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원, ‘매일이 목숨거는 삶’이 된 이유

1년 새 과로사만 6명…“인력충원 왜 안 해주죠?”

김범준 기자 | 기사입력 2017/02/14 [15:40]

집배원, ‘매일이 목숨거는 삶’이 된 이유

1년 새 과로사만 6명…“인력충원 왜 안 해주죠?”

김범준 기자 | 입력 : 2017/02/14 [15:40]
▲ 집배노조는 최근 돌연사한 집배원이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려 과로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사진=Pixabay>     © 주간현대

 

공무원과 공기업 근로자는 경기가 최악인 현 상황에서 평생 짤리지 않는 신의 직장으로 추앙받고 있는 직종이다. 국가 기관이라는 이유로 고용안정성과 함께 무조건 나라의 ‘노동법’을 최우선으로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당 수 공무원들은 강도 높은 근로 시간에 고충을 드러내고 있다. 그 중 대표격으로는 집배원들이 있다. 집배원들은 하루 12시간이 넘는 근무 강도에 시달리면서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과로사 추정 돌연사 6명, 근무 중 사고사 2명으로서 사실상 ‘하루하루 목숨을 거는’ 삶을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김범준 기자>

 


 

 

이어지는 돌연사…외부근무 특성상 사고사도 증가 중
심하게 ‘과도한 업무량’…월평균 77.2시간의 초과노동
장시간근로 오해받게 하지 말라는 우정사업본부 공문
인력충원 없는 근무시간 줄이기 압박…비정규직 문제

 

[주간현대=김범준 기자] 집배원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2월16일 한 집배원이 급성 뇌출혈로 숨진 뒤 벌써 8번째다. 최근 1년간 근무 중 돌연사한 집배원만 6명이고, 교통사고 사망자까지 더하면 8명이다. 이같은 원인이 과도한 노동시간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인력충원이 시급하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이어지는 과로사


우정노동자회에 따르면 지난 2월6일 오전 9시 충남 아산 영인우체국 소속 조모(44) 집배원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국립과학수사대의 부검 결과 A 씨의 사망 원인에 대해 동맥경화에 따른 심정지라는 1차 구두소견을 내놨다.


조 씨가 출근하지 않은 것을 이상하긴 여긴 동료가 그의 집을 찾았을 때 이미 숨져있었다. 조씨는 일요일인 전날 우편물 분류작업을 위해 출근한 뒤 오후 밤 11시쯤 퇴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집배노조는 평소 지병 없이 건강했던 조씨가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리다 돌연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족은 경찰에 부검을 의뢰했다.


집배노조에 따르면 조씨 업무량은 지난해 4월 같은 팀 동료가 일을 그만둔 데다 이번 설연휴 동안 또다른 동료가 다리를 다쳐 출근하지 못하게 되면서 부쩍 늘어났다.


집배노조 측은 “배송이 늦어져 고객들의 항의가 들어오면 인사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담당구역의 물량이 많다보니 주말에도 출근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씨는 지난해 결혼했지만 출·퇴근 길이 멀어 우체국 인근 원룸에서 홀로 생활했다. 그는 집배원 커뮤니티 운영을 맡는 등 집배원의 열악한 업무환경을 개선해달라고 요구하는 데 앞장섰다. 조 씨는 우정사업본부를 상대로 미지급된 시간외수당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에 참여하기도 했다.


집배노조는 조씨가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려 과로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같은 팀 동료가 일을 그만둔 데다 이번 설 연휴 동안 또 다른 동료가 다리를 다쳐 출근을 하지 못하자 조씨가 떠안은 업무량이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결혼한 지 1년도 채 안된 새신랑이었으나 출·퇴근길이 멀어 우체국 인근 원룸에서 홀로 생활한 사실이 알려져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집배노조는 “믿고 싶지 않은 일이 또 일어났다”며 “우정사업본부는 이번에도 집배원들 하는 일 없이 일찍 출근하지 말라고 할 건가. 우정사업본부장은 근조화환을 보낼 자격도 없다”고 밝혔다.


집배원의 안타까운 죽음과 과중한 업무에 대한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6년 순직한 집배원 6명 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업무 중 갑자기 쓰러져 사망했다.


지난해 12월 31일 토요일에는 경기 가평우체국 집배원 김모(49)씨가 가평군의 한 다세대주택 3층 계단에서 쓰러진 채 주민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또한 올 설을 앞두고도 교통사고 사망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1월22일 전국집배노조는 “이륜차로 우편물 배달 업무를 하던 우체국 집배인 김모(34)씨가 교통사고로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집배노조에 따르면  강원도 화천군에서 우편물 배달을 김씨는 지난 18일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이어 좌회전을 하던 중 뒤따르던 1톤 차량이 중앙선을 침범·추월하여 이륜차를 충돌한 사고를 당했다.


김씨는 사고 직후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결국 과다 출혈로 사고 이틀 뒤인 지난 2월20일 사망했다. 2015년 6월부터 집배원으로 일해온 김씨는 아내와 3살배기 아이를 둔 아빠였다.


설 명절을 앞두고 동료를 떠나보낸 동료집배원들은 슬픔에 잠겼다. 집배노조는 “집배원들에게 ‘죽음의 특별소통기’라 불리는 '설날 특별 소통기'에 벌어진 사고이기에 ‘오늘도 살아남았다’는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노조는 “집배원들은 비수기에 비해 명절을 앞둔 특별 소통기에는 일주일 평균 노동시간이 27.3시간씩 증가하는 불규칙노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소견을 두고 근무강도와 관련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그간 숨진 집배원들 또한 근무 중 돌연사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고강도 근무가 노동자의 사인과 결코 동떨어지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처럼 집배원들이 살인적인 고강도 노동환경에 내몰리고 있어 가중된 근무환경을 개선할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해 7월20일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운동연구소가 집배원 18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집배원 노동자의 노동 실태 및 무료노동시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집배원 노동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888시간으로 월평균 초과노동 시간은 77.2시간·미지급 노동시간은 19.6시간으로 분석됐다. 이는 일반 노동자(2015년 경제활동 인구조사 기준)보다 1년에 621시간(1주에 12시간) 더 길게 일하는 것이다.


보고서는 9개 지방청에 근무하는 집배원 중 실제 출·퇴근 시간과 초과노동인정시간이 기록된 우정사업본부 5053건의 초과근무세부내역을 토대로 작성됐다. 이는 우정사업본부가 지난 2015년 자체 조사한 집배원의 연평균노동시간 (2488시간)·월 평균노동시간(44시간)과 큰 차이를 보여 보다 체계적인 전수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우체국 로고     © 주간현대

 

과도한 업무량


많은 집배원들이 강도 높은 업무와 열악한 업무 환경으로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집배노조에 따르면 집배원의 75.6%가 근골격계 질환이 있고 50%가 뇌심혈계 질환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과도한 업무량에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없어 진통제로 하루하루 버티는 경우가 대다수다.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는 한 집배원도 “끼니를 거르거나 10분 내외로 허겁지겁 먹는 경우가 많은데 병원 갈 시간은 있겠느냐”며 “월차를 쓰면 다른 동료가 내 업무를 떠맡아야하기 때문에 쉴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니 증상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특히 심혈계질환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집배원들은 반복되는 사망사고를 막기 위해서 인력 충원만이 해답이라고 호소했다. 턱없이 부족한 인력 탓에 매달 20시간가량 무료노동으로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정사업본부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방관하고 있다고 노조는 지적했다.


집배노조 관계자는 “본부는 집배원들의 죽음을 단순히 질병사로 치부해 사건을 은폐하고 축소하려고 한다. ‘과도하게 일찍 출근하지 말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지침만 내리는 등 사태를 방관하고 있어 집배원들을 더욱 골병들게 하고 있다”면서 “장시간 노동문제를 해결하려면 최소한 23%의 인력 증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간외근무 수당도 예산절감이나 예산부족 이유로 실제 근무시간보다 더 적게 주고 있다. 쏟아지는 물량으로 인해 배달이 밀리면 손해는 곧 집배원 책임이기에 초과근무는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오히려 본부는 집배원의 매년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면서 이를 인력감축의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신도시 등의 대도시에서 근무하는 집배원들의 업무량은 살인적이다. 최근에 사망한 조 씨가 근무했던 아산에도 1만 여 세대 입주가 예정된 신도시였다. 세대가 급증하면서 물량폭주가 충분히 예상된 상황이었으나 인력충원은 없었고 결국 사망사고까지 발생했다.


경기도 인근 한 신도시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집배원은 “자고 일어나면 아파트가 새로 들어서는데 인력은 전혀 보충되지 않고 있다. 늘어나는 세대만큼 그 구역을 맡는 집배원의 업무량은 늘어나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은 물론 주말까지 반납해야 한다”면서 “제시간에 배달이 되지 않았다고 민원이 들어오게 되면 관리자로부터 징계를 받거나 인사고과에 반영되니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관리자들이 현장에서 일한 경험이 없다보니 현장 상황을 전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개선사항을 요구해도 현장의 목소리가 잘 반영되지 않으니 지금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됐다”고 비판했다.


이에 집배노조 측은 “외국과 비교해도 국내 집배원 업무량이 굉장히 많다. 대표적으로 일본은 집배원 1명의 담당인구가 660명이지만 한국은 2800명에 달한다”며 “인력충원은 물론 토요근무 폐지와 집배원에게 우편사업의 적자를 일방적으로 떠넘기는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집배원의 근무시간에 대한 논란은 계속 커지고 있다. <사진=PIXABAY>     © 주간현대

 

장시간 근로 오해?


이처럼 집배원들이 과로사로 추정되는 사례가 갈수록 늘자 우정사업본부는 집배원의 과중된 업무를 근절하기 위한 공문을 지역별 우정청에 시달했다. 하지만 사실상 집배원들에게 현실을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는 ‘경고’와 다름없는 공문을 내려보낸 것으로 나타나 집배노조들에 공분만 샀다.


우정사업본부가 최근 각 지방우정청에 “장시간 근로로 오해받는 행위를 자제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배달 도중 쓰러져 사망하는 집배원이 급증하면서 장시간 노동에 비난 여론이 쏟아지자 우정본부가 대책을 마련하는 대신 노동자 단속에 나선 것이다.


지난 2월8일 인터넷 매체 <매일노동뉴스>는 우정본부의 ‘관행적 집배업무에 대한 개선 지시’ 공문을 입수했다. 공문은 과로로 인한 사망사고가 잇따르고 비난여론이 비등해지자 우정본부가 지방우정청에 내려보낸 일종의 행동 요령이다.


공문에는 “일찍 출근해 전일 도착한 우편물을 1차 배달하고 이후 당일 도착 우편물을 구분해 2차 배달하는 행위를 금지하라”며 “초과근무 명령시간보다 훨씬 일찍 출근해 장기 근로로 오해받는 행위를 자제하라”는 내용이 적시됐다.


집배노조는 “인력부족으로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일할 수밖에 없는 집배원들에게 장시간 근로로 오해받는 행위를 자제하라고 지시한 게 말이 되느냐”며 “악랄한 사기업보다 더 나쁜 공공기관”이라고 비판했다.


노조 관계자는 “공문 내용을 확인한 집배원들은 분노를 넘어 허탈해한다”며 “본부 우편집배과에서 집배원들이 현장에서 일하는 현장을 직접 눈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노조의 비판에 대해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물량에 따라 초과근무를 자유롭게 신청하도록 돼 있는데 초과근무도 신청하지 않고 일찍 출근하는 경우가 있다”며 “우편 물량이 많지 않은데 출퇴근 편의를 위해 일찍 출근하는 경우도 있어서 장시간 노동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해명했다.


결국 즉각적인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지만 우정본부 태도는 뜨뜻미지근하다. 올해 초 ‘워킹맘’ 과로사 이후 ‘토요근무 금지’ 같은 후속 대책을 내놓은 보건복지부와 대조적이다.


노조 관계자는 “긴급노사협의회에서 인력 충원을 요구했지만 협의가 잘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결렬될 경우 준법투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새벽 출근과 늦은 밤 퇴근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며 “본부의 탁상행정에 집배원들이 쓰러져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의 ‘인력충원’ 요구에 우정본부는 ‘근루시간’을 줄이겠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우정본부 관계자는 “지난해 1월 우편집배과에 집배 개선 담당팀을 신설했다”며 “당장 피부에 와 닿을 만큼은 아니지만 집배원 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본부는 집배원 장시간 노동 해결을 위한 노력으로 순로(우편물) 구분기 도입 확대와 소포위탁 확대를 꼽았다.

 

비정규직 문제


이처럼 우정본부의 인력 수급 대책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끝없이 나오는 상황이다. 우정본부가 수급 대책으로 내놓은 소포위탁 확대는 특수고용직 등 비정규직을 늘리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현재 집배 인력 가운데 30%가 기간제 비정규직과 특수고용직이다.


위탁집배 노동자의 노동 강도도 만만치 않게 높다. 지난달 말 파주지역에서는 위탁택배 업무를 하던 특수고용노동자가 배달 도중 과로사하기도 했다. 집배노조 관계자는 “위탁집배 노동자의 알려지지 않은 죽음이 더 많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7월 노동자연구소는 집배원 183명의 초과근무 세부내역 5053건을 분석한 결과 1인당 연평균 655시간을 초과근무한다고 발표했다. 집배원 1인 연평균 실노동시간 2888시간에서 정규 노동시간 2233시간을 뺀 결과다. 연구소는 이 수치를 근거로 집배원 23%를 당장 충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정규직 인력 충원을 주문했다. 노동자운동연구소 관계자는 “현재 우정본부의 집배인력 정책은 정규직 충원을 최대한 억제하고 직·간접고용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정책”이라며 “위탁 인력만 늘려서는 집배원의 장시간 노동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고 왜곡된 고용형태만 고착화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penf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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