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 장편소설 '형제복지원-회색 구슬 속의 산 18번지 왕국' 제13회

체제에 순응하면 살고 반항하면 죽는 곳이 형제복지원

글/김영권(소설가) | 기사입력 2020/09/25 [15:17]

김영권 장편소설 '형제복지원-회색 구슬 속의 산 18번지 왕국' 제13회

체제에 순응하면 살고 반항하면 죽는 곳이 형제복지원

글/김영권(소설가) | 입력 : 2020/09/25 [15:17]

12년간 500명 처참히 목숨 잃어…한 달에 5명 죽는다면 살인마 공장
박인근의 형제복지원은 진리와 사랑의 공간이 아니라 검붉은 복마전


국가와 사회가 한 개인에게 붉은 낙인 찍어 ‘죄악의 덤터기’를 씌웠다
남원생은 악랄한 짓으로 시체 됐고 여원생은 성폭행뒤 정신병자로 추락

 

▲ 형제복지원 식당 앞에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는 아동들. 

 

제3부 <7>깃털

 

교회를 오고 가는 길에 이따금 살짝쿵 러브 스토리가 일어나기도 했다. 외롭고 핍박 받는 존재들이기에, 멀찍이 떨어진 채 바라보는 눈빛과 윙크만으로도 정신적인 애정이 싹텄다.


그러면 은밀히 작은 쪽지를 써서 전했다. 조장이나 종교위원에게 슬쩍 빵 혹은 담배와 함께 건네곤 애를 태웠다.


만약 직접 주고 받다가 발각되는 순간이면 죽도록 얻어 터진 후 남자는 막노동을 하고 여자는 정신병동으로 처넣어졌다. 사랑으로 인해 죽음으로 가는 길목….


정신병동은 해괴한 곳이었다. 꼭 정신병 증상이 있는 사람만 들어가는 데가 아니었다. 오히려 죄가 없고 순수한 사람을 강제로 가둬놓고 서서히 정신병자로 만들어 버리는 감옥 속 감옥이었다. 꼴통과 불평 불만자뿐만 아니라 심지어 군사독재 정부에 비판적인 민주인사들도 정신병동에 처넣었다. 그들은 철제 침대 기둥에 양 손발이 꽁꽁 묶인 채 영육을 유린당했다. 치료한다는 구실로 주사약을 과다 투여해 반멍청이로 만들기도 하고 아예 죽여 버리기도 했다.


예쁘장한 여자는 수면제에 취한 상태에서 완장 찬 놈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사디즘 성향이 있는 자들은 제정신인 여자가 비명과 신음 소리를 흘리며 몸부림치다가 서서히 참몰당해 훌쩍이는 걸 더 좋아했다. 악마의 웃음을 흘리며….

 

완장 찬 자들의 심리는 과연 어떤 것일까?


이 세상에서 아마 한국(남한과 북한) 사람들이 완장 차는 걸 가장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좀 덜한 편이지만 형제복지원 시절만 해도 완장 끗발이 꽤나 무서웠다. 북조선 인민공화국은 지금도 완장 사회이니 말할 바도 없고, 남한은 해방 후 대한민국이 수립되고 나서도 일본 제국주의자들처럼 완장을 좋아하다가 군사독재가 창궐한 1960~1980년대는 그야말로 완장 전성시대였다. 초등학교의 반장과 주번은 물론 동장·통장·이장님들까지 제각기 색깔 다른 완장을 찬 채 어깨에 잔뜩 힘을 주었다. 너무 그러다가 뼈가 어긋나는 경우도 전혀 없진 않았다.


완장은 한 마디로 권력과 금력과 명예욕과 함께 폭력을 상징했다. 한국에서는 개도 완장을 차면 사람을 무시할 수 있다는 얘기가 떠돌 정도였다.


형제복지원에서 완장은 일반사회에서보다 훨씬 더 강력한 상징 도구였다. 사람보다 완장이 더 주인 노릇을 했다. 이를테면, 중대장으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자도 일단 원장의 눈에 걸려 붉은 완장을 벗게 되면 보통 원생으로 추락했다. 좀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겠지만….


반대로, 평범하던 원생이 어떤 괴기스런 능력을 발휘해 원장에게 발탁된다면 번들번들 빛나는 완장을 찬 채 지옥 속 천국의 쾌감을 향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기를 미워한 전임 중대장을 불러 폭행하고 심지어 죽여 버리기도 했다.


중대장뿐 아니라 총무·서무·소대장·조장들도 마찬가지 신세였다. 완장 서열권에 반항하면 곧 원장에게 반역하는 개망나니로 낙인찍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죽어 흙 속에 묻힌 사람들은 말이 없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언제 닥쳐 올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에 떨며 혀가 굳는다. 체제에 순응하면 살고 반항하면 죽는 곳이 바로 형제복지원이었다.

 

▲ 형제복지원 내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아동 원생들. 


그런 과정 속에서 12년 동안 500여 명이 처참히 목숨을 잃은 것이었다. 한 달에 5명이 죽는다면 살인마의 공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생명과 재활이 아닌 비정스런 군사독재 정부의 축소판….


박인근 원장이 신으로 군림한 형제복지원 속엔 또 더 작으면서도 악랄한 형제원이 있었다. 러시아 시베리아 마뜨료냐 인형 같다고나 할까.


서녘 하늘가에 불그무레한 노을이 지고 복지원 뒷마당에도 땅거미가 내리면 원생들은 다음 지옥을 걱정한다. 소대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붉은 소대장 완장을 찬 악마가 원장 노릇을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남의 흉내를 내는 자는 자기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 더욱 악랄해지기 마련이다.(마치 복사본이 원본보다 지저분하듯이) 대부분 깡패 똘마니인 그들은 인간이 상상해낼 수 있는 온갖 추악스런 짓을 자기보다 계급 서열이 낮은 원생들에게 강요했다.


더욱 목불인견은 어린이 소대의 대여섯 살짜리 녀석들도 어른들을 흉내내어 원장·중대장·소대장 따위 완장을 대충 만들어 찬 채 자기보다 힘없는 애를 괴롭히는 모습이었다.


그런 해괴한 광경을 보면…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지, 신은 어디 있는지, 세상의 악과 인간 내면의 악은 어찌 비롯됐는지 궁금했다고들 한다.

 

교회에서 박 원장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빙자하며 원생들의 죄악을 질타했다.


인간의 원죄를 씻고 재생하기 위해서는 피땀 어린 노동을 견뎌내고 고통을 달게 받으며 형제복지원의 설립 방침과 규칙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순종과 복종의 강조는 끝이 없었다.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등을 의무적으로 암송해야 했는데, 한 구절이라도 틀리면 매타작을 당했고 끝내 시체로 변해 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게 과연 교회의 실체인가? 하느님의 복음은 대체 어느 하늘 끝에서 헤매고 있을까?

 

▲ 1975년부터 12년 동안 형제복지원에서 사망한 사람은 확인된 것만 500명이 넘지만, 아직도 사인과 시신의 행방 등은 의문으로 남아 있다.


박 원장이 진짜 신자인지 가짜 사이비인지는 모르지만, 일반사회 교회 목사들의 방식을 모방하거나 자기 이익에 맞게 왜곡하는 건 뻔히 보였다. 마치 권위적인 목사 앞에서처럼 원생들은 맘속으로 비웃을 뿐 감히 불평불만을 드러내진 못했다.


성경 구절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외워야 한다는 규칙은 전 세계에서 아마 한국의 교회와 강제수용소밖에 없으리라.


옛날 옛적 신심 깊은 사도들이 신성한 영감을 받아 바이블을 적어 내렸겠지만, 여러 가지 언어로 번역되고 영어를 거쳐 한국어로 옮겨졌을 땐 변화뿐만 아니라 오류도 많이 섞여 들지 않았을까?


이런 경우엔 차라리 한 낱말 한 구절에 얽매이기보다 큰 뜻[대의]을 마음속에 새기는 게 더 하나님과 예수님의 복음에 가까워질지 모른다.


교회 목사와 박인근 원장이 성경을 내세워 신도와 원생들을 겁박하는 건 진리보단 혹시 자기네의 욕망을 추구하는 노릇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 글자 틀렸다고 지옥 가라고 악담하며 영혼을 유린하고 패 죽이는 건… 바로 예수님 자신이 가장 경계하고 개선하려 했던 구시대의 유물 아니던가?


그런 면에서 보면 박인근의 형제복지원은 진리와 사랑의 공간이 아니라 검붉은 복마전이었다.


죄악은 개인에게만 있는 게 아니고 사회 현실과 국가 정책에도 존재한다. 부정부패, 사리사욕, 비인간화(야수화) 등등….


형제복지원의 경우엔 국가와 사회가 개인에게 붉은 낙인을 찍어 ‘죄악 덤터기’를 씌운 듯 여겨진다. 자기네의 큰 죄악[대죄]를 무마하거나 숨기기 위해 빈민들을 속죄양으로 삼은 셈이다. 그 불운한 양들의 피로 인해 미개 정글지대보다 더 독악스런 한국 사회의 공동악이 대속(사실은 은폐)됐다고 할까.


형제원뿐 아니라 선감도 수용소, 양지원, 희망원, 삼청교육대, 몽키하우스, 그리고 소록도 나병원 또한 그런 역할을 수행하는 정부 지원기관이었다. 치료보다는 학대, 사랑보단 증오, 양지보다는 음지, 희망보다 절망, 교화와 재활보다는 악인화와 사망이 판을 치는 인권 사각지대였다. 철문 안에서는 인간 청소(살인)를 마구 자행하면서도 건물 밖 정문 위엔 소망이니 재생이니 뭐니 양두구육식 간판이 내걸려 있었다.


물론 수용자들 중에는 스스로 죄악에 물들어 마귀도를 찬양하는 자도 있었고, 세속적인 안락을 위해 조장 등에게 굽실거리면서 언젠가 사다리를 한 계단 한 계단 올라 자신이 방석 깔린 그 작은 의자에 앉으려 애쓰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감투와 완장의 개수는 정해져 있었으므로 대부분 실패해 점차 더욱 사악해졌다.


사실상 원생들만 나무랄 일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일반 사람들 또한 비슷했다. 아니, 오히려 더 고질적이고 심각하고 교활했다.


특히 상류층 별인간들의 작태는 부러움을 넘어 악욕심을 자극했기에 강제수용소 원생들의 마음 또한 가파른 변질을 겪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그 상류층 인사들이 국가 사회를 좌지우지했으므로, 극우파들은 추종하고 보수적 순종파들은 따라가고 중도파는 짐짓 심사숙고하고 불평불만자는 맞아죽고 진짜 반항자는 쿠데타 혹은 혁명을 꿈꾸기도 했다.


붉은 빵모자를 쓴 여인이 말했었다.


“그 당시 옥이라는 열댓 살쯤 된 소녀애가 있었지. 열두 살에 잡혀 왔으니 몇 년 동안 고생한 셈이었어. 얼굴이 예쁘장해 귀여움을 받았으나 사내놈들에게 해코지도 많이 당했던가 봐. 중대장, 소대장, 조장 놈들… 그 소녀는 피눈물을 머금은 채 울먹거렸지만 끝내 굴복하진 않았지. 만신창이 된 몸으로 귀신 들린 암늑대 새끼처럼 변해 갔어.

 

소문을 들어 보니 그 앤 입소할 때 어린데도 억울하고 부당하다며 왈왈 외쳐대다가 뺨을 맞곤 총무 놈의 손가락을 깨물어 뜯었다더군. 그 뒤에도 그 아인 앙칼스레 아르릉거리며 하루하루 살아냈어. 영육이 유린되는 동안 어린 소녀의 가슴속엔 어떤 원한이 쌓여 갔을까? 그 앤 눈물이 맺히더라도 흘리기보다 씹어 삼키는 듯했지… 그 무렵 소녀는 정신병동에 들어가 있었기에 어찌 좀 도와 보려 해도 어려웠어.”


여인은 마른 입술을 축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깜짝 놀랄 만한 엽기적인 살인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한 거야. 악질로 소문난 중대장이 뒈졌는데, 목에 날카로운 쇠붙이가 꽂혔고 성기(페니스)는 무슨 살쾡이 같은 짐승이 물어 짓씹은 듯 참혹스러웠지. 얼마 후엔 엽색행각 질로 지탄받던 어느 소대장 놈이 비슷한 꼴을 당했어. 박 원장은 쉬쉬하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풍문까지 잠재우긴 어려웠지. 과연 누가 이 철옹성 속에서 살인을 저지르는가?

 

형제원은 미스터리를 품은 채 술렁거렸어… 은근히 좋아하는 원생들도 많았지. 곧이어 원장을 하느님처럼 숭배하며 원생들을 괴롭히던 조장 놈들이 하나씩 같은 꼴로 시체가 됐어. 복지원 측에서 비상을 걸고 색출에 나섰지만 범인의 자취는 오리무중이었어. 옥이가 의심스런 눈총을 받긴 했으나, 그 무렵 그 앤 핼쑥하고 빼빼 마른 꼬락서니로 미친 년처럼 히히거렸기 땜에 제외되었지. 더군다나 정신병동에 갇힌 년이 무슨 수로 외부의 으슥한 곳에서 그런 흉한 짓을 저지를 방법이 있을까.

 

억울하게 감금돼 고통받는 우리들로선 신의 천벌이 내렸다고 생각하기도 했으며, 혹은 로빈훗이나 일지매 같은 멋진 존재가 악을 징벌한다고 몽상하기도 했어. 다른 데서 날아온 초인이 아니라 바로 우리 원생들 속의 어떤 누군가가….”


박 원장은 전체 조회 때 단상 위에 서면 입에서 침을 튀기며, 구체적인 사실과 진실은 감춘 채, 북괴의 스파이가 침투해 꿈동산 복지원을 어지럽힌다고 포효했다. 일부 불평불만 분자의 유언비어에 속지 말고 간첩을 신고한다면 격려금뿐 아니라 일계급 특진의 은혜를 내린다고 광기 어린 목청으로 선전했다.


마치 역대 대통령과 정치꾼들이 국민들의 진실한 외침을 북풍 공작으로 왜곡 비하했듯, 그 또한 너구리처럼 음흉스레 모방해 원생들을 세뇌시켰다. 모방은 모방을 낳아 전국을 하나의 독재체제 순종자와 불신자로 나눠 죽이던 시대였다.


말하자면, 체제 순종자라 하더라도 죽지 않는다는 건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 설령 그들의 육체는 살아남을지언정 정신은 파괴돼 비겁한 짐승이나 벌레보다 못하게 전락하고 만다.


원장의 순종자들이 불현듯 야수로 변해 자기보다 하층 계급인 원생들에게 광기를 부리는 건 그 체제가 이미 비인간화돼 누구든 악마의 손아귀에 목덜미를 잡혀 시시각각 조여지고 있다는 증좌가 아니겠는가?


엄혹한 감시 때문인지 괴상스런 살인사건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다. 원장이 내건 상을 타기 위해 소대장과 조장들은 애먼 원생들을 지하 감옥으로 끌고 가 고문하며 자백을 강요했다. 많은 남원생들이 악랄한 짓으로 시체가 됐고 여원생들은 성폭행을 당한 끝에 정신병자로 추락하고 말았다.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어느 날이었다.


운동장에서 원장이 전체 조회의 일장연설을 마치고 단상을 내려와 검은 고급 승용차 쪽으로 몇 발짝 걷는 순간이었다. 원생 대열 쪽이 아닌 단상 밑에서 비쩍 마른 한 인형이 튀어나오더니 원장의 등에 시퍼렇게 빛나는 칼날을 꽂았다.


하지만 원장이 한 수 빨랐다. 그는 상체를 살짝 틀며 인형의 가녀린 목을 굵직한 손아귀로 움켜잡아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버둥거리며 일어서려는 소녀의 목을 원장은 구둣발로 쿡 밟곤 마구 짓이겼다.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어디선가 달려와 발목을 물어 뜯으려 왈왈거렸으나 이미 방비하고 있던 친위대원들의 발길에 채여 깨갱대며 나뒹굴었다. 그건 옥이가 강아지 때부터 자기 음식을 나눠 먹인 녀석이었다. 흰둥이와 옥이가 신음을 흘리며 부르르 떨었으나 원생들은 겁에 질린 채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만일 나서서 말렸다간 자기 자신도 그런 꼴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 후 흰둥이의 사체는 조장 놈들이 가져가 끓여 먹었으며, 옥이는 겨우 목숨만은 건졌으나 진짜 정신병자가 돼 떠돌더니 얼마 뒤 사라져 영영 보이지 않았다.


<다음 호에는 ‘바위 사람’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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