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 새로 쓰는 古典再讀新書…이정랑의 人物論[25]

진정한 지략가 조참과 원대한 지략가 곽가 이야기

글/이정랑(중국고전 평론가) | 기사입력 2020/09/25 [15:24]

다시 읽고 새로 쓰는 古典再讀新書…이정랑의 人物論[25]

진정한 지략가 조참과 원대한 지략가 곽가 이야기

글/이정랑(중국고전 평론가) | 입력 : 2020/09/25 [15:24]

제나라 재상 조참(曹參)은 이룬 것을 지킬 줄 아는 능력의 소유자
전임자 소하가 천하통일 후 만든 법과 제도 그대로 따라 태평성대

 

곽가는 정말 하늘과 땅을 두루 꿰뚫는 뛰어난 지략 갖춘 인물
그가 일찍 죽지 않았더라면 조조의 천하 평정 더 빨라졌을 것

 

▲ 조조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영화 ‘삼국지-용의 부활’ 한 장면. 

 

1. 조참, 이룬 것 지킬 줄 아는 능력자


옛날 말에 소규조수(蕭規曹隨)라 하여 ‘옛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전혀 고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결코 좋은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이 고사성어는 훨씬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한나라 혜제(惠帝) 2년(BC 193), 승상 소하(蕭何)가 병으로 죽었다. 여후와 혜제는 고조의 유언대로 제나라 재상 조참(曹參)에게 소하의 뒤를 잇도록 했다.


이 일을 두고 당시 조정의 신하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다. 소하와 조참은 유방과 함께 제업을 도모했으며 똑같이 패 지방 서리 출신으로 사이가 매우 좋았다. 그런데 훗날 조참은 많은 공로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소하보다 못한 대우를 받았다. 이런 까닭에 신하들은 두 사람 사이가 벌어졌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만약 이 추측이 맞는다면, 신임 승상 조참은 소하에 대한 반감 때문에 대대적인 인사이동을 단행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 승상부 안의 각급 관리들은 장래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이 뒤숭숭했다.


그런데 조참은 며칠이 지나도 업무에 있어서나 인사에 있어서 전임 승상이 하던 대로 일을 처리했다. 관리들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일에 전념했다.


몇 달 뒤, 조참은 부하들을 거의 파악했다. 그는 우선 멋대로 문서를 처리하고 명예만 좇는 관리들을 죄다 쫓아냈다. 그리고 지방의 행정 관료들 가운데 충직하고 말주변이 없는 늙은 관리들을 뽑아 결원을 보충했다. 그 후로는 승상부 안에서 밤낮으로 술만 마시며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조참과 친한 관리 몇 명이 그의 이런 행적을 이상하게 여기고 그를 만나러 왔다. 그런데 그들은 조참을 만나기는 했지만, 대뜸 그들을 술자리에 끌어들이는 바람에 본론을 꺼낼 겨를도 없었다. 조참은 몸을 가눌 수 없을 때까지 그들에게 계속 술을 들이부었다. 결국, 아무도 조참의 속마음을 알아내지 못했다. 조참이 이처럼 술을 즐기자 부하들도 저마다 그를 흉내 냈다.


승상부 뒤편에 있는 화원에는 항상 술을 즐기는 관리들이 눈에 띄었다. 거나하게 술기운이 돌면 그들은 춤추고 노래를 불러 그 소리가 먼 곳까지 들리곤 했다. 한번은 참다 못한 두 관리가 핑계를 만들어 조참에게 함께 화원을 거닐자고 청했다. 그들은 조참이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화원에 들어간 조참은 그 광경을 보고 함께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본 두 관리는 너무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번은 불만을 느낀 대신 하나가 혜제에게 이 사실을 고해바쳤다. 당시 혜제는 궁중에 틀어박혀 조정의 일을 외면한 채 오직 술에 기대어 우울함을 달래고 여색에 빠져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모친 여후의 소행에 깊이 절망했기 때문이다. 고조가 죽은 뒤, 여후는 경쟁자였던 척희(戚姬)를 참혹하게 죽이고 그녀의 아들 여의(如意)까지 독살했다. 아무튼 조참의 행적을 전해들은 혜제는 문득 의심이 들었다.


‘승상이 어째서 나를 따라하는 건가? 혹시 내가 어리다고 해서 업신여기는 게 아닐까?’


때마침 중대부(中大夫) 조굴(曹窟)이 찾아왔다. 조굴은 조참의 아들이었다. 혜제가 조굴에게 말했다.


“자네는 집에 돌아가 부친에게 물어봐 주게, 고조께서는 다른 신하들을 다 제쳐놓고 자네 부친을 시켜 어린 나를 보좌하게 했네, 그런데 지금 자네 부친은 승상의 몸으로 술만 마시고 일은 뒷전이라더군, 그렇게 해서 어떻게 천하를 다스리겠나? 하지만 내가 자네를 시켜 알아본다는 말은 하지 말게.”


조굴은 집에 돌아가 혜제가 시킨 대로 조참에게 말했다. 그런데 아들의 말이 끝나자마자 조참은 불같이 화를 내며 다짜고짜 회초리를 들었다. 그는 아들을 200대나 때리면서 말했다.


“천하의 일을 네가 알면 얼마냐 아느냐? 어서 궁궐에 들어가 황제폐하나 잘 모시거라!”


매를 맞은 조굴은 억울할 뿐더러 전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는 궁궐에 들어가 혜제에게 사실대로 고했다. 그의 말을 들은 혜제는 더욱 의혹이 짙어졌다. 이튿날 혜제는 조례를 끝내고 조참을 따로 불러 물었다.


“승상은 어찌하여 아들을 때렸는가? 그가 한 말은 다 나의 생각이었네.”


조참이 바닥에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면서 혜제에게 물었다.


“폐하는 돌아가신 고조 폐하보다 자신이 더 현명하고 용감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렇다면 제 재주는 소하 승상과 비교하여 어떻습니까?”


혜제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소 승상보다야 못하겠지.”


조참은 그제야 본심을 털어놓았다.


“폐하의 말씀이 정확합니다. 예전에 고조 폐하와 소하는 천하를 통일하고 법과 제도를 다 갖춰놓았습니다. 지금 폐하와 저희 신하들은 모두 그때 만들어진 제도를 쫓아 일하고 있습니다. 설마 전대의 제도를 계승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단 말입니까?”


혜제는 비로소 조참의 속뜻을 이해했다.


“승상의 생각을 이제야 알았네. 돌아가서 푹 쉬게나.”


조참은 이후에도 여전히 예전 방식대로 일을 처리했다. 한나라 초기는 백성들이 큰 난리를 치른 직후여서 모두들 안정을 원하고 있었다. 또한 나라 안에 큰 일이 없어서 백성들을 노역에 동원하는 일도 극히 적었다. 소하는 당시의 이런 사정에 맞춰 휴식과 무위를 근본으로 하는 제도를 마련했고, 조참은 이를 그대로 따라 태평성대를 구가할 수 있었다.

 

게다가 조참이 승상을 맡았던 당시는 여후가 전권을 휘두르고 황제가 무능했던 시절이었다. 조참의 방식은 그러한 정치적 상황에도 더없이 부합했다. 이 모든 것이 소하가 계획을 세우고 조참이 이를 충실히 따른 결과였다.

 

▲ 적토마를 선물하며 자신의 휘하에 두고 싶어하는 조조는 관우를 회유하지만 관우의 결심은 변하지 않는다. 사진은 영화 ‘삼국지-명장 관우’ 한 장면. 

 

2. 곽가, 진정한 모사의 원대한 지략


장군이 만군(萬軍) 위에 있다면 진정한 모사는 모든 장군 위에 있다.


한조 말기, 조조는 중원 일대를 평정한 다음 한발 더 나아가 원상(袁尙)과 삼군의 오환(烏丸을 토벌하여 후환을 없애려 했다. 그의 수하에 있던 장수들은 유표(劉表)가 유비를 보내 허창을 습격하여 조조를 토벌하려 들 것을 걱정했다.


그러나 조조의 모사 곽가의 생각은 이와 달랐다. 곽가가 조조에게 말했다.


“조공의 위세가 천하를 뒤흔들고 있는데도 오랑캐들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믿고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럴 때 이들을 기습 공격하면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원소가 생전에 오환의 오랑캐들과 한인(漢人)들에게 모두 은덕을 베푼 바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 원상 형제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조공께는 여간 위험한 일이 아닙니다. 지금 청천, 기주, 유주 등지는 물론 사천의 민중들도 조공의 병력이 두려워 우리에게 투항한 것이지 정말로 조공께 마음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은혜를 베푼 바가 전혀 없기 때문에, 우리가 오환을 토벌하여 합병하고 다시 남정(南征)하여 유표를 친다면 원상은 오환을 지원한다는 핑계로 그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울 것입니다. 게다가 오환이 한 번 움직이면 한조의 백성들이 일시에 이에 호응하여 오환 선우에게 남침의 야심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청천과 기주는 절대로 우리 땅이 될 수 없습니다.”


곽가는 잠시 멈추었다가 얘기를 계속했다.


“사실 유표는 공담가에 불과합니다. 그는 스스로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서 유비를 부려먹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비를 이용한다고 해도 마음 놓고 조종할 수 없기에 중용하지 않았고, 이에 유비도 그를 위해 공을 세울 수 없었던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가 진군을 출동시켜 오환을 정벌하기만 하면 별로 걱정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조조는 이 말을 듣고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군사를 거느리고 출정했다.


대군이 이현에 다다랐을 때, 곽가가 또다시 건의를 올렸다.


“속전속결을 위해선 군용물자를 이곳에 남겨두고 소수의 병력으로 군장을 가볍게 하고 주야로 내달아 기습공격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조조는 이를 받아들여 경기병을 이끌고 몰래 노룡새를 건너 곧장 오환의 주둔지로 쳐들어갔다. 오환의 군대는 갑자기 조조의 대군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는 서둘러 싸움에 응했지만 결국 조조의 군대에 대패하고 말았다. 답돈과 명왕 이하 장수들이 모조리 참수당했고, 원상과 그의 형 원희(袁熙)는 멀리 요동으로 도망쳐 버렸다.


곽가는 이번 전투에서 조조에게 정확한 전략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그 후로도 여러 차례 결정적인 지략을 제공했다. 그는 조조를 수행하여 원소를 물리쳤고 원소가 죽은 후에는 여양에서 조조를 도와 원담(袁譚), 원상 등을 토벌하면서 연전연승했다. 여러 장수들이 승세를 몰아 공격하자고 건의하자 곽가가 반대하고 나섰다.


“원소는 생전에 이 두 아들을 가장 사랑했지만, 누구를 계승자로 세울지는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곽도(郭圖)와 봉기(逢紀)가 그들의 모사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들은 두 사람 사이에서 서로 싸우면서 이간질할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서둘러 공격하면 둘이 서로 힘을 합쳐 대적할 테니 잠시 공격을 미루고 차라리 형주로 남하하여 유표를 공격하는 척하면서 두 사람의 권력쟁탈을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들 사이에 내분이 발생했을 때 출병하여 공격하면 틀림없이 승리를 거둘 것입니다.”


조조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군대를 몰아 남정에 나섰다. 조조의 군대가 서평에 이르렀을 때, 과연 원담과 원상은 곽가의 예견대로 기주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다투기 시작했다. 원담은 원상에게 패한 후 평원으로 철수하여 신비(辛毗)를 보내 조조에게 투항 의사를 밝혀 왔다. 조조는 즉시 회군하여 그를 구해준 다음 다시 남피로 가서 원담을 공격함으로써 기주를 평정할 수 있었다.


원상이 요동으로 도망치자 조조는 그를 악착같이 추격했지만 길이 너무 멀고 도처에 황무지와 모래밭이 이어져 있어 행군이 여간 고되고 힘든 게 아니었다. 이때 중병이 들어 조조를 수행할 수 없게 된 곽가가 조조에게 말했다.


“요동성에 도착하셔서 곧장 공격을 강행하시면 안 됩니다. 먼저 강공을 펼치면 요동왕과 원상이 힘을 합쳐 필사적으로 반격할 것이 분명합니다. 성 아래에 진을 치고 기다리시면 요동왕이 스스로 원상을 주살하고 투항해올 것입니다.”


요동성에 도착한 조조는 그의 말대로 성 아래에 진을 치고 기다렸다. 여러 장수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조조의 얼굴에는 느긋한 미소가 번졌다.


조조가 요동에서 돌아와서 보니 곽가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조조는 천하의 모사를 잃은 것이다. 곽가는 정말 하늘과 땅을 두루 꿰뚫는 뛰어난 지략을 갖춘 인물이었다. 당시 전국의 정세에 대한 그의 분석은 귀신도 울고 갈 정도였다. 그가 일찍 죽지만 않았더라면 조조가 천하를 평정하는 데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을 것이다.

 

j64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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