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소화기내과 전문의…이토록 위대한 장 이야기

“100년 살아낼 힘은 ‘뇌’가 아니라 ‘장’에 있다~”

김혜연 기자 | 기사입력 2025/01/22 [15:47]

독일 소화기내과 전문의…이토록 위대한 장 이야기

“100년 살아낼 힘은 ‘뇌’가 아니라 ‘장’에 있다~”

김혜연 기자 | 입력 : 2025/01/22 [15:47]

독일의 저명한 소화기내과 전문의 줄리아 엔더스는 장 건강에 대한 흥미로운 접근 방식으로 유명하다. 장내 미생물을 포함한 위장관의 기능과 중요성에 매료된 줄리아는 2014년 저서 <Darm mit Charme, 매력 있는 장>을 통해 인간의 위장 시스템에 대한 유익한 탐구로 큰 반향을 불러모았다. 소화 과정의 복잡성을 쉽게 설명하며, 음식이 어떻게 소화되고 영양소가 흡수되는지를 상세히 다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도 언급한다. 누구나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장 건강 관리법을 제안하고 식습관, 운동, 스트레스 관리법을 소개한다.

 

덕분에 이 책은 종종 간과되고 오해받는 중요한 기관인 장에 대해 쉬운 언어로 소개해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책을 읽은 사람들은 장 건강과 일상생활에서 장의 중요성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다고 입을 모았다. 전 세계 장내 미생물 열풍을 일으키며 700만 명이 넘는 독자의 장 건강 바이블로 자리매김한 줄리아의 책 개정증보판이 <이토록 위대한 장>(북라이프)이라는 제목으로 최근 국내에서도 출간됐다. 최신 의학 연구결과를 반영해 내용을 전면 수정했으며, 장 건강이 뇌와 감정에 작용하는 관계성과 박테리아를 활용한 발효 음식 만들기까지 새롭게 업데이트했다. 이 책을 바탕으로 ‘장에서 시작하는 건강 혁명’을 간추려 소개한다. 

 


 

장은 뇌만큼 똑똑한 기관···몸의 중앙 가장 번잡한 곳에서 뇌와 소통 

호르몬 20여 종 생산하고 면역체계 80퍼센트 담당하는 ‘건강 감시국’

들어오는 음식 분석하고, 피를 잡아두고, 장 박테리아 숙덕거림 엿들어

 

장은 몸에서 일어난 일들을 뇌에 들려주며 감정·행동·건강상태 좌지우지

우울증·불안장애는 뇌 아니라 장에서 오는 법···오래 살려면 장을 돌봐야

 

▲ 1990년생 독일 의학자 줄리아 엔더스. TEDx 강연 ‘놀랍도록 매력적인 장에 관한 과학’은 510만 뷰를 기록했다. <사진출처=TEDx 강연 유튜브 화면 갈무리>  

 

“나는 제왕절개로 태어났고 모유도 먹지 못했다. 그리하여 내 장은 21세기형 장의 완벽한 표본이 되었다. 당시에 장에 관해 더 많이 알았더라면 내가 앞으로 어떤 병을 앓게 될지 예상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제일 먼저 유당 불내증을 앓았다. 다섯 살이 되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우유를 마셔도 괜찮았다. 언젠가부터 뚱뚱해졌고 그다음 다시 빼빼 말라졌다. 이후 한동안 건강하게 잘 지냈다. 그리고 어느 날 상처가 났다. 열일곱 살 때 오른쪽 다리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작은 상처가 생겼다. 한 달이 넘도록 아물지 않아 결국 병원에 갔다. 의사는 무슨 병인지 모른 채 연고를 처방해 주었다. 3주 후 오른쪽 다리 전체에 상처가 번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다리 전체, 팔과 등까지 번졌다. 얼굴에도 가끔 나타났다. 다행히 겨울이어서 사람들은 내 얼굴에 물집이 생겼거나 단순히 긁혔다고 생각했다.”

 

1990년생 독일 의학자 줄리아 엔더스는 한국어판으로 출간된 책 <이토록 위대한 장> 서문에 이렇게 쓰고 있다. 

 

결국, 아무도 줄리아의 병을 고치지 못했고 그저 아토피 피부염 같다는 추측만 남았다. 당시 의사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지 혹은 심적으로 힘든 일이 있는지 물었다. 코르티솔(부신피질 호르몬제)을 먹으면 약간 나아졌지만 끊으면 바로 원상태로 돌아갔다. 여름에도 겨울처럼 긴 양말을 신어야 했다. 안 그러면 진물이 흘러 바지를 적셨다. 

 

모든 병은 장에서 시작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줄리아는 직접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알아서 살길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자신과 아주 비슷한 피부병을 앓는 어떤 남자 이야기를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그 아이는 항생제 치료를 받은 후 피부병이 생겼다고 했다. 줄리아도 처음 상처가 생기기 몇 주 전에 항생제 치료를 받았었다.

 

“이때부터 나는 피부병이 아니라 장에 탈이 난 것처럼 치료하기 시작했다. 유제품과 밀가루를 끊고 장에 좋은 다양한 유산균을 섭취하면서 전체적으로 건강하게 먹었다. 이 시기에 나는 여러 괴상한 실험도 했다. 당시 의학을 공부하고 있었더라면 그중 절반 정도는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몇 주 동안 아연을 과하게 섭취해서 몇 달간 후각이 너무 예민해져 고생한 적도 있었다. 몇몇 고비를 넘기며 마침내 내 병을 어느 정도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이건 일종의 성공 경험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걸 몸소 체험했다. 그 후 나는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줄리아는 이렇듯 17세에 원인불명의 피부병을 앓으면서 장과 소화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의대 첫 학기에 어느 파티에서 입냄새가 심한 남학생 옆에 앉았다. 괴팍한 할아버지 입에서 나는 불쾌한 침 냄새가 아니라 설탕을 많이 먹은 아줌마 입에서 나는 시큼들큼한 냄새였다. 잠시 후 나는 자리를 옮겼다. 그 남학생은 다음 날 죽었다. 자살이었다. 장이 병 들면 악취가 나고 더 나아가 감정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걸까? 이런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일주일쯤 지나서 친한 친구와 이런 추측에 관해 얘기했다. 그리고 몇 달 뒤에 친구는 급성 장염에 걸려 심하게 고생을 했다. 병이 낫고 다시 만났을 때 친구는 내 추측이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살면서 그렇게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적이 없었다면서.”

 

그 일을 계기로 줄리아는 장에 더욱 빠져들었고 장과 뇌의 관계를 연구하는 분야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 분야는 최근 들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논문 몇 편이 전부였는데 그사이 작성된 학술보고서만 수백 건에 달한다. 장이 건강과 감정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연구 방향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줄리아는 이 매력적인 분야를 향해 노를 저어갔다. 2012년 의대생 신분으로 베를린, 카를스루에, 프라이부르크에서 열린 독일 사이언스 슬램(과학강연대회)에 참여해 ‘매력적인 장’을 주제로 1등을 휩쓸었다. 이 과학강연은 유튜브에서 큰 화제를 모았으며, 2014년에 독일에서 정식 출간돼 미국·프랑스·영국을 포함한 42개국에 장내 미생물 열풍을 불러왔다. 

 

“의대에서 경험한 바로 미루어 볼 때 이 분야는 의학계에서 과소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장은 매우 독보적인 장기다. 장은 면역 체계의 3분의 2를 훈련시키고 음식물로 에너지를 만들며, 20개 이상의 호르몬을 생산한다. 그런데도 장에 대해 자세히 배우려는 의사들이 별로 없다. 2013년 5월에 리스본에서 열린 ‘장 미생물과 건강’ 학회에 참석했는데 참석 인원이 한눈에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그중 절반이 하버드, 예일, 옥스퍼드, 하이델베르크 같은 일류 대학이라 불리는 재정이 넉넉한 기관 소속이었다.”

 

줄리아는 학자들이 중요한 발견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밀폐된 공간에 모여 자기들끼리 토론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물론 학문적 신중함이 성급한 발표보다 나을 때가 많다. 하지만 겁내며 머뭇거리다 중요한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그 사이 몇몇 소화 불량의 원인이 장 신경계의 장애 때문이라는 주장이 학계의 인정을 받았다. 불편한 감정을 처리하는 뇌 영역에 장 신경계가 신호를 보내면 그 사람은 이유도 모른 채 기분이 나쁘고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의사가 불편한 감정의 원인을 단순히 정신적 문제로 취급하면 증상이 나아지기는커녕 악화될 수 있다. 이 사례는 연구결과를 더 빨리 발표하고 확산시켜야 하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에 불과하다.

 

“내가 책을 쓴 까닭이 바로 이것이다. 많은 사람이 답을 찾아 헤매는 동안 학자들은 연구결과를 밀폐된 회의실에 모여 토론하나 논문에만 기록한다. 나는 장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널리 알리고자 한다. 장 질환을 앓는 많은 환자가 의학에 실망하는 걸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지만 나는 기적의 묘약을 팔 수 없고, 건강한 장이라고 모든 질병을 낫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고 어떤 새로운 발견이 있으며, 이 새로운 지식으로 우리의 생활을 어떻게 개선할지 친절하게 설명할 수 있다.”

 

▲ 장은 몸에서 뇌 다음으로 신경 체계가 발달한 곳이며, 20여 종의 호르몬을 생산하고, 면역 체계의 80퍼센트를 담당하는 우리 몸의 건강 감시국이다. <사진출처=북라이프 유튜브 화면 갈무리>  

 

장은 내 몸의 건강 감시국

 

줄리아는 “100년을 살아낼 힘은 뇌가 아닌 ‘장’에 있다”고 단언한다. 장이 건강하면 병든 몸과 마음도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뇌도 심장도 아니고 왜 하필 장일까? 장은 뇌만큼 똑똑한 기관이기 때문이다. 

 

줄리아는 쉽게 풀어서 “장은 몸에서 뇌 다음으로 신경 체계가 발달한 곳이며, 20여 종의 호르몬을 생산하고, 면역 체계의 80퍼센트를 관할하는 우리 몸의 건강 감시국”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장은 몸의 중앙 가장 번잡한 곳에서 뇌와 소통한다고 한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음식을 분석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호르몬을 호기심 있게 살피고, 피를 잡아두고, 면역 세포의 안부를 묻고, 장 박테리아의 숙덕거림을 의심스럽게 엿듣는다. 장은 몸에서 일어난 일들을 뇌에 들려주며 우리의 감정, 행동, 건강 상태를 좌지우지한다.

 

줄리아는 책에서 지금까지 음식을 소화하고 몸의 찌꺼기를 처리하는 기관으로 알고 있던 장이 얼마나 복잡하고 위대한 기관인지 재치 있고 참신한 비유를 곁들여 재미있게 설명한다. 입에서 장 끝까지 음식물이 소화·배설되는 과정을 추적해 가면서 장과 긴밀하게 협력하는 뇌, 소화기관, 미생물의 기능까지 아우르는 지식을 전해준다. 

 

그중 배변과 소화기관에 관한 설명을 간추려 소개한다.

 

“옆방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의대생이니까 물어보는데, 똥은 어떻게 나오는 거야?’ 처음부터 똥 얘기를 하는 것이 그다지 좋은 생각은 아닐 테지만 이 질문은 내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방바닥에 앉아 두꺼운 의학 서적 세 권을 뒤졌다. 그리고 대답을 찾고는 깜짝 놀랐다. 아주 일상적인 ‘화장실 비즈니스’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기발하고 영리했기 때문이다.”

 

배변을 위해서는 놀라운 능력이 필요한데 음식물 찌꺼기를 가능한 한 깔끔하게 분리하고 위생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두 신경계가 긴밀하게 협력한다. 단언하건대 인간만큼 모범적이고 질서정연하게 이 일을 해내는 동물은 없다. 배변을 위해 우리의 몸은 각종 규칙과 요령들을 개발했다. 괄약근의 오묘한 메커니즘만 해도 그렇다. 대부분 사람은 ‘괄약근’ 하면 의식적으로 열고 닫을 수 있는 외괄약근을 떠올린다. 하지만 몇 센티미터 안쪽에는 비슷한 괄약근이 하나 더 있다. 내괄약근이라 불리는 이 비밀스러운 괄약근은 우리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다.

 

두 괄약근은 각각 다른 신경계통에 소속되어 있다. 외괄약근은 의식의 지시를 따르는 충직한 일꾼이다. 뇌가 화장실에 갈 적당한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면 외괄약근은 의식의 지시대로 최선을 다해 항문을 꼭꼭 닫아둔다. 

 

반면 내괄약근은 무의식의 자율 신경 계통을 위해 일한다. 내괄약근은 방귀를 뀌고 싶은지 아닌지에 관심이 없다. 관심을 두는 것은 오로지 단 하나 ‘속이 편안한가’이다. 방귀를 참으면 내괄약근은 온갖 불편함을 온몸에 전달한다. 반대로 내괄약근의 지시를 따르면 속을 편안하게 하려고 더 자주 방귀를 뀔 것이다. 

 

소화기관 입구에서 일어나는 일

 

그동안 장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덕분에 사람들은 장에서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비단 장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양치질할 때마다 보는 소화기관 입구, 즉 입안에도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놀라운 사실이 숨겨져 있다.

 

첫 번째 비밀 장소는 혀로 찾을 수 있다. 네 개의 작은 구멍인데 두 개는 윗니의 좌우 어금니와 맞닿는 볼 안쪽에 하나 있다. 이 부분을 혀로 만져보면 작은 융기가 느껴진다. 언제 깨문 적이 있나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모두가 정확히 그 자리에 그런 융기를 가지고 있다. 나머지 두 개는 혀 밑에 있는 성소대 좌우에 하나씩 있다. 이 네 구멍에서 침이 나온다.

 

볼 안쪽 침구멍에서는 가령 음식 같은 어떤 원인이 있을 때 참이 나온다. 반면 성소대 좌우의 두 구멍에서는 항상 침이 나온다. 이 구멍 안으로 들어가 침을 거슬러 헤엄쳐 가면 침샘에 도달한다. 이곳에서 매일 약 0.7~1리터의 침이 만들어진다. 아래턱과 목이 만나는 부분을 만져보면 부드럽고 둥글게 솟아오른 곳이 느껴지는데 이것이 바로 침샘이다.

 

그런가 하면 장 내시경을 해도 주로 대장만 살피기 때문에 자신의 소장을 본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음 것이다. 목으로 삼키는 카메라의 도움으로 소장을 관찰한 사람은 대부분 깜짝 놀란다. 상상했던 어둠침침한 호스가 아닌 촉촉하게 윤이 나고 벨벳처럼 부드러워 보이는 분홍색 호스를 만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추측하는 것과 달리 대변은 대장의 끄트머리하고만 관련이 있다. 그 밖의 부분은 놀랍도록 깨끗하고 당연히 냄새도 없다. 소장은 우리가 삼킨 모든 음식물에 입맛을 다시며 성실하게 일한다.

 

언뜻 보면 소장은 다른 장기보다 뒤죽박죽 다치는 대로 일하는 것 같다. 심장에는 방이 네 개나 있고, 간은 간엽(좌엽과 우엽)으로 구분되며, 정맥에는 판막이, 뇌에는 담당 구역이 정해져 있다. 반면 소장은 구불구불 아무렇게나 놓여 모든 음식물이 지나간다. 소장의 진면목은 현미경으로 봐야 비로소 드러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장은 섬세한 일을 몸소 실천하는 존재임을 알게 한다.

 

위산 역류와 장 박테리아

 

줄리아는 또한 장 신경계의 문제로 발생하는 위산 역류, 구토, 변비 등 신체가 겪는 통증부터 불안, 우울, 스트레스 등 뇌와 정신적 질환까지 자세히 소개한다. 

 

“위의 민무늬근은 다리의 가로무늬근처럼 잘 나가다 스텝이 꼬여 삐끗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위산이 엉뚱한 곳에 쏟아지면 큰일이다. 위산과 소화 효소가 식도까지 올라오면 속이 쓰리고 인후까지 올라오면 소위 말하는 신물이 넘어온다. 위산이 역류하는 원인은 근육을 조종하는 신경의 문제로 다리가 삐끗해 넘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길을 걷다가 움푹 파인 곳을 시신경이 못 보면 다리근육 신경이 잘못된 정보를 받고 평평한 길처럼 걷다가 넘어진다. 마찬가지로 소화 신경이 잘못된 정보를 받고 위산을 가둬두지 않아 거꾸로 흐르게 된다.”

 

식도에서 위로 가는 길은 아주 험해서 넘어지기 쉽다. 식도를 좁히고, 횡격막을 단단히 붙잡고, 일부러 빙 돌아 위와 연결하며 조심하는데도 종종 뭔가 잘못된다. 독일 사람의 약 25퍼센트가 속이 쓰리거나 신물이 올라오는 경험을 한다. 이 증상은 최근에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 수백 년 전과 비슷한 방식으로 생활하는 유목민도 비슷한 비율로 위산 역류와 속쓰림으로 고생한다.

 

문제의 핵심은 식도와 위에서 서로 다른 두 신경계, 뇌에서 나온 중추 신경계와 소화기관의 자율 신경계가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중추 신경계는 식도와 위 사이에 있는 수축근을 조종하며 뇌는 위산 생산에 영향을 미친다. 자율 신경계는 식도가 규칙적인 파도타기를 하면서 음식물을 아래로 보내고, 하루 수천 번씩 침을 삼켜 식도를 깨끗하게 유지하도록 한다.

 

기본적으로 두 신경계의 작동을 정상화해야 속이 쓰리지 않고 신물이 넘어오지 않는다. 우선 껌을 씹거나 차를 마시면서 자율 신경계에 올바른 방향을 일깨워 준다. ‘후퇴하지 말고 전진!’ 그리고 휴식을 취함으로써 뇌가 여유를 가지고 중추 신경계에 명령을 내리게 한다. 그러면 수축근을 잘 닫아두어 신물이 덜 올라온다. 담배를 피우면 음식을 먹을 때 자극되는 뇌 부위가 자극된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면 기분은 편안해질지언정 빈속에 위산이 분비되고 식도의 수축근이 열린다. 위산 역류와 속쓰림에 담배가 한몫하는 셈이다.

 

“박테리아는 좋은 종과 덜 좋은 종이 있다. 모유를 먹으면 좋은 종을 많이 섭취하여 가령 글루텐 불내증의 위험을 낮출 수 있다. 아기의 장에 최초로 정착한 박테리아들은 앞으로 정착할 후손 박테리아를 위해 장에서 산소와 전자를 없앤다. 장에 산소가 없어지면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일반적인 미생물들이 정착한다. 모유 수유를 할 수 있는 산모라면 아이를 건강하게 먹이는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영양소를 측정하여 아기에게 필요한 수치와 비교해 보면 모유만 한 게 없다. 모유는 영양소 점수로 특급 A를 줘도 모자랄 만큼 모든 걸 갖추고 있다. 게다가 모유는 아기에게 엄마의 면역체계 일부도 준다. 가령 애완동물이 핥아서 아기에게 나쁜 박테리아가 침입하면 모유에 들어 있는 항체가 방어한다.”

 

이유식 후 아기의 박테리아 세계는 첫 번째 혁명을 맞는다. 먹는 음식이 갑자기 변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자연은 첫 번째 식민지 개척자들을 영리하게 정비해놨다. 모유를 만들 때 쌀 같이 단순 탄수화물이 속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반면 아기에게 콩 같은 복합적인 식물성 음식을 먹이면 아기의 장 미생물 혼자서는 이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소화를 도울 새로운 종을 데려온다. 아기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어떤 종의 박테리아가 추가되고 포기될지 정해진다.

 

박테리아는 필요에 따라 음식을 쪼갤 도구(효소나 유전자)를 생산할 뿐 아니라 빌려오기도 한다. 일본인의 장 박테리아는 해양 미생물에게서 미역을 분해하는 데 필요한 도구를 빌려 초밥을 감싸고 있는 김을 분해한다. 이처럼 장내 미생물군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는 우리가 먹는 음식을 분해하는 데 필요한 도구가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중요한 박테리아를 후대에 계속 전달할 수 있다. 유럽 사람 중 ‘원하는 대로 마음껏 드세요’라고 홍보하는 초밥 뷔페를 다녀온 뒤 변비를 앓은 사람은 친척 중 누군가에게 초밥 김을 처리할 박테리아가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장에 혹은 후대의 장에 초밥 김 소화 도우미가 살게 하는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박테리아도 기꺼이 정착하여 일하고 싶을 만큼 그 장이 마음에 들어야 가능하다.

 

장과 감정

 

아울러 저자는 장 미생물과 박테리아가 우리의 감정, 기억, 행동, 면역, 체중 등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도 들려주며 “우울증과 불안장애, 행복은 뇌가 아니라 장에서 온다”고 말한다. 100년 동안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행복하게 살려면 장을 돌봐야 한다는 뜻이다. 

 

“우울증에 걸린 쥐가 특정 박테리아를 얻으면 기분이 밝아진다거나 다른 쥐의 장 박테리아를 이식받으면 성격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리하여 사이코바이오틱스(psychobiotics)라는 개념이 탄생했다.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미생물. 때에 따라서는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까지 사이코바이오틱스가 인간에게도 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바야흐로 인간에 관한 신뢰할 만한 연구결과가 스무 개나 발표되었다. 실험된 박테리아 칵테일 중에서 세 개는 아무런 효과를 내지 않았지만 나머지 모두는(이것이 대단한 뉴스다)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미쳤다.”

 

연구 결과는 전체적으로 매우 현실적이다. 이를테면 박테리아는 즉각적으로 우리의 기분을 바꾸지 않는다. 대개 3주에서 4주가 지나야 비로소 서서히 제한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스트레스와 관련해서도 관점의 변화가 생겼고 이제는 장이 중요한 구실을 한다는 것이 인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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