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사비 급등으로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 조합 사업시행자와 시공사 간의 갈등이 계속되자 정부가 공사비 검증이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관련 기준 개정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8월 9일 공사비 검증을 공사계약을 체결하는 단계부터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 일부개정 고시안을 행정예고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살펴보면 개정안은 사업시행자 등이 공사계약을 체결하기 전 정비사업지원기구에 계약내용을 검토받을 수 있도록 했다.
국토부는 개정안에 대해 “공사계약 내실화 및 공사비 갈등 가능성을 완화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검토 대상에는 공사비 산출 근거를 비롯해 공사비 및 공사기간 변경 등에 관한 사항도 포함된다.
국토부, 재개발·재건축 갈등 최소화···정비사업 공사비 검증기준 등 행정예고
계약 전 공사비 검토 가능···공사비 검증 신청 및 서류 보완 기한 30일 내로
정비사업 간소화 불구 기부채납 분쟁 걸림돌···노인요양시설 설치 놓고 반발
▲ 8월 1일 서울의 한 레미콘 공장에 믹서트럭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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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 일부개정 고시안에서 시공자가 사업시행자 등에게 공사비 증액을 요청하려는 경우 공사비 세부 내역서 등 증빙자료를 포함해 요청하도록 했다.
국토부가 8월 9일 행정예고한 ‘정비사업 공사비 검증기준’ 일부개정 고시안에 따르면 국토부는 공사비 검증 제출 서류도 구체적으로 정했다.
개정안에는 기존 ▲사업개요 및 주요 추진경과 ▲사업시행계획 인가서 등 인·허가 서류 ▲공사비 총괄표 및 세부내역서와 물량 및 단가산출서 ▲변경 전·후 설계도면 외에도 ▲입찰공고문과 ▲입찰 제안서 등 시공사 선정 관련 서류를 비롯해 ▲공사도급계약서 ▲협약서 ▲산출내역서 ▲품질사양서 등 계약서류를 추가로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아울러 공사비 검증 절차가 무기한 지연되지 않도록 검증 절차의 기한도 뒀다. 조합 등 사업시행자가 시공자의 증액 요청일부터 30일 내에 공사비 검증을 신청하도록 함으로써 검증절차가 신속히 개시되도록 했고, 검증기관이 제출서류의 보완을 요구하는 경우 조합이나 시공자는 요청을 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보완을 마치도록 규정했다.
공사비 검증은 조합이나 시공사가 공사비를 일정 비율 이상 증액하는 시점에 정부 산하기관 등에 의뢰해 증액 여부나 규모가 적정한지 검증받는 제도다.
정비사업은 사업기간이 수 년에 걸쳐 이뤄지다 보니 물가상승에 따라 초기 계약 때보다 공사비가 오르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 자재비 및 인건비 급증으로 시공사 측이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면서 분쟁이 늘어나자 이를 중재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실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6월 건설공사비지수는 130.02(P)로 전년 동월 대비 2.04% 상승했다. 건설 공사비지수는 지난 2021년 6월 111.33에서 2022년 6월 124.92, 2023년 6월 127.42로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공사비 검증제도가 도입된 2019년부터 한국부동산원에 접수된 공사비 검증 건수는 2019년 3건→2020년 13건→2021년 22건→2022년 32건→2023년 30건으로 대체로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공사비 검증에 돌입하더라도 서류 미비 등으로 절차가 몇 년씩 지연되는 사례가 속출하자 갈등을 해결하고 정비사업을 빠르게 추진하기 위한 검증 절차의 의미가 퇴색된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기부채납 갈등에 정비사업 주춤
정부가 도심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정비사업 절차 간소화에 나선 가운데 재개발·재건축을 지연시키는 과도한 기부채납 문제도 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8월 8일 ‘국민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발표했다. 가칭 ‘재개발·재건축 촉진법’을 제정해 ▲기본계획·정비계획의 동시 처리 ▲사업시행계획·관리처분계획 동시 수립 ▲사업시행·관리처분 일괄 인가 등을 추진해 사업 절차를 간소화하는 게 골자다.
촉진법을 통해 사업 절차를 통합·동시 진행하고 행정청 인가도 한꺼번에 내림으로써 길게는 14~15년까지 걸리는 재건축·재개발 사업 기간을 5~6년가량 단축할 수 있다는 게 국토부 설명이다.
이와 함께 국토부는 8월 14일 서울시청에서 ‘기초지자체 인·허가 협의회’를 열고 주택공급 지연의 원인이 되는 주택건설사업 인·허가 장애요인을 해소하고, 제도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토부는 25개 자치구 인·허가 담당자들에게 과도한 기부채납이나 강화된 건축기준 요구, 근거 없는 건축물 층수·세대수, 분양가 제한 등으로 인·허가가 지연되거나 사업에 차질을 빚은 사례를 설명하고 각 자치구에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했다.
지침보다 과도한 면적에 해당하는 기부채납을 요구하거나 층간소음 1등급 등 시장 수준보다 높은 품질을 요구하는 경우 등으로 지연되는 사례를 막겠다는 취지에서다.
실제 기부채납을 놓고 지자체와 주민·조합 간 분쟁으로 정비사업이 지연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여의도 신속통합기획사업 1호 단지인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데이케어센터(노인요양시설) 기부채납을 놓고 아파트 주민과 서울시가 대립한 게 대표적이다. 서울시가 용적률 최대 400%, 최고 층수 65층 혜택을 주는 대신 공공기여 시설로 노인 주간 보호시설인 데이케어센터 설치를 요구하자, 일부 주민들이 현수막까지 걸며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사업 시행자인 한국자산신탁 측은 데이케어센터를 받아들여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려 하지만, 주민들은 그 대신 문화시설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이밖에 압구정3구역 조합은 공공보행교 기부채납, 개포현대2차 조합은 노인복지시설 기부채납 문제로 갈등 중이다.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아파트)의 경우 구청에서 단지 내 문화사회복지시설에 지역자활센터를 확장 이전하려 했지만, 주민들의 반발로 없던 일이 됐다.
고준석 연세대 경영전문대학원 상남경영원 교수는 “용적률 등 혜택을 주는 대신 공공기여를 요구하다 보니 주민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려 정비사업의 의사결정 과정이 오래 걸리게 된다”며 “과도한 기부채납 요구는 주택 공급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입찰 문턱 낮추는 조합들
건설사들의 ‘선별 수주’에 따라 주요 정비사업지에서도 시공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늘자 재건축·재개발 조합들이 입찰 문턱을 낮추고 있다. 조합들은 보통 하자 책임의 소재를 가리기 어렵고, 시공사별 품질 차이 가능성 등으로 2개 이상 건설사를 시공사로 선정하는 ‘컨소시엄’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러나 건설사들이 수익성이 높은 정비사업 현장을 중심으로 선별 수주에 나서면서 시공사를 찾기 어려워지자 컨소시엄도 허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뉴타운7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조합은 최근 한화건설과 GS건설 컨소시엄을 시공사로 선정하는 방안을 놓고 검토 중이다. 북가좌동 80번지 일대에 지하 4층~지상 26층 아파트 1407가구를 짓는 가재울7구역은 지난 5월부터 3차례에 걸친 입찰 공고에도 시공사를 구하지 못하자 컨소시엄을 허용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시행자인 송파구 거여새마을 공공재개발 사업도 지난 8월 10일 주민총회를 통해 삼성물산·GS건설 컨소시엄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거여새마을 재개발사업은 송파구 거여동 일대에 지상 최고 35층 총 12개 동 1678가구를 조성하는 것으로, 공사비는 3.3㎡당 780만 원으로 정해졌다. 이곳은 지난 2월 사업시행자로 지정된 LH가 3월과 5월 두 차례 시공사 선정 입찰이 모두 유찰된 끝에 삼성물산·GS건설 컨소시엄으로 시공사가 정해졌다.
강서구 방화3재정비촉진구역 재건축조합도 기존 공고에서 금지했던 컨소시엄을 허용하고 9월 10일까지 재입찰에 들어간 상태다.
정비사업 조합들은 그동안 컨소시엄 방식을 선호하지 않았다. 하자가 발생할 경우 책임 소재를 가리기 어렵고, 시공사별 품질 차이 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금리와 공사비 상승 등으로 건설사들이 수익성이 높은 정비사업 현장을 중심으로 선별 수주에 나서면서 시공사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자, 사업 지연을 막기 위해 컨소시엄을 허용하고 나섰다.
실제 강남 지역에 위치한 사업장에서도 시공사 선정 입찰에 나섰지만, 유찰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올해 강남권 재건축 대어 중 하나로 꼽히는 개포주공5단지 재건축 조합은 올해 두 차례 시공사 입찰 공고를 냈지만, 대우건설 1곳만 입찰에 참여하면서 유찰됐다. 이에 따라 조합은 지난 7월 대우건설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송파구 마천3구역 재개발 조합도 1차 입찰에 참여한 건설사가 단 한 곳도 없자 최근 두 번째 현장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재입찰을 진행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서울 외곽뿐만 아니라 강남 지역에서도 유찰되는 사례가 나오자 시공사를 구하지 못한 정비사업지에서는 사업 지연에 대한 우려가 나오면서 컨소시엄을 허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건설사 입장에서도 컨소시엄의 경우 입찰 과정에서 지나친 출혈 경쟁을 피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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