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GPT-4가 내과 전공의 및 전문의보다 더 높은 진단 정확도를 보였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돼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미국 의사회 내과학회지(JAMA Internal Medicine)에 발표에 따르면, 오픈AI의 챗GPT-4가 의학적 임상 추론 능력에서 실제 의사들보다 뛰어난 성능을 보였다고 한다. 베스 이스라엘 디코니스 메디컬 센터(BIDMC) 연구진은 현직 의사 39명과 GPT-4에게 동일한 환자 사례 20개를 제공하고 진단하도록 했다. 그 결과 진단의 정확도, 효율성, 근거 제시 등 여러 평가 항목에서 GPT-4가 현직 의사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GPT-4는 20개 문제에 대해 평균 10점 만점을 기록한 반면, 내과 주치의 21명은 평균 9점, 레지던트 18명은 평균 8점을 받았다.
이번 연구는 GPT-4의 놀라운 임상 추론 능력을 보여주었지만, 의료 AI 기술의 발전과 활용에 있어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것을 시사한다. 앞으로 의료 AI 기술의 발전과 함께 윤리적 사용과 규제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인공지능(AI)이 의료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의료계에서도 AI가 도입된 이후 환자의 질환을 과거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예측과 진단’ 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야말로 ‘빠·정·예·진’ 의료 AI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국내 의료 AI 분야 선두 업체들의 솔루션을 실제 사례 중심으로 소개한다.
AI 심정지 예측시스템 ‘뷰노메드 딥카스’, 호흡·혈압·맥박 데이터로 발생 예측
기존 시스템 침묵···의료진 ‘의심 반 걱정 반’ CT···패혈증 확인 후 응급 수술
강릉아산병원 AI가 희귀암 진단···AI 기반 ‘웨이메드 엔도’ 혁신의료기기 지정
▲ 일산백병원이 ‘뷰노’의 심정지 예측 AI 프로그램인 딥카스를 도입해 병동 간호사들이 프로그램을 시연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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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죽음을 막은 AI의 경고
“다음날 퇴원을 하기로 오전에 듣고 그날 오후부터 컨디션이 저하됐다. 갑자기 미열이 있고 조금 기운이 없었던 정도였는데 여러 의료진이 와서 검사와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해서 무척 당혹스러웠다.”
의정부을지대병원에서 뇌동맥류 수술을 받은 50대 남성 A씨는 지난해 7월 7일의 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하지만 당시 의료진의 판단은 달랐다. 일주일 전 도입한 인공지능(AI) 기반 심정지 예측 시스템 ‘뷰노메드 딥카스(딥카스)’가 기준 수치인 85점을 넘은 87점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딥카스를 확인한 의료진은 곧바로 A씨가 있는 12층 병실로 출동했다. 의료진은 A씨에게 수액과 항생제 치료 등 응급조치를 취하고 컴퓨터단층(CT) 촬영 후 중환자실로 이송했다. CT 촬영 결과 A환자는 신우신염에 의한 패혈증이 확인됐다. 심정지 발생 위험도가 87점까지 상승한 원인이었다. A씨는 의료진의 신속한 치료 후 상태가 호전돼 일반 병실로 복귀했다.
의정부을지대병원이 의료 AI 전문기업 뷰노의 ‘딥카스’를 도입한 지 일주일 만에 이룬 성과였다. 딥카스는 A씨와 같이 일반병동 입원환자의 호흡, 혈압, 맥박, 체온 등 4가지 활력징후 데이터를 분석해 환자의 24시간 내 심정지 발생을 예측한다. 심정지 발생 위험도를 0~100 사이의 숫자로 의료진에 제공한다.
딥카스를 도입한 병원의 일반병동 입원환자라면 누구나 AI를 통한 심정지 예측 관리를 받을 수 있다. 딥카스는 비급여 항목으로 병원마다 청구 금액은 하루 기준 7000원에서 1만 원 초반으로 다르다.
뷰노는 “올해 3월 기준 상급종합병원 15곳을 포함해 83개 병원에서 뷰노메드 딥카스를 도입해 청구하고 있다”며 “별도로 40여 개 병원에서 데모 및 구매 절차를 진행 중이다. 누적 청구 병상 수는 3만3000개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딥카스는 여러 연구를 통해 신뢰성을 구축했다. 딥카스의 예측 성능은 예측 정확도를 나타내는 성능지표인 AUROC를 기준으로 0.869를 기록했다. 1에 가까울수록 정확도가 높다는 의미다. 이는 기존 인공지능 기반이 아닌 일반병동 입원환자 대상 모니터링 시스템 방법들(NEWS 0.767·MEWS 0.756)대비 우수한 수치다.
선현우 신속대응팀장(중환자외상외과 교수)은 “시스템 도입 후 환자를 살린 첫 사례”라며 “일반병동에 입원 중인 고위험환자를 조기에 예측·발견해냄으로써 중환자실 이송 등 신속한 대응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 인공지능이 찾아낸 ‘패혈증’
최근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개복 수술을 받은 B씨. 수술 부위에 문제가 있어 재입원을 한 B씨는 외견상 큰 이상이 없어 보였다. 또한 재입원 과정에서 실시한 컴퓨터단층(CT) 촬영에서도 특이점은 없었다. B씨는 입원 후 응급 상황 없이 병원에서 며칠을 보냈다. 그러던 B씨를 모니터링하던 에이아이트릭스의 의료 AI 솔루션 ‘바이탈케어’가 경고 알람을 울렸다.
같은 날 담당 주치의 회진 시에도 큰 문제가 없었고, 다른 기존 알람 시스템도 모두 침묵했던 터라 의료진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의료진은 의심 반 걱정 반으로 B씨에 대한 CT 재촬영 결과 ‘패혈증’을 확인했다. 의료진은 급히 개복 수술에 돌입해 환자를 살릴 수 있었다.
▲ 에이아이트릭스의 바이탈케어는 병원 내 환자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환자 상태 악화 위험을 조기에 예측하는 의료 AI 소프트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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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아이트릭스의 바이탈케어(AITRICS-VC)는 병원 내 환자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환자 상태 악화 발생 위험을 조기에 예측하는 의료 AI 소프트웨어다. 또한 바이탈케어는 전자의무기록(EMR) 데이터인 6가지 활력징후, 11가지 혈액검사, 의식 상태, 나이 등 총 19가지를 분석해 패혈증, 심정지, 사망 등의 발생 위험도를 조기에 예측한다.
에이아이트릭스는 “바이탈케어는 에이아이트릭스의 독자 기술을 이용해 환자 상태 악화 예측에 사용되는 조기 경보 점수인 수정조기경보지수(MEW), 조기경고점수(NEWS) 등의 정확도를 향상시키고 의료진이 환자 상태 악화를 미리 예측할 수 있도록 돕는다”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바이탈케어는 병원 내 패혈증, 심정지, 사망 등의 위험을 조기 예측해 50곳 이상의 병원에서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추후 미국에서도 단계적으로 제품에 AI를 탑재해 적응증을 넓힐 계획이다.
최근에는 에이아이트릭스가 바이탈케어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510(k)를 획득했다. 510(k)는 미국 내에서 합법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기존 허가 제품들과 비교해 대상 제품과 실질적 동등성을 입증하는 절차다.
바이탈케어는 국내에서 도시 물론 의료취약지 등으로 보폭을 넒혀가고 있다. 에이아이트릭스에서 임상연구팀을 총괄하고 있는 한림대학교춘천성심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이기병 교수는 “바이탈케어는 기본 개념상 임상의사결정지원시스템(CDSS)”이라며 “의료진의 임상적 의사결정과 판단을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바이탈케어는 의료 인프라가 어느 정도 집중돼 있는 대도시의 병원에서도 예측 성능을 발휘하지만 최근 연구결과를 보면 상대적으로 인프라가 부족한 병원에서 덜 충분한 데이터를 통해서도 패혈증 및 환자 악화에 대해 준수한 예측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논점은 개념적인 미충족 수요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미충족 수요 해결에도 도움을 준다”라고 설명했다.
3. 초장에 콕 잡아낸 AI 내시경
“암일 확률(Cancerous) 80~90%다.”
지난 7월 위·대장 내시경 검사를 진행하던 강릉아산병원 홍종삼 건강의학센터장의 모니터에 이런 알림 메시지가 띄어졌다. 이날 검사 대상자는 건강검진을 목적으로 위·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던 40대 남성이었다.
2021년부터 건강의학센터장을 맡아온 전문가인 홍종삼 센터장의 눈에 위염으로 보이는 케이스가 보였고, 해당 이상 병변을 AI 내시경 웨이메드 엔도가 암일 확률(Cancerous) 80~90%로 보여준 것이다. 웨이메드 엔도는 별도의 모니터를 통해 AI 기반으로 예측한 암 가능성을 알려준다.
▲ 강릉아산병원 홍종삼 건강의학센터장이 AI 내시경 웨이메드 엔도를 사용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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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센터장은 AI 내시경을 믿고 곧바로 조직검사를 시행했다. 해당 병변은 특수 염색까지 진행해 조직검사를 한 결과 희귀암인 랑게르한스세포 조직구증으로 진단됐다. AI 내시경이 의료진을 보조해 희귀암까지 잡아낸 것이다.
랑게르한스세포 조직구증은 백혈구의 일종인 랑게르한스세포(Langerhans cell)가 뼈, 피부, 폐 등의 장기에서 과다증식하며 손상을 일으키는 드문 질환이다.
호르몬을 분비하는 내분비샘들의 여러 기능을 조절하는 뇌하수체를 침범하기도 한다.
강릉아산병원에 따르면 해당 랑게르한스세포 조직구증이 위에 단독으로 침범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2016년 국내에서 처음 발생할 정도로 희귀 사례에 속한다. 국내 학회에 첫 보고된 것은 2016년 대한내과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한국원자력의학원이 45세 여자 환자의 위만 단독 침범한 랑게르한스 세포 조직구증을 진단한 사례다.
이날 홍종삼 센터장이 활용한 웨이메드 엔도는 AI로 위·대장 내시경 영상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이상병변을 감지 및 분석하는 의료기기 소프트웨어다. 8월 현재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중앙보훈병원, 강릉아산 등 국내 다수 의료기관에 도입돼 있다.
웨이메드 엔도의 개발업체인 웨이센 관계자는 “국내 최초 인공지능 내시경으로 식약처 2등급, 3등급 인허가를 획득했다”며 “식약처 제37호 혁신의료기기로 지정받은 바 있다”고 말했다.
웨이메드 엔도를 경험한 의료진은 의료 AI에 대한 중요성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홍종삼 센터장은 “위·대장 내시경의 목적은 조기 암을 발견하고 치료하는 것이다”며 “AI로 위, 대장 내 이상병변을 빠르고 정확하게 발견하고, 병원의 신속한 치료 대응 전략을 가져가는 것이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4. 의사의 촉과 인공지능 경고
최근 수원에 위치한 화홍병원 응급실로 외상을 입은 6살 소아 환자가 이송됐다.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 결과 머리 부분에 이상은 없었기에 눈에 보이는 외상 치료를 마친 후 환자는 귀가 준비를 했다.
하지만 지역응급의료센터로 24시간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화홍병원 의료진은 뇌를 감싸고 있는 머리에서 소량의 출혈이 있을 가능성을 의심했다. 소아 환자의 경우 뇌 CT 영상에서 소량의 출혈은 안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뇌를 싸고 있는 뇌경막 아래쪽으로 혈종이 고인 경막하출혈이 그런 경우다.
그때 박용석 화홍병원 기획조정실장(응급의학과 전문의)의 눈에 ‘경막하출혈이 있다‘는 알림이 눈에 들어왔다.
박용석 실장은 “외상 환자들의 경우 경막하출혈이 있는데 의사들이 구분하기 조금 애매할 때가 있다”며 “‘(의료AI가) 경막하출혈 있다‘라고 판독을 해줘서 신경외과와 상의 후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해서 출혈을 확인해 입원한 사례“라고 말했다. 코어라인소프트의 AI 기반 뇌출혈 뇌 영상 검출 및 진단 보조소프트웨어 ‘에이뷰 뉴로 캐드’가 제 역할을 해낸 순간이었다.
응급실에서는 두부 외상과 두통, 의식저하 등의 뇌 관련 질환이 있는 경우 우선적으로 CT 를 시행한다. CT는 검사시간이 짧고 비용이 저렴해서 MRI보다 우선해 촬영한다. 하지만 CT는 적은 양의 출혈이나 2주가 지난 출혈의 경우 확인이 어렵다는 제한이 있다.
▲ 화홍병원 의료진이 코어라인소프트의 에이뷰 뉴로캐드를 사용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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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출혈 환자의 출혈량을 파악하는 것은 수술 여부를 결정지어 중요한데 계산식을 통해 의사가 직접 계산 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코어라인 AI솔루션은 출혈시에 양을 자동으로 계산해 준다. 현재 화홍병원에서는 CT 촬영전에 AI 관련 사항에 관해서 내용과 비용을 설명하고 있으며 환자 또는 보호자 동의 하에 시행 중이다.
‘에이뷰 뉴로 캐드’는 민감도가 높다. 의료진이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박 실장은 “(민감도가 높은 것은) 최대한 조금이라도 뇌출혈의 가능성이 있는 영상을 잡아내 준다는 의미”라며 “다만 가끔 뇌출혈이 있다고 한 영상에서 아닌 경우가 종종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민감도가 높은 프로그램은 환자 입장에서는 좋지만 진료하는 의사는 더 신경 써서 봐야 하므로 힘이 든다”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프로그램에서 뇌출혈 0cc 라고 표기할 경우에는 뇌출혈이 생기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빠르게 CT 영상을 볼 수 있어 편리하다”고 말했다.
코어라인소프트는 코어라인 에이뷰 뉴로캐드를 비롯해 심혈관 영상 검출·진단 보조 소프트웨어 ‘에이뷰 에이올타’, 폐색전증 진단보조 AI 소프트웨어 ‘에이뷰 피이’ 등을 출시했다. 코어라인소프트는 “응급질환 대상으로 검출 및 결과 알림을 보내주는 AI를 도입할 경우 응급실에서 보다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화홍병원은 코어라인소프트를 비롯해 다른 업체의 의료 AI도 운용 중이다. 의료AI의 이점을 확인한 화홍병원은 다른 업체의 솔루션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55명의 전문의가 있는 화홍병원은 수원, 화성 지역을 비롯해 수도권 필수 의료를 담당하고 있는데 중증환자, 특히 응급실에 환자가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할 경우 신속한 진단이 필요하다.
박 실장은 “마침 신의료기술을 통해서 AI 판독보조 프로그램이 출시돼 사용해 보게 됐다. 진료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며 “환자들이 몰리게 되면 신속한 CT 판독이 필요한데 의료AI를 확인한 다른 의료진이 ‘출혈이 발생으로 판독됐다‘라고 알려만 줘도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의료 AI 운용은) 결국 환자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며 “현재도 다른 의료 AI 도입을 위해서 데모 버전 등을 써보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