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공급의 핵심인 재건축·재개발은 특례법 제정해 사업 기간 단축
전세시장 안정 위해 새로 짓는 서울 빌라는 공공이 사들여 시장에 공급
▲ 8월 6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밀집지역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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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대규모 주택공급을 위해 서울의 그린벨트(개발제한 구역)를 해제하고, 신규 택지를 조성해 8만 가구를 공급한다. 서울 집값이 치솟고, 주택공급 부족 우려가 갈수록 커지면서 ‘그린벨트 해제‘라는 카드까지 꺼낸 것이다.
상대적으로 주택 수요가 많은 서울 지역에 그린벨트를 풀어 주택 공급을 집중적으로 늘려 집값을 잡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그러나 신규 택지는 후보지 발표 후 공공주택지구 지정 등을 거쳐 실제 입주까지는 통상 8∼10년이 걸리는 점에서 당장 집값 안정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린벨트 풀어 8만 가구 공급
정부는 8월 8일 부동산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수도권 그린벨트를 풀어 올해 11월 5만 가구, 내년 3만 가구 규모의 신규 택지 후보지를 각각 지정한다. 대규모 주택을 지을 용도로 서울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건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이후 12년 만이다.
정부와 서울시는 각각 중앙도시계획위원회, 도시계획위원회를 열고, 서울 그린벨트 전체와 서울 인접 수도권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한시 지정했다. 그린벨트 해제 전 투기 수요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효력은 8월 13일부터 11월 신규 택지 발표 전까지다.
현재 서울 그린벨트는 149.09㎢로 서울 면적의 24.6%에 해당한다. 강북권 그린벨트는 대부분 산으로, 택지 개발에 부적합하다. 강남권 그린벨트 지역이 풀릴 것이란 예상된다. 후보지로 거론되는 곳은 ▲지하철 3호선 수서역 인근 수서차량기지 부지 ▲김포공항 앞 혁신지구 사업지 ▲서초구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 ▲세곡동 자동차 면허시험장 인근 등이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에선 집값이 치솟는 상황에서 당장 집값 안정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가 공급 기간을 최대한 앞당기겠다고 했지만, 신규 택지는 후보지 발표 이후 공공주택지구 지정, 지구계획 수립, 토지 보상 등을 거쳐 실제 입주까지 통상 8∼10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또 미래세대를 위해 보존해야 할 그린벨트를 택지로 훼손하는 게 타당한지도 논란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 8일 성명서를 통해 “서울과 수도권 과밀을 부추기는 주택공급 정책을 즉각 중단하고 수도권 허파인 그린벨트를 한 평도 훼손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경실련은 “노무현 정부 때도 판교와 위례 등 신도시 주택 공급을 위해 그린벨트를 풀었으나 수도권 땅값이 요동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며 “그린벨트를 해제해 주택 공급이 늘어도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 과밀화를 부추길 뿐 장기적으로 국토균형발전에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주택이 실제 공급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집값 안정 효과는 제한적이라도 진단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주택공급 부족 우려를 진정시키기 위해 정부가 공급 확대 신호를 시장에 보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그린벨트를 풀고, 신규택지를 공급하는 방안은 중장기적인 대책으로 집값 안정화에 당장의 효과가 없고, 실제 목표 달성을 위한 실행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비아파트 직접 공급
정부는 단기적으로 서울 등 수도권 도심 주택 공급을 활성화하기 위해 빌라·다세대·오피스텔 등 신축 비아파트를 11만 호 이상 매입해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번 조치로 최근 수년에 걸쳐 심화된 ‘아파트 쏠림’ 현상이 완화될 수 있을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다만 비아파트를 주택 수에서 완전히 제외하는 등의 파격적인 세제혜택은 빠져 짧은 시간 내 비아파트 시장의 정상화를 기대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토교통부가 공개한 주택공급 확대방안(8·8 부동산 대책)에는 비아파트 시장 정상화 목표로 공공신축 매입 목표 물량과 세제·청약 혜택 확대 등의 대책이 담겼다.
정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을 통해 내년까지 2년간 수도권 신축 비아파트를 11만 호 이상 매입하기로 했다. 서울은 비아파트 시장이 정상화될 때까지 무제한으로 신축 주택을 매입해 전·월세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한다. 이중 2만1000호 이상은 6년간 전·월세로 산 후 분양으로 전환해 우선 매입할 수 있는 분양전환형 신축매입 제도도 도입한다.
비아파트 시장기반을 진작하기 위한 세제혜택도 담겼다. 신축 빌라나 주거용 오피스텔 등 소형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 취득세·종부세·양도세 산정 시 주택 수에서 제외해주는 혜택의 일몰기간을 올 연말에서 2027년 말까지 2년 연장한다.
공유주택 등 임대형 기숙사도 취득세·재산세 감면 대상에 포함된다. 비아파트의 경우 1호만으로 임대사업자 등록 및 1세대1주택 특례 적용이 가능한 ‘6년 단기 등록임대’ 제도를 도입한다. 이에 따라 1주택자가 추가로 소형주택을 매입해 임대 등록하면 1주택자로 간주된다.
생애 최초로 60㎡ 이하 소형 비아파트 주택을 구입한 경우 취득세 감면 한도가 200만 원에서 300만 원으로 늘어난다. 수도권 공시가격 5억 원 이하, 85㎡ 이하의 비아파트를 구매하면 청약 시 무주택자로 인정하는 등 인정 기준을 완화했다.
정부가 이처럼 빌라, 연립·다세대, 주거용 오피스텔 등 비아파트 주택 시장 정상화에 나서는 이유는 서울 등 수도권 주택 시장의 약 40~45%를 차지하는 비아파트 시장이 급격히 침체되면서 아파트 값을 올리는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 비아파트 인허가 건수는 지난 2022년 11만6612건이었지만 전세사기 여파 등을 겪은 후 지난해 5만7579건으로 반토막이 났으며 올해는 6월 기준 2022년의 10% 수준인 1만8332건으로 줄었다.
착공·준공 물량도 이미 크게 감소했다. 국토부 주택건설실적 통계에 따르면 올해 1∼5월 서울 비아파트 착공 물량은 1801가구로 전년 동기(3284가구) 대비 45%, 2022년 동기(8542가구) 대비 79% 급감했다. 같은 기간 서울 내 빌라 준공은 2945가구로 지난해 동기(6943가구) 대비 58% 감소했다. 그에 비해 서울 아파트 준공 실적은 1년 새 5582가구에서 1만1867가구로 2.1배로 증가했다. 거래량도 마찬가지다. 한국부동산원의 주택 유형별 매매 거래 통계에 따르면 전국 비아파트 매매는 전체 주택거래의 9.1%에 그쳐 2006년 이래 가장 낮은 비중을 보였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연내 수도권 아파트 매매 가격 상승 원인이 향후 주택 준공물량 감소 우려 또는 전세가격 상승에서 온 불안 심리라고 본다면 단기간 가용할 수 있는 주택공급 방안을 총동원하고 올해 인허가가 급감한 도심 내 비아파트 공급을 통해 전세가격 안정을 꾀한다는 면에서 일정 부분 정책효과가 기대된다. 임대차 수요가 많은 지역이나 서울 역세권 위주로 신축 매입 수요를 기대할 만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정작 수요자들의 기대가 컸던 ‘비아파트 주택 수 전면 제외’ 조치가 빠져 아쉽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혜택을 받으려면 면적이나 주택 가액, 임대사업자 등록 등 여러 조건이 걸려 있는 만큼 기대만큼 비아파트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얘기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소형 주택의 경우 다주택자 규제의 완화 정도나 폐지 여부에 따라서 자생적인 시장수요가 움직인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면서 “신축 소형주택 구입 임대인에 대한 세제혜택도 ‘임대사업자 등록’ 등 제약 요인이 걸려 있다는 점에서 충분하다고 평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건축·재개발’ 특례법 추진
정부가 특례법을 제정해 정비사업에 걸리는 기간과 절차를 단축하고 용적률 등 규제도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도심 주택 공급을 큰 폭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나, 최근 정비사업이 지연되는 원인이 공사비 상승과 고금리 장기화로 사업성이 떨어지는 것인 만큼 그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방안’의 공급대책에는 재건축·재개발 사업 기간을 단축해 도심 내 아파트 공급을 큰 폭으로 늘리기 위한 각종 방안이 담겼다. 촉진법을 통해 사업 절차를 통합·동시 진행하고 행정청 인가도 한꺼번에 내림으로써 길게는 14~15년까지 걸리는 재건축·재개발 사업 기간을 5~6년가량 단축할 수 있다는 게 국토부 설명이다.
아울러 조합 내 갈등으로 사업이 지연되지 않도록 조합 설립 동의 요건을 70%, 동별 요건을 3분의 1로 완화하고, 총회 시 전자의결도 허용하기로 했다. 총회 개최비, 사업계획 수립 용역비 등 초기사업비를 구역당 50억 원 이내에서 기금에서 융자받게 했다. 3년 한시적으로 용적률과 임대주택 비율 등 각종 규제도 완화한다. 우선 최대 용적률을 법적 상한 기준에서 추가 허용하기로 했다.
역세권 정비사업의 경우 법적 상한의 1.3배, 일반 정비사업의 경우 1.1배까지 추가 허용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3종 주거지역 기준 역세권은 390%까지, 일반은 330%까지 용적률이 늘어난다. 다만 강남 3구와 용산구 등 규제지역, 이번 대책 발표일 이전 사업계획인가를 신청한 곳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용적률 완화에 따라 임대주택 의무 공급 비율도 완화하고, 임대주택 인수 가격도 현재의 1.4배로 높이기로 했다. 건축물 높이 제한, 공원녹지 확보 기준도 완화하고, 전용 85㎡ 이하 주택 공급 의무도 폐지한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부담금도 폐지를 추진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