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주택담보대출부터 신용대출, 전세자금대출 등 가계대출 조이기에 나섰다. 금리 인상으로는 대출 증가세가 잡히지 않자 한도를 줄이고 대상을 제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택담보대출 대출한도가 하루 사이 5000만 원가량 줄어들기도 했다. 투기적 수요를 억누르기 위한 방침이지만 대출 총량을 줄이는 ‘대출 절벽’으로 실수요자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은행들은 대출금리 인상에 이어 대상과 한도를 제한하는 실수요자 중심의 가계대출 관리 방안을 도입하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은 주택담보대출 모기지보험(MCI·MCG) 가입을 중단했다. 8월 26일 신한은행을 시작으로 국민은행도 8월 29일부터 이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 우리은행은 9월 2일부터, 하나은행은 9월 3일부터 중단했다. NH농협은행은 6월 26일부터 MCI 발급을 중단했다.
9월부터 스트레스 DSR 2단계 도입···1억 연봉자 한도 6000만 원 ‘뚝’
금리 낮고 한도 높은 금융사 찾아 지방원정···보험사로 ‘풍선효과’ 심화
주택담보대출 모기지보험(MCI·MCG)은 주택담보대출 시 가입하는 보험으로 이 보험이 없으면 소액 임차보증금을 제외한 금액만 대출이 가능하다. 사실상 대출 한도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MCI·MCG 가입이 제한되면 지역별로 ▲서울 5500만 원 ▲경기 4800만 원 ▲광역시 2800만 원 ▲기타 2500만 원의 대출 한도가 줄어든다.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주담대 만기를 만 34세 이하 50년, 그외 40년에서 최장 30년으로 축소했다. 국민은행은 8월 29일부터 이를 시행 중이며 신한은행은 9월 3일부터 적용했다. 대출 만기를 줄이면 연간 상환해야 하는 원리금이 늘어나면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상승해 대출 한도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국민은행·하나은·우리은행은 생활안정자금 목적의 주담대 한도도 1억 원으로 제한한다. 기존에는 한도 제한이 없었다.
전세자금대출도 문턱이 높아졌다. 국민·신한·우리은행은 임대인 소유권 이전 등 조건부 전세대출을 한시적으로 중단했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 등 투기성 자금으로 활용될 수 있어서다. 또 국민은행은 9월 3일부터 임대차계약 갱신 시 전세대출 한도를 임대차보증금 증액 범위 내로 제한하고 있다. 증액금액이나 총임차보증금의 80%에서 기존에 취급된 전세대출을 뺀 금액 중 낮은 금액으로 한도를 결정한다.
아울러 국민은행은 신용대출 마이너스 통장 한도도 최대 1억5000만 원에서 5000만 원으로 줄였다. 일부 은행이 시행한 조치가 다른 은행으로 확산하면서 대출 한도가 추가로 줄어들거나 신규 대출이 제한될 여지도 있다.
은행들은 실수요자 중심의 자금 공급을 유지하되 공급되는 자금이 실수요와 무관한 갭투자 등 투기수요나 부동산 가격 부양 수단 등으로 활용되지 않도록 각 은행이 자율적으로 다양한 조치를 시행할 방침이다. 8월 26일 은행연합회 이사은행장 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논의했다. 이는 금융당국이 금리 인상 외에 가계대출 대응책을 압박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그러자 일각에서는 각 은행이 내놓는 대응책이 대출자들의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마다 경쟁적으로 대출을 조이기 위한 조치를 내놓으면서 하루 차이로 대출한도가 줄어들거나 대출 가능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는 차주들이 혼란스러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금리·고한도 찾아 삼만리
9월부터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시행되면서 실수요 차주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한도는 수천 만 원씩 내려갈 것으로 예측된다. 차주들은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고 한도가 높은 금융사를 찾아 지방 원정에 나서고 있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의 대출 조이기로 인해 2금융권으로 이동하는 풍선효과도 나타나는 모습이다.
금융권과 은행연합회 공시 등에 따르면 지난 8월 신규 취급 주택담보대출 평균금리는 BNK경남은행이 3.42%로 집계됐다. 신한은행은 3.44%로 뒤를 이었다. KB국민은행 3.50%, 케이뱅크 3.53%, BNK부산은행 3.54% 등은 3.5%대를 나타냈다. 하나은행 3.67%, 카카오뱅크 3.62%, IBK기업은행 3.60% 등은 3.6%대로 집계됐다. 이어 제주은행 3.71%, NH농협은행 3.79%, 전북은행 3.91% 등 순으로 나타났다. 주담대 평균금리 4% 이상은 ▲아이엠뱅크(구 대구은행) 4.03% ▲SC제일은행 4.09% ▲광주은행 4.35% ▲우리은행 4.45% ▲Sh수협은행 4.61% 등이 있다.
시중은행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연봉 1억 원인 직장인이 다른 대출 없이 신규 주담대를 금리 4%, 만기 30년으로 원리금균등상환할 때 DSR 40% 한도는 기존 변동형 6억6700만 원, 혼합형 6억7900만 원, 주기형 6억8900만 원 규모다. 스트레스 DSR 규제는 대출상품과 금리유형에 따라 가산금리가 차등 적용된다. 1단계에서 적용된 가산금리는 변동형은 100%인 0.38%포인트, 혼합형은 60%인 0.23%포인트, 주기형은 30%인 0.11%포인트다. 9월부터 2단계가 시행되면서 같은 조건의 차주가 받을 수 있는 한도는 수도권의 경우 변동형 6억700만 원, 혼합형 6억4100만 원, 주기형 6억6800만 원으로 줄어든다. 이때 가산금리는 각각 1.2%포인트, 0.72%포인트, 0.36%포인트가 적용된다.
은행권이 금융당국 주문에 맞춰 가계대출 금리를 계속해서 높이고 취급을 제한하는 조치에 나서면서 주담대 수요는 보험사 등 2금융권으로 옮겨 붙고 있다.
핀테크사 핀다에 따르면 8월 19∼25일 2금융권 주담대 한도 조회수는 8만7574건으로 집계됐다. 전주(7만4438건) 대비 17.64% 급증한 수치다. 보험사 주담대 금리 하단은 10개월 만에 은행보다 낮아졌다. 8월 28일 기준 보험사 중 주담대 고정금리가 가장 낮은 삼성생명이 3.59~4.94%로 나타났다. 이는 시중은행 주담대 고정금리(3.63~6.03%)보다 하단이 0.04%포인트, 상단이 1.09%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2금융권은 DSR 한도 50%로 40%인 은행보다 규제가 느슨하다. 그만큼 더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있어 앞으로 점차 수요가 몰릴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금융당국, LTV까지 만지작
금융당국이 전방위적으로 ‘가계대출 조이기’에 나서고 있으나, 급증하는 가계대출 수요를 잡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은행별 평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목표치 강화, 스트레스 DSR 2단계 도입에도 하반기 대출 수요가 잡히지 않을 경우,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축소 등 고강도 규제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금융당국은 앞으로도 가계대출이 계속 증가할 수 있다고 보고, 전방위적 대출 조이기에 돌입했다. 우선 스트레스 DSR 규제를 더 강화했다. 특히 수도권 중심으로 집값이 뛰고 있다고 판단해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핀셋 규제’에 들어갔다.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주담대)에 대한 스트레스 금리(가산금리)를 기존 0.75%포인트에서 1.2%포인트로 상향하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수도권 주택 매수세가 이어지고 8월 대출 막차 수요가 발생하자, 금융당국은 은행권과 함께 대출한도를 줄이는 추가 방안을 내놓았다. 금융감독원은 은행들이 자체 수립한 총량을 훨씬 초과해 대출을 공급해선 안 된다고 압박하며, 이를 어긴 은행에 대해서는 다음해 평균 DSR 목표치를 더 높이겠다고 했다.
이 같은 규제에도 9월 이후 가계부채가 수그러들지는 불확실하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에 따른 시장금리 하락 영향으로 하반기에도 은행 대출금리가 계속 인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출금리 인하로 대출 수요가 늘어나면 금융당국의 규제는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금융당국은 DSR 범위를 확대하는 추가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DSR 대상에서 제외됐던 정책모기지와 전세대출을 DSR 범위에 포함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또 최후의 수단으로 LTV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시나리오를 대비하기 위해 LTV 규제 등 모든 대책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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