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의 막내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 이후 그룹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되면서, 재계에 ‘갑질 주의보’가 내려졌다. 평소 ‘한 성질’ 하는 것으로 알려진 오너 일가 뿐 만 아니라, 직장 상사, 거래처 원청 등 ‘갑’에 해당하는 쪽이 평소보다 말수를 줄이고 행동거지를 조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그간 우리사회 전반에 번진 ‘갑질’이 그만큼 심각하게 뿌리박고 있다는 점을 상징하는 모습이다. 특히 한진그룹 경우처럼 재벌의 갑질은 그 유구한 역사가 깊다.
유구한 재벌의 갑질…천민 자본주의 상징하는 사건
방망이 맷값 폭행 최철원…쇠파이프 휘두른 김승연
운전기사 폭행한 이해욱…어이없는 매뉴얼 정일선
미국서 비행기 회항시킨 조현아…동생도 폭행사건
▲ 영화 베테랑에서 보여준 배우 유아인의 갑질연기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각종 재벌 갑질을 집대성한 모습이었다. <사진출처=영화 베테랑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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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그룹 회장의 차녀인 조현민 대항항공 전무가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물컵을 던지면서 시작된 ‘오너 갑질’ 파문이 국내 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잇따른 갑질 고발에 성폭력으로 시작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기업 총수 일가를 향한 ‘갑질 미투 운동’으로 확산된 것이다.
하지만 이같이 재벌 오너가 전반적으로 번지더라도 국민들은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인면수심의 가까운 재벌가의 갑질은 과거에도 지속되어 왔지만, 현재도 큰 변화없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야구 방망이 갑질
재벌 갑질은 어제오늘만 있던 일이 아니다. 과거 1970~80년대 소위 ‘정경유착’을 통해 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성장한 재벌의 경우 ‘돈’은 많았지만 그만큼 의식의 성숙은 더뎠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이 최근에서야 각광을 받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꼭 권력과의 관계를 통해 성장하지 않았더라도 ‘돈이 최고’라는 천민자본주의식 인식에 갑질이 행해지기도 한다. 대표적 사례가 재벌 2세들의 ‘안하무인’격 행동이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다.
SK그룹의 최철원 전 M&M 대표는 2010년 화물연대 소속 탱크로리 운전기사 A씨를 야구 방망이로 10여 차례 폭행했다. A씨가 다니던 회사가 M&M에 흡수 합병되면서 유씨만 고용 승계에서 제외, 이에 대한 항의조로 SK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펼친 것이 폭행의 배경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폭행도 폭행이거니와 최 전 대표가 보인 언행과 행동이다. 최 전 대표는 A씨에게 “엎드려라. 한 대에 100만원이다”며 야구 방망이로 폭행하기 시작했다. 이후 10대를 때린 뒤에는 “지금부터는 300만원”이라며 추가로 가격했다. 이후 A씨에게 탱크로리 차량 가격 5000만원과 ‘맷값’ 2000만원을 줬다. 이 맷값은 현장에서 수표로 줬다.
당시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며 누리꾼의 공분을 일으켰다. 당시 온라인 청원 역할을 하던 한 사이트에서는 최 전 대표의 처벌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벌어져 순식간에 1만6000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특히 최 전 대표가 층간소음에 항의하는 이웃을 야구방망이로 협박했다거나, 임직원을 구타했다는 등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보도까지 이어졌다.
최 전 대표는 결국 재판에 넘겨져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으나, ‘자본가의 타락한 표본’(LA타임스)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평가를 받게 됐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도 직접 쇠파이프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2007년 자신의 차남 김동원씨가 술집에서 시비가 붙어 종업원들에게 폭행당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분노한 김 회장은 즉시 경호원과 조폭들을 대동하고서 보복에 나선다.
그는 한밤중, 폭행에 관여한 사람들을 청계산으로 불러 쇠파이프로 직접 응징하기까지 했다. 당한 아들에게 복수할 기회도 제공했다. 재벌 아들을 몰라보고 주먹을 휘둘렀다가 호되게 당한 피해자들은 무려 9명이다.
1심 형량은 징역 1년 6개월. 법원은 “사회적 지위와 재력 및 회사조직을 사적 보복에 악용한 범죄로서 사인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삼남 김동선 씨의 연이은 갑질사건도 유명하다. 아시안게임 승마에서 3연속 금메달을 따낸 것으로 알려진 김동선 씨는 ‘국위 선양’을 한 엘리트 스포츠선수임에도 숱한 구설 때문에 더 유명하다.
김씨가 알려진 계기는 2010년 서울 용산구 한 호텔 주점에서 만취한 상태에서 여종업원을 성추행하고 보안직원 2명을 폭행했다가 경찰에 입건되면서부터다. 당시 폭행 뿐 아니라 유리창과 집기를 부수는 등 기물을 파손하기도 했다. 이 때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던 김씨는 지난해 1월 새벽에 또 술집에서 술에 취해 남종업원을 폭행하다가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된다. 경찰서로 호송되기 위해 탑승한 순찰차에서도 난동을 부려 내부 물품을 손괴하기도 했다.
더구나 최근에는 지난해 9월 서울 종로구 술집에서 대형로펌인 김앤장 소속 신입 변호사 10여명의 친목모임에 참여해 난동을 부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술집 난동 갑질은 한화에만 있는 게 아니다. 동국제강 장선익 이사는 서울 용산구 한 술집에서 지난 2016년 12월26일 술값을 두고 종업원과 시비가 붙어 양주를 깨는 등 난동을 부린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바 있다. 장선익 이사는 동국제강 장세주 회장의 장남이다.
이날은 장선익 이사의 생일이라 종업원에게 케이크를 사오라고 했으나, 이후 케이크 값으로 30만원이 청구되자 실랑이가 일었다고 한다. 이후 장 이사는 사과문을 발표해 “어떠한 변명을 해도 제 잘못이 분명하기에 진심으로 깊게 후회하고 있다”며 “이렇게 실망스런 모습을 보이게 되어 너무나 죄송하다”고 사과했으나 여론은 싸늘했다.
▲ ‘천민 자본주의’를 대변하는 재벌가의 갑질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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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기사 갑질
대림산업의 이해욱 부회장의 운전기사 갑질도 유명한 사례다. 지난 2016년 3월 이해욱 부회장이 상습적으로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내용은 이해욱 부회장이 운전기사들에게 상습적인 폭언과 구타를 일삼는 등 ‘슈퍼갑질’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재벌 3세 경영인인 이 부회장은 ‘사이드미러(백미러)를 접고 운전하라’는 등 위험한 지시를 일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의 전 운전기사는 “출발할 때부터 사이드미러를 접고 운전했다”면서 사이드미러 없이 운전하다 브레이크와 핸들에 신경을 잘 못 쓰면 폭언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운전기사는 ‘인간 내비게이션’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자동차 마니아인 이 부회장은 주말마다 서킷에 나갈 정도로 운전 실력이 뛰어난데 본인이 직접 운전할 경우 운전기사는 조수석에서 도로 차량 중계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 같은 곳에서 시속 150~160㎞ 속도로 달릴 때 중계 속도가 차량 속도를 못 따라가면 “똑바로 못해, 이 XXX야”라는 폭언을 했다고 운전기사는 주장했다. 이 운전기사는 “부회장 운전대 잡은 지 며칠 만에 환청이 들리고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했다. 이같은 이유로 지난해 기준 교체된 이 부회장의 운전기사는 약 4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줬다.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의 장남인 이해욱 부회장은 2010년 2월 대림산업 부회장을 맡았으며, 지난해 4월 대림코퍼레이션과 대림아이앤에스(I&S)의 합병으로 대림코퍼레이션 최대주주가 됐다. 대림코퍼레이션은 대림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지주사다.
검찰은 이씨를 벌금형으로 약식기소했으나 법원이 직권으로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그런데도 재판 결과는 벌금형(1500만원)이 됐다. 평소 다른 운전기사들에게 이 같은 행위를 강요했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 재판까지 간 피해자는 1명뿐이었다.
운전기사 갑질 논란으로 전과자가 된 이는 또 있었다. 정일선 현대 BNG스틸 사장이 있다. 현대가 3세인 정일선 사장의 수행기사 ‘갑질 매뉴얼’이 지난 2016년 4월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A4 140장에 달하는 수행기사 매뉴얼에는 모닝콜과 초인종 누르는 시기·방법 등 하루 일과가 상세하게 담겨있다고 한다.
예를들어 ▲모닝콜은 받을 때까지 ‘악착같이’ 해야 함, “일어났다, 알았다”고 하면 더 이상 안해도 됨. ▲모닝콜 뒤 ‘가자’라는 문자가 오면 ‘번개같이’ 뛰어 올라가 …(중략)… 신문 깔고 서류가방은 2개의 포켓 주머니가 정면을 향하게 둠. ▲출발 30분 전부터 ‘빌라 내 현관 옆 기둥 뒤’에서 대기할 것. ▲(운동복) 세탁물을 ‘1시간 내’ 배달하지 못할 경우 운행가능 기사가 이동 후 초벌세탁 실시. 등의 지시사항이 적혀있었다.
문제는 실수를 하게 되면 “이리 와, 이 X끼, 병신 X끼 이런 것도 안챙기냐, 그럼 운동 어떻게 해? X신아”라면서 정강이를 발로 차고 주먹으로 머리를 내리치는 폭력행위를 했다고 수행기사는 폭로했다. 또한 매뉴얼을 지키지 못하면 경위서를 쓰고 벌점을 매겨 감봉을 하는데, ‘두부를 사 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등 사소한 실수조차 경위서를 써야했다고 한다.
이에 현대비앤지스틸은 홈페이지에 정일선 사장 명의의 사과문을 게시했다. 정 사장은 사과문에서 “가까운 사람,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잘했어야 함에도 젊은 혈기에 자제력이 부족하고 미숙했다”면서 “관계된 분들을 찾아 뵙고 사과를 드리겠다”고 밝혔다.
결국 정 사장은 약식기소되었다. 서류재판이라 법정에 서지는 않았는데 벌금 3백만 원으로 유죄가 확정됐다. 정 사장은 운전기사들에게 주당 최대 80시간 이상 근무, 과도한 매뉴얼 강요 등의 피해를 주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실제로 재판까지 가지는 않았다.
전설된 땅콩회항
최근 갑질에 가장 유명한 사건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이 가장 대표적이다. 2014년 12월 조 전 부사장은 미국 JFK공항에서 인천으로 출발하는 대한항공 1등석에서 마카다미아를 봉지째 가져다 준 승무원의 서비스를 문제 삼으며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이동 중이던 항공기를 되돌려 수석 승무원을 내리게 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2년6개월 동안 계류되다가 최근에야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 앞서 조 전 부사장은 1심서 징역 1년, 항소심서 징역 10년·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조 전 부사장은 2013년 5월에 전근 발령을 받는 식으로 원정 출산을 간 특혜 의혹도 있다. 조 전 부사장은 당시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병원에서 쌍둥이 아들을 출산했다.
문제는 만삭 때 갑자기 미국으로 전근 발령을 받았다는 점이다. 조 전 부사장은 출산을 2개월 앞둔 그해 4월 초에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 때문에 ‘원정 출산을 갔다’는 비판을 받았다. 일반 직장인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조 전 부사장의 동생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은 두 차례의 욕설 파문으로 갑질 비판을 받기도 했다.
penfree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