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2월부터 무주택 서민을 위한 저금리 정책대출인 ‘디딤돌 대출’ 한도를 수도권 아파트에 한해 축소한다. 다만 비수도권 및 비아파트는 대상에서 제외하고, 신생아 특례대출이나 전세사기 피해자, 저소득층 등도 규제를 면제하기로 했다. 국토교통부는 11월 6일 이러한 내용의 ‘디딤돌 대출(주택도시기금 구입자금 대출) 맞춤형 관리방안’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부동산 시장에선 급증한 가계대출을 줄이기 위해 디딤돌 대출 한도 축소가 불가피하지만, 금융정책을 수시로 바꿔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책 일관성 결여로 이후 정책 추진 동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수도권 아파트 한정···12월 2일 대출 신청 땐 ‘방 공제 면제’로 5500만 뚝↓
신생아특례대출·저소득층 관리대상 제외···당국 “한정재원 안정관리 위한 방안”
디딤돌 한도 축소→유예→수도권 유예 뒤 축소 “오락가락 정책 못 믿겠다”
서울 아파트값 상승폭 3주 연속 축소···디딤돌 규제로 부동산 시장 관망세
▲ 11월 20일 서울시내 시중은행 ATM 기기 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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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돌 대출은 연소득 6000만 원(신혼부부 8500만 원) 이하인 무주택 서민이 5억 원(신혼가구 6억 원) 이하 주택을 살 때 최대 2억5000만 원(신혼가구 4억 원)을 최저 2%대 저금리로 빌려주는 정책 대출 상품으로, 한도 내에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의 최대 70%(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는 80%)까지 대출할 수 있다.
정부는 우선 △담보인정비율(LTV) 규정 도입 취지를 벗어나는 대출(‘방 공제’ 면제) △기금 건전성에 무리가 될 수 있는 대출(‘후취담보’ 조건으로 미등기 아파트 담보대출)은 원칙적으로 신규 대출을 제한한다는 방침은 그대로 유지했다.‘방 공제‘는 주택담보대출 시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보호돼야 하는 최우선 변제 금액을 떼어놓고 대출을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차주가 대출받은 집을 세를 주었다가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세입자에게 최우선 변제 금액을 내줘야 하기 때문에 대출기관이 이를 공제한 후 대출을 진행하는 것이다.
대출한도 서울 5500만 원 축소
그동안은 보증보험에 가입하면 ‘방 공제’ 금액을 포함해 대출을 해줬는데, 이제는 ‘방 공제‘가 필수로 적용되면서 대출 한도는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방 공제 금액은 지역별로 서울은 5500만 원, 경기 4800만 원, 광역시 2800만 원, 기타 2500만 원 등 각각 다르다.
예를 들어 경기도(과밀억제권역) 소재, 5억 원 아파트를 구입하는 경우 현재는 5억 원×LTV 70%를 적용하고 별도 보증 가입 시 방 공제도 면제를 받아 대출 가능액이 3억5000만 원 수준이었으나, 앞으로는 방공제 4800만 원이 적용돼 대출 가능액이 3억200만 원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앞서 국토부는 지난 10월 21일부터 이러한 조치가 시행되도록 시중은행에 요청했으나, 기존 디딤돌 대출을 토대로 자금계획을 세웠던 실수요자에게서 ‘기습규제’ 등의 불만이 터져 나오자 시행 시기를 잠시 미루고 규제 대상 및 시기를 다시 정비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비수도권과 비아파트는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또 신생아 특례대출과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한 전용 대출 등도 규제에서 배제한다고 밝혔다.
특히 신생아 특례대출은 저출생 등 국가적 과제에 대응하기 위한 것인 만큼 12월 2일부터 맞벌이 부부에 한해 소득요건 완화(1억3000만 원→2억 원) 조치도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연소득 4000만 원 이하 저소득 가구가 3억 원 이하 저가 주택을 구입할 경우 대출축소로 인한 상대적 부담이 큰 만큼 적용에서 배제한다고 밝혔다. 생애최초 주택구입자의 경우, LTV는 80%로 유지해 지원하되, 방공제 의무 적용, 후취담보 제한 등 조치는 그대로 적용하기로 했다.
시행 시기 또한 한 달의 유예기간을 뒀다. 구체적으로는 12월 2일 신규 대출신청분부터 적용한다.
신축 아파트 준공 전, 등기 없이도 우선 돈을 빌려주는 ‘후취 담보’ 대출의 경우 내년 상반기 입주단지까지만 가능하다. 구체적으로는 입주자 모집 공고가 12월 1일까지 이뤄진 사업장으로서 입주기간 시작일이 공고문 기준 2025년 6월 30일까지인 경우에만 기금 잔금대출(후취담보)이 가능하도록 했다.
정부는 이번 디딤돌대출 한도 축소 조치로 내년에는 대출액이 3조 원, 조치가 온전하게 시행되는 내후년부터는 5조 원가량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규철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한정된 재원 안에서 디딤돌대출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한 것이며, 앞으로 실수요자와 시장 상황을 반영해 예측 가능한 맞춤형 관리를 하겠다”고 밝혔다.
무주택자 “정책 못 믿겠다”
하지만 현장에선 정부의 부동산 대출 정책이 오락가락 하면서 혼선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불과 보름도 안 된 사이에 서민들의 주택 구입 용인 디딤돌대출 한도 축소와 유예, 수도권 유예 뒤 축소 등으로 혼란을 빚으면서 수요자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0월 디딤돌 대출 한도를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축소했다. 갑작스러운 대출 한도 축소로 수요자들의 혼란이 심화하고 반발 목소리가 커지자 일단 이를 유예하기로 했다. 게다가 수도권에는 유예 기간을 두고 축소 시행 방침을 밝혀 논란이 확산했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10월 2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통일된 지침이 없었고, 조치를 시행하기 전 충분한 안내 기간을 갖지 않아 국민들께 혼선과 불편을 드려 매우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12월부터 수도권 아파트에 대한 디딤돌 대출 한도가 최대 5500만 원 줄어든다. 또 신규 분양 아파트에 대한 잔금 대출을 디딤돌 대출로 충당할 수 없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에선 급증한 가계대출을 줄이기 위해 디딤돌 대출 한도 축소가 불가피하지만, 정책을 수시로 바꿔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책 일관성 결여로 이후 정책 추진 동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역차별 논란도 일고 있다. 신생아 특례 대출 요건은 완화했다. 정부는 연 소득 기준을 1억3000만 원에서 12월부터 2억 원으로 확대한다. 또 내년부터 2027년까지는 2억5000만 원으로 추가 완화한다. 이에 따라 신생아 특례 대출을 받지 못하는 실수요자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실제 부동산 정보공유 온라인 카페에서는 디딤돌 대출과 관련한 정부의 혼선을 비판하는 글과, 역차별을 주장하는 글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디딤돌 대출과 관련한 역차별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급증한 가계부채를 관리하고, 서울 및 수도권 집값 상승을 막기 위해 대출을 제한하는 정부의 규제 대책이 필요하지만, 정책 추진 과정에서 혼선이 반복됐다”며 “정부의 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실수요자들이 혼선을 빚고,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정부의 이번 디딤돌 대출 규제로 상대적으로 자금이 부족한 실수요자들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며 “신생아 특례 대출을 받지 못하는 실수요자들이 역차별이라면 반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 단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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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규제 약발 먹히나?
최근 집값 상승 피로 누적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영향으로 서울 아파트 시장에 관망세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11월 첫째 주(11월 4일 기준)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0.07% 상승해 지난주(0.08%) 대비 상승 폭이 축소됐다. 서울 집값은 33주 연속 상승세지만 오름폭은 지난 10월 둘째주(0.11%) 이후 3주 연속(0.09%→0.08%→0.07%) 줄어들었다.
이는 최근 계속되는 대출규제 등의 영향으로 매매 수요자들이 거래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11월 8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지난 7월 9098건에서 8월 6411건, 9월 3045건으로 급감했다.
거래가 막히면서 매물은 점점 쌓이고 있다.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물은 11월 8일 기준 8만8202건으로 1년 전(7만9404건) 대비 11% 증가했다.
이 와중에 정부가 12월부터 서민 대상 주택구입 자금용 정책 대출인 ‘디딤돌 대출’ 한도마저 줄이기로 하면서 부동산 시장에는 전반적인 관망세가 더욱 길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비록 디딤돌 대출은 5억∼6억 원 이하 중저가 주택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이 자금을 매개로 해당 주택의 매도자가 ‘상급지’로 갈아타기를 하며 연쇄적으로 서울 인기 지역 집값까지 밀어 올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자 정부가 정책대출 규제에 나선 것이다.
또 금융당국이 전방위적으로 가계대출을 죄는 와중에 국토부는 디딤돌·신생아특례대출 등 정책대출을 늘려오면서 부처 간 엇박자가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영향을 미쳤다. 실제 올해 들어 9월까지 집행된 디딤돌 대출은 22조2507억 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8조1196억 원)의 3배 가까이 증가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재 수도권에 나가 있는 디딤돌 대출 비중 자체가 전체의 50% 정도 되기 때문에 (수도권만 규제하더라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내년에 일부 적용이 유예되는 곳들을 감안하면 약 3조 원, 내후년께 해당 조치가 완전히 시행되면 약 5조 원 내외로 대출이 줄어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부동산 시장에서는 당장 5000만 원 내외의 자금을 받지 못하게 된 실수요자들이 수도권 ‘내 집 마련’ 계획을 당분간 미루면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거래량이 더욱 감소하고 집값 상승 폭도 축소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상대적으로 대출 규제에서 자유로운 강남3구 등 주택 선호 지역을 중심으로는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 및 양극화 현상이 더욱 뚜렷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이번 규제로) 서울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다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디딤돌 대출을 규제한다고 주택시장과 가계부채가 안정될까 의심스럽다”며 “디딤돌 대출이 가능한 주택 가격은 5억 원까지인데 서울에는 5억 원 이하 아파트가 얼마 되지 않는다. 이 정도 가격으로 집을 살 수 있는 지역은 대부분 수도권 외곽이거나 지방인데 계속 반복되는 정책 잘못이 부동산 시장을 더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