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게는 밥 딜런, 가깝게는 김현식·김광석·안치환···. 대중음악에서 하모니카는 주연이라기보다 주로 포크 음악에서 양념처럼 사용됐다. 그런데 하모니카는 마냥 톡 쏘는 향신료가 아니다.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담백한 감칠맛을 갖고 있다. 1989년 데뷔한 작곡가 김형석은 하모니카에 대해 “애수를 갖고 있다”고 표현했다.
하모니시스트 박종성이 4월 12일 발매한 하모니카 앨범 <그대, 다시>는 그 애수가 묘수가 되는 고수들의 진수를 보여준다. 변진섭의 <그대 내게 다시>, 김광석 <사랑이라는 이유로>, 음료 광고 음악으로 유명한 유미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 OST인 신승훈의 <아이 빌리브>, 보보(강성연)의 <늦은 후회>, 드라마 <올인> OST인 박용하 <처음 그날처럼> 등 우리 대중음악 스테디셀러 반열에 오른 김형석 작곡가의 10곡이 하모니카 연주로 변주됐다.
하모니카 앨범 ‘그대, 다시’ 협업···변진섭의 ‘그대 내게 다시’ 등 10곡 재해석
박종성 ”김형석 곡은 선율 너무 예뻐···하모니카로 연주했을 때 잘 어울렸다“
국내 첫 번째 하모니카 전공자인 박종성은 김 작곡가의 대중 공감능력과 하모니카의 상관관계를 우아하게 끄집어내며 ‘우리 팝발라드 그리고 하모니카’라는 악기를 환기한다. 5월 말엔 콘서트도 연다. 다음은 최근 서울 강남구에서 김형석 작곡가·박종성 연주가가 기자들과 만나 나눈 일문일답.
하모니카 음색과 김형석 곡 조화
-두 분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우선은 내가 열성적인 팬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정말 좋아했던 작곡가다. 카세트 테이프, CD 플레이어, MP3, 듣는 매체가 바뀌어도 항상 김형석 작곡가의 곡들이 플레이 리스트에 있었다. 내가 클래식 쪽에 있는데, 대중음악을 해보는 게 어떨까 생각하다 김 작곡가의 곡으로 음반을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 제안을 했다.(박종성)
▲장르를 넘나들더라. 우리나라에 하모니카 하는 분들이 많지 않다. 너무 잘해서 협업을 말하길래 무조건 한다고 했다.(김형석)
-하모니카 음색과 김형석 작곡가의 노래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
▲우선 나의 감성과 추억 속에 너무 아름답게 남아 있는 곡들을 연주하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했다. 하모니카의 음색과 하모니카의 연주 스타일에 어울리는 곡들을 선별하는 과정이 있었다.(김형석)
▲나는 가사를 직접 전달하는 가수가 아니고 연주자이기 때문에 선율이 굉장히 중요하다. 작곡가님의 곡들은 선율이 너무 예쁘다. 그래서 하모니카로 연주했을 때 어울리는 곡들이 정말 많았다.(박종성)
▲나는 원곡에 대한 이미지나 추억이 있지 않은가. 연주하는 분의 입장에서 어떤 걸 표현할지 궁금했다. 특히 곡엔 가사가 있어서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한다. 반면, 연주곡은 행복할 때 들으면 행복하고 슬플 때 들으면 슬프다. 그런 부분이 확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내 곡은 확연히 ‘슬프다’ ‘기쁘다’ 느낌이 아니고 시간이 지나서 추억하는 느낌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은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하모니카의 여린 음색이 너무 잘 어울렸다.(김형석)
▲트랙리스트는 내가 선정했다. 작곡가님의 노래 중 내가 좋아하는 곡들을 쭉 적어 놓고 하모니카로 연주했을 때 어울릴 만한 곡들을 한 번 더 추렸다. 그리고 한 가수당 한 곡씩을 원칙으로 삼았다. 성시경·아이유의 <그대네요>라는 곡만 내가 몰랐다. 보물처럼 발견한 곡인데 듣자마자 ‘이거는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아름다운 곡이라 추가했다. 편곡 기술적으로는 내가 작곡가에게 상대가 안 되기 때문에 기술적인 시도는 부끄럽기도 하고 뭔가 선을 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곡을 즐길 때의 감정에 집중하면서 나의 색채를 더 넣으려고 했다.(박종성)
▲개인적으로 <사랑이라는 이유로>가 좋았다. 테크닉적으로 봤을 때 후반부에 전조(轉調)가 되는데 연주자의 기량을 충분히 보여줬다. 그리고 나의 초창기 작품이기도 해서 피아노를 직접 연주한다고 얘기했다. 예전 느낌도 많이 생각나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김형석)
“소박함·진솔함에 맞닿은 악기”
-김형석 작곡가는 김광석의 1집(1989년) 수록곡 <너에게>를 작곡하면서 작곡가로 공식 데뷔한 걸로 안다.
▲<너에게>가 타이틀이었는데 광석이 형 1집이 잘 안 됐다. 그런데 내 곡 <사랑이라는 이유로>가 광석이 형 2집에 실렸다. 데뷔 초창기엔 곡 의뢰가 많지 않다. 그래서 고마운 마음이 크다. 그리고 내 이야기가 담긴 곡이라 초창기 때 곡들은 세월이 지날수록 더 애틋한 느낌이 있다. 게다가 하모니카는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데 최적의 악기라고 생각한다.(김형석)
-이번 앨범 작업에서 김형석 작곡가의 곡을 연주하면서 가장 신경 쓴 점은 무엇인가?
▲처음에 상상했던 작업은 곡을 어떤 감정으로 썼는지 여쭤보기도 하고 가이드와 디렉팅을 받으면서 어떻게 하면 내가 원곡을 훼손하지 않고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한테 다 맡긴다는 얘기를 듣고 감사하면서 영광이었고 또 부담이 좀 됐던 것 같다. 그래도 믿어주신 거니까 ‘내 색채를 한번 내보자’는 마음으로 임했고 그래서 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박종성)
▲이전에 연주한 걸 다 들어봤다. 그래서 그렇게 결정할 수 있었다. 클래식의 위대한 작곡가들의 곡은 악보에서 음 하나만 빼도 이상하다. 그런데 대중음악은 다른 것 같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자유롭고 바꾸기도 편하고 내가 곡을 썼다고 하더라도 결국 곡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결과물도 너무나 만족스럽다. (김형석)
-대중음악계에서 ‘하모니카’ 하면 밥 딜런, 김광석, 김현식, 안치환이 떠오르는데 메인이라기보다는 약간은 양념 같은 느낌으로 사용된 것 같다. 두 분은 대중음악계 내 하모니카의 이미지가 어떻다고 생각하나. 또 이번 작업으로 환기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대중음악에서 하모니카의 역할은 양념처럼 쓰여왔던 게 사실이다. 나도 그런 작업에 참여해본 적도 있고. 다만 내가 이번 음반을 녹음할 때 제일 중점적으로 고민했던 건 ‘대중음악이니까 대중음악답게 연주를 해야 될까’ 혹은 ‘박종성이 연주하던 원래 어법을 그대로 사용해도 될까’였다. 결국 재즈를 기반 삼은 대중음악 색채로 연주하는 것보다는 내가 원래 평소에 즐겨하던 클래시컬한 어법을 한번 적용해보는 게 어떨까라는 결론을 내렸다.(박종성)
▲나는 하모니카로는 ‘떴다 떴다 비행기’ 정도만 연주할 수 있다. 미세한 호흡을 조절해서 그루브를 만들고, 바이브레이션이나 아티큘레이션의 보조와 강약 등의 조절 등 하면 할수록 어려운 악기 중에 하나인 것 같다. 그런데 무엇보다 소박함과 진솔함에 가장 맞닿아 있는 악기같다. 또 이번 작업은 추억하고 욕망을 내려놓고 소박해야 하는 내 연령대랑 맞닿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훨씬 더 개인적으로 즐거움이 컸다.(김형석)
“하모니카 연주자 늘고 있다”
-하모니카는 국내에서 활성화된 악기는 아니다.
▲대중음악의 관점으로 하모니카는 한 번도 주류였던 적은 없지만 그래도 김현석, 김광석 님 덕분에 쓰였다. 그런데 지금은 사용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하모니카가 쇠퇴한 게 아닌가라고 여길 수도 있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하모니카 연주를 직업으로 삼는 연주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또 굉장히 많은 학교에서 하모니카를 배우고 있다. 하모니카 강사들도 많이 양성되고 있고. 다만, 교육적인 혹은 사회적 분위기가 하모니카 연주에 집중하기는 어려운 시스템인 것 같아서 그런 점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박종성)
-김형석 작곡가는 처음 음악을 대하던 태도나 마음가짐이 현재 바뀐 게 있나?
▲40대 때만 해도 몰랐는데 쉰 살이 넘어가니까 끝이 보인다. 물론 20대 때나 지금이나 잘 만들고 싶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이냐도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들어 놨던 음악을 다시 리메이크하는 작업도 너무너무 중요하고. 변화에 잘 적응해야 하지만 ‘고집스럽게 뭘 가지고 가야 하지’라는 고민에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욕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다양하게 하고 싶다. 나이가 들면 힐링 음악, 메디테이션(meditation·명상) 음악을 결국 하게 될 것 같다. 이번 작업도 들어보면 힐링의 느낌이 많다.(김형석)
-최근 33년 만에 폐관한 김민기 선생의 학전 초창기 멤버인데.
▲사실 지난 월요일인가 학전을 지나갔다. 문이 잠겨 있더라. 어릴 때 광석이형이 거기서 공연했고, 노영심 씨랑 공연을 했고, (박)학기 형이랑 공연을 했다. 대기실로 내려갈 때 계단이 나선형인데, 어릴 때는 거기를 막 뛰어다녔다. 그런데 최근엔 그 계단 난간을 잡고 내려가야 하더라. 하하.
김민기 형님은 너무 존경한다. 인센티브 제도를 뒀고, 꿈나무들이 계속 나올 수 있게끔 텃밭을 만드셨다. 모든 걸 다 대입시킬 수 없지만 아이돌 시장이 글로벌화됐고 이러한 토양을 위해선 누군가 씨를 뿌리거나 물을 주는 작업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에 있어서 학전은 정말 중요한 포지션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를 포함해 후배 배우, 음악인들이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부채 의식도 있고. 학전 정신을 이어받아서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화두가 생긴 것이다. 나도 그 부분의 역할을 하고 싶다.(김형석)
-마침 봄 캐럴 중 하나인 밴드 버스커 버스커의 <꽃송이가>가 다시 역주행할 시기다. 박종성 씨는 이 곡의 하모니카 독주 연주로도 유명한데.
▲원래는 다른 드라마 OST 녹음 때문에 녹음실에 갔다가 내 연주를 보고 들은 버스커 버스커 음악감독이 제안을 했다. 우연히 참여하게 됐는데, 그 음악으로 나를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선물 같은 곡이 됐다. 연주도 즉흥으로 했던 거였다. ‘내가 뭘 하면 되나요?’라고 여쭤봤는데,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해서 인트로부터 솔로 그리고 아웃트로까지 다 즉흥적으로 연주를 했다. 기본적인 베이스는 클래식에 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탱고와 잘 어울린다면 나는 탱고도 연주할 수 있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감정이 국악과 잘 어울린다면 또 국악을 연주할 수 있다. 이번 작업처럼 혹은 버스커버스커의 <꽃송이가>처럼 대중음악으로 나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대중음악도 얼마든지 연주할 수 있다.
“감성 음악은 계속 사랑받을 것”
-김형석 작곡가는 시대가 달라져도 매번 사람들에게 소중한 메시지를 전하는 음악을 만들어왔다. 그걸 해내는 비결은 무엇인가?
▲아버님이 음악 선생님이었고 어머니가 피아노 선생님을 하셨다. 유년시절 잠에서 깨고 잘 때 모두 피아노 소리가 들렸던 게 큰 자양분이 됐다. 특별한 나만의 노하우가 있는 게 아니라, 태어났는데 마침 환경이 그런 환경이었고 숨 쉬고 이 닦고 세수하듯이 음악을 하게 됐다. 내가 아직 음악을 하고 있는 이유는 이것 말고는 다른 건 변변찮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거 하나 갖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철이 없다. 좋게 표현하면, 동심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사물을 바라보는 호기심이 많고 또 누구 얘기를 잘 듣기도 하고, 그걸 음악으로 만드는 거다. 무엇보다 음악을 소비하고 대하는 방법이 바뀌어가고 있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본성은 변하지 않았다고 본다.
예를 들면 역지사지라든가 혹은 사랑이라든가 행복, 추억, 이별 등 기본적으로 인간이 갖고 있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감성적인 음악들이 앞으로도 계속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김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