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4주기] 세월호 4년의 흔적…‘진실은 침몰상태’

그날의 아픈 기억, “잊지 않겠습니다”

문혜현 기자 | 기사입력 2018/04/16 [14:02]

세월호 참사가 4주기를 맞았다. 2014년 4월 16일, 각자 다른 기억 속에 각각의 정도로 흔적을 남긴 그날. 304명의 사람들은 영영 돌아오지 못했고 아픈 기억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가슴에 새겨졌다. 4년이 지났지만 진실은 침몰상태다. 지난한 시간을 돌아보며, 그들과 그날을 기억한다. <편집자주>


 

▲ 지난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부근 해역에서 침몰해 탑승자 476명 중 무려 304명이 희생된지 4년이 됐다.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진실은 밝혀지지 못한 채 바다 속에 잠들어 있다. <그림=석정현 일러스트레이터>     ©주간현대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경. 세월호는 전라남도 진도 해상에서 전복 후 침몰했다. 476명을 태운 배는 이틀 후인 18일 완전히 침몰했다. 이 사고로 304명이 사망했고, 9명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시 단원구 단원고 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을 포함한 사망자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을 따르며 해경의 구조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이들이었다.

 

선장과 해경, 그리고 정부의 무능력한 대응은 사고 이후에도 이어졌다. 사고 원인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고, 7가지 침몰원인에 대한 가설만 난무했다. 유가족들과 국민들은 정부의 무능을 규탄하며 ‘진실’을 원했다. 350만 명이 세월호특별법 입법을 위한 서명에 참여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필요하다면 특검을 해서 모든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고 엄정하게 처벌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의 약속과 달리 특별법 제정은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당시 여당은 합의를 불발 시켰고, 유가족을 무시하는 발언을 일삼았다. 정부를 비호하는 단체로부터 좌파, 빨갱이라는 비난을 유가족은 감수했다. 하지만 여론은 304명의 죽음을 잊지 않았다. 시민들은 유족들과 함께 매일 진상규명에 대한 목소리를 냈고, 여당은 이 같은 여론을 더 이상 무시할 순 없었다. 결국 사고 일곱 달이 지난 2014년 11월 19일,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그리고 2015년 1월 1일 세월호 특별법이 시행됐다. 

 

특별법이 시행됐지만, 특조위의 실질적 활동은 정권에 의해 철저히 짓밟혔다. 2015년 2월 17일 보낸 예산안은 답이 없었고 시행령이 마련되지 않아 인적 토대가 되는 조직과 인력이 없는 상태가 이어졌다. 실제 해양수산부가 3월 27일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을 입법예고한 것과 관련해 특조위는 “이 시행령안은 특별법의 입법취지를 실현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고 특조위를 무력화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며 수용을 거부했다. 

 

광화문 농성이 시작됐지만 정부는 5월 6일 시행령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고 같은 달 11일 공포‧시행했다. 논란 끝에 겨우 출발한 특조위는 예산문제‧인력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선체 조사가 필요하다”, “특검을 임명해달라”는 요청은 단 한번도 수용되지 않았다. ‘특조위는 1년 6개월 간 활동할 수 있다’는 규정마저 특조위 정식 활동 시기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2016년 7월,  예산은 제때 지급되지 않았고 7월에는 편성조차 되지 못했다. 특조위는 단식농성으로 대응했다. 2016년 9월 30일 그렇게 특조위는 갖은 방해로 ‘강제 해산’됐다. 

 

바닷속에 누워있던 세월호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참사를 책임질 대통령이 파면된 지 12일 후였다. 2017년 3월 22일 세월호 인양이 시작됐고 28일 국회에서 세월호 선체 조사위원 선출안이 의결됐다. 같은 해 11월 24일엔 ‘세월호 특조위 2기’가 출범했다.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라는 이름이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 됐다. 가습기살균제참사가 일어난 뒤였다. ‘사회적 참사’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2018년 4월 16일. 4년이 지났지만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은 요원하다. 그날의 진실은 여전히 침몰해있으며 아린 기억을 가진 사람들은 ‘남아있는 자의 책임’을 고민한다. ‘기억’해야 알 수 있다. 기억해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기억하고 행동하겠습니다”라는 외침이 오늘날에도, 앞으로도 계속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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