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이’ ‘지옥 2’에서 존재감 강렬···특별 출연임에도 문소리표 ‘짙은 여운’
배우 문소리(사진)는 앞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겁이 많다”는 말이 무색하게 25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필모그래피는 도전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린다. 문소리는 최근 드라마 <정년이>와 <지옥 2>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특별 출연임에도 짙은 여운을 남기는 문소리의 연기는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최근 서울 강남구 씨제스스튜디오에서 만난 문소리는 “20년 넘게 해온 일의 연속이지만 한 작품, 한 작품 고민한 시간들이 좋은 평가를 받게 됐고 비슷한 시기에 나와주니 감사하다. 어떻게 보면 ‘럭키비키잖아’라는 느낌”이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1950년대 국극단을 배경으로 여성들의 연대와 선의의 경쟁을 그린 <정년이>에서 문소리는 천재 소리꾼이었던 과거를 묻어둔 채 홀로 자식을 키우는 엄마 서용례(채공선) 역을 맡았다. 짧은 분량의 특별 출연이지만 문소리는 작품에서 판소리를 선보이기 위해 1년 동안 레슨을 받았다.
특히 국극단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딸 정년과 서용례가 바닷가에서 함께 부른 ‘추월만정’은 최고 시청률 15.5%를 돌파했다. 심청이가 황후가 된 후 아버지를 생각하며 부르는 ‘추월만정’은 판소리 전공자도 쉽지 않은 대목이라고. “‘추월만정’은 판소리 장단 중에서 가장 느린데 이렇게 느린 장단은 소리 공력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흉내 낼 수 있는 가락이 아니다. 사실 1년도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문소리는 대학 시절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명예보유자 남해성 명창에게 소리를 배웠다. 당시 배웠던 ‘수궁가’는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동력이 됐다.
“부모님의 반대로 다시 학교로 돌아갔는데 재미가 없었다. 오전 수업을 듣고 종로 거리를 걷는데 북소리가 들리더라. 그 소리에 끌려 어느 건물에 들어갔는데 남해성 선생님이 북을 쥐고 앉아 있었다. 나를 보시더니 ‘춘향이가 왔네’ 하시더라.”
이후 문소리는 1년 반 동안 소리를 배웠고 산 공부도 찾아갔다. 그러나 배우의 길로 들어선 후 소리와 멀어졌다. 그에게 소리를 가르쳤던 남 명창은 2020년 노환으로 별세했다. 문소리는 “코로나 시기에 돌아가셨고 장례식장도 못 가서 마음에 맺혀 있었다”며 “<정년이>라는 작품을 하면서 선생님 생각을 많이 했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담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한 작품”이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2>에서 문소리는 180도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문소리는 사이비 종교 새진리회와 손을 잡고 세상의 균형을 다시 맞추려고 하는 대통령실 정무수석 이수경을 연기한다.
이 작품 역시 특별 출연이지만 문소리는 특유의 대사 전달력과 극적인 순간을 만들어내는 연기로 시청자들을 끌어당겼다. 명품 슈트와 킬힐은 고사하고 등산복 차림에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모습으로 위선적인 이수경의 모습을 그려냈다. 문소리는 “은은한 빌런의 느낌을 주려고 노력했다”며 “(극 중 이수경이) 고지를 받을 때 반응을 여러 가지 생각했는데 연상호 감독과 많은 대화를 했다. 3가지 안을 제시했는데 그중 하나를 연 감독이 고른 것”이라고 밝혔다.
‘작품마다 각기 다른 캐릭터를 어떻게 만드느냐’고 묻자 문소리는 “강박증처럼 계속 질문하는 것”이라고 했다. “답을 찾기보다는 캐릭터에서 질문을 끌어낸다”는 그는 “얼마나 많은 질문을 끌어낼 것인지 많은 질문을 찾아낼수록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많이 찾아내는 게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질문을 하고 답을 찾고 연결 안 되는 질문들은 버리고 그렇게 만들어가는 일이다. 작품을 하는 동안 그 작품들에 대한 질문이 가득 차 있는데 끝나면 전량 폐기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오늘은 무슨 반찬을 할 것인가부터 생각한다.”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진 인터뷰에서 문소리는 ‘인연’, ‘순간’이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함께 작업하는 이들과 깊이 커뮤니케이션하지 않으면 작품이 힘을 갖기 어렵다”며 “누군가와 함께 연기를 하다 보면 그 사이에서 얻어지는 따뜻함이 있다. 우정 혹은 사랑의 다른 형태 또는 인간애라고 느낀다. ‘우리가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라는 것을 느끼는 그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아름답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김태리, 오경화 배우와 <정년이>를 보며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목포 홍어와 해남 막걸리를 먹으면서 우리끼리 목포 사투리로 떠들었다. 작은 케이크에 초를 14개 꽂을지, 15개 꽂을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면서 15개 꽂고 노래를 부르고 기도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최고 시청률 15%를 찍었다고, 소원이 이뤄졌다고 난리였다.”
문소리는 내년 상반기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를 통해 또 한 번 전 세계 시청자들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새 작품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린다는 문소리는 “무대든 스크린이든 채널에서 곧 뵙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인생의 재미를 돈으로 따질 수 없지 않은가? 돈은 많지만 마음이 힘들면 그게 정말 지옥일 것 같다. 깊은 밤하늘에 가득한 별을 보는 순간처럼 진짜 아름다운 순간들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다. 나에게는 무엇보다 작품을 통해 서로 응원하는 관계가 생기고 그들과 사랑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너무나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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