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하] 보다

소설가 눈에 비친 시대…“무뎌진 감각을 깨운다”

박소영 기자 | 기사입력 2014/09/29 [11:02]

[김영하] 보다

소설가 눈에 비친 시대…“무뎌진 감각을 깨운다”

박소영 기자 | 입력 : 2014/09/29 [11:02]
발표하는 작품들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선보이는 김영하의 신작 산문집 <보다>. 오랜 소설쓰기와 지속적인 해외 체류를 통해 단련된 관찰력으로 이번 산문집에서 그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예리하고도 유머러스한 통찰을 보여준다. 예측 가능한 일상생활부터 심화되는 자본주의 시대의 시간과 책의 미래까지 소설가의 눈에 포착된 한 시대의 풍경이 펼쳐지며, 모든 것이 빠르게 사라져가는 시대, 많은 것을 보고 있다고 믿지만 실은 제대로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채 흘려보내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일깨운다!<편집자주>


독보적인 스타일, 작가 김영하 5년 만의 신작 산문집

인간 내면부터 사회까지…‘예리하고 유머러스한 통찰’

 
[주간현대=박소영 기자] 한동안 나는 망명정부의 라디오 채널 같은 존재로 살았다. 소설가가 원래 그런 직업이라고 믿었다. 국경 밖에서 가끔 전파를 송출해 나의 메시지를 전하면 그것으로 내 할 일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2012년 가을에 이르러 내 생각은 미묘하게 변했다. 제대로 메시지를 송출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사는 사회 안으로 탐침을 깊숙이 찔러 넣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보는 것, 듣는 것, 경험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작가의 말 중.







우리를 다르게 ‘보다’

1부에서 우리는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키워드로 묶일 수 있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정확하게 관통해내는 글들을 만나게 된다. 김영하의 시선은 어느덧 불평등한 대기에 너무 익숙해져서 둔화되어버린 우리의 감각을 날카롭게 뒤흔든다.


그는 경제적으로 빈부격차가 심한 사회가 되었다는 일반론적인 인식을 뛰어넘어,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구석구석까지 사회적 불평등이 침투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특히 이 산문집의 맨 앞에 놓여 있는 <시간 도둑>에서 그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절대적 조건으로서의 ‘시간’ 역시 사회적 불평등 현상으로부터 예외가 아님을 간파해낸다.


그는 우리가 익숙하게 만나는 풍경들, 지하철 안에서 무가지 대신 스마트폰을 손에 쥔 사람들의 모습으로부터 계급·계층에 따라 불균등하게 형성되어가는 시간을 발견해내고 이러한 시대에 어떻게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지켜낼 것인가 묻는다.

2부와 3부에서는 소설과 영화를 지렛대 삼아 복잡한 인간의 내면과 불투명한 삶을 비추는 그의 시선을 만날 수 있다.


영화 <그래비티>와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겹쳐놓으며 삶과 죽음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보여주는 <어차피 죽을 인생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이유>,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와 고전 <오디세이아>를 오가며 작가의 존재 의미를 역설하는 <진심은 진심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영화 <관상>과 작가의 과거(미래가 궁금했던 젊은 시절, 도령을 찾아가 나누었던 대화)를 나란히 놓으며 예언이 일종의 자기실현적 암시일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앞에서 날아오는 돌> 등 텍스트와 현실을 자유롭게 오가는 그의 시선은 경쾌하면서도 그 무게를 잃지 않는다.

4부에서는 좀더 미세하게 우리가 사는 사회를 들여다본다. 1부에서의 시선이 구조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에서 비롯되었다면 4부에서의 시선은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차원에서 작동한다고 할 수 있다. 유니클로, 자라, H&M 등이 유행하는 패스트패션 시대, 그는 옷 대신 그 자리에 책을 놓고 책이라는 상품의 미래를 묻는다(<패스트패션 시대의 책>).


누구도 값을 내리라고 요구하지 않는 명품 시계와 비교하며, 그는 책이 필수품이기에 가격 항의에 시달린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그는 책이 한정된 독자에게 비싼 값으로 팔리는 시대가 도래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루하고 쾌적한 천국”이 아니라 “흥미로운 지옥”을 선택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렇듯 작가는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사회 현상들을 때론 무릎을 치게 하는 촌철살인으로, 때론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유쾌하게 풀어낸다.

김영하는 뉴욕에서 돌아온 후, 2013년 한 해 동안 <씨네21>과 <그라치아>의 연재를 통해 다양한 산문들을 정기적으로 발표해왔다. 수많은 볼 것들이 쇄도하는 시대에, 본 것을 글로 남기지 않으면 결국 휘발되어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의식하고 선택한 집필방식이었다.


그는 이 글쓰기 행위를 통해 결국 본다는 것은 사유하는 것임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그가 풀어쓴 이야기

출간을 앞두고 이루어진 한 인터뷰에서 김영하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제가 늘 고민하는 것 중 하나는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고민을 하며 어떤 일들을 실제로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에요. 실제로 어떤 일들이 사회에서 또는 사람들 마음속에서 벌어지고 있는가에 대해 늘 관심을 갖고 있고, 알아보려고 해요.”(연합뉴스, 2014.9.4.)


그의 이름 앞에 늘 따라다니는 ‘당대 가장 젊은 작가’라는 수식어가 세월과 무관하게 여전히 유효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의 눈에 비친 한 시대의 풍경이 산문집 <보다>에 담겨 있다.
 
작가소개: 김영하

강원도 화천군 출신의 대한민국의 소설가 김영하. 유년 시절 글쓰기로 상을 받아 본적이 한번도 없어서 작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대학원 재학중 1990년대 초 하이텔에 올린 짤막한 콩트들이 ‘뜨거운 반응’을 얻는 것을 보고 자신의 작가적 재능을 깨달았다고 한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포토뉴스
4월 둘째주 주간현대 1246호 헤드라인 뉴스
1/3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기사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