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 새로 쓰는 古典再讀新書…이정랑의 人物論[37]

楚漢쟁패 위대한 전술가 한신, 兎死狗烹의 선례 남기다

글/이정랑(중국고전 평론가) | 기사입력 2021/02/26 [16:47]

다시 읽고 새로 쓰는 古典再讀新書…이정랑의 人物論[37]

楚漢쟁패 위대한 전술가 한신, 兎死狗烹의 선례 남기다

글/이정랑(중국고전 평론가) | 입력 : 2021/02/26 [16:47]

한신이 조나라 평정한 전투야말로 인류 전쟁사에서 가장 특출한 전투
성 밖으로 ‘진여’ 유인…보통 사람이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목적 달성


‘배수의 전투’는 오직 위대한 전술가만 고안해낼 수 있는 교묘한 함정
좋은 기회는 두 번 오지 않는 법…한 번 잃으면 모두를 잃게 될 뿐

 

▲ 변방에서 세력을 키운 유방은 한신·장량 등 뛰어난 부하들과 함께 항우를 맞서며 대결전으로 나아가게 되고, 천하는 둘로 나뉘어 두 영웅의 대결전 앞에 모이게 되는데. 사진은 중국영화 ‘초한지-천하대전’ 한 장면. 

 

오랫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한신의 명성을 높였던 것은 배수의 전투였다. 4년을 끈 조나라와 한나라의 전쟁은 유명하면서도 기상천외한 전투를 양산했다. 그 가운데 한신이 조나라를 평정한 전투야말로 가장 특출한 전투였다. 이 전투는 실로 인류 전쟁사에서도 대단한 의의를 갖고 있다.

 

인류 전쟁사에 남을 전투


한나라 3년(BC 204), 한신은 유방의 명을 받아 장이(張耳)와 함께 병사 수만 명을 거느리고 조나라를 침공했다. 이 소식을 접한 조왕 헐(歇), 재상 진여(陳餘)는 한군이 지나가는 길목인 정형 입구에 20만 대군을 집결시켰다. 그들은 지형의 유리함을 이용하여 한나라와 싸울 속셈이었다. 각자의 주인을 위해 원수가 된 장이와 진여는 원래 절친한 친구 사이였기에 상대방의 성격을 훤히 파악하고 있었다.


조나라 광무군(廣武君) 이좌거(李左車)는 상당한 식견의 소유자였다. 그가 진여에게 계책을 올리며 말했다.


“한신은 황하를 건너 위왕을 포로로 삼고 하열(夏說)을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그런 자가 지금 군대를 이끌고 천 리 길을 달려와 공격하니, 그 서슬을 막아내기 힘들 듯합니다. 속담에 천 리를 가면 군량이 떨어져 군사들 얼굴에 궁기가 돈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곳 정형의 길은 수레 두 채가 나란히 갈 수 없을 만큼 좁습니다. 한군이 오면 그들의 군량과 마초는 분명 뒤쪽에 있을 겁니다. 그러니 정예병력 3만을 소로로 침투시켜 적 후방의 보급품을 탈취한 뒤, 지형을 이용해 적이 못 나오도록 막으십시오. 이렇게 하면 적은 앞으로 나가 싸울 수도 없고 후퇴할 수도 없으며, 군량도 전혀 없는 처지가 됩니다. 아마 열흘도 못 넘기고 패하고 말겠지요.”


그러나 진여는 의로운 군대는 그런 잔꾀를 부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좌거의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의 상황에서 그 계책은 확실히 효과적인 작전이었다. 만약 진여가 그 계책을 사용했다면 한신은 위험에 빠졌을 것이다. 한신은 나중에 진여를 격파한 뒤, 이좌거에게 공손히 병법의 가르침을 청하고 그의 건의를 수용했다. 그리고 진여가 이좌거의 계책을 거부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한시름 놓았다.


그는 정형 입구로부터 30리 떨어진 곳에 군영을 설치하고 병력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먼저 한 장수에게 날랜 기병 2천 기를 맡긴 뒤, 기병마다 손에 깃발을 들고 밤을 틈타 정형 입구 좌우편에 숨으라고 명령하며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아군이 조군과 싸우다 달아날 때까지 기다려라. 놈들은 분명 아군을 뒤쫓아올 것이다. 그때 너희는 쏜살같이 놈들의 보루를 차지하고 조나라 깃발 대신 우리 한나라 깃발을 바꿔 꽂아라.”


첫 지시를 내리고 한신은 군대를 움직여 곧바로 정형 입구로 들어갔다. 때는 해가 어슴푸레 떠오르는 새벽이었다. 한신은 ‘당장은 건량(乾量)으로 허기를 채우고 곧 조군을 격파하고 아침을 지어 먹자’는 말로 병사들의 사기를 돋웠다. 그는 또 다른 장수에게 정예병력 1만을 주고, 저수를 건너 물을 등진 채 전열을 짜게 했다.

 

병법에 없던 배수의 진


한신은 군사들을 배불리 먹이지도 않고, 배수진을 치게 했다. 이것은 병법에 일찍이 없던 금기사항이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이렇게 스스로 퇴로를 끊는 방법은 누구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 광경을 본 조나라의 장수들은 속으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한신처럼 명성이 자자한 대장군이 어떻게 이런 진법을 쓰는지 의아해했다. 하지만 모두 그의 용병술이 신출귀몰(神出鬼沒)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마음속의 의혹을 감히 드러낼 수가 없었다. 곧 날이 완전히 밝었고 한신과 장이도 저수를 건너 전투를 준비했다.


한신이 장이에게 말했다.


“지금 조군은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고 있소. 만약 대장 깃발이 보이지 않으면 우리 군대가 소규모라는 것을 알아도 절대로 싸움에 응하지 않을 것이오.”


그래서 그는 대장 깃발을 높이 들게 하고, 장이와 함께 군사들을 이끌고 정형관을 향해 돌진했다. 이때 진여는 한신이 직접 부대를 지휘하고 있고, 또한 그의 부대가 소규모인 것을 확인했다. 두려움이 없어진 그는 당장 성문을 열고 군사들을 데리고 나가 싸움에 응했다. 장시간에 걸친 두 나라 군사들의 싸움은 사상자가 속출했지만 쉽게 승부가 나지 않았다. 계속 싸우다가는 한군이 불리해질 것이 분명했다. 이때 한신은 적군의 심리를 이용해 그들을 유인할 계획이었다. 때가 됐음을 직감한 그는 군사들에게 깃발과 무기를 버리고 천천히 후퇴하라고 명령했다. 이때 용기백배한 조군은 도망치는 한군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한편 성문을 지키기 위해 남아 있던 조나라 병사들은 여기저기 널려 있는 한나라 병사들의 갑옷과 무기를 발견했다. 그들은 나중에 상을 받을 증거로 삼기 위해 다투어 그것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곧이어 성문 안을 수비하던 병사들도 남들이 전리품을 취하는 것을 보고 욕심이 동해 성문 밖으로 뛰쳐나왔다.


바로 이때, 한 줄기 포성이 울려 퍼지면서 성문 근처에 매복하고 있던 한나라 병사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조나라 군사들 가운데 성을 지키려고 남은 인원은 많지 않았다. 더구나 성안의 병사들까지 문을 활짝 열고 나와 있었으니 전혀 방어할 겨를이 없었다. 한나라 기병들은 혼비백산한 조나라 군사들을 신속하게 사살하고 성을 점령했다. 그리고 조나라 깃발을 뽑고 그 자리에 한나라의 깃발을 달았다.


그 시간, 한신과 장이는 군대를 퇴각시키고 배수진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 광경을 본 진여는 한신이 더 이상 후퇴할 길이 없다고 여기고 완전히 우세한 병력만으로 밀어붙일 것을 결심했다. 그는 적의 진영을 깨뜨리라고 명령했다.


이 순간 한군의 형세는 매우 위태로웠다. 앞에는 몇 배나 많은 적군이 있고, 뒤에는 시퍼런 저수가 흐르고 있었다. 한마디로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었다. 조군을 격파하지 못하면 오직 죽음만이 있을 뿐이었다.


한나라 군사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한신이 훌쩍 말을 타고 적진을 향해 칼 끝을 겨누며 군사들에게 외쳤다.


“후퇴하면 죽음뿐이니, 승리해야만 살길이 열린다. 조군의 성이 벌써 우리 수중에 떨어졌으니 적들은 크게 흔들릴 것이다.”


이 말에 한군은 몸을 돌려 한신과 장이를 따라 필사적으로 돌진했다. 그들은 죽으면 죽었지 결코 후퇴하려 하지 않았다.
시간은 벌써 정오에 가까워져 있었다. 진여는 일시에 한군을 무찌르기 어렵다고 보고 군사들을 거둬들였다. 군사들이 허기가 진 기색이 역력한 데다가 이미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이상 무리해서 싸울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그는 한군의 기력을 다 소진시킨 뒤에 승리를 취하려 했다. 한군은 강물을 등지고 있어 퇴로가 막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진여는 군사들을 정형관으로 후퇴시켜 점심을 먹게 한 다음 다시 싸우게 할 생각이었다. 진여의 이런 계산은 그때 상황에서 더없이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조군이 퇴각하여 정형관에 다다랐을 때, 성문 위에는 한나라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자신들의 요새가 한군에게 점령당한 것을 안 조나라 군사들은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이때 적의 추격이 코앞까지 다다랐고, 앞에서도 성문을 열고 한군이 쳐들어왔다. 조군은 삽시간에 전열이 흐트러져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진여는 서둘러 이 혼란을 수습하고자 도망치는 군사 몇 명의 목을 베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할 수 없이 패잔병들을 데리고 저수 강변까지 후퇴했고, 그곳에서 한군에게 포위된 채 살해당하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배수의 전투다.

 

스스로 퇴로를 끊는, 전술


한신은 조군을 격파하고 진여를 살해한 직후, 곧바로 군사를 파견하여 조나라 왕을 뒤쫓게 했다. 결국, 조왕 헐은 양(襄)나라에서 최후를 맞았고, 한신은 정형관을 넘어 계속 진군하여 순식간에 조나라를 평정했다.


배수의 전투는 병법에서 이야기하는, ‘사지에 떨어진 뒤에 살아난다’는 전법을 쓴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 퇴로를 끊는, 전술로서 군사들의 삶 욕망을 이용해 그들의 전투능력을 극대화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전술이기도 하다. 뛰어난 지략가가 아니면 결코 사용할 수 없다. 자칫하면 군사들을 죽음에 몰아넣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신의 ‘배수의 전투’는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그는 매우 능동적으로 이 전술을 사용했다. 결코, 몰리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사용한 게 아니다. 이런 까닭에 다른 각종 전략들을 여유 있게 배치하고 배수의 전투를 열세에서 우세로 전환 시킬 수 있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마속(馬謖)도 가정의 전투에서 바로 이 전술을 사용했지만, 적에게 몰리는 상황이었으므로 무리하게 정면 대결을 하고 말았다. 한신의 ‘배수의 전투’는 사실상 미리 전략을 정하고 난 후 행동으로 옮겨졌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배수진’의 의미는 한신보다는 마속 쪽에 더 가깝다.


따라서 한신의 ‘배수의 전투’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배수진’이 아니라 능동적인 공략을 위한 뛰어난 지략이다.


둘째, 한신의 ‘배수의 전투’는 체계적인 전략이었다. 이 점은 적의 성을 탈취한 것과 군대를 새벽에 출격시킨 사실에서 나타난다. 한신은 적군이 정오가 되면 정심을 하러 성으로 돌아가리라 예상했다. 그는 아군이 정오까지만 버틴다면, 성으로 돌아간 조군이 성을 빼앗긴 걸 알고 대혼란을 일으킬 것까지 예상했다.


그런데 한신은 소수의 병력으로 적의 우세한 병력과 맞서 싸울 때 실패할 수도 있음을 몰랐을까? 역사는 이 점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는 당시 상황에 근거하여 분석해볼 수 있다. 조군은 한신이 배수의 진을 쳐 퇴로가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투를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하물며 이 전투는 오전 안에 끝낼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그래서 한신은 자신의 정예병력으로 적군과 맞서 적어도 정오까지 버티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예상했다. 이것은 곧 자신을 알고 적을 알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셋째, 한신의 전략은 사실 위험한 도박이 아니었다. 오히려 대단히 안전한 계책이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조군과의 대적보다 그들이 험준한 성을 지키다 싸움에 응하지 않을 것을 더 근심했다. 일단 그들이 성 밖으로 나오자 한신은 그들과 똑같은 조건에서 싸울 수 있었다. 진여 같은 인물을 그가 두려워할 리 없었다. 하물며 매복해 놓았던 기병들이 정형관을 점령하지 못했을지라도, 이미 성 밖에 나온 진여의 후방을 공략해 한신을 구출할 수 있었다. 바로 이런 치밀한 계산이 있었기 때문에 한신의 전략은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넷째, 한신의 군대는 연전연승의 군대로서 사기충천해 있었다. 그들은 한사람이 열 사람을 당해낼 만했다. 한신의 걱정은 오직 적이 군량 수송로를 끊어버리고 좁은 산길에서 시간을 지체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되면 군사들의 기력이 점차 소진될 것이므로 속전속결을 노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의 근본 목적은 진여를 성 밖으로 유인하는 것이었다. 그는 보통 사람이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방법으로 그 목적을 달성했다.


이상의 사실로부터 우리는 한신의, 배수의 전투가 실제로는 대단히 교묘한 함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오직 위대한 전술가만이 고안해낼 수 있는 함정이었다. j64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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