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진그룹 영어토익반’ 고아성 진취적 인터뷰

“당분간 이자영처럼 오지랖 떨고 살래요”

강진아(뉴시스 기자) | 기사입력 2020/10/23 [12:28]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고아성 진취적 인터뷰

“당분간 이자영처럼 오지랖 떨고 살래요”

강진아(뉴시스 기자) | 입력 : 2020/10/23 [12:28]

커피 잘 타는 생산부 말단사원 이자영 역 야무지게 소화
“커피 타주던 여직원들 IMF 때 대량 해고…가슴 아팠다”

 

▲ 오지랖 넓은 1990년대 고졸 말단사원으로 돌아온 배우 고아성. 

 

“1995년도를 생각하면 기억나는 건 없다. 그런데 촬영 전 당시 화장에 의상을 입고 거울을 봤는데 깜짝 놀랐다. 어렸을 때 봤던 우리 이모의 모습은 물론 수많은 일하는 여성들의 단상이 떠올랐다. 지금도 그분들은 기억이 생생할 텐데, 뭉클하면서 책임감 있게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배우 고아성이 오지랖 넓은 1990년대 고졸 말단 사원으로 돌아왔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커피 타기 달인인 생산관리3부 이자영 역을 맡았다.


지난 10월1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고아성은 “개봉을 앞두고 긴장되지만 다른 때보다 기쁜 마음이 있다”며 “자부심도 있고 내가 봐도 영화가 재미있다. 정서적으로 많은 분께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1995년 입사 8년차, 업무능력은 베테랑이지만 고졸이라 늘 말단으로 회사에서 영어 토익반 수업을 같이 듣는 세 친구가 힘을 합쳐 회사가 저지른 비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담았다. 토익 600점을 넘으면 대리로 승진해 진짜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도 잠시, 회사의 폐수 무단방류 현장을 목격한 후 사건을 파헤친다.


고아성은 “시나리오만 보고 영화를 하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완성본을 보니 결과물이 더 풍성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고아성은 이번 영화에서 이솜, 박혜수와 입사 동기로 호흡을 맞췄다. 세 연기자는 스크린 속에서 유쾌한 에너지와 끈끈한 우정을 발산한다.


고아성은 “가장 중요한 건 세 인물의 합이었다”며 “이자영이 회사의 비리를 목격하고 파헤치려 하지만,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어 가능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배우들의 합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셋이 처음 모였을 때 한 30분 만에 알았다. ‘되겠다’ 싶었다. 세 배우가 스타일이나 연기, 성격이 다 다르지만 바라보는 방향은 같았다. 다들 열려 있는 사람들이라 좋은 예감이 들었다. 감독님도 여배우 셋과의 작업이 쉽진 않았을 텐데 잘 이끌어줬다.”


세 배우는 지방 촬영을 하면서 더 친해졌다. 처음엔 각각 숙소를 따로 쓰다가 밤에 자연스레 한데 모이면서 나중엔 합숙하듯 같은 방을 썼다.


고아성은 “이솜 언니는 나이로 보나 키로 보나 대장이었다. 우리를 잘 이끌어줬다”고 웃으며 “박혜수는 막내이지만, 내면이 단단한 친구였다. 연기도 잘하고, 겸손하면서 자기 중심이 잘 잡혀 있어서 개인적으로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시대 배경인 1995년은 고아성이 네 살 때다. 영화 속 사내 건강체조를 하는 모습부터 여직원들이 커피를 타는 모습까지 그에겐 놀랍고 새로운 풍경이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1990년대에는 커피를 어떻게 마시고 탔나 살펴봤다. 그런데 IMF 이후 믹스 커피가 급증했다는 얘길 들었다. IMF 때 커피를 타주던 여직원들이 해고되면서 믹스 커피가 급증했다는 거였다. 이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가슴이 좀 아팠다.”


영화는 폐수 유출 사건 등 실제 있었던 사건을 기반으로 극적 요소를 더했다.  “첫인상은 독특하면서 밝고 명랑했지만, 결코 가볍게 다룰 수는 없는 영화였다”면서 “일정 정도 판타지도 가미돼 있다”고 설명했다.


고아성은 지난 2018년 출연한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에서 1980년대 순경 역도 맡았다. 그는 “1980년대와 1990년대 말투 차이를 열심히 찾아봤다”며 “명백히 다르더라”고 했다.


“1980년대는 수줍음이 많고 나긋한 캐릭터였다면, 1990년대는 새바람이 불면서 일하는 여성도 많아지고 진취적이고 당당해진 말투가 있다. 그 점을 많이 살리려 했다. 영어도 이자영이 잘하진 못하지만 당당하게 하고 싶었던 걸 강조했다.”


이자영의 스타일은 1990년대 느낌을 살리되 튀지 않게 표현했다. 고아성은 “이자영 캐릭터는 스토리에 힘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1990년대의 특징들이 스토리 전개에 방해될 수 있어 일부러 뺀 편”이라고 밝혔다.


이번 캐릭터를 통해 오지랖이 넓어졌다.


“나는 내성적이었고 현장에서 여유가 없는 편인데, 이번 역할을 하면서 스스로 에너지를 끌어올리고 성격을 많이 바꾸려 했다. 사람들에게 말도 더 많이 걸게 됐다. 한번 시작하니까 사람들이 궁금해지더라. 주변에서도 내가 외향적으로 변했다고들 한다.”


고아성은 이번 영화는 물론 전작 <항거: 유관순 이야기> 등 주체적인 역할을 연기해왔다. “내면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것만큼 재미있는 건 없다.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고 연기의 쾌감을 찾는 것 같다”며 “그렇지 않은 역할을 하면 조금 허전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아역부터 시작해 성인 연기자로 넘어오는 시점에서 계기가 된 작품으로는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꼽았다.


“당시 공백이 좀 있었고 오랜만에 나오는 영화였다. 연기하는 게 좋았지만 지금처럼 확신이 있진 않았던 것 같다. 그 작품을 계기로 내가 사랑하는 일이 연기이고 잘 연마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로서 지금 만족하냐는 물음엔 “일단 마음먹었는데 적성에도 잘 맞는 것 같다”고 답했다. “좋아하는 일이니 사람들이 재밌게 봤다고 하면 뿌듯하고 행복했다가, 재미없다고 하면 속상하다. 앞으로도 이 굴레를 돌며 살지 않을까 싶다.”

 

현재는 자신이 존경할 수 있는 사람들을 연기하고 싶어 한다고 했다. 이번 영화를 하면서도 스스로 이런 역할을 할 만큼 정의로운 사람일까 고민했고, 조금이라도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자 생각했다고 밝혔다.


“신념과 가치관에 부합하는 걸 하고 싶고, 내가 가진 마음이 영화나 캐릭터에 잘 우러났으면 한다. 20대 후반인 지금은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시기인 것 같다. 내가 되고 싶은 캐릭터에 끌린다는 걸 깨달았다. 이타적인 사람이 되고 싶고, 이자영 역을 소화하면서 생긴 오지랖을 조금 더 유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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