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한 시점을 전후로 시중은행 수신금리는 빠르게 내려가고 여신금리는 되레 올라가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앞서 기준금리 인상기에도 비슷하게 벌어졌던 현상이다. 당시 대출금리는 급격히 치솟았는데 예금금리는 어느 정도 올라가다가 다시 떨어진 바 있다. 고객들 사이에서는 은행들이 금리 인상기나 인하기나 매번 유리한 대로 이자를 조정하면서 돌아오는 혜택이 줄어들고 부담만 지속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 은행연합회에 공시된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기본금리는 현재 연 2%대까지 떨어진 상태다. 은행 상품별로 보면 국민은행 KB스타 정기예금 2.50%, 하나은행 하나의정기예금 2.60%, 신한은행 쏠편한 정기예금 2.65% 등 수준이다.
기준금리 인하 후 시중은행 수신금리 내려가고 여신금리 되레 올라 ‘역주행’
5대 은행 주택담보대출 0.10%p 더 올라···예대금리 차이 확대로 실적 행진
▲ 주요 은행이 예금금리는 내리면서도 가산금리를 올리는 방식으로 대출금리를 올리면서 예대금리 차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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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들은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을 미리 반영해 채권 등 시장금리가 내려가자 발 빠르게 예·적금 이자를 낮춰왔다. 이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전 3.5%일 때 이미 주요 정기예금 우대금리를 포함한 최고금리가 기준금리 이하 수준인 3.3~3.4%대로 내려왔다.
한은이 10월 11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3.5%에서 3.25%로 내린 후에도 은행 예적금 금리는 더 떨어지고 있다. 우리은행은 10월 23일 적립식예금인 ‘우리 퍼스트 정기적금’ 금리를 기존 2.20%에서 2.00%로 0.20%포인트 내렸다.
농협은행은 거치식 예금 금리를 0.25~0.40%포인트 인하했다. 적립식 예금 금리는 0.25~0.55%포인트, 청약 예금과 재형저축 금리는 0.25%포인트 각각 낮췄다. 업권은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실제 시장금리를 수신상품에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반면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여신상품 금리는 기준금리 인하 후에도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올라가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의 주담대 고정금리는 3.74~6.14%로 집계됐다. 지난 9월 말 3.64~6.15%에서 하단이 0.10%포인트 상승했다.
앞서 은행들은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늦추라는 금융당국 주문에 가산금리를 높이고 우대금리를 낮추면서 대출금리를 상향 조정해왔다. 기준금리 인하 후에도 가계부채 급증세가 재발할 수 있기 때문에 당분간 대출이자를 내리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대출금리는 올라가고 예금금리는 내려가는 추이는 앞서 기준금리 인상기 때도 나타났던 현상이다. 한은이 통화 긴축에 들어간 2021년 8월 이후 은행의 대출금리는 급격히 치솟았다. 지난해 초 주담대 변동금리 상단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5년 만에 8%를 돌파한 바 있다.
반면 2022년 11월 5%를 넘겼던 정기예금 금리는 다시 3%대로 떨어졌다. 당시에도 오락가락하는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과, 이를 상황마다 유리한 대로 적용해 여신과 수신 금리에 차이를 두고 반영하는 은행권의 셈법이 있었다.
예금 이자부터 깎는 은행들
주요 은행은 예대금리 차이가 벌어지는 것에 대해 가계대출 수요를 관리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며 당국을 방패막이로 삼는다. 그러나 이전에도 은행에 유리한 금리 ‘역주행’이 반복됐다.
은행권은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강화 주문에 따라 대출 수요 관리를 위해 가산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주요 은행은 가계대출 증가세를 억누르기 위해 7월부터 가산금리를 올리는 방식으로 대출 문턱을 높여왔다. 7~8월에만 가산금리를 20회 이상 인상했다.
반면 예금금리는 기준금리 인하 전부터 시장의 기대감을 반영해 하락했다. 이에 더해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리자 예금금리 하락이 본격화하고 있다.
은행들이 대출금리에 적용되는 가산금리를 높이면서 최근 예대금리 차이는 더욱 커졌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8월 기준 가계 예대금리 차이(정책서민금융 제외)는 평균 0.57%포인트로 4개월 만에 확대됐다. 대출금리는 전달보다 오른 반면 수신금리는 내려간 영향이다.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를 기준금리로 삼는데 코픽스에 예금금리 하락이 반영되기까지 시차가 발생한다는 게 금융권의 설명이다. 코픽스는 전월 취급된 예금금리, 금융채 금리 등을 집계해 한 달에 한 번씩 공시된다.
예금금리는 떨어지고 대출금리는 오르면서 고객이 받을 예적금 이자는 감소하고 대출자의 이자 부담은 커진다는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주요 금융지주가 3분기에도 ‘실적 잔치’를 벌이면서 은행권을 향한 금융 소비자의 시각은 더욱 곱지 않다.
KB금융의 3분기 순이익은 1조614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9% 증가했다. 3분기까지 누적 당기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0.4% 증가한 4조3953억 원으로 사상 최대 수준이다. 신한금융의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3조9856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4.4% 증가했다. 우리금융은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 2조6591억 원을 기록하면서 지난해 연간 실적을 3분기 만에 초과 달성했다. 하나금융은 29일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다.
“은행 배만 불렸다” 비판
금융당국은 시중은행 예대금리 차이의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가계부채를 잡으려다가 은행들 배만 불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지만 금융당국은 고강도 대출관리 기조에 변화를 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은 기준금리 인하를 계기로 한 예대금리차 확대 상황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예대금리 차이는 5~7월까지 3개월 연속 줄며 저점을 찍었지만 넉 달 만에 다시 커졌다. 이 같은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가계대출 긴축에 나서면서 대출금리는 오르는 반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를 반영한 은행들이 예금금리 인하에 나서고 있어서다.
떨어지는 예금금리와 오르는 대출금리로 벌어진 예대금리 차이는 은행의 이자수익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압박 때문에 대출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소비자들로서는 갚아야 할 대출 이자는 늘어나는 반면 은행에 넣어둔 예적금 이자는 줄어 금융부담이 커지는 측면이 있다. 가계부채 관리 정책이 은행의 배만 불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금융당국도 이 같은 비판을 인식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가계부채 관리 기조를 느슨히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의 예대금리 차이는 여론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관심이 많은 부분이기 때문에 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사실 자체는 알고 있지만 가계부채 관리 기조에 대한 변화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앞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지난 11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와 관련해 금융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기존 가계대출에 대해서도 기준금리 인하 효과가 반영될 수 있도록 예대금리 추이를 면밀히 모니터링해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다소 둔화되기는 했지만 기준금리 인하로 가계부채 증가 압력이 커지고 있는 만큼 아직은 긴장을 늦출 때가 아니라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특히 추가적인 금리인하 기대감에 따라 주택구매 수요가 재확산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가계부채 관리를 조금만 소홀히 해도 언제든 증가세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소한 올해 연말까지는 현재와 같은 가계대출 긴축 기조를 계속 이어나갈 방침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가계대출 관리 강화 기조를 당국이 유지하고 가계부채와 부동산 시장이 안정화돼야 통화당국에 금리 인하를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예금금리와 대출금리가 반대로 움직이면서 단기적으로는 금융소비자의 부담이 커질 수 있지만 가계부채를 완화해야 추가적인 금리인하도 가능한 만큼 중장기적으로는 대출긴축 기조가 소비자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향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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