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새 수장에 오른 ‘무성대장’ 김무성

원조 ‘친박’서 ‘비박’으로…비주류 시대 열리나

김설희 기자 | 기사입력 2014/07/21 [10:24]

새누리당 새 수장에 오른 ‘무성대장’ 김무성

원조 ‘친박’서 ‘비박’으로…비주류 시대 열리나

김설희 기자 | 입력 : 2014/07/21 [10:24]

새누리당의 새 수장으로 ‘비박’ 김무성 의원이 선출돼 당·청 관계에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최근 여당은 제3차 전당대회를 열고 대표최고위원에 김무성 의원을, 최고위원에 서청원·김태호·이인제·김을동 의원을 선출했다. 이번 전대에서 김 후보는 5만2706표를 획득하며 ‘친박’ 서 후보(3만8293표)를 1만4413표 차이로 제치고 압승을 거뒀다. ‘친박’ 핵심들이 고배를 마시며 일각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일방적인 국정운영 등에 대한 당내 반발이 표로 나타났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김 대표가 여권의 역학구도와 국정운영의 변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불러올 전망이다. <편집자주>



‘백의종군’ 1년여 만에 당권차지…‘홀로서기’ 성공
당·청 관계 지각변동 예고…비주류 대거 입성하나

국회의장 선거에 이어 친박 주류 ‘원투펀치’ 맞아
7·30 재보선과 오는 2016년 총선까지 과제 산적



▲ 새누리당 김무성 당 대표가 이번 7·14 전당대회에서 ‘친박’ 세력을 압도적인 표차로 제치고 선출됨에 따라 여권의 역학구도와 국정운영의 변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불러올 전망이다. <김상문 기자>     © 주간현대

[주간현대=김설희 기자] “새누리당이 보수혁신의 아이콘이 되도록 하겠다.” 박근혜 정부 출범 2년차에 열린 7·14 전당대회에서 새누리당이 비주류의 ‘구심’인 김무성 의원을 당 대표로 선택한 것은 변화에 대한 요구가 그만큼 절실하고 강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홀로서기 성공

그것도 당초 김 의원과 서청원 의원의 박빙 승부가 될 것이라는 일부 예측과 달리 김 의원의 압도적 표차 승리였다. 선거인단 투표(70%)와 국민여론조사(30%)를 합쳐 표로 환산한 전체 유효투표 17만8225표 중 김 의원은 5만2706표를 얻어 3만8293표를 얻은 서 의원을 1만4413표차로 제쳤다. 전당대회를 관통했던 ‘박근혜 구하기’와 ‘주류 견제론’의 경쟁에서 후자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게다가 직전 사무총장을 지내며 친박 당권파의 핵심으로 통하는 홍문종 의원마저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세월호 참사와 국무총리 후보자의 연이은 낙마로 타격을 입은 여권의 위기에 당심과 민심의 선택은 ‘순응형’ 지도부가 아닌 할 말은 하는 수평적 당·청 관계를 표방한 지도부 쪽으로 향한 셈이다.

이 밖에 4명의 최고위원에는 7선의 서청원, 재선인 김태호, 6선의 이인제 의원이 득표 순으로 선출됐고, 재선인 김을동 의원은 여성을 선출직 최고위원에 포함하도록 한 규정에 따라 5위 득표자인 홍문종 의원을 탈락시키고 지도부에 입성했다. 김태호 의원이 2만5330표를 얻어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였던 3위를 차지했고, 이인제(2만782표) 홍문종(1만6629표) 의원이 차례로 뒤를 따랐다. 김을동 의원은 1만4590표로 6위였고, 김상민(3535표) 박창달(3293표) 김영우(3067표) 의원이 하위권에 머물렀다.

이에 따라 그동안 당을 이끌었던 주류 당권파의 활동이 한동안 주춤해지는 반면, 김 대표를 필두로 한 비주류는 활동 반경을 넓혀갈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신임 당 지도부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쌓인 앙금을 걷어내고 역대 재보선 중 규모가 가장 큰 ‘7·30 재보선’을 승리로 이끌어 원내 과반 의석 붕괴 사태를 막아야 하는 임무도 맡게 됐다.

그러나 30년 넘는 오랜 정치 경험으로 누구보다 권력의 생리를 잘 아는 김 대표가 취임한 지 1년4개월밖에 되지 않은 박 대통령과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김 대표는 전당대회 기간 내내 “박근혜 정부의 성공적 국정운영을 돕겠다”고 공언까지 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MB정부 이후 여당 역사에서 가장 장악력이 센 당 대표라는 평가다.
게다가 차기 대권 주자군에도 포함되는 김 의원이 ‘미래 권력’으로서 떠오를 경우 ‘현재 권력’인 박 대통령과 굵직한 사안에는 갈등을 빚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김 의원은 세월호 참사와 인사 난맥상이 이슈로 부상했을 때 청와대 참모진의 책임을 물으며 긴장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정권 초반에 열린 전당대회에서 주류가 이렇게 맥없이 패배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국회의장 선거에서 비주류 친이계인 정의화 의원이 친박계인 황우여 의원을 꺾은 ‘여진’이 채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 가해진 일격이어서 친박계의 ‘체감 충격’은 상당할 것으로 여겨진다. 비주류인 김태호 이인제 의원이 나란히 3, 4위로 최고위원에 입성한 반면, 6·4 지방선거에서 사무총장을 지내며 조직을 책임졌던 홍 의원이 탈락하는 이변까지 초래했다.

2위를 차지한 서청원 의원 외에는 친박 주류를 대표할 만한 인물이 없는 것이다. 여성 몫으로 최고위원이 된 김을동 의원도 친박을 표방했지만 주류와는 거리가 있다. 앞서 2012년 5월 친박 성향의 황우여 의원이 대표로 선출되고, 나머지도 친박의 이혜훈 전 의원, 정우택 유기준 의원이 선출돼 5명 중 4명이 친박이었던 것과는 완연히 다른 분위기다.

이 과정에서 지도부에 비주류가 대거 입성할 전망이다. 당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최고위원회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5명에 지명직 2명, 당연직인 이완구 원내대표와 주호영 정책위의장까지 모두 9명으로 구성된다. 김 대표는 지명직 최고위원 2명의 선출권도 갖는다. 김 대표는 재보선 이후 탕평인사를 하겠다며 그간 소외된 인사들의 중용 방침을 분명하게 밝힌 상태다. 만약 이런 기조에 따라 김 대표가 지명직에 모두 비주류를 배려한다면 자신을 포함해 김태호, 이인제 최고위원과 주 정책위의장까지 6명이 비주류 출신이 된다. 이에 따라 당분간 친박 주류가 ‘2선’으로 밀려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남경필 경기지사, 권영진 대구시장, 김기현 울산시장 등 비박계가 대거 광역단체장으로 당선된 것이나, 역시 비주류였던 정의화 의원이 큰 표차로 국회의장에 당선된 흐름이 이어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위기감을 느낀 친박 주류가 똘똘 뭉쳐 현 지도부 흔들기에 나서면 과거 이명박 정부 당시 친이, 친박이 그랬던 것처럼 계파 간 싸움이 또다시 재연될 우려도 있다. 김 대표가 전당대회 동안 “친박 실세라는 사람들이 내가 당 대표가 되면 3개월 안에 끌어내린다고 했다”고 주장한 게 이 같은 상황 인식과 무관치 않다.

권력재편 예고

여기에는 7·30 재보선과 2016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현재 새누리당의 원내 의석수는 147석. 15석이 걸린 이번 재보선에서 적어도 4군데에서는 승리해야 원내 과반을 사수하게 된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다. 부산 해운대·기장갑, 울산 남을 2군데를 제외하고는 어느 곳도 우위를 자신할 만한 곳이 없다.

비록 현 지도부가 공천 작업에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시작된 공식 선거운동에서 김 대표가 어느 정도 역량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앞으로 순항 여부를 가늠해 볼 수도 있다. 또 전당대회 동안 서청원 의원 간 깊이 팬 감정의 골을 어떻게 메울지도 풀어야 할 과제다. 물론 서청원 최고위원은 당선 직후 “그동안 경륜과 경험을 쏟아서 새누리당이, 박근혜 정부가 잘 되도록 뒷받침하겠다”며 “김무성 의원이 당 대표가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대표가 위기의 대한민국, 박근혜 정부, 국민을 위해서 헌신하겠다고 했다”며 “든든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서 최고위원은 “박근혜 정부의 성공이 국가·국민·새누리당의 성공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분명히 최고위원들과 당원들은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우호적인 제스처로 풀이되지만 지난 2010년 안상수 후보가 불과 2.2%포인트 차이로 홍준표 후보를 따돌리면서 지도부에는 불협화음이 끊이질 않았던 전례가 있어 당권재편에 따른 적지 않은 내홍이 우려된다.

현 지도부가 2년의 임기를 채운다고 가정하면 2016년 총선 공천도 책임져야 한다. 총선 승패에 따라 2017년 대권의 향방도 가늠할 수 있어 정권 재창출의 주춧돌을 놓는 작업이 오롯이 이들의 손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대표는 “공천권을 갖고 장난치지 못하도록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면서 공천 혁명을 공약했다. 김 대표 자신이 두 번이나 석연치 않은 이유로 공천을 받지 못한 게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공천 제도에 메스를 가하려는 김 대표와 이에 반발하는 세력 간에 충돌이 벌어질 수도 있다. 조기에 차기 대통령 후보로 부각된 것도 길게 보면 운신하는 데 부담이 될 수 있다. 친박 대 비박으로 갈려 치른 선거구도도 발목을 잡을 요인이다. 당내 엄연히 존재하는 친박계의 견제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김 대표는 ‘무대’란 별명으로 유명한데 이는 ‘무성대장’의 줄임말이다. YS로부터 정치를 배운 ‘상도동계’의 막내로 비주류, 비박계의 좌장으로도 통한다. 지난 15~19대까지 내리 국회에 입성한 5선의 김 대표는 현재 부산 영도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데 ‘무대(김무성 대장)’라는 별명으로 통할 만큼 강한 추진력과 카리스마를 갖춘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 대표는 본관이 김해로 1951년 9월20일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 화랑초등학교와 경남중학교, 서울 중동고등학교와 한양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전남방직과 신한제분을 운영하며 당대 거부 반열에 올랐던 부친 덕분에 그는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릴 때부터 항상 골목대장 노릇을 해 ‘무대’라는 별명도 그때 붙었다.

하지만 김 대표의 첫걸음은 기업이었다. 동해제강 상무, 삼동산업 대표이사를 역임하면서 성공한 ‘젊은 리더’로 이름을 알렸다. 그러다 정치 스승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결성하자 그는 사업체와 주식 등을 정리하고 창립 멤버로 참여하며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2005년 민주화추진협의회 회장에 선임됐고, 후일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으로 추대됐다.

YS정부 청와대와 정부에서 요직을 거친 그는 1996년 15대 총선(부산 남구을)을 통해 처음 여의도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재선, 3선에 성공하며 성공 가도를 달리는 듯했다. 그러나 2005년 박 대통령과의 본격적 인연이 시작되면서부터 불길한 예감이 감돌았다. 당시 당 대표이던 박 대통령이 그를 사무총장으로 임명하면서다. 2007년엔 대선캠프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아 사실상 경선전을 진두지휘할 정도로 박 대통령의 신뢰를 받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스타일은 판이했다. YS에게 정치를 배운 김 의원은 선이 굵은 타입이었지만 박 대통령은 꼼꼼한 사람을 선호했다. 돈·사람 쓰는 문제에서 둘은 부딪쳤다.

경선 이후엔 좀 더 본격화됐다. 김 의원은 “정치의 기본은 대화와 타협”이라고 말해 왔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화해하자는 입장이었지만 박 대통령은 달랐다.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친박계 좌장으로 낙인찍혀 당시 친이계가 친박계를 배제한 소위 ‘공천 학살’로 공천을 받지 못했다. 공천에서 탈락한 뒤 “살아서 돌아오라”는 박 대통령의 바람대로 국회의원이 됐지만 둘의 관계는 이미 벌어져 있었다. 그는 이에 반발,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돌풍을 일으키며 당선됐다.

이후 2010년, 그는 세종시 수정안을 내며 박근혜 대통령과 다른 길을 걸었고 2년 뒤 제19대 총선에서도 공천 탈락의 수모를 당했다. 당시 그는 고심 끝에 ‘백의종군’을 선택했고 우파 분열을 막아냈다. 김 대표는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캠프의 총괄선대본부장으로 귀환했다. 당시 캠프 전체에 금주령을 내리고 야전침대에서 생활하며 분투해 박근혜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승리가 확정된 날 그는 “그간 감사했다”는 편지 한 장만을 남기고 여의도를 떠났다. 두 번의 공천 탈락은 그에겐 시련이었지만 그를 거듭나게 한 계기였다. ‘선공후사’의 이미지도 각인시켰다. ‘무관’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지난해 4월 재보선 때 그는 부산 영도에서 승리하면서 컴백해 1년여 만에 당권까지 차지했다.

김 대표 특유의 배짱과 추진력은 몇몇 일화에서 드러난다. 18대 국회에서 김 의원이 원내대표를 하던 시절, 한·EU FTA가 지지부진할 때 그는 여당, 야당, 정부 등 모든 관계자들을 원내대표 방으로 불러 모아 ‘문 잠가라. 합의 못하면 아무도 못 나간다’는 엄포로 통과시켰다. 지난해 말 철도노조 파업이 계속됐을 때도 야당 박기춘 의원과 함께 실마리를 풀어냄으로써 “정치가 모처럼 제 몫을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 6월 초 ‘교수 임용비리’ 의혹과 ‘서해 북방한계선(NLL) 대화록 유출’ 발언과 관련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당시 KBS ‘추적 60분’은 지난해 국회 교육문화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수원대 이모 총장을 증인명단에 넣으려 했으나 김 의원의 방해로 좌절됐다고 했다. 제작진은 이 과정에서 김 의원의 로비가 있었고, 그 로비는 김 의원의 둘째 딸이 수원대 최연소 전임교수로 임용된 것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 의원 측은 “둘째 딸은 현재 재직 중인 학부(교수) 공모에 정상적으로 응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교수에 임명됐다. 보도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부인한 바 있다.

무관의 시간

둘째 딸 ‘교수 임용비리’의혹으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면 대화록 유출’ 무혐의 처분은 김 대표의 행보에 힘을 실어줬다. 그는 2012년 12월14일 부산 서면 유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회담에서 ‘NLL 문제는 국제법적인 근거도 없고 논리적 근거도 분명치 않다’고 했다”는 발언을 해서 당시 민주통합당에 의해 검찰에 고발당했다.

ksh1983@hyundaenews.com

<무단전재 및 배포금지. 본 기사의 저작권은 <주간현대>에 있습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포토뉴스
3월 둘째주 주간현대 1244호 헤드라인 뉴스
1/3
광고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기사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