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폭등 ‘평창 노른자 땅’…“주인은 따로 있다”

재벌 일가, 평창 땅에 눈 돌리는 까닭

문지혜 기자 | 기사입력 2012/03/14 [11:22]

가격 폭등 ‘평창 노른자 땅’…“주인은 따로 있다”

재벌 일가, 평창 땅에 눈 돌리는 까닭

문지혜 기자 | 입력 : 2012/03/14 [11:22]
12년 도전의 역사를 담고 있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땅 투기 논란’으로 얼룩지고 있다. 평창은 1999년 겨울 올림픽 유치를 선언한 이후 세 차례 도전 끝에 지난해 7월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올림픽 개발 효과를 노린 일부 재벌기업과 전·현직 고위 공직자들이 투기적인 토지거래를 한 정황이 포착된 것. 특히 해당 지역은 몇 년 사이 공시지가가 10배 이상 뛴 것으로 알려져 ‘투기’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편집자 주>
 



12년 도전의 역사 간직한 평창, ‘땅 투기 의혹’ 몸살
재벌 기업, 올림픽 유치에 열 올린 이유 따로 있다?
공시지가 몇 년 사이 ‘10배’ 껑충…땅 주인은 ‘외지인’


‘농지법 위반 논란’ 농사 직접 지어야 하는데, 현실은?
‘투기’ vs ‘투자’…시민단체 “재벌들, 도덕성 문제 있다” 

 

 
 
 
 
 
 
 
 
 
 
 
 
 
 
 
 
 
 
 
 
 
[주간현대=문지혜 기자]

대관령면 용산리, 횡계리에 땅 투기 바람이 불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용평리조트와 알펜시아리조트가 위치해 있는 곳으로 동계올림픽 유치전이 시작된 2000년 이후부터 논란이 되기 시작했다. 동계올림픽 유치전이 시작된 2000년 이후 투기 바람이 불어 정부와 강원도가 이를 막기 위해 2011년 8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의혹의 중심에는 재벌기업 총수 일가와 전·현직 고위 공직자, 기업 최고경영자, 유명 운동선수 등이 있다. 지난 2월29일 재벌닷컴과 KBS 시사기획 ‘창’ 등에 따르면 대기업 총수와 대주주 일가족 등 22명이 평창군 대관령면 용산리와 횡계리 일대 임야와 전답 등 22만9000여㎡(약 7만 평)를 보유한 것으로 집계됐다.
 

‘알짜배기’ 평창 땅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과 신 사장의 장녀 장선윤 블리스 대표, 장남 재영씨 등은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알펜시아리조트 인근 용산리 땅을 1만1000여㎡ 사들였다. 신 이사장은 2006년 용산리 땅 6248㎡를 매입했고 장녀 장선윤씨는 2005년과 2006년 3151㎡를, 아들 장재영씨는 2006년 1651㎡를 매입했다. 이들 가족이 매입한 땅은 총 1만1050㎡에 이른다.

해당 부지는 골프장과 콘도, 스키장 등 알펜시아리조트가 안마당처럼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인 만큼 최고의 요지로 평가되고 있다. 국토해양부의 토지 개별 공시지가에 따르면 신 이사장 일가족이 땅을 샀을 당시 ㎡당 가격은 2500∼3000원대에 불과했지만 5년여 만인 지난해에는 10배가량 오른 2만3000원대를 기록했다.

롯데 신 이사장 일가가 매입한 땅에서 차를 타고 북동쪽으로 5분만 가면 GS그룹 4세 경영인 중 한 명인 허세옹 GS칼텍스 전무가 산 땅이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허창수 지에스그룹 회장의 5촌 조카인 허 전무는 지난 2005년과 2009년 전답 4만8200㎡, 임야 2만3500㎡, 대지 340m²등 7만2000여㎡의 땅을 매입했다. 허 전무가 산 땅은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 이후 리조트 등 숙박시설 건설이 한창인 영동고속도로 횡계IC에서 알펜시아리조트로 연결되는 국도변에 인접해 있다.

이 땅은 허 전무가 한미석유 박신광 회장의 아들 박재형씨와 공동으로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석유는 GS칼텍스에서 생산된 석유 등 유류 제품을 유통하는 회사로 건설회사인 한미건설과 고가 외제차인 BMW 차종을 수입하는 한독모터스 등의 계열사를 거느린 자산 1조원대의 중견 기업이다.
 

외지인에게 ‘점령’

재벌그룹 외에도 중견기업 최고경영자와 대기업 전·현직 최고경영자들도 이 일대 땅을 사들였다. 범현대가의 사위이자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의 아들 김지용씨는 2002년 횡계리 소재 논밭 7000여㎡를 본인 명의로 매입했다. 고희선 농우그룹 회장은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 농우바이오가 업무용 목적으로 2000년 매입한 횡계리 일대 토지 가운데 1만400㎡를 재매입했다. 금강공업 전장열 회장은 2000~2003년 부인 명의로 용산리 일대 토지 2만5600㎡를 사들여 두 아들에게 증여했다. 금강공업은 고려산업, 동서화학 등 국내외에 17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 기업이다.

최고경영자 가운데는 삼성그룹 계열사 출신이 두드러졌다. 배호원 전 삼성정밀화학 사장은 삼성증권 재직 시절인 2006년 부인 명의로 횡계리와 용산리에 임야 3000여㎡를 매입했고 권상문 전 삼성중공업 사장은 2002년 부인 명의로 횡계리에 토지 2500여㎡를 샀고, 방종흠 전 삼성테크윈 부사장은 2005년 용산리 토지 5300여㎡를 매입했다. 삼성화재 임원 출신인 박해춘 전 우리은행장(현 용산역세권개발 사장)은 2006년 전후에 용산리 일대의 땅을 매입한 뒤 처분했다.

문종박 현대오일뱅크 전무는 본인과 부인 명의로 용산리 일대 토지 3000여m²를, 이번우 전 케이디파워 부회장은 용산리 일대 임야와 논밭 1만9000여m²를 사들였다. 코스닥 상장사인 이오테크닉스의 성규동 대표는 2005년부터 최근까지 용산리에 3300여m²가량의 토지를 사들였다. 이밖에 김종서 세보엠이씨 회장, 신현택 삼화네트웍스 회장 등 중견기업 오너들이 용산리와 횡계리 일대의 토지 수천㎡를 매입해 본인 명의로 가지고 있거나 자녀에게 증여했다.
 

정재계 잇단 매입 소식

국회의원과 정치인, 전직 고위직, 언론인 운동선수 등 사회 지도층 인사 상당수 역시 2000년대 땅을 매입했다. KBS 시사기획 ‘창’에 따르면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민주통합당 신건 의원과 신승남 전 검찰총장이 가족 명의로 용산리 일대 땅을 매입했다. 신 의원은 부인의 명의로 알펜시아리조트로 들어가는 길목의 땅 2만4500㎡를 2006년 말 사들였고 인근 진부면의 하진부리 일대에도 대규모 땅을 샀다. 신승남 전 총장도 아들 이름으로 인근에 있는 밭을 2003년에 매입했다.

조방래 전 강원도개발공사 사장은 2010년 퇴직 직후에 재직 시 관여했던 알펜시아리조트 인근지역 토지 5400여m²를 경매를 통해 사들인 뒤 자녀 명의로 보유해 논란이 되고 있다. 지에스칼텍스 사장을 거친 조 사장은 2009년 1월 강원도 개발공사사장에 취임해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던 알펜시아리조트의 경영 정상화를 적극 도왔다. 박해춘 용산역세권개발 사장도 2006년부터 평창군 일대의 땅을 사들였다.

하지만 이들은 ‘투기’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신 의원측은 “사모님이 구입한 것인데, 은퇴하면 그쪽에 가서 생활하기 위한 것”이라며 “돈 벌려는 투기와는 상관이 없다”고 해명했다. 박해춘 전 행장 역시 “매입과 매각 시기는 (평창 동계올림픽과) 관계가 전혀 없다”며 “수십 마리의 진돗개를 길렀는데 퇴직 후 그곳에서 키우기 위해 땅을 산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이운재 전 축구 국가대표 선수가 2003년 횡계리 땅 1만5000㎡를 매입했고 이봉주 전 마라톤 국가대표가 2001년 4200㎡를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방송인 강호동 역시 2009년과 2011년 용산리 땅 1만9858㎡를 20억원대에 매입했다가 투기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난 2월28일 강호동측은 “강호동이 구입한 평창 땅을 지난해 말부터 서울아산병원에 기부할 방법을 논의했고 최근 기부 절차를 마쳤다”며 “주변 지인의 권유에 따라 장기적 투자 목적으로 땅을 샀지만 논란이 될 수 있는 지역의 땅을 매입한 것 자체만으로 사려깊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며 평창 땅을 아산복지재단에 기부한 바 있다.
 

‘투기’ 아닌 ‘투자’

최근 10년 새 평창 땅을 매입한 해당 기업 등은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롯데측은 장 대표 등이 동호인 주택을 짓기 위해 땅을 샀으며, 산지 전용 및 건축허가를 받은 후 건축을 진행했지만 금융 위기로 중단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GS칼텍스측 역시 허 전무가 보유하고 있는 평창 땅은 나중에 수목원이나 화훼 농장으로 꾸밀 예정으로 앞으로 팔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시세 차익을 노린 매입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사회 분위기가 ‘재벌 때리기’로 흘러가는 가운데 평창 땅 투자가 ‘투기’로 비춰지는 것이 안타깝다”며 “일반인들처럼 부동산에 투자를 했을 가능성도 있는데 재벌이라는 이유만으로 매도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투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이 사들인 땅이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지 인근인 데다가 매입 시기 역시 올림픽 유치전이 시작돼 투기 바람이 불었던 2000년 이후이기 때문이다. 재벌들이 매입한 땅의 공시지가는 매입 전 ㎡당 2500∼3000원대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2만3000원대로 급등했다. 평창군은 올해 표준지 공시지가도 작년보다 13% 올라 전국에서 상승률 2위를 기록했다.

또한 평창 땅을 매입한 투자자 대부분은 서울을 비롯 수도권에 사는 외지인인 것으로 밝혀져 투기 의혹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KBS가 용산리 일대 토지 소유자들의 주소지를 모두 조사한 결과 전체 683명 가운데 70%가 수도권 거주자였다. 평창 지역 땅 가운데 알펜시아리조트가 위치한 용산리는 최근 5년간 외지인들의 토지 매입 비율이 98%를 기록했다. 평창 지역으로는 70∼80%가 외지인이며 토지 매입자 가운데 38%가 서울 사람들이었고 강남 3구 거주자가 전체의 15%를 차지했다. 현지 공인중개업소의 한 관계자는 “평창 ‘노른자땅’의 소유자 상당수는 현지 주민이 아닌 재벌 일가 등 외지인”이라며 “실제 이들이 사들인 토지의 가격은 최근 몇 년 사이 엄청나게 폭등했다”고 말했다.

 
“시세차익 노린 투기”

특히 재벌 기업들이 해당 지역을 구매할 당시 대부분 토지 이용 목적을 ‘주택, 농장 건립’으로 명시해 농지법 위법 논란도 일고 있다. ‘시사기획 창’에 따르면 땅을 산 사람들은 노후대비 혹은 수목 재배를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실제로 거주하거나 수목을 재배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롯데 신 이사장 일가는 2005년 해당 부지를 매입할 당시 이곳에 옥수수를 경작하겠다고 신고했지만 조사 결과 경작 행위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농지법에 따르면 주거용과 상업용 토지는 취득 후 3년 이상 거주자 또는 취득자 자신이 경영해야 하고, 공업용은 4년 이상 취득자 본인이 경영해야 한다. 농지는 1년 이상 거주 및 2년 이상 경작, 임야는 1년 이상 거주 및 3년 이상 경영해야 한다. 이 같은 의무를 어기면 이용의무 이행 시까지 매년 취득가격 10%의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명백한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라며 도덕성을 문제 삼았다. 참여연대의 한 관계자는 “이번 조사 결과는 재벌들이 향후 ‘큰돈’이 되는 땅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는 사실을 방증한 것”이라며 “상당수는 농지를 사들이고도 취득자가 직접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농지법까지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개발 호재’가 있는 땅을 놓고서 투기와 투자를 명확하게 가를 수 있는 기준은 없다고 할 수 있다”며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제왕처럼 군림하는 재벌 일가가 개발 호재에 편승해 땅을 사들이고 이를 통해 부를 재창출하려는 고질적인 현상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YMCA 전국연맹과 희년함께 등 19개 기독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토지정의시민연대도 지난 3월1일 논평을 통해 재벌들의 땅 투기 의혹을 비난했다. 이들은 “정부가 평창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지만 이미 토지 80% 이상이 외지인의 소유가 됐으며 지역 농민들은 소작농이 되거나, 투기 광풍으로 인해 토지거래 정지로 거래가 막혀 어려움에 처해 있다”며 “이러한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불감증을 강력하게 규탄하며 이 같은 토지 투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도록 토지보유세 강화 등 제도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부터 투기 의혹을 제기했던 재벌닷컴 관계자 역시 “현지답사 결과 매입된 땅 대부분이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지 근처에 인접해 있고, 매입 시기도 유치전이 시작돼 투기의 조짐이 일던 2000년대 초반이라 정상적인 투자성격보다 매매차익을 노린 것으로 추정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직접 현지를 답사한 결과 전답의 경우 농사를 실제 짓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일반 서민의 삶과 관련된 땅을 사들여 몇 배의 돈을 번다는 것은 동네상권을 침해하는 것 못지않게 경제정의를 훼손한다”고 덧붙였다.

‘투기 땅 거래’ 불가능

이에 대해 강원도측은 해당 부지가 ‘토지거래허가구역’에 속해 있기 때문에 토지 소유권을 이전(거래)하거나 지상권 등을 설정할 때는 반드시 군수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만큼 ‘투기 목적의 토지 거래’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대관령면과 북평면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기간은 2016년 7월27일까지이지만 지정 기간이 연장될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사실상 거래가 불가능하다. 강원도의 한 관계자는 “최근에도 허가구역 해제 요구가 잇따르고 있으나 투기 목적의 토지 구매자는 허가구역 지정에 묶여 목적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라며 “그러나 순수한 목적으로 토지를 산 이들이 애초 목적대로 사용할 때는 최대한 행정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 같은 논란이 계속되자 평창군은 3월5일부터 투기 논란이 있는 11필지 3만3678㎡ 등 대관령면 일대 131필지(20만6883㎡) 농지 소유주 65명을 대상으로 청문 등을 통해 농지법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평창군은 대리경작이나 휴경 등 위법성이 드러나면 처분 명령 등 행정처분을 할 계획이다.

jhmoon@hyundaenews.com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포토뉴스
3월 다섯째주 주간현대 1245호 헤드라인 뉴스
1/3
광고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기사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