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 싱어송라이터 오티스 림(Otis Lim·임호승)은 뮤지션들 사이에서도 음악 잘하기로 소문이 났다. 프로듀서 겸 래퍼 박재범, 래퍼 PH-1, R&B 가수 겸 프로듀서 따마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그를 돕고 나선 이유다. 대표곡인 <우리집 강아지 귀여워>(2021)처럼 시대 감성을 잘 읽으면서도, 음악적인 감각도 비평가들에게 읽힌 노래들을 수두룩이 갖고 있다. 음악만큼 인간적인 매력도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데 한몫한다. 예술가적인 자의식을 내세우기보다 음악을 좋아하는 성실한 작업자로서, 건강한 정신·몸을 유지한다.
2024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 신인 뮤지션 발굴 프로젝트 ‘뮤즈온’에 선정된 이후에도 이런 항상성은 빛났다. 다소 빡빡한 일정에도, 탄탄한 음악성을 기반 삼은 사람 좋은 성실함으로 신망을 더 얻었다. 무엇보다 음악 영혼의 힘을 믿지만, 그것에만 매몰되지 않은 균형감각은 앞날을 더 밝게 한다. 그래서 오히려 음악의 위대함을 객관적으로 마주하게 한다. 다음은 최근 서울 충무로에서 만난 오티스 림과의 일문일답.
시대 감성 잘 읽으면서 비평가들에게 음악적 감각 인정받은 노래 수두룩
“창작활동은 항상 즐겁다···나는 감성에 치우쳐 음악 만드는 사람 아니다”
▲ R&B 싱어송라이터 오티스 림(Otis Lim·임호승)은 뮤지션들 사이에서도 음악 잘하기로 소문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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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발매한 첫 정규 앨범 <플레이그라운드(Playground)>가 호평을 받았다. 이 앨범을 내고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많은 분들이 아티스트로 대해주는 것 같더라. 확실히 정규 앨범은 무게감이 있으니까.
-<플레이그라운드>라는 제목은 다양한 장르가 녹아 있는 앨범과 잘 어울린다.
▲정규 1집인 만큼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다 모아서 내보자’는 취지가 있었다. 그런데 청자들이 정신없이 들을 수도 있는 포인트가 있었다. 앨범 단위로 듣기엔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취향 차이에 따라서 찾아 듣는 걸 생각해 봤을 때 놀이터라는 단어가 잘 어울릴 거 같았다. 각자 좋아하는 놀이 기구를 타면서도 하나가 되는 그 공간이 내게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11곡이 실렸는데 플레이그라운드라는 제목으로 묶어주니까, 놀이터의 이미지가 입혀지면서 앨범 완성도도 올라간 느낌이 들었다.
-다양성 안에서 통일성이 좀 생기는 건가. 한 인터뷰 보니까 어렸을 때 모타운 음악을 좋아했다던데.
▲부모님이 팝을 좋아했다. 부모님이 좋아하던 음악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보이즈 투 맨’이 제일 좋았다. 이를 통해 R&B, 흑인음악이라는 걸 알게 됐고 점차 빠지게 됐다. 그러다가 모타운 음악을 알게 됐더. 스티비 원더, 도니 해서웨이 음악을 정말 좋아했다. 해서웨이는 지금도 전곡을 다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다. 이후로 마빈 게이, 현재 활동명을 따온 오티스 레딩을 좋아했다.
“존스는 큰 영향 미친 프로듀서”
-도니 해서웨이를 좋아한 이유는 무엇인가?
▲가스펠, 블루스적인 요소가 있지 않은가. 이런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예전부터 로버트 존슨, 델타 블루스, 시카고 블루스를 좋아했다. 그 다음에 도니 해서웨이로 넘어간 것이다. 그리고 잭슨 파이브 시절 모타운에 몸 담기도 했던 마이클 잭슨 곡을 너무 많이 들었다.
음악 하는 사람들한테 ‘죽기 전에 아티스트 1명의 곡만 들을 수 있으면 누구 음악 들을래?’라는 질문을 자주 던지지 않는가. 그러면 마이클 잭슨이다. 잭슨의 프로듀서이기도 했던 퀸시 존스가 돌아가셨을 때 진짜 울컥했다. 실용음악과 입시를 위해 보컬 학원 다닐 때 (‘퀸시 존스 사단’으로 통한) 제임스 잉그램 노래를 많이 불렀다. 존스는 내게 큰 영향을 미친 프로듀서라고 할 수 있다.
-전업 뮤지션의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전환점이 있나?
▲확실한 계기가 있지는 않다. 노래를 잘하게 되면서 보컬 학원에 가게 됐고 그곳에서 선생님이 ‘디깅’하는 방법을 알려줬는데, 그게 너무 재밌었다. 디깅하는 것에 빠져서 중학교 3학년 때 팝송 올리는 페이스북 페이지까지 운영했다. 팔로워가 7만 명, 8만 명 정도 됐다. 레이첼 페렐 소개 영상, 빌리 홀리데이 ‘스트레인지 프루트’ 영상 등이 큰 반응을 얻었다. 그 페이지를 운영하면서 흑인 음악에 더 빠지게 됐다. 내가 아는 음악 지식들은 거의 고등학생 때 다 만들어진 지식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음악 창작자가 아닌 비평가가 될 가능성도 있었겠다. 그러다가 2021년 데뷔 EP <워크인!(Walkin!)>을 내게 된다.
▲입시를 생각하고 노래만 하던 학생이었던지라, 노래를 만드는 것에 대한 관심은 크게 없었다. 그런데 이제 주변에 히코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먼저 사운드 클라우드를 하면서 노래를 만들었다. 그걸 보면서 ‘노래를 직접 만들 수도 있는 거구나’를 알게 됐고 그 친구가 노래를 내니까 나도 따라서 만들어보고 냈던 게 그 앨범이다.
-첫 앨범임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우문일 수 있지만, 가창자 혹은 송라이팅 혹은 프로듀싱 어느 정체성에 방점을 찍나? 모든 영역의 균형감을 맞추려고 하나?
▲아무래도 단순 가창보다는 송라이팅 쪽에 가까운 것 같긴 하다. 커버곡 가창은 흥미가 좀 떨어지더라. 내 노래 만들 때 더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게 되고.
-창작의 영감이 마른 적은 없나?
▲그렇다. 항상 즐겁다. 나는 감성에 치우쳐서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이성적이면서, 일적으로 접근을 하는 편이다. 그래서 오히려 스트레스를 안 받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은 채 페이스를 꾸준히 유지하면서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것 같다.
-화성이나 코드를 똑똑하게 잘 쓰는 것 같다는 인상도 받는다.
▲너무 편하게 만들면 재미없으니까. 어떻게 하면 색다르고 다를지에 대해서 항상 고민한다. <우리집 강아지 귀여워>도 들을 때는 쉬워 보이지만, 막상 카피에 들어가면 악기 연주하는 분들이 힘들어 한다. 난도가 있고 잘 짜여진 구성이지만 익숙하게 들리는 것에 제일 신경을 쓴다. 색다르더라도 사람들을 일단 설득시켜야 하니까. 혼자만의 세상에서 놀면 안 되니까. 난해하게 들리는 건 싫다.
-오티스 림의 노래는 대중성도 있는데 국내 R&B 신 자체가 너무 작다 보니까 그에 대한 아쉬움은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아무리 신이 작아도 내가 만약 난 놈이고 잘했다면 더 알려졌을 것이다. 신이 작다고 탓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더 노력해서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음악 하나로 모든 걸 이겨내겠다는 생각과는 다른 건가?
▲처음부터 음악으로 돈 벌 생각이 없다. ‘돈 벌 거면 다른 일을 해야지’ 생각이 있다. ‘돈보다는 마음이 이끄는 것들에 집중해서 살자’ 생각이 있다.
-음악적으로 선후배 동료 뮤지션의 인정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영역은 피처링인가, 프로듀싱인가? 아니면 다른 영역이 있나?
▲아무래도 인정을 받는다는 느낌은 피처링이다. 피처링은 아무래도 자신의 음악도 담겨서 발매되는 거니까, 진짜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함께 하지 않는다. 그래서 너무 음악 잘하는 분들이 내 음악에 참여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로 다가온다. 그리고 피처링 해준 모든 분들이 빠짐없이 페이를 안 받아줘서 정말 큰 힘이 됐다. 그분들에게 아침마다 절을 해야 한다.
-오티스 림은 음악도 좋은데 사람도 되게 건강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음악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 같은 게 있나?
▲음악 할 때를 떠나서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정신 건강, 몸 건강이다. 나는 건강하지 않으면 그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술, 담배도 아예 안 한다. 담배는 태어나서 한 번도 안 피워봤고 술도 1년에 두세 번 정도인데 그것도 맥주 한 잔 정도다. 운동은 엄청 좋아하고. 그렇게 살다 보니까 나의 건강함들이 음악이나 활동에 담기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솔 블루스는”
-사실 털어놓으면 블루스 R&B 솔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은 침잠하거나 영혼을 긁어서 위로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오티스 림을 만나니 그건 정말 편견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과거 뮤지션들은 그 시대 속 자기 안에 깊이 있던 무언가를, 음악을 통해서 꺼낸 것 아닌가. 내가 생각하는 솔 블루스는 마음속에 있는 나를 정말 솔직하게 꺼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감정을 그대로 꺼내는 것이라고.
-앞으로 목표는 무엇인가?
▲1년에 정규 한 장 씩 내고 싶다. 아까 말한 ‘음악이 삶에서 부가적인 요소로 바뀌었다’는 말이랑 이어지는 건데 요즘 명반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것 같다. 좋은 음악을 내도 세상에 콘텐츠들이 워낙 많고 그만큼 외적으로도 콘텐츠가 많이 나오니까, 음악을 너무 쉽게 찾아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어 옛날만큼 음악 자체의 가치가 없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 상황이라면 몇 년 걸려 음반을 내기보다 내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더 많은 음악을 들려주는 게 큰 행복이 아닐까 싶다. 또 나는 노래 만드는 걸 제일 좋아하니까. 대중과 계속 접점을 만들고 싶다.
-오스트 림은 아티스트 연연하는 게 없는 것 같다. 음악을 잘하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윤종신 님 인터뷰 영상을 인상 깊게 봤다. 자신의 창작물을 배설물이라는 개념으로 생각을 한다고 하시더라. 안 좋은 뜻이 아니라, 노래에 대한 비평이나 스코어에 연연하지 않고 다음 걸 만든다는 뜻이었다. 앞을 더 생각하는 게 좋았다. 내 인생에서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나 자신 하나밖에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안 되는 것에 집착하고 스트레스 받으면 좋을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