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취임 2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윤 대통령 앞에 놓여 있는 정치 지형은 녹록지 않다. 지난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범(凡)민주당 세력이 192석을 차지, 헌정 사상 유례 없는 ‘수퍼’ 여소야대 정국이 기다리고 있어서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총선에서 개헌·탄핵·대통령 거부권 무력화 저지선을 겨우 지켜냈지만, 정국 주도권은 거대 야당이 쥐게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21대 국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했던 법안에 대해 22대 국회에서 다시 입법을 하기로 하는 등 공세에 나설 태세다. 특히 지난 총선에서 윤 대통령의 불통과 일방적 국정운영, 서민 경제난 등으로 여당이 심판을 받아 국정운영 기조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윤 대통령은 총선 민심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레임덕에 빠질 처지에 직면해 있다. 윤석열 정부의 위기에 야당과의 ‘협치’만이 국정동력을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게 중론이다.
헌정사상 최초 5년 내내 여소야대···민심은 불통+일방적 국정운영에 변화 요구
국민 70% 찬성 ‘채상병 특검법’ 거부권 놓고 고민···총선의 민심은 ‘협치’ 수용
대선 공약인 노동·교육·연금 개혁 지지부진···의료·연금 개혁 합의 여부 ‘분수령’
윤석열·이재명 영수회담 때 의료 개혁 공감대 형성···누가 키를 잡느냐가 문제
집무실 용산 이전에도 ‘불통’ 이미지···도어스테핑 중단·특정 언론 인터뷰 논란
대통령실 인사 발표하며 질문 받아···민정수석 복원하자 야권 ‘사정 장악’ 비판
한미일 밀착 속 북중러 멀어지고 실리추구 못 해···가치외교→실용외교 전환 필요
“방향 적절하나 유연성·정교함 부족” “가치+실용 균형점 찾아 국익 극대화 절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취임 2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윤 대통령 앞에 놓여 있는 정치 지형은 녹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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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이 참패하면서 위기감을 느낀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후 720일 만에 첫 영수회담에 나섰다. 총선 일주일 만에 영수회담 제안을 했다.
그동안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수차례 영수회담 제안을 할 때마다 ‘수사 재판 중인 사실상 피의자와 만날 수 없다’며 거부 의사를 밝혀온 윤 대통령의 입장이 급변한 모양새다. 영수회담을 국정동력 회복의 계기로 삼기 위한 포석이 깔린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1. 여소야대 지형···국정 방향은
하지만 영수회담 사전 실무협상 기싸움에 이어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영수회담은 빈손으로 끝났다. 이 대표가 영수회담에서 10여 장에 달하는 총선 민심을 전달하며 국정에 변화를 요구했지만 윤 대통령은 거절과 무응답으로 일관해 협치 성과는 없었다.
다만 여야가 ‘이태원특검법’을 수정 처리하기로 합의해 협치의 가능성을 보였으나 야당이 총선 민심의 핵심으로 꼽는 ‘해병대 채상병 특검법’을 처리했고, 대통령실은 즉각 “나쁜 정치”라며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협치가 아닌 강 대 강 대치 정국으로 치닫게 됐다.
야당은 대통령실 개입 의혹이 불거진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며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고 22대 국회가 시작되는 즉시 김건희 특검법과 그동안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 모두를 재추진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채상병 특검법 거부를 시사하며 강경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국민의 70%가 찬성하는 특검법 반대에 대한 부담감은 크다. 거부권 행사로 총선 민심에 역행할 경우 국정동력 회복이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윤 대통령의 협치를 가늠할 방향타는 채상병 특검법 거부권 여부다. 5월 14일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이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그러나 최근 신중한 기류도 읽힌다. 채상병 특검법 찬성 응답이 70%에 육박할 정도로 민심은 윤 대통령에게 채상병 사건의 진실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이마저 거부권으로 응답한다면 윤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는 고착화되고 ‘고립’을 초래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대통령실은 우선 유관부처 검토 의견과 여론 동향을 살펴본 후 야당과 절충안을 모색하거나, 기자회견을 통해 거부권 행사가 불가피한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는 쪽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협치를 위해 여당이 원내대표를 선출하고 나면 여당까지 포함해 3자회동이나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일대일 회담 등도 열어두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22대 국회가 개원하면 원구성 협상 등 국회의 시간이 되는 만큼 협치를 위한 대통령실의 공간은 좁아질 수 있다.
대통령실과 여당과의 관계 재설정도 과제다.
윤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국정운영에는 여당의 지지가 필수인데, 총선 참패로 대통령 책임론이 비등해진 상황인 만큼 여당과의 수직적 관계를 접고 당의 요구를 즉각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 4월 10일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하자 위기감을 느낀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후 720일 만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대통령실로 초청해 첫 영수회담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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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더딘 3대 개혁 험로 예상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이 지난 2년 동안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관련 단체의 반발과 여야의 대립, 정부의 준비 부족 등으로 개혁 추진에 속도가 붙지 않아서다.
윤 대통령은 2년 동안 3대 개혁 추진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2023년 신년사에서 “대한민국의 미래와 미래 세대의 운명이 달린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2024년 신년사에서도 “노동·교육·연금의 3대 구조 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다. 특히 취임 2주년을 한 달 앞두고 실시된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하며 3대 개혁 추진은 험로가 예상된다.
그나마 희망적인 개혁 분야도 있다. 첫발을 뗀 의료 개혁과 개혁안을 마련 중인 연금 개혁에 대한 여야와 관련 단체의 합의 여부가 3대 개혁 추진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한 의료 개혁이 본격화했다. 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는 총선 후 진행된 첫 양자회담에서 의료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하지만 의사단체의 강력 반발로 의료 개혁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가 출범하며 속도가 날 줄 알았던 연금개혁은 처리까지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연금개혁안을 차기 국회에서 조금 더 논의하자는 뜻을 밝혔다.
4월 29일 만난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의료 개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 대표는 “의대 정원 확대 같은 의료 개혁은 반드시 해야 할 주요 과제이기 때문에 민주당도 적극 협력하겠다”며 의지를 밝혔다.
문제는 공감대가 모든 것을 해결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남은 과제는 ‘어떻게’다. 윤 대통령은 의료 개혁의 키를 정부가, 이 대표는 국회가 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의사단체의 강력한 반발도 걸림돌이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의료계와 소통에 나선 상황이다. 정부는 의료개혁특위에 대한의사협회, 대한전공의협의회 등 의료계 단체 10개가 참여하도록 자리를 비워뒀다. 그러나 의료계는 의대 증원 백지화를 고수하고 있어 양측의 대화는 제자리 걸음이다.
이런 가운데 이 대표는 ‘국회 공론화 특별위원회’를 제안하고 나섰다. 여야·정부·의료계가 참여하는 4자 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것이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에게 “여야와 의료계가 함께 논의한다면 좋은 해법이 마련될 것”이라며 “국회 공론화 특위에서 여야와 의료계가 함께 논의한다면 좋은 해법이 마련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이 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의료개혁의 큰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장단점은 극명하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윤 대통령은 국회 과반을 차지한 민주당과의 협력을 통해 의료개혁의 동력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공공의대 설립, 지역의사제 도입 등 민주당이 추진 중인 의료개혁안과의 타협은 불가피하다. 결국 정부가 이 같은 방안을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는지가 의료개혁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공공의대, 지역의사제 등과 관련해 “정부는 지방거점 국립대 의대를 더욱 성장시켜 수도권 사립 의대 이상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려고 한다”면서 “공공의대를 만들 경우 자칫 산발적인 의대 설립으로 의료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금개혁은 여야 간 이견 대치로 차기 국회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윤 대통령은 앞서 이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정부가 국회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충분하고 많은 데이터를 이미 제출했다”며 여야가 계속 협의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최근 국회에선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해 ‘조금 더 내고 더 많이 받는’ 방안을 논의했다. 공론화위는 500명으로 이뤄진 시민대표단의 숙의 및 여론조사 통해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50%‘을 연금개혁안으로 보고 했다. 현행에 비해 보험료율은 4%포인트 상승, 소득대체율은 10%포인트 오른 수치다.
정부와 여권은 젊은 세대에 부담을 떠넘긴다며 반대 입장을 밝힌 상태다. 국민의힘은 “재정 안정을 담보하지 않으면 개악”이라며 “공론화위 도출안을 손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야가 21대 국회 임기 중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 연금개혁안은 22대 국회에서 처음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 21대와 여야 지형이 크게 바뀌지 않을 22대 국회에서 정부가 원하는 개혁안이 통과될 리 만무하다.
다만 일각에서는 여당의 기류가 달라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공론화위가 선택한 ‘더 내고 더 받는’ 방향을 존중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는 것이다.
3. 3년 차 ‘소통’은 한다지만···
정부 출범 3년차를 맞은 윤 대통령이 집권 중후반기 국정 운영의 방점을 ‘소통’에 둘 방침이다. 여권의 총선 참패가 윤 대통령의 ‘불통’에 기인한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변화하겠다는 태도다. 지난 2년간 확립한 국정기조를 이어가려면 야당을 포함한 정치권과 언론 등 전방위적 소통 만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지지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판단이다.
윤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는 언론과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점점 굳어졌다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초기 ‘소통’ 대통령을 표방했다. ‘구중궁궐’ 청와대에서 나와 용산으로 집무실로 옮기고 ‘국민 속으로’ 들어가는 대통령을 자처했다. 역대 대통령 중 최초로 시도한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이 소통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바이든 날리면’ 보도 등 언론과 잇달아 마찰을 빚어 2022년 11월 도어스테핑이 중단되면서 사실상 언론과의 소통이 끊겼다. 이후 윤 대통령은 연례행사로 여겨지던 신년 기자회견도 건너뛰고 특정 언론과 인터뷰로 대체, ‘불통’ 이미지는 고착화됐다.
윤 대통령이 언론과 멀어진 대신 소통의 대상으로 찾은 건 국민이었다. 지난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패하면서 국정 중심을 ‘민생’으로 정하고 국민 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소통 방식을 취했다. 그렇게 시작된 게 ‘민생토론회’다. 민생토론회의 시작은 새해 부처별 업무보고 형식의 변화였지만 국민들을 모셔 질문에 답하는 일종의 상시적 ‘대국민 대화’였다.
그러나 총선 정국으로 들어가면서 민생·소통의 취지는 무색해지고 ‘선거 개입’ 논란으로 전이됐다. 쌍방향 소통이라는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기획력 탓에 횟수를 더해갈수록 정책을 알리는 ‘일방적 전달’ 위주로 흘러가면서 국민들의 관심도 역시 떨어졌다.
이런 여론은 지지율 지표로도 나타났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 부정평가 이유는 4월 넷째주 기준(4월 23일~25일 조사) ‘소통 미흡’이 15%로 ‘경제·민생·물가(21%)’에 이은 2위다. 3위인 ‘독단적·일방적(9%)’, 5위인 ‘통합·협치 부족(5%)’ 등 유사 요소도 상위권이다.
결국 이런 흐름이 누적돼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여소야대’ 정국을 맞는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얻었고, 대통령실은 ‘소통’의 대상과 방식 변화의 필요성과 맞닥뜨렸다.
윤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 ‘소통’에 방점을 둘 전망이다. 그 시작은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2주년을 하루 앞둔 5월 9일 기자회견에 나선다. 자유 형식의 공개 기자회견은 지난 2022년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 이후 631일 만이다.
윤 대통령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김건희 여사 관련 각종 의혹을 비롯해 각종 민감한 현안에 대해 가감 없는 답변에 나섰다. 기자회견은 생중계됐다.
윤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을 계기로 언론과의 접촉을 늘려갈 방침으로 알려졌다. 기자단 약식 간담회와 언론사 국장 간담회 등이 검토될 수 있다고 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언론과의 소통을 늘리기 위한 여러 가지 계획이 있다”며 “‘각 잡고’ 하는 정식 기자회견으로 일단 국민들께 여러 부분을 말씀드리고, 그 후엔 여러 방법을 더 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또한 참모 인선 결과를 세 차례 직접 발표하면서 언론과 만나고 있다. 총선 전까지는 비서실장이 인선을 발표해왔다.
윤 대통령은 정진석 신임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김주현 민정수석 인선을 직접 발표하면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았다. 즉문즉답은 2022년 11월 도어스테핑 중단 이후 약 1년 6개월 만이다. 참모 인사 발표를 대통령이 직접 해야 할 필요는 없으나, 인사의 배경을 직접 설명할 필요를 느낀 윤 대통령이 스스로 나서고 있다는 것이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이어질 국무총리 인선과 개각 정국에서도 윤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직접 지명 배경을 설명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이 대선 공약 파기 비판을 감수하고 발표한 민정수석실 복원의 취지 역시 ‘민심 청취’라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사정기관 장악 근절’을 위해 민정수석실을 없앴으나, 민정수석실의 본래 목적인 민정(民情·민심 정보) 기능이 약화됐다는 문제점을 인정하고 조직을 복원한다는 것이 윤 대통령 설명이다. 이런 맥락에서 민심 수렴 기능을 하는 민정비서관실만 신설하고, 사정기관을 담당하는 반부패비서관실은 두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야권에서는 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 윤 대통령과 유관할 수 있는 ‘사법 리스크’ 대응과 검찰 영향력 유지를 위한 포석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윤 대통령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민심 청취 보좌 기능’ 필요성을 논의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같은 이유로 민정수석실을 되살렸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우려 불식에 나서고 있다. 야권을 포함한 대국민 소통 강화를 위해서는 ‘민심 청취’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과거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바 있다.
다만 민정수석에 대검찰청 차장검사까지 지낸 최고위 검사 출신 김주현 전 법무부 차관을 임명한 만큼, 5월 9일 기자회견에서도 사정기관 장악 우려에 관한 추가적 설명 요구가 나왔다.
윤 대통령은 김건희 특검법 등 ‘사법 리스크 방어용’ 비판에 대해 “저에 대해 제기된 게 있다면 제가 설명하고 풀어야지, 민정수석이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국민을 위해서 설치한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민생토론회도 조만간 재개할 방침이다. 대통령실은 소통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민생토론회의 방식 변화를 고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총선 직전 민생토론회를 일시 중단하면서 “한 2주 쉬고 다시 대장정을 시작한다”고 밝힌 바 있는데, 전면 개편을 거치면서 재개가 다소 늦어지는 분위기다.
윤 대통령은 총선 전 24차례의 민생토론회를 열고 다양한 분야의 민생 정책과 지역 현안을 듣고 입장을 직접 밝혀왔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모두발언에서 정부 정책과 입법 과제를 발표하는 비중이 점차 늘어났고, 총선을 앞두고 발표된 지역 개발 정책에는 ‘관권선거’ 비판이 제기되면서 의미가 다소 퇴색됐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생토론회는 종전에 비해 윤 대통령의 공식 발언 비중을 줄이고, 포괄적 주제에 대한 입법 과제 발표보다는 구체적 민생 고충에 대한 논의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개편되고 있다. 또 총선 전에는 한 주에 2회씩 열리기도 했던 개최 횟수도 줄어들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에서는 윤 대통령의 소통 강조 행보가 긍정적 평가를 받을 경우 국정 동력 확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3대 개혁’과 의료개혁 등 정부 주요 정책 자체에 대한 지지율은 긍정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윤 대통령이 소통 문제를 개선하면 국정 동력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권의 한 원로는 “윤 대통령이 전체적으로 옳은 방향을 잡고 열심히 하고 있다고 보는데, 정무적 테크닉이 없어서 이번(총선)에 크게 맞았다”며 “이런 부분들이 나아진다고 본다라면 지지율이 다시 힘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5선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도 “국정운영 방향은 옳았지만 방식이나 스타일이 거칠고 투박했고 일방통행을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지적하며 “대통령이 먼저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고 했다.
4. 한미일 밀착 속 멀어진 북중러
출범 3년 차를 맞은 윤석열 정부의 ‘글로벌 중추국가(GPS·Global Pivotal State)’ 외교가 갈림길에 섰다. 자유·평화·번영에 기여하는 가치외교에 치우쳐 실리를 추구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미일에 치우친 가치 외교에서 북중러와 우호적 관계 설정을 통한 실리 외교로 전환해야 한다는 조언했다.
가치 외교를 기반으로 한 ‘글로벌 중추국가’ 외교는 국제 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세계 10대 경제대국이자 6대 군사강국인 한국의 위상로 볼 때 가치에 입각한 외교 방향성은 흠 잡을 데가 없다. 되레 높아진 경제력과 위상에 비해 그동안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이 미미했다는 측면에서 자성의 결과물로 여겨진다.
▲ 출범 3년 차를 맞은 윤석열 정부의 ‘글로벌 중추국가(GPS·Global Pivotal State)’ 외교가 갈림길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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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략적 균형보다는 한·미·일 동맹 강화 구도에만 치우친 탓에 북·중·러를 자극해 진영 간 대결을 심화하고 한반도 긴장 수위를 높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글로벌 중추국가 비전이 용두사미가 되지 않으려면 가치 연대를 토대로 보다 유연하면서도 정교한 실용 외교가 필요하다. 소통 부족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윤 대통령이 “평화는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는 국제사회와의 연대에 의해 보장된다”며 취임사에서 예고한 가치 외교는 집권 2년 차에 두드러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에만 13차례 순방에 나섰다. 이 가운데 7월 찾은 폴란드에서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한 것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서방 진영에 더욱 밀착하려는 상징적인 행보로 손꼽힌다.
두 달 뒤인 9월 인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회의는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한국의 역량을 보여주는 플랫폼으로 활용했다. 윤 대통령이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대응을 지원하는 ‘녹색기후기금(GCF)‘에 3억 달러를 추가 공여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앞서 5월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때 약속했던 한국의 기여를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민주주의 연대의 기치 아래 개최된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는 3자 안보 협력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인 이정표로 남았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캠프 데이비드 회의 이후 발간한 ‘한미일 정상회의 성과와 후속 과제’ 보고서에서 “정책적 시야가 한반도에 한정됐던 한국이 개별 국가 단위를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 수준의 안보 행위자로 등장했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미국 외교 역사상 유래가 없다는 평가를 받는 핵협의그룹(NCG) 출범으로 한미동맹은 한 단계 더 도약했다.
일본과도 과거사 갈등을 일단락하고 결속 강화에 속도를 냈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한 해에만 7차례 회담하고 앞서 장기간 중단됐던 한일 간 각종 협의체도 속속 재개했다.
윤 대통령은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국제질서 재편을 주도하는 능동적 행위자로 변모했다고 자찬한다. 최근 재외공관장 회의 만찬 자리에선 ‘시그니처(signature·대표적 특징) 정책’이라고 치켜 세웠다.
그러나 이 행보는 북중러와의 외교 공간을 좁히며 동북아 신냉전 구도를 촉진시킨 과정이기도 하다.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부산 유치 실패와 같이 가시적인 성과물도 내지 못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중러의 엄호 속에 북한의 도발 양상은 한층 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유엔 제재를 회피해가며 북한 편들기에 나서는 중러의 행보가 더 대담해질 수도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감시망인 전문가 패널 임기가 지난달 30일 종료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3년째 이어진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전까지 대러 관계의 회복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나마 4년여간 멈췄던 한중일 정상회의가 얼어붙은 한중 관계를 개선할 계기로 삼을 수 있는지 주목된다. 이로 인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방관하는 중국의 태도에도 변화가 생길 여지가 있다.
외교가에서는 글로벌 중추국가 비전 실현을 위해 가치 동맹을 중시하되 국익을 위해 정교한 실용 외교를 펴야 한다고 주문한다. 다자주의가 본질인 현 외교 상황에서 외나무다리 외교로 가게 될 경우 장기적으로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미 및 한일 양자 관계는 모멘텀을 잘 살려 나갈 수 있도록 그간의 회담 후속조치를 통해 구체적 성과로 만들어야 한다.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을 여전히 서슴치 않고 과거사를 왜곡하는 우익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켰다. 미국은 동맹을 경시하는 성향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이 점쳐진다.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더 많은 국가와의 연대도 강화해야 한다. 미일과의 결속을 디딤돌 삼아 다자 무대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좀 더 냉정하게 국제정세를 분석하고 좀 더 유연한 외교 정책을 수립·추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적극적인 소통도 수반돼야 한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타국에 대한 공여와 지원이 ‘퍼주기 조공’이 아니라 국격 상승과 공동이익 확대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정부 당국자는 “우리 국민과 기업들이 피해 입지 않도록 편향된 외교에서 벗어나 상호 이익을 얻는 구조를 만들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과 경제·안보 정책 변화에도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