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 새로 쓰는 古典再讀新書…이정랑의 人物論[26]

민심 읽고 행동한 노나라 장수 조귀 이야기

글/이정랑(중국고전 평론가) | 기사입력 2020/10/08 [14:36]

다시 읽고 새로 쓰는 古典再讀新書…이정랑의 人物論[26]

민심 읽고 행동한 노나라 장수 조귀 이야기

글/이정랑(중국고전 평론가) | 입력 : 2020/10/08 [14:36]

단 한 차례 치른 ‘장작전투’로 진정한 무장으로서의 능력 과시
첫 번째 공격 기세 왕성, 두 번째 사기 하락, 세 번째 기진맥진


병사들 심리 정확히 파악…작전의 법칙 지키면서 주도권 장악
조귀가 지도자로 평가받는 이유는 전투력 활용할 줄 알았기 때문

 

▲ 잦은 내전으로 인해 수많은 국가로 나눠진 중국 대륙, 천하를 얻기 위한 영웅들의 대결이 시작되는데…. 사진은 영화 ‘삼국지-용의 부활’ 한 장면. 

 

지피지기(知彼知己)란 인심을 아는 것이다.


<손자병법>에서는 병가의 작전 실천을 일곱 가지 분야에서 개괄하고 있는데, 이를 ‘모병칠법(謀兵七法)’이라 부른다. ‘칠법’을 순서대로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군속전(大軍速戰). 대규모 작전의 기본 원칙으로, 군사력을 총동원하여 교전할 때는 속전속결로 싸움을 끝내야 한다.


둘째, 벌모위상(伐謀爲上). 싸움에 있어서 힘보다 지모를 중시하는 전략으로 싸우지 않고도 적을 굴복시키는 것을 최선의 책략으로 평가한다.


셋째, 지피지기(知彼知己).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으로 각종 계략의 근거가 된다.


넷째, 선위수세(先爲守勢) 후위공세(後爲攻勢). 신중한 용병의 원칙으로 먼저 수세를 공고히 하여 승리를 위한 기본적인 조건을 확보한 후에 공세를 취함으로써 전세가 여의치 않을 때는 안전하게 후퇴할 수 있고 적의 약점을 잡았을 때는 과감하게 공격한다.


다섯째, 피실격허(避實擊虛). 지모를 이용한 고도의 기만전술로 전력이나 전세의 허실을 잘 따지는 것을 말한다.


여섯째, 이우위직(以迂爲直) 이환위리(以患爲利). 전세가 불리한 상황에서 기만 전술을 이용하여 전세를 역전시킨다.


일곱째, 실제 상황에 따라 원수가 군주의 명령을 대신하여 신속하고 적절하게 임기응변을 발휘한다.


이상 일곱 가지 전략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것은 ‘지피지기’다. ‘지피지기’를 제대로 실천할 수만 있다면 전세의 허실과 미래의 흥망을 예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나라와 노나라 장작전투


춘추전국시대 조귀는 장작(長勺)에서의 전투 외에 다른 전적이 없었지만, 이 한 차례의 전투로 진정한 원수의 자질과 무장으로서의 능력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재간과 지략을 갖춘 뛰어난 군주였던 제(齊)나라 환공(桓公)은 관중이 현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노나라에서 그를 빼내 재상으로 중용했다. 노나라 군주는 이런 소식을 듣고는 자신이 우롱당했다고 생각하고 즉시 병마를 준비하여 제나라와의 일전을 벼르고 있었다. 제나라 환공도 이에 적극적으로 대비하면서 인선(人選)을 서둘렀다.


관중(管仲)은 환공이 즉위한 직후라 아직 인심이 안정되지 않았으므로 전쟁을 벌이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지만, 환공의 생각은 달랐다. 관중의 생각대로 하자면 국내의 정치와 군사를 안정시킨 다음 차근차근 전쟁 준비를 해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얼마나 긴 세월이 흘러야 할지 알 수 없었고, 환공에게는 애당초 이런 인내심이 없었다. 그는 포숙아(鮑叔牙)를 대장으로 임명하여 곧장 노나라의 장작을 공격하게 했다.


이에 노(魯)나라 장공(莊公)도 몹시 분개하며 제나라와의 결전을 결심했다. 장공의 대신 가운데 생각이 깊고 세심하기로 유명한 시백(施伯)이란 인물이 나서서 장공에게 문무를 겸비한 장수 하나를 천거했다. 그가 바로 조귀였다. 장공은 시백에게 관직이 없던 조귀를 성대한 예의를 갖춰 중용하도록 지시했다. 시백이 조귀를 찾아가 사신이 온 연유를 설명하자 조귀가 말했다.


“전쟁은 국가 대사인 만큼 매일 고기만 먹는 고관 귀족들이 해결할 일이지, 우리처럼 미천한 사람들이 나설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시백이 말을 받았다.


“고기만 먹는 고관 귀족들은 안목이 너무 좁아 멀리 내다보고 깊이 생각하는 능력이 없소.”

 

노나라 장공과 조귀의 만남


조귀는 시백의 설득에 못 이겨 그를 따라 노나라 장공에게 가서 다시 자세한 상황 설명을 들었다.


장공이 조귀에게 어떻게 하면 제나라의 군대를 물리칠 수 있겠느냐고 묻자 조귀는 전쟁에는 일정한 법칙이 없기에 상황에 따라 전략을 달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조귀가 장공에게 어떤 방법으로 적을 물리칠 생각이냐고 물었다. 장공이 대답했다.


“난 항상 내가 다 먹지 못하는 음식이나 다 쓰지 못하는 물건들을 백성들에게 나눠주었소. 따라서 백성들이 나의 큰 은덕에 감격하여 기꺼이 나를 따라 제나라와의 결전에 나설 것이라고 믿어마지 않소.”


조귀가 말을 받았다.


“그것은 하찮은 은덕에 불과합니다. 큰 정책이나 법령도 아니고 국가적인 시정강령(施政綱領)이나 조치도 아니지요. 때문에, 근본적으로 백성들의 신임을 얻고 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게다가 하찮은 은혜를 입은 사람들도 극소수에 불과하지요. 그러니 어떻게 백성들이 공을 위해 목숨을 내놓겠습니까?”


“나는 신령과 조상들에게 바치는 가축과 보석을 항상 규정에 맞게 봉헌했고 누구에게도 속임수를 쓴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성실성만으로도 충분히 백성들의 신임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소.”


조귀가 다시 말을 받았다. 


“그건 단지 신령과 조상들에 대한 예의로서 개인적인 품행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행위만으로 백성들의 신임을 살 수는 없지요.”


장공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나라의 크고 작은 소송사건을 모두 직접 처리할 수는 없었지만, 항상 상황에 맞게 적절한 결단을 내렸소. 이것도 백성들의 신임을 얻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하오.”


조귀가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근본적인 행위에 해당합니다. 공께서 백성들의 고충에 관심을 갖고 시비를 통찰하여 공정하고 청렴한 정치를 편다는 증거가 되니까요. 이는 틀림없이 백성들의 신임과 지지를 확대할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제 소견으로는 이를 기반으로 제나라에 대항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제나라 세 번의 공격과 대참패


드디어 제와 노 두 나라는 장작에서 대접전을 벌였다. 제나라는 병력의 우세를 믿고 우렁찬 고함 소리와 함께 선제공격에 나섰고 노나라 장공도 이에 질세라 조귀를 출격시켰지만 조귀는 군사들에게 진영을 지키되 꼼짝하지 말 것을 명령했다. 제나라 군대는 노나라 진영이 견고하고 기치가 선명한 것을 보고는 승리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그냥 물러났다.


얼마 후 제나라 군대는 두 번째 공격에 나섰지만 조귀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고, 제나라 군은 또다시 퇴각해야 했다. 결국, 제나라 군대의 원수는 빨리 싸움에 이겨야겠다는 생각에 조급함을 참지 못하고 세 번째 공격을 감행했다. 이때 제나라 군의 병사들은 이미 사기가 떨어지고 기강이 풀어져 기세가 꺾인 상태인 데 반해 노나라 군은 아직 지칠 줄 모르는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드디어 조귀는 출격을 명령했고 노나라 군은 단번에 제나라 군의 진영으로 쳐들어갔다. 이미 기력을 잃은 제나라 군은 노나라 군의 거센 기세를 막아내지 못하고 달아나고 말았다.


노나라 장공은 제나라 군이 달아나는 것을 보고서 계속 추격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자 조귀는 수레에 올라 사방을 둘러본 결과 적군의 깃발이 동서로 흩어져 있고 수레바퀴 자국이 이리저리 어긋나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유인전술이 아니라 도주하는 것이 분명하다는 판단을 내리고는 곧장 추격 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하여 장작전투는 노나라의 대승으로 끝났다.


전투 결과를 평가하는 자리에서 조귀는 군사작전에서는 종종 “첫 번째 공격은 기세가 왕성하고, 두 번째 공격에는 사기가 떨어지며, 세 번째 공격은 기진맥진하기 일쑤”라고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제나라 군은 세 번이나 공격을 해왔기 때문에 이미 기력이 다 떨어진 상태였지만 노나라 군은 투지가 불탔기 때문에 승리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는 것이다. 또한 제나라는 대국이기 때문에 복병이 매복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들의 퇴각이 혹시 유인술은 아닌지 확인 후에 추격 명령을 내렸던 것이라고 술회했다.

 

노나라 장작전투 승리 요인


간단히 말해서 장작전투의 승리는 두 가지 사실에 의존한 것이었다.


첫째, 조귀는 병사들의 심리와 정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활용했으며 작전의 법칙을 확실하게 지키면서 신중함과 결단력을 동시에 발휘하여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구체적인 전략을 세워 확실하게 주도권을 장악했다.


둘째, 조귀는 인심을 활용할 줄 알았다. 장작 전투는 노나라의 방어전으로서 어느 정도 정의를 구현한다는 명분이 있었고, 보다 중요한 것은 노나라의 통치자가 상당한 위세와 명망을 갖추고 있어 병사들에게 군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걸고 싸울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요소가 함께 작용하여 노나라가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전자를 구체적인 전술의 운용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근본적인 전투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심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아무리 전술이 뛰어나다 해도 이를 제대로 운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조귀가 훌륭한 군사 지도자로 평가받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근본적인 전투력을 활용할 줄 알았다는 사실에 있다.


j64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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