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의 비만약으로 유명한 ‘위고비’를 개발한 노보 노디스크는 지난 2023년 9월 시가총액이 4280억 달러(약 620조 원)를 돌파하며 최대 명품그룹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를 제치고 유럽 증시에서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는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마운자로)’ 개발 후 글로벌 제약사 시총 1위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2023년 말 기준 약 5242억 달러(약 760조 원)였던 이 회사 시총은 2024년 12월 약 7288억 달러(약 1059조 원)로 뛰었다.
제약 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세계적인 ‘비만 치료제 신드롬’은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가 덴마크 국내총생산(GDP) 전망치를 끌어올리게 할 정도로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는 기존보다 크게 업그레이드된 약 효능뿐 아니라 비만이 단순히 체중 증가 문제를 넘어 심각한 건강위험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비만 유병률 2배 높이자 세계인 건강 위협···한국인도 ‘비만은 질병’ 인식
위고비·젭바운드 출시로 비만약 신드롬···식욕억제·지방흡수 억제제도 시판
당뇨약 개발했는데 ‘살을 빼주고 치매에도 효과’···심혈관계·치매에도 도전
사용 편하고 효과 더 크고···제약사, 위고비·젭바운드 넘어설 신약개발 박차
부작용 적고 효과 더 큰 치료제로···경구용·월 1회 등 편의성 높인 제품 개발
▲ 비만은 단순히 체중 증가 문제를 넘어 심각한 건강위험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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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조직의 비정상적인 축적을 수반하는 비만은 21세기 들어 전 세계 보건학적 문제로 대두됐다.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1990년 이후 비만 유병률이 2배 가까이 증가했고, 2022년 기준 세계 성인의 43%가 과체중이다. 국내 역시 2022년 성인 비만 유병률이 약 37%에 달하면서 국민 건강에 위협이 되고 있다.
비만은 건강의 적인 동시에 경제의 적이다. 2024년 3월 대한비만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연구를 보면, 2017~2021년 5년간 비만의 사회경제적 비용(의료비, 간병비, 교통비, 생산성손실액, 생산성저하액, 조기 사망에 따른 미래소득 손실액)은 연평균 7% 증가했다. 2021년에는 비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이 약 16조 원에 달했다.
고혈압 2.5~4배, 당뇨 5~13배
비만이 사회경제적 부담을 높이는 건, 단독으로 존재하는 질병이 아니라는 점과 관련이 깊다. 비만은 다른 만성질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한비만학회에 따르면 비만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관상동맥질환 1.5~2배, 고혈압 2.5~4배, 당뇨병 5~13배 발생 위험이 높다. 나아가 심근경색 및 뇌졸중 등 생명에 위협을 줄 수 있는 질병의 발생 위험 역시 높인다. 비만이면 대사적 이상이 없더라도 비만 그 자체로 인해 합병증이 동반되는 것이다.
이는 비만인 경우 인슐린을 만드는 췌장의 베타세포가 인슐린을 잘못 만들게 해서다. 세포 숫자도 점차 줄어든다. 지방세포에서 인슐린 작용을 억제하는 물질들이 분비돼 인슐린이 있어도 잘 작용하지 못하는 인슐린 저항 상태로 만들게 되므로 당뇨병을 부른다.
또 혈액 속에 지방이 많아지고, 지방세포에서는 나쁜 물질이 나와 혈관 손상을 일으켜 동맥경화증을 가속화시킨다. 비만은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을 50% 높일 뿐 아니라, 심혈관계 질환에 의한 사망률과 관상동맥질환에 의한 사망률을 50% 높일 수 있다. 비만도가 증가할수록 고혈압 빈도도 증가해 정상체중에 비해 고혈압이 동반될 위험이 남녀 각 2.5배, 4배 높아진다.
원래 당뇨병 치료제로 쓰이던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작용제가 비만약 위고비 등으로 재탄생한 건 이런 연관성에서 기인한다. 위고비가 비만 환자의 심혈관계 사건 위험을 줄이는 데 쓸 수 있도록 추가 승인된 것도, 젭바운드 임상 3상 결과 심부전 위험을 줄인 것도 연장선상에 있다.
신드롬이라 불릴 정도의 비만약 인기 덕분에 비만에 대한 인식은 다행히 높아지고 있다.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IQVIA)가 지난해 일반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비만인식 조사결과, 응답자 10명 중 8명(79%)이 비만을 질병으로 인식했다. 단순한 체중 증가 문제가 아니라 건강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치는 질병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10년 전 조사 결과와 비교하면 사회적 인식 변화를 보여준다.
비만 관리를 통해 다른 동반질환을 예방하거나 개선할 수 있다는 인식도 높았다. 응답자의 90%가 비만 관리로 당뇨병, 고혈압, 심혈관 질환 등 동반질환을 예방하거나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큐비아 이강복 상무는 ‘비만 인식과 치료의 새로운 지평’ 보고서에서 “비만에 대한 인식은 크게 변화하고 있다”며 “비만을 질병으로 인식하고 전문가의 도움 필요성을 인지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인식 변화는 비만 치료에 대한 관심과 수요 증가로 이어지고 있으며 치료 환경의 변화를 가속화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국내 비만 치료 환경은 새로운 치료제 등장으로 변화 시기를 맞았다”며 “고도 비만과 동반질환을 가진 환자에 대한 치료제 급여기준을 완화하는 등 패러다임 변화에 맞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2024년 10월 17일 서울 강남구의 한 약국에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가 개발한 비만치료제 ‘위고비’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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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고비·젭바운드···비만약 신드롬
비만 치료제의 역사는 ‘흥망성쇠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10년 글로벌 블록버스터 비만약이었던 리덕틸(성분명 시부트라민)이 심혈관계 부작용 위험 이슈로 시장에서 퇴출됐고, 2020년에는 벨빅(로카세린)이 암 발병 위험 증가 사유로 시장에서 철수했다. 부작용 이슈로 철수한 비만약은 8종에 달한다. 이런 가운데 나온 신약들도 기대 만큼의 효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시장 침체기를 거쳐야 했다.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체중 감량 효과 20% 내외의 치료 옵션들이 등장하면서 비만 치료제 시장에 다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원래는 당뇨병 치료제로 쓰이다가 비만 치료제로 화려하게 변신한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작용제’ 약물이 그 중심에 있다.
GLP-1은 음식을 먹거나 혈당이 올라가면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당초 당뇨병 치료에 사용했으나, GLP-1이 뇌의 포만중추를 자극해 식욕을 억제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비만 치료제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당뇨병 치료제로 쓰여왔다는 건 이 약의 부작용이 예측 가능하고, 안전성이 어느 정도 검증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만약의 오명이었던 안전성 이슈에서 자유로울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GLP-1이 각광 받는 가장 큰 이유는 효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2014년 최초의 GLP-1 비만 신약으로 미국에서 허가받은 노보 노디스크의 삭센다(리라글루타이드)는 임상시험 결과 56주 투약 기준 9.2% 체중 감량 효과를 냈다.
삭센다의 다음 버전인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는 효과와 편의성이 더 높아졌다. 임상 결과 치료 68주째에 환자들은 평균 14.9% 감소했다. 하루 한 번 주사하는 삭센다와 달리 일주일에 한 번만 투여해도 된다. 위고비는 2021년 미국에서 승인된 후 2024년 10월 국내에서도 출시됐다.
GLP-1과 GIP(포도당 의존성 인슐린분비 폴리펩타이드)에 이중 작용하는 젭바운드(터제파타이드)는 임상에서 최대 22.5%의 감량 효과를 냈다. 최근에는 젭바운드가 위고비보다 체중 감량 효과가 47% 더 우수하다는 일라이 릴리의 연구 결과도 나왔다.
젭바운드 역시 주 1회 투여제로, 2023년 11월 미국에서 비만치료제로 승인됐으며 젭바운드와 동일한 성분의 ‘마운자로’가 2022년 당뇨병 치료제로 미국에서 승인된 바 있다. 국내에선 ‘마운자로’라는 이름으로 2023년 6월 당뇨병에 먼저 허가된 후, 지난해 7월 비만에도 추가 승인됐으나 아직 출시되지 않았다.
비만 치료제 날개를 달고 노보 노디스크의 2023년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1% 증가한 713억 덴마크 크로네(약 14조 원)를 기록했다. 일라이 릴리의 3분기 매출은 114억3910만 달러(약 16조 원)로, 전년 동기 대비 20% 늘었다.
GLP-1뿐 아니라 식욕 억제제, 지방 흡수 억제제 등의 비만 약도 현재 시판 중이다. 식욕 억제제는 식욕 저하로 인한 음식 섭취 감소를 목적으로 한다. 향정신성 식욕억제제인 펜터민 성분을 기반으로 하는 큐시미아(펜터민·토피라메이트)가 많이 판매된다. 비향정신성 식욕억제제인 ‘콘트라브‘(부프르피온·날트렉손)도 있다.
지방흡수 억제제는 지방 분해 효소를 억제해 지방이 체내로 흡수되는 것을 줄이는 작용이다. 해당 약인 제니칼(오르리스타트)은 지방 흡수 효소인 리파아제를 억제함으로써 섭취한 지방의 일부를 소화 흡수되지 않은 채 몸 밖으로 배출시킨다.
비만 치료제는 체중 감량 이상의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증명하고 있다.
▲ 전 세계적으로 비만 치료제 돌풍이 일자 제약회사들은 앞다투어 부작용은 줄이고 효과는 더 큰 비만 치료제가 개발에 나섰다. 사진은 SK 바이오사이언스 연구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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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고비는 국내와 미국에서 비만 환자의 주요 심혈관계 사건 발생 위험을 줄이는 데 쓸 수 있도록 적응증이 추가됐다. 연구 결과, 표준요법에 위고비를 보조요법으로 추가했을 때 위약에 비해 주요 심혈관계 사건(심혈관계 질환 사망, 비치명적 심근경색, 비치명적 뇌졸중)을 20%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엔 미국 FDA가 젭바운드를 수면무호흡증 치료제로 승인했다. 전 세계적으로 수면무호흡증 신약으로 허가받은 최초 사례다. 앞서 발표된 3상 연구 결과, 양압기 사용과 약물 투여를 병용한 집단에서 불규칙한 호흡 빈도가 62.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릴리와 노보는 비만과 연관 깊은 대사이상지방간염(MASH)에도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노보는 2024년 11월 MASH 환자에게 위고비를 투여한 3상 결과 1차 지표를 충족했다고 발표했다.
노보는 위고비를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개발하기 위한 임상도 진행 중이다. 앞서 2024년 10월 위고비의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가 2형 당뇨병 환자의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을 40~70% 낮춘다는 미국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대 연구가 미국 알츠하이머병 협회 학술지에 발표된 바 있다.
하현수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비만 치료제의 생존 이점이 확인되면서 보험 적용에 대한 환자들의 요구도 커질 것”이라며 “보험 적용은 현재 높은 치료제 가격으로 인해 사용이 어려웠던 환자들까지 사용이 확대되며 시장 확대로 이어질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제약회사들 ‘살과의 전쟁’
전 세계적으로 비만 치료제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부작용은 줄이고 효과는 더 큰 비만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외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사용이 간편하거나 기존 치료제보다 효과가 큰 비만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2030년까지 비만 치료제 시장이 약 138조 원(약 1000억 달러)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현재 비만치료제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노보 노디스크의 비만 치료제 ‘위고비’와 일라이 릴리가 개발한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는 GLP-1(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1)계열 치료제다.
위고비가 젭바운드가 신드롬을 불러일으키자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너도나도 젭바운드보다 효과는 크고 부작용은 적은 약물 개발에 나섰다. 지금까지 나온 비만 치료제의 경우 일부는 효과가 없거나 근육감소가 동반되고, 처방 중단 시 체중증가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국내 제약사 한미약품은 GLP-1과 위억제 펩타이드(GIP), 글루카곤(GCG) 등 각각의 수용체 작용을 최적화해 비만 치료에 특화시킨 비만치료 삼중작용제(LA-GLP/GIP/GCG, 코드명 HM15275)를 개발 중이다. 비임상 연구에서 위고비와 젭바운드보다 체중감량 효과가 컸으며, 근손실을 제외한 체지방량 자체가 줄었다. 다양한 대사성 질환에서도 효과를 보였다.
후속 파이프라인인 ‘HM17321’은 지방만 선택적으로 감량하면서 근육을 증가시키도록 설계됐다.
신약개발 기업 동아에스티 자회사 메타비아는 비만치료제 ‘DA-1726’를 개발 중이다. DA-1726은 Oxyntomodulin analogue(옥신토모듈린 유사체) 계열의 비만치료제로, GLP-1 수용체와 글루카곤 수용체에 동시 작용해 식욕억제와 인슐린 분비 촉진 및 말초에서 기초대사량을 증가시켜 궁극적으로 체중 감소와 혈당 조절을 유도한다.
국내 바이오 기업 프로젠은 차세대 비만·당뇨 치료제 ‘PG-102’를 개발 중이다. PG-102는 프로젠의 독자적 NTIG 플랫폼 기반 GLP-1/GLP-2 이중 작용제다. 프로젠에 따르면, 기존 GLP-1 계열 약물 대비 우수한 혈당 조절, 체중 감소 효과, 장 기능 개선 등을 보이고 있다.
기존 주사제인 약물을 복용이 간편한 경구용으로 개발하거나 주사 투약기간을 주 1회에서 월 1회로 늘리는 방식으로 개발하는 기업들도 많다.
비만 치료제 시장 선두주자인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는 경구용 비만치료제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로슈와 아스트라제네카는 하루 1회 복용하는 경구제 약물을 개발 중이다. 부작용 문제로 임상을 중단했던 화이자도 경구용 비만 치료제 개발 재개에 나섰다.
경구용 비만 치료제 ‘VK2735’를 개발 중인 미국 제약사 바이킹 테라퓨틱스도 주목받고 있다. GLP-1 및 GIP 수용체 이중작용제인 VK2735는 임상에서 80㎎ 복용 후 28일 동안 평균 5.3kg 체중 감소가 확인됐다. 구역과 설사 발생률 등 부작용이 낮았고 구토나 변비는 발생하지 않았다. 100㎎을 투여한 참가자들은 28일 후 체중이 8.2kg까지 감소했다.
글로벌 제약사 머크는 최근 중국 3대 제약사 중 하나인 한소제약과 먹는 비만치료제 ‘HS-10535’에 대한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며 본격적으로 비만치료제 시장 경쟁에 참전했다.
머크가 확보한 HS-10535 역시 GLP-1(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1) 치료제로, 후발주자인 만큼 비만에 국한하기보다 추가 심혈관 질환 및 심장 대사 관련 질환에 집중할 것으로 관측된다.
국내 바이오 기업 디앤디파마텍도 경구용 GLP-1 비만치료제 ‘DD02S’를 개발 중이며, 대웅제약은 월 1회 주기의 비만 치료제 개발에 나섰다.
대웅제약은 티온랩 테라퓨틱스, 대한뉴팜, 다림바이오텍과 ‘비만 치료 4주 지속형 주사제’ 공동 개발을 진행 중으로, 이 비만 치료제는 세마글루타이드 성분을 기반으로 하며, 기존 치료제 대비 효과적인 약물 방출과 지속성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