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 사회고발 장편소설…형제복지원과 비밀결사<4>

인간의 저런 야수성은 대체 어디로부터 나오는 걸까?

글/김영권(소설가) | 기사입력 2021/06/11 [14:26]

김영권 사회고발 장편소설…형제복지원과 비밀결사<4>

인간의 저런 야수성은 대체 어디로부터 나오는 걸까?

글/김영권(소설가) | 입력 : 2021/06/11 [14:26]

폭력에 맛 들인 그놈들은 트집을 잡아서라도 원생들에게 기합과 폭력 가하고…
여긴 수용소래도 일반적인 수용소가 아닌 듯해. 말 그대로 인간도살장이라 할까?


“비밀스런 결사단 만들어 완장 차고 껄떡거리는 조장 놈들 혼내 주는 꿈을 꾸지”
“단풍 비밀결사단이라, 이름 그럴듯하군” “우리 붉은 심장의 꿈이라고 생각하자”

 

▲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가 5월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피해자 국가배상 청구소송 제기 기자회견에서 오열하고 있다.  

 

슬픈 권투


저녁 6시경에 작업이 끝나면 원생들은 다시 소대별로 모여 인원점검을 마친 후 조장의 인솔 아래 줄지어 내무반으로 돌아갔다.


피처럼 붉게 물들었던 노을마저 어느덧 지고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가을바람이 스산한 느낌을 주었다.


중간에 식당엘 들르는데 빈 공간이 있으면 행운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군가를 부르며 운동장을 천천히 돌았다. 지쳐빠진 몸으로 구보하긴 물론 힘들었으나, 추위에 떨며 한 곳에 부동자세로 서서 기다리는 것 또한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저녁밥은 아침과 같이 꽁보리밥이었다. 썩은 오징어젓과 허연 배추김치 그리고 시래깃국이 전부였다. 그걸 5분 내에 먹고 다시 선착순 대열로 달려가야 하는 것이었다.


소대 내무반으로 들어가면 저녁 점호가 실시된다. 형제원에서는 모든 게 군대식이었다. 원장이 하사관 출신이라서 그런지 몰랐다. 오히려 군대보다 더 심했으면 심했지 결코 덜하진 않았다. 일단 4열종대로 줄지어 정렬하면 100여 명에 가까운 원생들은 석상인 양 부동자세로 서서 찍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소대장과 4명의 조장들이 노려보다가 여차하면 몽둥이로 무자비하게 두드려 패기 때문이었다.

 

하루나마 무사히 넘어가는 날이 없었다. 이미 폭력에 맛을 들인 그놈들은 일부러 트집을 잡아서라도 원생들에게 기합과 폭력을 가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었다.


그런 후에야 겨우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하지만 자유시간이라고 제 맘대로 놀아도 좋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각 조별로 모여 놀이를 하거나 때론 각조 대표를 뽑아서 시합을 벌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듣거나 책을 읽는다는 건 어려운 노릇이었다.


신입생이 들어오면 내무반엔 어떤 활기가 감돌았다. 그날의 신입은 세 명이었다.


소대장이 호명을 하여 앞으로 불러냈다.


“오동추!”


“옛!”


“이 새끼, 이거 가명 아냐?”


“아닙니다, 본명입니다!”


“박독구!”


“예!”


“독구라니, 이건 사람이 아니라 개 같은걸. 야 독구! 차라리 멍멍 짖어봐라.”


“예! 멍멍~ 멍멍!”


잠시 웃음소리가 나다가 사라졌다.


“윤청운!”


“네.”


“저 새낀 저녁밥도 안 처먹었나? 목소리가 왜 그래!”


“네! 시정하겠습니다!”


“새끼야, 귀청 떨어지것다. 빨랑 기어나와!”


청운은 일부러 좀 심하게 절뚝거리며 천천히 나갔다. 소대장보다 조장이 더 화가 나서 째려보았으나 명령이 내리지 않아서인지 몽둥이질을 하진 않았다. 세 신입이 앞에 차렷 자세로 서자 소대장은 지휘봉을 들어 오동추의 목 아래를 쿡 찔렀다.


“이게 뭐냐, 응? 너 윗도리 한번 벗어봐”


“옛!”


오동추는 대답과 함께 단추를 풀고 옷을 벗었다. 가슴팍에 울긋불긋한 색깔로 봉황새 한 마리가 수놓여 있었다. 멋지면서 섬뜩한 문신이었다. 아까 앞섶 단추 하나가 풀려 봉황 머리가 슬쩍 드러났던 것이다.


“너 사회에서 좀 놀았노라고 과시하려 일부러 단추 풀었지?”


“아닙니다만…!”


“뭐? 만…? 그래서?”


“아니, 어차피 나중에 알려질 거라면 차라리 지금….”


“흠, 이제야 본심을 드러내시는군. 내가 겁먹을 줄 알았냐?”


“그건 아닙니다!”


“그래? 그럼 여기 들어온 소감이나 한마디 해봐.”


“어차피 이곳도 사람 사는 세상인데 어련하겠습니까. 사회에서처럼 잘 해보겠습니다!”


“호오, 그러시다면 이곳 맛을 좀 보여드려야겠군. 얘들아, 시작해!”


명령과 동시에 조장들이 달려들어 오동추를 쓰러뜨리곤 담요를 덮어씌웠다. 그리고 마구 매타작을 시작했다. 그걸 신호로 앞쪽에 서 있던 원생들까지 가세하여 담요 속의 인간을 주먹으로 치고 발로 짓밟았다. 넓은 실내에 비명소리만 메아리치다가 차츰 작아져 아예 사라져 버렸다. 죽어 버린 것이 아닐까?


청운은 눈살을 살짝 찌푸린 채 그 아비규환의 현장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인간의 저런 야수성은 대체 어디로부터 나오는 걸까? 타고난 본성인지 형제원에서 받은 교육훈련 때문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 10소대의 원생들은 대부분 18세 이하의 청소년이었으나 스무 살이 넘어 보이는 젊은 청년들도 섞여 있었다. 원칙대로라면 그들은 성인소대로 가야 할 텐데 그곳엔 수용인원이 넘치다 보니 임시로 보낸 것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동추는 겨우 깨어났다. 하지만 그새 혼이 빠져 나가 버린 듯 꺼벙해져 마치 백치처럼 보였다.


“모다구리는 더 볼 흥미 없으니 좀 더 재미있는 걸 해볼까.”


소대장이 능글능글 웃으며 말했다. 모다구리란 바로 오동추가 당한 이불말이를 뜻했다.


“야, 너희들 둘이 오늘 동기생이니 친선 권투시합을 한판 놀아봐.”


청운과 박독구를 향해 말했다. 두 사람 앞에 작업용 면장갑이 한 켤레 던져졌다.


“두 쪽 다 끼면 재미없으니 한 쪽씩만 끼고 한다. 실시!”


둘은 장갑을 하나씩 주워 손에 끼었다.


“한쪽 주먹만 써야 합니까?”


박독구가 물었다.


“얌마, 병신 권투하냐. 당연히 두 주먹 다 사용해야지. 그냥 동기간의 친선을 도모키 위해 한 짝씩 나눠 끼는 것뿐이야. 주의 사항은 한 가지! 장난치듯 슬슬 했다가는 모다구리 당할 줄 알어라.”


조장이 말했다.


“케이오로 이긴 선수에겐 상으로 건빵 한 봉지 준다. 자, 준비해라! 공은 입으로 친다. 제 1회전, 땡!”


독구가 먼저 두 주먹을 얼굴 앞으로 올리고 상체를 슬쩍 숙인 채 좌우로 흔들면서 복싱 자세를 취했다. 녀석은 실제로 권투를 좀 해봤는지 발놀림까지 제법 능숙해 보였다. 반면 청운은 팔을 내린 채 느릿느릿 움직였다. 독구가 먼저 왼쪽 주먹을 날렸다. 청운이 살짝 피하자 독구는 한 발짝 재빨리 달려들며 복부에 원투 펀치를 먹였다. 청운은 허리를 구부리고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사람들이 둘러서서 막고 손으로 밀었기 때문에 마치 링의 반탄력인 양 튕겨났다. 그 기회를 잡아 독구는 청운의 얼굴에 일격을 가했다. 코피가 흐르자 구경꾼들은 흥분해 환성을 질렀다.


청운은 외로움을 느꼈다. 어릴 때부터 얼마나 많이 맞고 살아왔던가? 그래서 가능하면 남에게 주먹질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었다. 주먹은 고통이기보다 비참스런 고독감을 가슴 깊이 던져주었다.

 

하지만 피를 보게 되면 또 다른 감정이 느껴졌다. 그건 비극적인 일종의 쾌감이었다. 비극의 무대에 서 있는 배우랄까. 이겨내지 않으면 쓰러져 죽고 만다는 절실한 감각. 그렇게 되면 폭력은 공포심보다 오히려 투지를 불러 일으켰다. 자, 쳐라! 칠 수 있는껏 쳐 보아라! 그렇게 되면 상대방의 주먹은 타격을 하면서도 위력을 별로 발휘하지 못했다. 적어도 체격이 비슷한 상대라면 말이다.


독구는 복싱 도장에서 배운 듯한 기술을 구사해 발빠르게 움직이며 연속타를 날렸다. 청운은 두 주먹으로 얼굴만을 막은 채 싸움소 마냥 한 발짝 두 발짝 나아갔다. 독구는 상대의 복부를 집중가격했으나 자신의 주먹이 튕겨 나온다는 사실을 느껴야만 했다. 바람이 탄탄히 든 타이어 같았다.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어,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때리다 때리다 못해 제풀에 지친 독구는 청운이 가슴팍을 한 대 치자 비틀거리더니 쿵 쓰러져 조장이 열을 셀 때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싱거운 케이오 승이었다. 환호성은 아니었으되 감탄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심판이 손을 들어주자 청운은 피를 닦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얼마 후 주변이 정리되자 취침 시간임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원생들은 각 조별로 모여 맨바닥에다 담요를 깔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널따란 소대 내무반은 형식적인 칸막이만 대충 설치돼 있을 뿐 실상은 하나의 방이었다. 100여 명의 원생이 그곳에 빈틈없이 지그재그로 누워 새우잠을 자야 했다. 조장들은 그 인간 바다 위로 걸어다니며 소리쳤다.


“만일 내 발이 빠지면 떡을 칠 테니 바짝바짝 붙어!”


여기저기 억눌린 신음소리가 흘러나와 그로테스크한 밤을 만들었다.


‘내가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어. 여긴 수용소래도 일반적인 수용소가 아닌 듯해. 말 그대로 인간도살장이랄까? 선감학원만 해도 비록 머나먼 외딴섬에 있었지만 간혹 마을로 나가 수영을 하고 고구마를 캐서 구워 먹을 수도 있었지.

 

그런데 여긴 부산 시내에 자리잡은 복지원이라면서 한층 더 외떨어진 절해고도인 듯한 느낌이 들어. 높디높은 회색 시멘트 벽 때문만은 아냐.

 

여기선 인간이 인간 아닌 인형이나 동물 같은 느낌이 들어. 사람의 감정을 지닐 만한 조금의 여유도 없으니까. 약간의 실수도 결코 눈감아 주는 일 없이 곧장 몽둥이로 두드려 패 병신을 만들거나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파묻어 버린다니까.’


청운은 찢어진 입속에서 흐르는 피를 빨아 삼키며 생각에 잠겼다.


‘무슨 방도를 찾아야만 해. 잠시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고 창의적으로 삶의 출구를 모색해 봐야 한다구. 이곳은 복지원이 아니라 죽음의 집이라고 할 수 있어. 자, 무슨 방도가 있을까?’


궁리하는 사이 그는 어느덧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가 특수감금 등 혐의로 기소된 형제복지원장 고 박모씨에 대한 비상상고를 기각한 3월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법정 앞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자 및 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단풍 결사단


요란스런 기상 나팔소리에 모두들 잠이 깨었다. 다시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어떤 잠보라도 더 꾸물거리며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조장들이 밟고 다니며 마구 두드려 패기 때문이었다. 잠결에 맞아서 저승으로 가길 원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꽁보리밥과 시래깃국으로 허기를 채운 원생들은 다시 대열을 지어 강제노동 공장으로 들어갔다.


청운은 신입이었으나 권투 시합 때 본의 아니게 보이고 만 근성 때문인지 함부로 괴롭히려 드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경우일수록 조심해야 한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원생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조장 같은 완장 찬 놈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을 터였다. 일단 한번 손을 봐놔야만 잘 복종하고 허튼 수작 따윌 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말을 잘 들으면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여 원생들을 감시하는 파수견처럼 부려먹는 것이다. 청운은 겉으로 사근사근 굴며 굽신거렸다.


‘한신이라는 영웅도 미래를 도모키 위하여 깡패 건달 놈들의 사타구니 밑을 기어갔다지 않던가.’


속으론 그렇게 생각하며 본심을 숨겼다.


점심 식사 후 휴식시간이었다. 청운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나무 벤치에 앉아 족구하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원생들은 그 순간만큼은 삶의 고통을 잊은 듯 쾌활한 모습이었다. 높직한 시멘트 벽마저 그닥 위압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벽은 엄연히 거기 서서 그들을 감금하고 있었으며 30분의 시간이 끝나는 순간 더 높아 보일 게 분명했다.


“뭘 그리 깊이 생각하고 있어?”


짱구가 옆에 와 앉으며 말했다.


“인간이 살아야 할 이유란 뭘까?”


청운은 짐짓 우울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야, 안 어울리게 너무 철학적이다야. 그냥 물처럼 살아가 보는 거지 뭐. 별게 있겠어.”


“물처럼?”


“가다가 둥근 그릇을 만나면 둥글게, 네모 그릇 속에 들면 네모지게, 세모라면 세모답게, 그런 거지 뭐.”


“너무 수동적이지 않냐?”


“물더러 수동적이라면 물이 섭섭해하겠지. 내 생각엔 물은 아주 능동적인 것 같아.”


“가만히 갇혀 있는데도?”


“그래, 설령 세모 그릇 속에 담겨 찌그러져 있더라도 물 자체는 수동적이기보다 언제나 능동적인 얼굴인 것 같아. 이상스럽게도 말야. 물은 갇힌 듯 가만히 있지만 결코 체념하거나 절망해 버린 것 같진 않아. 늘 흘러가는 자신의 본성을 유념하고 있다가, 어떤 기회만 오면 철통이든 시멘트 벽이든 깨부숴 버리고 다시 제 길로 흘러가잖아.”


“여기서도 그럴까?”


“글쎄, 이곳 형제복지원에서라면… 잘 모르겠군.”


둘은 한동안 말없이 흐린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윽고 짱구가 말했다.


“야,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이라도 갖자구. 난 그런 허망한 생각이라도 하지 않는 한 숨막혀서 못 살 것 같더라구.”


“그래야겠지. 난 밤에 별스런 꿈을 꾸기도 해.”


“어떤 꿈?”


“영화 같은 얘기지 뭐.”


“뭔데 그래?”


“얘기해도 되려나 몰라. 좀 비밀스런 공상인데….”


“짜식, 내 비밀 지킬 테니 걱정 말고 꺼내봐.”


“비밀스런 공작대 혹은 결사단을 만들어, 나쁜 원장 이하 완장 차고 껄떡거리는 조장 놈들을 혼내 주는 꿈.”


“하하, 정말 꿈도 좋군. 흐흠, 근데 과연 여기서 그런 일이 가능할까? 영화에서라면 모르지만 말야.”


“그래서 애시당초에 일장춘몽 같은 꿈이라고 했잖아. 괜한 소릴 했군.”


그때 조장이 호루라기를 불어 집합하라고 재촉했다. 인원 점검을 마치고 각자 공장으로 들어갈 때 짱구가 히죽 웃으며 속닥거렸다.


“뜻 있는 곳에 길이 있다잖아. 나도 관심이 생겨. 되든 안 되든 일단 계획이라도 한번 세워 보자구.”


청운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어 보이곤 급히 걸어갔다.

 

그날 밤 담요 속에 누운 청운은 공상의 나래를 펼치되 좀더 구체적으로 현실을 생각하면서 나름으로 계획을 짜 나갔다. 형제복지원 비밀결사단. 그렇게 이름을 붙이고 나자 목표가 좀더 분명해지면서 어떤 힘이 마음속에 생겨나는 듯싶었다. 단원으로 누구를 포섭해 어떻게 끌어들일지, 단훈은 어떻게 정할지, 실제로 어떤 활동을 어떤 방법으로 수행할지 등등 온갖 상념이 머릿속에 떠올라 빙빙 맴돌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사실을 제대로 파악해 바깥 세상에 알리는 게 아닐까 싶었다. 물론 더 화끈한 방법은 원생들의 힘을 모아 데모를 해서 원장과 그의 부하 놈들을 싸그리 단죄한 후 몰아내는 것이겠지만, 현재의 삼엄한 경계 상태로 봐서 불가능에 가까울 성싶었다. 짱구 녀석이 눈치 빠르고 머리가 꽤 잘 돌아가는 듯하니 내일 의논해 보리라 생각하며 청운은 시나브로 잠들었다.


다음날 만났을 때 짱구는 빨간 단풍잎 하나를 들고 와서 청운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야?”


“결사단을 만들려면 상징 하나쯤 있어야지.”


짱구는 히죽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 무슨 뜻이지?”


청운은 정색을 하고 물었다.


“별 뜻은 없어. 그냥 날아와서 어깨 위에 앉기에 문득 생각이 들었지 뭐.”


“그럼… 우리 붉은 심장의 꿈이라고 생각하자구.”


“후훗, 꿈보다 해몽이 좋군.”


“모든 목표는 현실보다 더 나아야 하니까.”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


“지금으로선 암담한 상태야. 하지만 처음부터 쉬운 일이 어디 있겠니. 너무 욕심 부리지 말고 반 걸음, 한 걸음 나아가 보자구. 체념한 채 가만히 있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그 말은 청운이 자기 자신에게 해주는 조언이기도 했다.


“까딱하다간 죽을 수도 있어. 실제로 한 달 동안 여러 명이 맞아 죽는 걸 두 눈으로 봤다구.”


“최대한 조심해야겠지. 우선 오늘은 결사단 이름을 짓는 것으로 만족하지.”


“뭐라고 할래?”


“단풍. 어때?”


“단풍 비밀결사단이라… 그럴듯하군, 후훗.”


둘은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 좀 나지막한 목소리로, 단원 모집을 비롯한 제반 사항에 대해 서로 의견을 주고 받았다. 그때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일반 사회와 다른 강제수용소인지라 결사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청운은 서두르지 않고, 우선 복지원의 실상을 조금이라도 더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복마전 같은 곳이었기에 그것마저 결코 녹록치 않은 노릇이었다. 그러나 청운은 조금씩 조금씩 끈질기게 정보를 탐색해 나갔다. 거대한 바윗돌도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낙숫물에 구멍이 뚫리지 않던가.


오래 전 제주도를 방랑할 때 어느 동굴 속에 들어가, 천장에서 똑똑 천천히 떨어져 내리는 석회수가 수천 년에 걸쳐 이루어 놓은 기기묘묘한 광경을 보곤 내심 감탄하지 않았던가. 또한 북파공작원 훈련을 받을 당시엔 산속에 아지트를 파고 들어가 홀로 기나긴 시간을 견디며 인내력을 기르지 않았던가.



작가 김영권은 누구?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소>가 당선되고 <작가와 비평>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선감도: 사라진 선감학원의 비극> <죄의 빙점 형제복지원> <몽키하우스> <어린 북파공작원>과 청소년 소설 <보리울의 달>, <수상한 선감학원과 삐에로의 눈물> <동상의 꽃꿈> 등이 있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부조리를 풍자한 장편 에세이 소설 <잘난 니 똥>이 문예지에 연재 중이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포토뉴스
3월 둘째주 주간현대 1244호 헤드라인 뉴스
1/3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