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사비 상승률을 2026년까지 연 2% 내외로 낮추기 위한 방안을 내놓았다. 정부는 10월 2일 경제장관회의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자재비 안정화 ▲인력수급 안정화 ▲공공조달 제도 개선 등의 내용을 담은 ‘공사비 3대 안정화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원자재가격과 인건비가 지난 3년간 공사비가 30% 이상 급등함에 따라, 재건축·재개발 추진 지연으로 국민 주거 불안이 커지고, 건설시장의 활력도 떨어지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전 부처 합동으로 논의됐다. 정부가 ‘중국산 시멘트 수입’ 등을 포함한 건설공사비 안정화 방안 대책을 내놨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실현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해외 시멘트 수입 지원이 핵심···3년간 연평균 상승률 8.5%인데 2%대 관리?
중국산은 안전성 우려···시멘트 업계 “투자비 늘어 경영 어렵고 재고도 늘어”
▲ 경기 안양시의 한 레미콘 공장에 믹서트럭들이 멈춰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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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공사비 3대 안정화’ 방안은 ‘해외 시멘트 수입 지원’과 ‘골재 채취원 확대’가 핵심이다. 정부는 최근 3년간 연평균 8.5%에 달했던 공사비 상승률을 2%대까지 낮추기 위해 해외 시멘트 수입 관련 애로 해소를 지원하는 동시에 KS인증 등을 통해 엄격히 검증하기로 했다. 또 신규 채취원 감소로 공급 여건이 악화된 골재 공급량을 늘리기 위해 기존 규제의 적용 방식 변경 등으로 바다·산림 골재의 공급량도 늘린다.
정부는 국토부, 산업통상자원부, 공정거래위원회, 경찰 등 관계 부처 합동으로 ‘건설 분야 특별 불법·불공정 행위 점검반’을 운영하고, 업계를 중심으로 ‘수급 안정화 협의체‘도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원활한 건설 인력 수급을 위한 대책도 함께 나왔다. 현재 엄격히 제한된 비숙련 외국인력의 현장 간 이동을 동일 사업주의 경우 사안에 따라 탄력적으로 인정하고, 기피 업무에 투입될 ‘숙련 외국인력 도입‘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아울러 숙련인력(건설기능등급 보유자) 채용 시 우대제도도 마련한다.
마지막으로 관급자재 조달 체계도 개선한다. 국가 시책 사업의 경우에는 조달청을 통하지 않고 발주처인 공공기관이 직접 중소기업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하기로 했다. 관급 자재 관련 불공정행위 개선 노력을 지속하고, 레미콘 등 관행적으로 납품이 지연되는 자재는 납품 기한을 세분화해 ‘계약 불이행 페널티‘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어 ▲일반관리비 요율 조정 ▲총사업비 물가지수 적용 방식 합리화 ▲낙찰률 적정성 평가 ▲턴키공사 수의계약 시 물가 보정 시점 조정 ▲공사비 보정 기준 보완 등 내용이 담긴 ‘공공 공사비 현실화 방안‘도 연내 확정해서 발표하기로 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이러한 정부 발표에 대해 대체로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주요 방안 중 하나인 ‘해외 시멘트 수입’과 관련해서는 이해관계에 따라 의견이 갈리고 있다.
국내 주요 시멘트 업체를 회원으로 하는 한국시멘트협회는 10월 2일 “시의적절하게 자재별 수급 안정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한 데 대해 적극 환영한다”면서도 “건설경기 침체로 시멘트 재고가 되레 급증하고 있는 만큼 시멘트 수입은 불필요하다”며 반대의 입장을 표명했다.
반면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는 “정부에서 발표한 건설공사비 안정화 방안에 대해 높은 기대감과 함께 환영 입장을 표명한다”며 “바다골재의 경우 긍정적 효과가 예상되지만 장기적으로는 바다골재 채취 쿼터를 10%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어 “민간의 시멘트 수입 지원을 통한 공급원의 다각화에 대해 일각에서는 품질 및 국내시장 잠식 등의 우려를 제기하고 있지만, 업계가 추진하는 수입예상물량은 국내생산량 대비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중국산 시멘트 안전성 우려
정부가 공사비 안정을 위해 주요 원자재인 시멘트의 해외 수입 지원까지 공식화하고 나섰지만,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우선 건설업계가 추진 중인 중국산 시멘트 수입을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건설사 자재구매 담당자 모임인 건설자재직협의회(건자회)는 지난 9월 회의를 열고 중국산 시멘트 중개업체인 썬인더스트리를 통해 중국 산수이사의 시멘트를 수입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는 평택항에 약 235억 원을 들여 사일로를 건설하고, 2026년부터 연간 시멘트 78만 톤(t) 수입하는 방안 등이 논의됐다. 성수기 국내 시멘트 일일 출하량이 15만t임을 감안하면 연간 78만t 수입량은 국내 5일치 출하량에 그친다. 또 시멘트 수입을 위해서는 최소 2년의 시간과 비용이 발생해 당장의 가격 인하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멘트는 물성상 장기 보존과 유통이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시멘트는 물성상 장기 보존하거나 유통하는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수요 물량과 공급처를 사전에 정해놓고 수입하지 않는 이상 외국산 시멘트를 보편적으로 사용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중국산 시멘트의 안전성 우려도 있다. 시멘트와 함께 핵심 건자재로 꼽히는 철근은 이미 중국산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데 일부 저가 중국산 철강재의 경우 강도 등이 표준 규격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정부는 시멘트 품질이 국민 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수입 시멘트의 KS 인증 등을 통해 엄격히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에도 건설 현장에서는 KS 마크를 위조한 중국산 자재들이 버젓이 사용되고 있다. 올해 초에는 한 대형 건설사가 시공한 서울 서초구의 아파트 단지에 KS마크를 위조한 중국산 유리가 시공됐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기도 했다.
건설업계가 이러한 우려에도 중국산 시멘트 수입을 검토하고 나선 것은 최근 몇 년간 시멘트 가격이 급격히 상승했기 때문이다. 2021년 7월 1t당 7만8800원이던 국내 시멘트 가격은 2022년 2월 t당 9만2400원으로 오른 뒤 같은 11월 10만5000원으로 10만 원대를 넘어섰다. 지난해 말에는 건설업계, 레미콘업계 등과 협의를 통해 t당 11만2000원으로 인상했다. 최근 3년간 시멘트 가격이 40% 넘게 오른 것이다.
건설업계는 시멘트 업계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유연탄 가격 상승 등을 이유로 시멘트값을 올렸지만, 지금은 유연탄 가격이 고점 대비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만큼 시멘트 가격을 내려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시멘트 업계는 전기료 인상과 탄소감축을 위한 투자비용 급증 등을 이유로 가격을 낮출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대표적인 탄소 다배출 업종인 시멘트 업계는 정부의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에 따라 2018년 대비 약 12%의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 탄소중립 투자에 2조8000억 원, 기본 설비 투자에 1조7500억 원 등 4조5500억 원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건설경기 침체로 시멘트 출하량이 감소하고, 재고는 늘어 125만t에 달하는데 수입을 추진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저가 시멘트 수입시 매출 감소로 이어져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에 필요한 투자재원 마련에 상당한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혔다.
정부가 운영할 예정인 ‘수급 안정화 협의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국토부는 시멘트 등 주요 자재별 협의체를 구성해 수요자와 공급자 간 자율협의를 통해 적정가격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조정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시멘트·레미콘 업계가 가격 협상을 해왔는데 건설업계가 나서더니 이제는 정부까지 나서서 가격을 통제하겠다는 상황”이라며 “수급 안정화 협의체에서 업계 간 자율적인 협상이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중국산 도입은 가격협상용 제스처
건설 원자잿값 인상 등으로 공사비가 치솟자 정부가 ‘중국산 시멘트 수입’ 등을 포함한 건설공사비 안정화 방안 대책을 내놨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실현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산 시멘트를 수입하기에는 유통망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인 만큼 단기적으로 시멘트를 수입하기 쉽지 않고 사실상 시멘트 업계의 가격 인상을 압박하는 카드로 사용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정부는 업계를 중심으로 ‘수급 안정화 협의체’를 운영하면서 시멘트 등 주요 자재에 대해 수요자, 공급자 간 자율협의를 통해 적정가격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하고 필요시 다른 건설자재까지 협의체를 확대하기로 했다.
민간에서 시멘트 수급 불안정 등으로 인해 중국산 등 해외 시멘트 수입을 추진할 경우 관련 애로 해소를 지원한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품질에 대해서는 KS인증 등을 통해 엄격히 검증해 나갈 계획이라고 제시했다. 골재 공급량을 늘리기 위해 기존 규제의 적용 방식 변경 등으로 바다·산림 골재의 공급량도 늘린다.
그중에서도 해외 시멘트 수입을 지원한다는 내용에 관심이 쏠렸다. 최근 대한건설직자재협회는 2026년부터 중국산 시멘트를 수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실제 대대적인 중국산 시멘트 수입보다는 2020년보다 약 36% 오른 시멘트 가격 인하를 이끌어내기 위한 의도로 보고 있다.
시멘트는 특성상 장기 보존하거나 유통하는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수요 물량과 공급처를 사전에 정해두지 않는 이상 외국산 시멘트를 보편적으로 사용하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KS인증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주택 품질에 대한 우려도 상당한 만큼 대대적인 수입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관측도 있다.
박철한 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시멘트는 대부분 국내산 시멘트를 쓰고 있어 수입 유통망이 전혀 없는 상태인데다 시멘트는 장기 보존이 어렵고 운반, 품질 이슈도 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실현 가능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 입장에서는 시멘트업체들이 중장기적으로 적정 제공량이라든지 가격 안정화에 동참하지 않으면 해외 시멘트 수입도 고려할 수 있다고 메시지를 주는 제스처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소·중견 건설사가 활용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쉽지 않다는 관측이 대부분이다. 시멘트 자재 특성상 레미콘업체와의 수급이 원활해야 하기 때문에 중국산 시멘트의 품질,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는 이상 중국산 시멘트를 들여오는 것조차 꺼릴 업체가 많다는 얘기다. 철근 누락, 하자 등 국내에서 주택 안정성이 상당히 중요한 현안이 됐다는 점도 그중 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