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얼음. 배우 박해수는 이 수식이 단숨에 납득 가능한 연기를 보여준다. 고전의 재해석으로 입소문이 난 호주 연출가 사이먼 스톤이 LG아트센터와 손잡은 연극 <벚꽃동산>에서 그는 연약함이 깃든 상처 입은 맹수처럼 보인다. 감정적으로 뜨겁게 설득하지만, 실리적인 측면엔 이성적으로 판단한다. 뜨거운 김을 내뿜는 불도저처럼 일을 밀어붙이지만, 그 내면은 금방 녹을 듯이 유약하다.
스톤은 안톤 체홉의 <벚꽃동산>이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어울리는 고전 텍스트라고 판단했다. 원작은 벚꽃동산을 잃게 된 여주인의 현실을 통해 지주 계급의 몰락을 다뤘다. 이번 연극은 한국 재벌이라는 계급을 통해 완벽한 ’K-패치‘를 선보인다. 본래도 ’막장 드라마’ 요소가 있지만 거기서 삶의 불편한 본질을 불안한 미학으로 승화하는 체홉의 아우라가 살아 있으면서도 현대적인 드라마로 재탄생했다. 이 덕분에 지난 6월 4일 개막해 7월 7일 막을 내린 이 작품은 갖가지 화제를 낳으며 연이어 매진사례를 기록했다.
사이먼 스톤 연극 ‘벚꽃동산’에서 신흥부자 황두식 역···상처 입은 맹수로 열연
현대적·고전적 매력 잘 표현 “광활하고 거친 들판에 이따금 피어 있는 데이지”
“전도연은 아우라, 사랑의 에너지 큰 배우···이야기로 들어가는 모습 경이로워”
“안톤 체홉의 작품은 정말 리얼···망원경으로 우리 삶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 호주 연출가 사이먼 스톤이 LG아트센터와 손잡은 연극 '벚꽃동산'에서 박해수는 연약함이 깃든, 상처 입은 맹수처럼 열연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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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벚꽃동산>에서 로파힌은 농노의 아들로 태어나 부를 일군다. 스톤·LG아트센터의 <벚꽃동산>에서 이 캐릭터는 아들에게 폭력적인 운전기사 부친을 둔 ‘황두식’으로 변주된다. 그 역시 극 중 재벌인 송가(家)네 명예와 부동산을 거머쥐는 신흥 부자다. 박해수가 황두식이다.
황두식은 배우 전도연이 연기한 재벌 3세 ‘송도영’으로부터 어릴 때 위안과 희망을 얻지만, 그것이 그녀의 호의가 아닌 일종의 습관이라는 걸 깨달은 뒤 차츰차츰 현실적으로 변한다.
그런데 박해수의 황두식은 다른 배우들과 연기 톤이 다소 다르다. 홀로 더 연극적이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수리남> 등을 통해 매체에서도 입지를 굳힌 그는 2007년 연극 <안나푸르나>로 데뷔한 이후 무대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렇다고 이번 <벚꽃동산>에서 발성·신체 등 자신의 장기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특성이 유약하고 시대에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채, 합리적으로 생각하지 못 하는 재벌들의 현실을 부각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스톤이 박해수를 관찰하고 그의 캐릭터를 황두식에 반영한 덕분이다. 그래서 황두식은 가장 진보적인 캐릭터이지만 그가 갖고 있는 한국적 비극성 때문에 동시에 가장 고전적인 인물로 해석되기도 한다.
벚꽃동산 프로덕션의 드라마터그와 번역을 담당한 이단비 작가는 박해수에 대해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배우다. 사이먼 연출은 그를 무대 위의 동물 같다고 표현하며 감탄했다. 그런데 무대를 압도하는 신체적 아우라와 대비되게 섬세하고 연약한 정서를 품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박해수 배우가 연기하는 황두식을 보면 광활하고 거친 들판에 이따금 피어 있는 데이지 꽃을 발견해 가는 기분이 든다”고 분석했다.
박해수는 또 ‘넷플릭스 공무원’에 이어 이제 ‘LG아트센터 공무원’이라는 별명까지 달 태세다. 과거 ‘LG아트센터 역삼’ 시절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인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2011)에 출연했던 박해수는 LG아트센터가 마곡으로 이전하고 제작한 대극장 연극 두 편 <파우스트>(2023), <벚꽃동산>(2024)에 연달아 캐스팅됐다.
총괄 프로듀서로 나선 이현정 LG아트센터 대표를 도와 <벚꽃동산>을 제작한 LG아트센터 신민경 프로듀서는 “황두식은 원작에서 로파힌의 변주다. 관객들에겐 밉상 캐릭터인데, 박해수는 여러 층위로 캐릭터를 이해했고, 황두식의 말과 행동이 ‘나같아도 그럴 것 같아’라는 정서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힘이 강력했다”고 톺아봤다.
또 스톤은 박해수에 대해 “무대든 스크린이든 매체를 가리지 않고 이런 최상의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한국 배우들과 작업하고 싶던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고 다시 그 행운을 갖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어쩌면 빠른 미래에, 박해수 배우와 영화 작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박해수는 그저, 믿음이다. 그가 출연하는 연극이든 영화든 무엇이든 우리는 쫓아가서 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다음은 뱌유 박해수와 주고 받은 일문일답.
-공연을 마무리한 소감은.
▲한 달간의 공연인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오랫동안 만나 기대고 살았던 것 같다. 다른 배우들도 같은 마음이지만 많이 고마워할 것 같다. 무대에서 이렇게 온전히 나 자신의 민낯을 보여준 것도 참 오랜만이다. 처음 같기도 하다. 그래서 더 공허하다.
-이번 연극에서 전도연 씨에 대한 존경을 내내 표시했다.
▲전도연 선배님과 공연하면서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 장시간 동안 무대 위 관객들 앞에서 눈 마주치며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좋아서 이 작품을 선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수 씨가 무대에 서봤기 때문에 든든해서 힘이 될 것’이라고 했지만 지금까지 온 결과 본인이 든든한 선배가 돼주셨다. 가진 아우라와 보듬어주는 사랑의 에너지가 엄청 큰 분이다.
송도영이 내 앞에서 자신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 이야기를 할 때 이 공간에 둘만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렇게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볼 때면 경이롭다. 내겐 평생 잊혀지지 않는 둘만의 순간이 될 것 같아 굉장히 감사하다. 나의 초반 대사 중 ‘들어가도 될까요?’ 다음에 ‘송도영이 서울로 돌아왔어. 믿을 수가 없어. 다시는 못 만날 줄 알았네’라는 대사가 있는데 그 대사에는 ‘전도연이 (27년 만에) 연극에 다시 돌아왔다는 기분도 들어가 있다. 그 대사를 할 때마다 매번 긴장감이 있었다.
▲ 박해수의 황두식은 다른 배우들과 연기 톤이 다소 다르다. 홀로 더 연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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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두식은 어떤 캐릭터이고 어떻게 해석하려고 했는가?
▲우선 사이먼 스톤의 연출 방향성과 의도는 자유로움이었다.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면서 나오는 사고나 순간이 되게 진실하고 자연스러우면서 살아 있게 만들 것이라는 얘기다. 배우한테 캐릭터 방향성에 대한 디렉션을 준 적은 없다. 나중에 스톤이 프로그램 북에 쓴 내용을 봤더니, 내가 생각했고 살고 있었던 것과 느낌이 좀 달랐다.
나는 두식이 자체가 미래 지향적인 현실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과거의 어떤 순간에 계속 얽매여 있는 인물이라고 느껴지더라. 엄마에 대한 부재, 폭력성이 있었던 아버지가 날 때렸던 순간, 그걸 지켜봤던 흐릿한 기억들 그리고 자신을 치료해 준 송도영을 통해 처음 느끼는 여성성 또는 사랑, 어머니에 대한 생각 그리움···. 그런데 그게 상처가 돼 있었던 것 같더. 거기로부터 해방감을 얻고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불쌍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더라.
스톤이 제일 공감한 캐릭터가 황두식이었다고 적은 부분이 있었는데 그도 아버지에 대한 어떤 과거의 기억에서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게 있었던 것 같다. 나 또한 그런 게 있다. 과거 아버지한테 인정받지 못한 아들이었다. 연극을 한다고 처음 말씀 드렸을 때 ‘아버지의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내가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딴따라’라는 말이 있었다. 그 가운데 증명 받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지금은 감사하게도 아버님께서 좋아하시지만, 그걸 증명해내고 싶었던 아들로서 내 입장이 <벚꽃동산>을 유지하는 것과 맞물리며 유일하게 남아 있는 추억 자체가 목적성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 두식이 변화해 (송씨 가문의 회사와 집을) 사는 건 과시적인 것보다는 ‘누군가는 책임져야 된다’는 냉정함을 깔고 작동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스톤이 마지막 장면에 대해선 연출을 줬다. ‘새로운 시대가 올 거야’라는 대사를 애잔하게 친 적이 있는데 ‘정치인처럼 하라’고 요청하더라. ‘넌 사랑도 잃고 영혼도 잃었잖아. 아무 생각하지 말라’고. 실제 그렇게 대사를 치다 보니까 더 아프더라.
-안톤 체홉 작품은 희곡 작가 지망생 ‘꼬스쟈’를 연기한 <갈매기>에 이어 두 번째다. 체홉은 어떤 매력이 있는 작가인가?
▲<갈매기>는 대학교 다닐 때만 네 번 했다. 졸업 공연은 (안톤 체홉의 또 다른 작품인) <세 자매>였죠. <벚꽃동산>은 한 번도 해보지 못해 너무 작업하고 싶었다. 체홉의 작품은 정말 리얼하다. 망원경으로 우리 삶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캐릭터들이 동시다발적인데 삶 속에서 다른 친구들의 인생을 보여주는 것이다. (장면의) 점프도 있고 그 안에 간극도 있는데 ‘저 사람이 왜 갑자기 저렇게 변화했지?’라는 궁금증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게 삶이기도 하다.
특히 체홉의 작품에서 갑자기 코미디가 될 수도 있고, 갑자기 비극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 참 재밌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그 부분이 가장 ‘하이퍼 리얼리즘’에 가깝다. <갈매기> 연출님(오경택)이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체홉이 어떻게 보면 막장 드라마일 수 있는데, 그 안에 내면의 겹이 있고 캐릭터엔 애정·슬픔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비웃음의 느낌이 있다고.
-무대 세트도 인상적이었다. 배우들이 연기하기엔 어떤 공간이었나.
▲사울 킴 무대 디자이너가 작업했다.(사울킴은 건축가로 계원예술대학교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활동을 많이 안했고, 외국에서 활동을 주로 하는데 사이먼이 사울 킴의 팬이다. 연습 때부터 연습실 안에 지금의 무대 세트가 그대로 똑같이 들어왔다.
연극은 공간의 예술이기도 하다. 처음엔 이 공간에서 ‘도대체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 안에 들어가서 연기를 하다 보니까 서로에게 훨씬 더 집중할 수 있게 되더라. 사이먼은 연출 의도라고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지붕을 오르내리고 2층과 아래층을 각각 사용하는 인물이 분류가 돼 있기도 하다. 송가네 식구들 중에서 송재영(손상규 분), 송도영은 그 옥상에 올라가지 않는다. 욕망이 있는 변동림이나 이방인들이 그쪽을 더 많이 사용한다. 또 높낮이의 차이로 무대를 쓸 수 있게 되니까 배우들은 자연스럽게 불안감과 에너지를 느끼게 된다. 몸이 불안하니까 발현할 수 있는 다른 에너지들은 무대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또 방음벽이 굉장히 잘 돼 있다. 문을 닫으면 바깥 관객들의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아서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더라.
-관객뿐 아니라 배우들, 감독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된 연극이었다.
▲내가 이렇게 많은 연예인, 감독님들을 많이 본 적이 없다. 시상식보다 더 많이 만나고, 더 많이 인사했다. 이창동 감독님, 박찬욱 감독님, 이준익 감독님, 설경구 선배님이 관람했는데 ‘살아 있는 오디션’을 보는 느낌이었다. 이런 기회가 또 어디 있겠는가. ‘내가 봤던 <벚꽃동산> 중 최고였다’는 평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연극에 대한 애정은 어디서 비롯된 건가?
▲<벚꽃동산> 공연 막바지가 되니까 더 간절해지면서 ‘내가 왜 무대를 그렇게 좋아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정말 솔직하게 내가 배우는 것들이 많았다. 나의 민낯을 보고, 욕심도 보고, 부끄러운 점도 보고, 부족한 점도 보고, 성숙하지 못한 부분도 봤다. 그런 깨달음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는 내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무대의 에너지를 가지고 밖에 나가서도 총칼을 들고 전투에 임할 때가 있는데, 사실 나는 되게 연약한 사람이다. 눈치도 많이 보고, 결핍도 많은 사람이고. 그런데 무대 연습 과정 속에서 그걸 배우들이랑 나눌 수 있다. 한 대사를 여러 방면으로 치면서 스스로 나의 결핍에 대해 위로하기도 한다. 그런 연습 과정이 되게 행복하더라.
또 무대 위 10명의 배우가 있으면 10명 모두가 똑같은 에너지로 같이 떨고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된다. 그렇게 공허하고 외로워하는 배우들을 보면서 관객들이 그 순간 위로를 받고 치유를 받지 않는가. 영화, 드라마와 다르게 그 시간대에만 존재하는 소중함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그 순간이 꼭 마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번엔 정말 10명의 배우가 유기체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스톤이 처음부터 만들어준 결과물인데, 소속감도 굉장히 많이 느꼈다. 계속 무대를 이어갈 수 있는 힘이기도 하고 또 내게 큰 숙명처럼 다가왔다. 매체나 영화를 통해서 인지도를 올리고 싶고 위로도 드리고 싶지만, 무대 예술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해수 씨의 장점이 많지만 그중 하나는 신체적 아우라와 함께 그 내면의 섬세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지점같다. 그런 대목 덕분에 묘한 감정이 많이 들었다.
▲나는 원래 그렇게 강한 사람은 아닌데 내가 갖고 있는 성향이나 에너지가 비교적 큰 덩치에서 나오는 게 있을 수 있다. 또 무대에선 나의 온몸이 다 보이니까. 그런데 사실 나는 결핍이 많고 트라우마도 많고 눈치도 많이 보는 사람이다. 연극만큼 매체를 길게 하면 (무대 위 장점의 모습들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톤 연출가가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고 하더라. 쪽대본을 주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다고 하던데.
▲스톤은 매일 어느 분량의 대본을 주고 우리가 리딩을 하면서 그것에 대해서 다시 영감을 받아서 작업을 하고 싶어하는 연출이었다. 우리가 리딩을 하는 동안 연출님은 계속 지켜보면서 톤과 성격을 파악했다. 그걸 바탕으로 다음 대본을 완성하고는 했다. 배우가 처음부터 끝까지 내용이 있는 대본을 받고 시작하면 어떤 라인을 긋는데 스톤은 어떤 삶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라인을 긋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이다.
순간순간 살다 보면 그 다음 방향성이 정해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연출인 것 같다. 반면 배우들은 두렵다. 이 캐릭터가 도대체 어떻게 발전해서 어떤 감정 상태를 지니고 어떻게 성장하는지 궁금한데 그걸 얘기를 해주지 않으니까. 그런데 연습에 들어갔을 때 그것에 대한 걱정은 없어졌다. 모두가 믿게 된 것이다. 또 우리가 생각하는 편견과 이성적인 계산은 자신이 반응하는 생존력보다는 약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무대에서 실수를 한 적도 있다던데.
▲내가 무대에서 실수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닌데, 이번 <벚꽃동산> 첫 공연 때 대사 8줄을 빼먹은 적이 있다. ‘회사를 조각으로 나눠서 팔아야 합니다’라는 부분이었는데, 내가 그걸 빼먹으니까 다들 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일단 넘어갔는데 내가 순간 느꼈다. ‘어떻게든 이 말을 꼭 해야 된다’고. 그런 생각이 든 때부터 대사에 대한 갈망이 엄청 생겼다. 그리고 그 장면에서 나가기 전에 그걸 다 쏟아부었다. 그 과정에서 도연 선배님, 상규 배우님, 병훈 선배님이 전부 나를 도와주고 있었다. 그것이 내게는 정말 실수지만, 그 순간에 나를 진짜 살아 있게 만들기도 했다.
-<벚꽃동산>에 대한 호평 중 박해수 씨의 무대 장악력에 대한 부분이 많더라. 그것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가?
▲장악이라는 것이 뭘까? 음···. 정말 친한 배우한테 솔직하게 물어본 적이 있다. 혼자 너무 에너제틱하거나 욕심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도 들었다. ‘내가 나를 혹시 과시하고 있나. 나를 뽐내려고 내 장기를 쓰고 있나’라고 솔직하게 물어봤다. 그 친구가 그러더라. ‘형의 캐릭터가 그 에너지를 갖지 못하면 나머지 캐릭터들과 만나지 못한다’고. 황두식에게 그 정도의 에너지와 갈급함이 없으면, 나머지 캐릭터의 우유부단함, 그리고 그들이 움직이지 않는 답답함에 대한 동의를 관객들이 얻지 못했을 거라는 얘기다. 그래서 ‘형은 그 에너지를 가져야 된다’가 그 친구가 내린 결론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스토리일 수 있고, 내가 갖고 있는 피지컬일 수 있는데 무엇보다 무대에서 절실하려고 한다. 진정성 안에서 절실하다는 걸 가장 강력하게 설득하고 싶어서다. 유병훈 선배님께서 ‘이 집을 가장 사랑하는 것은 황두식일 수 있겠다’고 얘기해주셨다. 그 믿음이 나한테 강하게 들어와서 이 집을 살리고 싶어 하는 유일한 사람은 진짜 황두식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부분이 좀 세졌으면 했다.
-이번 작품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나?
▲간단히 얘기하면 상실, 사랑에 대한 얘기가 있는 것 같다. 가족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과 그걸 지켜내면서 미래로 가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소극장에서 관객 한 명 두고 공연했을 때를 떠올린다면.
▲절대 잊지 못한다. 관객 한 명과 스태프가 마름모꼴로 앉아서 공연을 봤다. 너무 자리가 비어 있으니까 배우보다 관객이 많아야겠다 싶어서 스태프가 채운 것이다. 그때 진짜 모든 배우들이 최선을 다해서 했고, 끝난 뒤 서로를 안으면서 수고했다고 얘기했다. 그때의 초심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한 명, 한 명의 인생을 살릴 수 있는 게 무대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사춘기>라는 작품을 할 때 공연이 끝난 뒤에도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성 관객이 객석에 계속 앉아 있더라. 이후 퇴근을 하는데 그 친구가 막 울면서 나한테 와서 ‘살 수 있는 희망을 얻었다’고 했다. 아마 좋지 않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중에 내가 <유도소년> 공연을 하는데 그 친구가 또 찾아왔다. ‘저 기억 나냐’고 물어봤는데 딱 보니까 느낌이 확 오더라. ‘그 친구가 당신이군요’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대학 잘 다니고 있고 잘 살고 있다. 희망 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더라. 모든 영화, 음악, 미술이 위로와 치유가 가능하지만 연극은 직접적으로 관객이 ‘진짜 숨 쉬고 있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어 나 또한 위로를 받는 참 감사한 장르다. 배우로서 내가 해야 할, 믿을 수 없는 일들을 경험하면서 그 초심은 항상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