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반도체 기업에 다니는 50대 임원 A씨는 최근 기업으로부터 텔레그램 앱을 다운로드 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기업 임직원과 프로젝트에 관해 대화할 일이 많은데 대화 유출이 우려되는 만큼 채팅 기록 자동 삭제 기능이 있는 텔레그램을 사용해 유출 우려를 최소화하겠다는 취지에서다.
#2. 인천 지역 소재 고등학교에 다니는 B군은 최근 소셜미디어(SNS)에 ‘친구, 지인 합성 능욕 판매’라는 게시물을 올린 뒤 텔레그램으로 딥페이크(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합성 기술) 성 착취물을 장당 2000~3000원에 판매했다. B군의 게시물을 본 이용자들은 자신의 친구 사진을 보내주고 음란물을 받았다. 누가 봐도 중대한 범죄. 하지만 이들은 경찰에 걸릴 것이라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채팅 기록이 자동으로 삭제되고 경찰이 대화 당사자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화 자동삭제 기능·서버 기록 X 등 ‘양날의 검’···성 범죄물 유통 창구 전락
“표현의 자유·사생활 보호” vs “마약 밀매·성 착취물 범죄 성행” 논란 분분
2006년 브콘탁테 출시해 러시아 최대 SNS 성장···정부 압박 못 이기고 망명
보안성 강화한 메신저 ‘텔레그램’ 이용자 9.5억 명···사생활 보호 최우선 강조
고개 드는 텔레그램 규제론···접속 차단이 해결책? 범죄 예방 시스템이 우선!
▲ 2019년 6월 13일 중국 베이징에서 촬영된 텔레그램 메신저 웹사이트.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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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대한민국 사회의 뜨거운 키워드 중 하나다. 텔레그램의 은닉성을 이용, 딥페이크 성 범죄물 영상의 유통 창구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가해자들은 수사 당국의 추적이 쉽지 않다는 점을 악용했다.
사실 은닉성은 텔레그램이 단기간에 9억5000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한 배경이다.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것이 서비스 철학이다. 비밀 대화 기능을 제공하고 서버에 기록을 남기지도 않는다. 서버 저장 기록 등 각국 정부의 데이터 협조 요청도 곧잘 외면한다. 검열 정책에 반대하거나 사생활을 중시하는 이용자에겐 안성맞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팬층이 두텁다. 2014년 국산 메신저 사찰 논란 당시 카카오톡의 대안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일주일 만에 무려 150만 명이 가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치인과 기업 임원, 언론인 등도 긴밀한 대화가 필요할 때는 텔레그램을 많이 쓴다. 2022년 권선동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 휴대전화 화면 노출 사건으로 윤석열 대통령조차 텔레그램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양날의 검일까. 텔레그램의 은닉성은 범죄자들에게 매력이다. 가짜뉴스(허위조작 정보)와 마약 밀매·성 범죄물 유통창구로 낙인 찍힌 지 오래다. 텔레그램 창업자인 파벨 두로프 최고경영책임자(CEO)가 범죄 방조 혐의로 프랑스 당국에 체포됐고 수사당국의 정보 제공 요구에 불응한 혐의 등으로 예비기소 됐다. 딥페이크 성 범죄물 사태로 한창 시끄러운 한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 정부에 ‘미운 털’이 단단히 박힌 모양새다.
“누구도 내 대화 엿볼 수 없다”
2013년 8월 출시된 텔레그램은 비밀 대화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소통 창구, 사이버 검열에 자유로운 메신저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텔레그램은 특정 시간이 지난 후 그동안 기록된 모든 메시지를 삭제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특정 시간은 이용자가 24시간, 1주일, 한 달 등으로 설정할 수 있다.
텔레그램은 종단 간 암호화 기술 기반 비밀 대화 서비스를 운영한다. 종단 간 암호화 기술은 송신자 기기(스마트폰 등)에서 메시지가 즉시 암호화되고 서버를 거쳐 수신자 기기에 도착하면 이때 복호화되는 기술이다. 메시지 송신과 수신까지 이어지는 경로(서버)를 수색해도 해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종단 간 암호화 기술은 카카오톡 ‘비밀 채팅’, 라인 ‘레터 실링’에도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카카오·네이버와 달리 텔레그램은 해외 기업이라 국내 수사당국의 서버 압수수색에도 자유롭다.
국내에서도 텔레그램이 처음 주목받은 건 사이버 검열에 자유롭다는 점이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온라인 여론 통제 우려가 제기되자 일부 국민이 비밀 대화 창구로 텔레그램을 선택했던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14년 9월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그 도를 넘고 있다”고 말한 뒤 검찰이 온라인 허위사실 유포자를 처벌하는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수사팀’을 설치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SNS 등에서 나타나는 여론을 통제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자 일부 이용자들이 텔레그램으로 메신저를 갈아타기 시작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텔레그램은 2014년 10월7일 트위터(현 엑스)를 통해 “지난주부터 150만 명에 달하는 한국인이 텔레그램에 가입했다”고 밝혔다.
현재도 텔레그램 이용자 수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모바일 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8월 한 달간 텔레그램 앱 사용자 수는 347만1421명으로 전달 대비 9.8% 늘었다. 딥페이크 성범죄 확산 논란의 중심에 섰는데도 텔레그램의 은닉성이 부각되면서 이용자가 더 몰린 것으로 보인다.
범죄 소굴로 몰락한 텔레그램
하지만 ‘비밀보장’이라는 이점은 텔레그램이 범죄자의 피난처라는 오명을 받게 되는 결정적 이유이기도 하다. 마약 밀매, 성 착취물 유포 등 범죄자들의 은밀한 소통 혹은 거래 창구로 악용됐다.
텔레그램에서 범죄행위가 발각되더라도 가해자와 조력자들을 제대로 특정할 수 없어 수사망을 피해갈 수 있다. 대표적으로 ISIS(이슬람 국가)가 테러리스트를 모집할 때도 텔레그램을 이용했다. 지난 2021년 1월 미국 의회 의사당 난입 사태를 일으킨 극우 세력도 텔레그램으로 주로 소통했다.
국내에서도 텔레그램 서버를 압수수색할 수 없기 때문에 익명 범죄, 가짜뉴스 창구로 악용되는 사례가 많았다. 2019년 ‘N번방’ 또는 ‘박사방’으로 알려진 성 착취물 제작·유포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조주빈 등이 여성들을 협박해 성 착취 영상물을 만들고 이를 텔레그램에 유포했다.
경찰은 텔레그램 본사에 연락할 방법이 없어 대표 이메일 계정으로 수사 협조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텔레그램 측이 경찰 메일 7건을 모두 회신하지 않아 한동안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경찰이 이번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 수사를 위해 텔레그램에 수사 협조 공문을 보냈으나 현재까지 답변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텔레그램과 연락이 닿은 정부기관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유일하며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등 방심위 외 기관들은 텔레그램 측에 보낸 연락에 회신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레미 본(Remi Vaughn) 텔레그램 대변인은 “기본적으로 신고 이메일 주소는 삭제 요청 결과에 대한 피드백(회신)을 제공하지 않아 혼란을 야기했다”며 “텔레그램이 범죄와 연관된 콘텐츠 삭제에 비협조적이라는 우려는 오해”라고 해명했다.
러시아판 저커버그,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은 서비스 출시 11년 만에 사상 최대 위기를 겪고 있다. 텔레그램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파벨 두로프가 프랑스 수사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텔레그램이 딥페이크 성 범죄물 확산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그의 신상에 귀추가 쏠리고 있다.
두로프는 1984년생으로 마크 저커버그 메타 창업자와 동갑이다. 때문에 두로프가 소셜미디어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러시아의 저커버그’로도 불렸다. 그러나 한때 러시아 정부와 대립한 터라 ‘러시아판 로빈 후드’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최근에는 ‘정자왕’으로도 불리고 있다. 그가 러시아 모스크바 병원에 정자를 15년 동안 기부해 12개국에서 100여 명의 생물학적 자녀를 뒀다고 밝히면서다.
▲ 2017년 8월 1일 텔레그램 창업자인 파벨 두로프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인도네시아 통신정보부 장관을 만났을 당시 모습.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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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보호 위해 회사도 팔았다
옛 소련 태생인 두로프는 2006년 9월 형 니콜라이 두로프와 함께 SNS인 ‘브콘탁테(VK)’를 만들었다.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으로 성공을 거둔 걸 보자 커뮤니티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VK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옛 소련권, 슬라브계 이민자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창립 1년 반 만인 2008년 4월 VK 월 사용자 수는 1000만 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그의 별명은 ‘러시아의 마크 저커버그’가 됐다.
하지만 그는 VK 창립 약 6년 만에 자신이 만든 플랫폼에서 손을 떼야 했다. 러시아 정부의 압박 때문이었다. 2011년 러시아 정부가 반체제 인사들의 VK 계정을 삭제하라는 요구를 거절하고 자신의 계정에 후드티를 입고 혀를 내민 개 사진을 올려 화제가 됐다.
이후에도 러시아연방보안국(FSB)이 알렉세이 나발니 등 반체제 인사의 VK 페이지 삭제를 요구했다. 이에 그는 2014년 4월 FSB 공문을 자신의 VK 계정에 폭로하며 항의했다.
결국 두로프는 VK CEO에서 해임됐다. 앞서 회사 지분을 러시아 이동통신 기업 메가폰 CEO인 이반 타브린에게 매각한 터라 이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없었다. 두로프는 “이 나라에서 인터넷 사업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독일로 망명했다.
두로프는 지난 4월 CNN 앵커 출신 보수 성향 언론인인 터커 칼슨의 유튜브에 출연해 “나의 첫 회사는 내 자식과 같았기 때문에 고통스러웠다”면서 VK를 떠난 당시 소회를 전했다. 이어 “하지만 동시에 나는 자유로워지는 게 낫다는 걸 깨달았다. 누구의 명령도 받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 세계 이용자 10억 명 눈앞
사생활 보호가 최우선이며 어떤 정부 압박에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두로프의 의지는 텔레그램 운영 방식에도 드러났다. 종단 간 암호화 기술(송신자 기기에서 메시지가 즉시 암호화되고 서버를 거쳐 수신자 기기에 도착하면 이때 복호화되는 기술)과 함께 일정 시간 지나면 메시지를 자동 삭제할 수 있는 기능도 넣었다.
텔레그램은 이미 두로프가 VK를 떠나기 직전이었던 2013년 8월에 출시했다. 그의 새 메신저 텔레그램은 미국 국가안보국(NSA) 기밀자료 폭로 사건으로 주목을 받았다. NSA에 근무한 에드워드 스노든이 NSA의 무차별적인 개인정보 수집 정황을 폭로했는데 당시 국가권력에 의해 개인정보가 무단 수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텔레그램 이용자가 빠르게 증가한 것이다.
두로프는 “테러 위협을 막는 것보다 사생활 보호가 더 중요하다”고 말할 정도로 보안성을 강조해왔다. 2015년 11월에 있던 프랑스 파리 연쇄 테러 당시 테러범이 암호화된 메시지로 테러를 계획하고 이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텔레그램도 테러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두로프는 2016년 CNN과의 인터뷰에서 “테러범들은 다른 메시지 서비스도 사용했을 것”이라며 “텔레그램이든 다른 기술 기업이든 테러에 책임이 있다는 것은 문제를 호도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범죄자에게 안전하다고 해서 정부에 (텔레그램을) 개방할 수 없다”며 “개인정보 보호가 텔레그램 최우선 가치”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익명성 보장 덕분에 텔레그램은 매년 이용자 수 증가세를 보였다. 두로프는 지난 7월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텔레그램 전 세계 월 사용자 수가 9억5000만 명을 돌파했다고 전했다. 올해 안에 10억 명 달성도 가능할 전망이다.
문제는 그의 가치관이 그를 최대 20년 동안 감옥생활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기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두로프는 프랑스 현지 시각으로 8월 24일 오후 아제르바이잔에서 프랑스로 입국하자마자 경찰에 긴급 체포됐다. 프랑스 검찰은 그를 미성년자 성 범죄물 배포, 마약 거래, 자금 세탁 등 공모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텔레그램이 각종 범죄를 위한 소통 공간으로 악용됐는데도 최종 책임자인 그가 알고도 방치했다는 이유였다.
두로프는 9월 5일(현지 시각)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에 기소 후 첫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인터넷 서비스에 불만이 있는 국가는 서비스 자체에 대해 법적 조치를 하는 것이 기존 관행”이라며 “스마트폰 이전 시대의 법률로 플랫폼에서 제3자가 저지른 범죄로 CEO를 기소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텔레그램 측과 연락이 어려웠다는 프랑스 검찰 측의 주장에 대해서는 “텔레그램은 EU(유럽연합) 요청을 접수하고 답변하는 공식 대표를 EU에 두고 있다. 누구나 구글에 ‘법 집행을 위한 텔레그램 EU 주소’를 검색하면 이메일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개인정보 보호와 준법 사이의 적절한 균형에 대해 해당 국가의 규제 당국과 합의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에는 해당 국가를 떠날 준비가 돼 있다며 프랑스 또는 EU에서의 텔레그램 서비스 차단도 감수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앞서 2018년 텔레그램이 러시아 정부의 메시지 암호화 해독 키 제출 요구에 불응하면서 러시아 지역에 텔레그램 접속이 차단됐다. 같은 해 이란 정부가 반정부 시위를 막기 위해 텔레그램 접속을 차단했다. 이란 정부는 텔레그램에 이란 시위대 채널 차단을 요구했으나 텔레그램은 정부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서울 구로구에 사는 박모(30)씨는 최근 여자친구로부터 성 범죄자 오해를 받았다. 박씨의 스마트폰에 텔레그램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텔레그램을 통해 딥페이크(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합성 기술) 음란물이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박씨는 여자친구에게 “딥페이크물 만들려고 가입한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다. 증권사에 다니는 박씨는 “업무 관련 정보 공유 용도로 이용하고 있다”며 접속해 있는 채팅방까지 보여줬다. 하지만 여자친구는 “카카오톡 등 다른 메신저도 있는데 텔레그램을 왜 쓰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이번 딥페이크 성 범죄물 확산 이유 중 하나로 텔레그램이 지목되면서 텔레그램 사용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나오고 있다. 카카오톡·라인 등 다른 메신저 앱이 있는데 굳이 텔레그램을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지적이다. “숨길 게 있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 2020년 신천지 대구교회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건, 같은 해 n번방 사건 때도 나타났다. 당시 신천지 교도들이 비밀 대화를 위해 텔레그램을 쓴다는 소식, n번방 사건 발생 장소가 텔레그램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텔레그램 앱을 설치한 사람을 신천지 신도 또는 성 범죄자로 호도하는 일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텔레그램 접속을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각종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만큼 텔레그램 국내 서비스 운영을 막자는 뜻이다.
▲ 8월 29일 오후 ‘딥페이크 성범죄 규탄’ 여성 시민·대학생 긴급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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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방지 협조 안 하면 퇴출해야”
딥페이크 성범죄물 확산에 텔레그램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주장은 일부 설득력이 있다. 경찰 수사에 비협조적이라 피해 현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고 이에 따른 피의자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n번방 사건 당시 경찰은 텔레그램에 수사 협조 이메일 공문을 여러 차례 보냈으나 한 번도 답을 받지 못했다. 경찰은 이번 딥페이크 성범죄물 유포 사건 수사를 위해 텔레그램에 협조 요청 메일을 보냈으나 아직 답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국내 정부·공공기관 중 텔레그램에 회신받은 곳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유일하다. 방심위에 따르면 텔레그램은 최근 동아시아 지역 관계자 공식 이메일 계정을 통해 방심위가 긴급 삭제 요청한 성범죄 영상물을 모두 삭제했다는 서한을 방심위에 보냈다.
텔레그램 측은 이에 대해 “원래 신고 접수 후 회신 절차를 진행하지 않아 생긴 오해”라고 주장했다. 텔레그램 측은 “기본적으로 신고 이메일 주소는 삭제 요청 결과에 대한 피드백(회신)을 제공하지 않아 혼란을 야기했다”고 밝혔다. 텔레그램이 범죄와 연관된 콘텐츠 삭제에 비협조적이라는 우려는 오해라는 뜻이다.
하지만 텔레그램이 딥페이크 성범죄물 등 불법 콘텐츠 확산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 길은 없다. 이에 정기국회에서는 텔레그램의 비협조가 지속될 경우 텔레그램 접속을 차단시켜야 한다는 강경 주장도 나오고 있다.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은 9월 4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딥페이크 성범죄 관련 현안 질의에서 “수사 협조를 안 하면 서비스할 수 없도록 하는 본질적 대처가 필요하다. 그게 아니면 협조를 구걸하는 꼴이 된다”고 주장했다.
최진웅 국회입법조사처 과학방송통신팀 입법조사관도 9월 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연 딥페이크 성범죄 근절 긴급 토론회에서 호주 ‘온라인안전법’을 사례로 들며 플랫폼 접속 차단에 대한 입법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 조사관은 “유튜브, 소셜미디어 플랫폼뿐만 아니라 메신저 앱까지 포함해 규제한다. 불법 정보 삭제 조치하지 않을 때 정부가 시정명령 내리고, 따르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한다. 벌금 부과 후에도 지속적 위반 시 접속 차단 조치한다”며 “(우리도) 접속 차단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두는 방안에 대해 국회에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텔레그램 막아도 다크웹 있다”
하지만 텔레그램을 차단한다고 해서 딥페이크 성범죄가 완전히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다크웹 등 불법 합성물을 유통할 여러 창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다크웹이 있다. 다크웹은 네이버·다음·구글과 같은 일반 포털에서 검색해 들어갈 수 없는 공간으로 특정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야만 접속할 수 있는 곳이다. 텔레그램보다 접근하기 까다롭고 데이터 휘발성도 강하기 때문에 피해 파악이나 범죄자 추적에 어려움이 크다.
이런 다크웹 이용자도 최근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까지 다크웹 접속 프로그램 중 하나인 ‘토르’ 하루평균 국내 이용자 수는 4만3757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하루평균 이용자 수(1만8801명)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텔레그램 접속 차단 시 표현의 자유 침해, 과잉금지 원칙 등 헌법 원칙 위배 우려도 제기된다. 또 규제를 강화하더라도 텔레그램이 아닌 국내 사업자에게만 압박이 더 가해지는 역차별 우려도 나온다.
이에 플랫폼에 자율 규제 책임을 두게 하되 적극적인 수사, 처벌 강화와 함께 인공지능(AI) 윤리,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교육도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소은 국립 부경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딥페이크 악용 이미지를 삭제하거나 업로더 활동 금지, 관련 커뮤니티 폐쇄, 관련 검색어 금지 등 플랫폼 사업자의 자율규제가 필요하다”면서도 “플랫폼 책무를 부과하는 입법에 대해서는 산업계에 미치는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딥페이크를 통한 음란 영상물 제작은 성범죄라는 인식 확립이 중요하다”며 “음란물 제작과 배포가 학교폭력이고 성범죄라는 사실을 명확히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 한 관계자도 “텔레그램을 잡더라도 어디선가 제2·제3 텔레그램은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며 “학교에서부터 AI 윤리 교육이 철저히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