼 시달리다가 중상을 입거나 으슥한 구석으로 끌려가 폭행당한 끝에 사고사로 처리돼 버려졌다. 특히 반정부적인 성향을 지닌 노동운동가, 심지어 반골 교사와 무명 예술가들도 한 명 두 명씩 투입돼 허덕이다가 흔적 없이 사라졌다.


형제복지원의 모든 건물은 초창기부터 원생들의 노동으로 만들어졌다. 수용자 중엔 여러 가지 건축 기술을 지닌 사람이 많았다. 양아치나 부랑인이라기보다 평범한 일반인을 작은 실수를 빌미 삼아 반강제로 끌고 가 가두어 둔 채 부려먹은 셈이었다. 하늘마저 놀랄 만한 곳이었다. 그들의 기술과 무지렁이 개미들의 막노동이 합쳐져 황량한 산기슭에 건물이 한 채씩 늘어났다.


자신들의 피땀으로 자기들의 감옥을 짓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남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돌담을 높이 쌓지만, 그건 바로 내가 내 길을 막는 노릇이었다! 왜 그들은 반항을 시도하지 않았을까? 힘을 모아 함께 사악한 살인마 왕국을 뒤집어엎고 자유를 쟁취하지 않았을까? 개인적 능력으로 탈출해 도망치거나, 목숨 걸고 악랄스런 조장 놈의 목을 찔러 복수하는 경우는 있었으나, 합심 단결 투쟁은 형제복지원 역사상 거의 없었다. 혹시 3000여 명이 모여 물밀듯 파도쳤다면 거대한 암벽조차 무너뜨릴 수 있지 않았을까?


박 원장 휘하에 중대장·소대장·총무·조장 등이 있었다. 부원장이나 감사직, 회계직 같은 건 없었다. 오직 박 원장이 기획 판단 결정해 명령을 내리면 일사천리로 착착 시달돼 밑바닥 원생들은 즉각 인간 기계처럼 실행해야만 했다.


그들은 일반 원생들을 깔아 짓밟은 채 마치 식인(食人) 피라미드인 양 위계 구조를 이뤄 시시각각 꿈틀거렸다. 상부층의 눈 밖에 나면 곧 밑바닥으로 떨어져 최악의 고통을 맛보게 되므로 최악과 최선을 다해 악마의 부하로서 복무할 수밖에 없었다. 원생을 인간으로 생각지 말고 인형 로봇으로 다뤄라! 그게 형제복지원의 모토였다.


시시각각 저승사자의 눈이 번쩍이는 마당에 쿠데타 모의를 해 일떠서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설령 한 구석에서 불장난이 시도될지언정 복지원 규찰대가 감당하지 못할 경우 곧 경찰이 출동하고 심지어 군대까지 투입될 위험이 있었다. 지위를 가진 자들은 그런 엄포를 놓곤 했다.


시대 자체가 그럴 정도로 엄혹한 군부독재 시대였다.


또한 매일 두드려 맞고 눈앞에서 동료가 피 흘리며 시체로 변하는 장면을 목격한 원생들은 공포감에 세뇌된 채, 내일의 자유를 향해 촛불을 들기보다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게 다급한 상황이었다.


열악한 의식주를 감수하며 강제노역에 뼛골이 빠진 원생들은 아침 저녁 점호 때마다 원장님 찬양록을 암기해 뇌까려야 했다. 박정희 정권과 김일성 정권의 장점을 동시에 모방해 자기 우상화에 이용한 셈이었다.


토요일엔 중대장이 소대장들을 거느리곤 내무반을 시찰했다. 환경 상태, 신체 상태, 정신 상태 등을 살폈다. 먼지 하나 없이 모든 게 딱딱 각이 잡혀 있어야 했고, 손발톱은 (손톱깎이가 모자라) 이빨로 물어뜯어 잘랐다. 그런데도 중대장은 손톱이 삐죽뾰족 창날같다며 꿀밤을 먹였다. 정신상태 개선이라며 배를 걷어차 쓰러뜨린 후 머리를 마구 짓밟기도 했다.


한겨울이면 산기슭에 자리잡은 형제복지원엔 바닷바람이 엄청 불어닥쳤다.


대부분의 원생들은 입술이 터져 늘 피가 흐르고 손발은 동상에 걸려 검붉게 부어 있었다. 발가락을 몇 개씩 뭉텅 잘라내는 경우도 흔했다. 그 지옥에도 의무과가 있었으나 형식적일 뿐이라 제대로 치료를 받긴 어려웠다. 그저 국가지원금을 빼돌려 훔쳐 먹는 또 하나의 암구멍에 지나지 않았다. 노역 중 손가락이 부러지고 뭉개져도 ‘빨간 약’이라 불린 아까징기를 발라 주곤 끝이었다. 발을 삐어 퉁퉁 부어오르면 옥도징기를 슬슬 바른 후 쫓아냈다.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진 안티푸라민은 서랍 속에 감춰둔 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좀체 발라 주지 않았다.


중대장이 연탄집게 끝으로 옆구리를 찔러 버린 한 원생은 상처가 곪아 썩어 들어가는데도 누런 고름을 푹 짜낸 다음 빨간 약을 부어넣고 거즈를 붙여 두었을 뿐이었다. 그 원생은 결국 죽어 복지원을 벗어났다. 시체는 아마 대학병원 해부실로 고액에 팔려 갔으리라.


얼마나 많은 약품 구입비가 원장의 뱃속으로 흘러 들어갔으며, 얼마나 많은 원생들의 상처가 곪아 생명을 앗아 갔을까?
형제원은 인간의 갱생을 위한 복지시설이라기보다 착취하고 죽이기 위한 곳이었다. 독재자와 가진 자의 눈에 부랑인으로 비친 사람 쓰레기 소각 처리장이랄까.


수용소 본건물 뒤쪽의 으슥한 별채엔 30여 개의 격리 감방이 숨겨져 있었다. 사고뭉치, 말 안 듣는 꼴통,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반동분자 등을 좁직한 시멘트 독실에 가둬 둔 채 사실상 굶겨 죽였다. 허기로 인해 발광한 누군가는 자기 팔을 뜯어 먹다가 죽었다는 풍문마저 떠돌았다. 그 정도로 복지원은 야만적인 인간 도살장이었다.


박인근 원장의 말마따나 그가 꼭 자신의 사리사욕만을 좇진 않았으리라. 사리사욕과 함께, 대통령 각하의 지시를 받들어 이 세상을 정의로운 선진복지 국가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는 자기 나름의 사명의식 혹은 과대망상에 빠지진 않았을까. 아마 그 두 개가 이전투구(泥田鬪狗)했을 터이다. 상쟁이기보다 상호 이해하는 양상이었겠지.


박정희와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은 박인근은 기고만장해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라고 외쳐대며 형제원을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콘크리트 속 정글로 만들어 갔다.


우선 먹는 것으로부터. 원래 식사 시간은 30분 정도였으나 그런 여유는 없었다. 수천 명이 차례차례 줄지어 들어와 먹고 빨리 나가 줘야 하므로 최대한 서둘러야만 했다. 그러기에 조장들은 “체할라, 천천히들 먹어! 선착순 10명!”라고 소리쳤다. 원생들은 음식을 씹을 새도 없이 마구 삼켰다. 빨리 밖으로 나가 줄을 서야 했다. 선착순 10명 안에 들지 못한 자들은 게으름뱅이라는 욕지거릴 들으며 야구 방망이를 얻어맞았다.


모든 게 다 그랬지만 운동 시간에 벌어지는 기마전은 생존경쟁의 하이라이트였다. 일반학교 운동회에서도 기마전은 부족간 전쟁인 양 짐짓 꽤나 치열하다. 그런데 형제원 운동장에선 진짜 살벌한 사투가 벌어졌다.


말 머리의 깃발을 빼앗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상대 팀을 완전히 침몰시켜야 승리하는, 말 그대로 약육강식의 상징적인 정글전이었다. 위쪽에 걸터앉은 반인반마(半人半馬)를 떨어지지 않게 잘 받치면서, 밑쪽에선 치열한 육탄전이 벌어졌다. 서로 악을 쓰며 주먹질 발길질을 주고받았다. 쓰러지는 사람은 양편 모두에게 짓밟혔다. 그 결과 수많은 원생들이 눈을 다치고 코뼈가 부러졌으며 생이빨을 잃었다. 심지어 뇌진탕으로 숨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도 원장은 승리 소대엔 라면 따위 상을 내리고 패배한 소대원들에겐 ‘빳다’를 치도록 명령했다.


때로 원생들은 원장의 지시에 따라 매를 맞으며 ‘적자생존! 약육강식!’이라고 구령을 붙이기도 했다. 입소 당시엔 장애자나 불구자가 소수였으나 험한 폭행으로 인해 늘어났다. 복지원 측은 그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활용하고 이용하고 진을 빼먹은 후 폐기처분해 시체마저 매매했다. 원생들은 인간이 아니라 개새끼 같은 짐승으로 취급받은 셈이었다.


정신병동은 공동묘지와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으스산한 회색 건물 속에선 늘 비명과 흐느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곳엔 입소 당시부터 정신이상인 사람도 있었으나, 이후에 겪은 트라우마로 인해 생각과 마음이 이지러져 버린 사람이 더 많았다. 일상적인 폭행, 세뇌, 성 유린 등은 진실하고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들부터 망가뜨렸다. 차라리 거짓되고 사악하고 비열스런 자들이 더 적응하기 좋은 모종의 천국이었다. 바로 이 세상처럼….


중대장의 요구를 잘 듣지 않는 예쁜 여자나 반체제 인사도 정신병동에 감금돼 있었다. 일단 그곳에 들어가면 이상한 약을 먹이거나 사지를 묶은 채 강간 폭행하기 때문에 오히려 미쳐 버리는 게 견디기 쉬웠다. 멀쩡하던 사람도 알약을 먹으면 몽롱해진 눈으로 침을 질질 흘렸다.


정신병동 옆엔 노인 소대와 장애인 소대 그리고 어린이 소대가 붙어 있었다. 장애인과 소년 소녀들도 성폭행범의 먹잇감이었다. 범죄자들은 처벌받긴커녕 잘난 척 희희낙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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