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도 추운데 귀한 시간을 내주신 여러분, 정말 고맙고 저는 오늘 잘할 겁니다. 어제·오늘 제가 네 번의 공연을 하고, 이번이 다섯 번째 공연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아이고 ‘저것도 오래 됐는데 저래(저렇게) 하고도 오늘 소리가 나올란가 모르겠다’ 하는 분들이 있을 텐데,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제하고 오늘, 1부 때까지 목을 풀었습니다. 하하.”
‘가황(歌皇)’ 나훈아(78)가 58년 가수인생의 마침표를 찍었다. 나훈아는 1월 12일 오후 7시30분 서울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에서 시작한 전국 투어 ‘고마웠습니다(라스트 콘서트)’ 서울 공연 마지막인 5회차 공연을 끝으로 은퇴했다. 나훈아는 이미 회당 20곡 이상을 부르며 사흘 동안 4회차 공연을 치렀음에도 이날 공연에서도 지친 기색이 전혀 없었다. 단숨에 매진된 이번 서울 공연은 회당 1만2000명씩 사흘간 다섯 차례 공연에 총 6만 명이 운집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지막 콘서트 서두에 “절대 울지 않고 씩씩하게 더 신명 나게 잘하겠다”
지난해 발표한 곡 ‘아름다운 이별’ 부를 땐 무대 위에서 무릎 꿇고 오열
“살면서 어려웠지만 마이크 내려놓는 결심이 내 인생에서 최고 잘한 결정”
“이젠 안 해본 거 해보고, 안 먹어 본 거 먹어 보고, 안 가본 데 가보겠다”
▲ 나훈아는 1월 12일 오후 7시30분 서울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에서 열린 전국 투어 ‘고마웠습니다(라스트 콘서트)’ 서울 공연 5회차 공연을 끝으로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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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는 마지막 콘서트 서두에 “여러분 오늘 잘해야 되는 이유가 또 한 가지 있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저의 마지막 공연에 오셨다”고 인사했다.
그러면서 “이 공연을 시작하기 전 우리 스태프가 양쪽으로 줄을 쫙 서서 박수를 치는데 ‘느그들 이러면 내가 공연을 우째 하노’ 하고 뭐라 하긴 했지만, 절대 울지 않고 씩씩하게 더 신명나게 잘하겠다”고 다짐했다.
나훈아 일대기 정리한 무대
11년 만인 2017년 컴백 공연부터 이날까지 190회 공연을 했다는 나훈아는 “처음으로 해보는 마지막 공연이라 기분이 어떨지 진짜 몰랐다”고 털어놨다.
“그런데 그 많은 지방을 돌고 마지막에 서울로 와서 이 공연을 하는데 제가 지금 느끼고 있습니다마는, 말 한마디 한마디 할 때 좀 울컥울컥합니다. 특히 우리 스태프 얘기할 때 제가 울컥울컥합니다. 왜냐하면, 연출을 하다 보니까 제가 무섭게 하거든요. 틀리면 ‘그러지 말아야지. 우리가 힘들게 잘해야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이 꿈을 가지고 돌아간다. 그러니 우리가 힘들게 하자’고 하면서 힘들게 한 그런 것들이 막 주마등처럼 지나가서 그냥 막 울컥울컥합니다.”
2024년 4월 인천에서 출발한 투어의 피날레인 만큼 이날 공연 구성은 같았다. 나훈아의 가수 일대기를 정리하는 형식이었다. 기차가 달리는 영상이 상영됐는데 그가 데뷔하던 해인 1967년으로 시작해서 2024년 멈췄기 때문이다. 과소문 루머 관련 기자회견을 한 2008년부터 컴백 콘서트를 연 2017년까지 기간엔 기차가 수면 아래를 잠수하며 가로지르기도 했다. ‘11년간 가슴에 꿈을 찾으러 세상을 돌아다녔습니다’라는 자막이 그의 심경을 대변했다.
영상 속에서 기차가 역에 도착했고 이후 <고향역>을 시작으로 <체인지> <고향으로 가는 배> <남자의 인생> <물레방아 도는데> <18세 순이>까지 나훈아는 여섯 곡을 쉬지 않고 불렀다.
특히 <물레방아 도는데>를 부를 때는 1986년, 1996년 이 곡을 부르는 영상을 스크린에 띄워 과거 자신과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는 형식을 취하기도 했다.
곡마다 옷도 갈아 입었다. 무대 위 반투명 막 뒤에서 바로 갈아 입었는데 상반신 등근육질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번에도 <18세 순이>를 부를 땐 분홍빛 망사 상의에 치마를 입고 나왔다. “순이 찾아 가야 해”를 부르는 대목에선 플로어석을 뛰면서 누비기도 했다.
“생각이 난다/홍시가 열리면/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자신의 대표곡 <홍시>를 부르긴 전엔 “우리 어머니 실제 성씨가 홍씨”라고도 했다.
은퇴 무대에서 거침없는 발언
나훈아는 원래부터 사회·정치 가리지 않고 성역 없는 비판을 해왔다. 특히 언론 보도가 많았던 이번 은퇴 무대에선 거침없는 발언으로 가요계뿐만 아니라 정치·사회 영역도 뒤흔들어놨다. 첫날부터 12·3 내란, ‘윤석열 탄핵’ 정국과 맞물려 여야를 싸잡아 비판해 일부 정치권으로부터 양비론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나훈아는 한결같았다. 마지막 공연에선 정치권의 여러 지적에 재반박을 하며 더욱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갔다.
그는 “어떻게 하면 한 장면으로 내가 오래 한 걸 표현할 수 없을까? 고민을 한 게 이것”이라며 자신이 가수생활을 하는 동안 11명의 대통령이 바뀐 연표를 대통령들 사진과 함께 보여줬다.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윤석열 대통령까지 역대 11명의 대통령 사진을 한 화면에 띄운 것이다. 그러면서 역대 대통령과 친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나훈아는 “내가 대통령보다 절대 낫다는 얘기 아니다. 말이 그렇다는 얘기다. 11명이 바뀌는 동안 나는 계속 (노래를) 하고 있다고 지금 어갓장을 부리는 느낌이다”라고 설명했다.
“그 긴 세월 동안에 무슨 일이 없었겠습니까? 별의별 일들이 많았지요. 거기다가 저는 역대 대통령들과 사이가 좀 안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말을 안 들으니까. 그러니까 대통령쯤 되면은 ‘야, 오라 해라’ 이래 할 수 안 있습니까? 근데 나는 ‘와 부르노(왜 부르나)’ 그냥 그러니까 얘기가 안 되고. 그러니까 내가 같잖은지 그냥 취급을 안 하더라고요.”
나훈아는 “그렇게 해서 오면서 별의별 일이 진짜로 많았고 목숨까지 위태로웠을 때도 있었다”면서 “이걸 다 얘기하면 너무너무 오래 걸리니까“라며 대표적인 두 가지 에피소드를 전했다.
지난 1995년 일본 오사카 오사카성홀 공연에서 <쾌지나 칭칭나네>를 부르는 와중에 “독도는 우리 땅”을 외친 일화, 1997년 5월 방송된 SBS <나훈아 그리고 소록도의 봄>을 통해 소록도에 격리돼 있었던 한센병 환자 위로 공연 일화였다.
아울러 이번 은퇴 콘서트에서 자신이 한 발언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에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며 강도 높은 발언으로 다시금 정치권을 직격했다.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띠리 띠리띠리띠리 띠리 띠리띠리”라는 가사가 인상적인 공을 부를 때 특히 정치 얘기가 쏟아졌다. 여러 차례 반복된 ‘띠리~’는 나훈아의 답답한 심경을 대신 표현해주는 일종의 은어 역할을 했다.
나훈아는 이날 “저것들 지네나(자기들이나) 똑바로 하지, 어따(어디에) 대고 어른이 얘기하는데 ××하고 앉어 있어”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지금 갈라치기 하고 있는데 함부로 갈라치기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앞서 나훈아는 서울 콘서트 초반에 지금의 정국과 관련 “왼쪽이 오른쪽을 보고 잘못했다고 생×× 치고 있다. 니는 잘했나”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불렀다. 그러자 야권에서 “단순히 좌와 우가 싸우는 진영 논리로 지금의 현실을 이해해선 안 된다”고 나훈아를 비판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각이 있고, 저는 제 생각이 있으니 ‘여러분의 그 생각을 존중합니다’ 내가 이렇게 얘기하겠는데, 잘 새겨들어요. 제가 ‘왼쪽이 오른쪽을 보고 잘못했다’고 하는 것에 대해 막 뭐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니는 잘했나’ 했죠. 중요한 것은 ‘니는 잘했네’였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래 (오른쪽) 별로 잘한 거 없어, 그렇지만 니는 잘했나’ 이 얘기거든요. 이걸 갖고 또 딴지를 걸고 앉아서….”
“선거할 때 보소. 한쪽은 뻘겋고, 한쪽은 퍼렇고. 이것들이 ×× 짓을 하고 앉아 있는 거지. 여러분 안 그래도 작은 땅에 안 그래도 작은 땅에 이걸 나눠져 경상도가 어쩌니, 전라도가 어쩌니 ××들을 하고 앉아 있어요. 안 그래도 잘려 있는 나라에서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 2017년 컴백 공연부터 올해 1월 12일까지 190회 공연을 했다는 나훈아는 “처음으로 해보는 마지막 공연이라 기분이 어떨지 진짜 몰랐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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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막바지에 결국 눈물 펑펑
나훈아는 지난해 발표한 마지막 앨범 <새벽>에 실린 <아름다운 이별>을 부를 때 특히 목이 멘 듯했다.
“이제 그만 힘든 사랑을 내려놓고 싶어요/아마도 우리 여기까지가 인연이었나 봐요”라는 가사가 현재 그와 팬들의 이별을 대신했다. 객석에서 펑펑 눈물을 흘리는 관객이 공연장 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나훈아는 결국 막바지에 눈물을 쏟아냈다. 무대 위에서 무릎을 꿇고 오열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대표곡인 <사내>를 부른 뒤 국내에서는 <석별의 정>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이 흘러나왔다. 나훈아는 자신의 가수 인생 마지막을 배웅하는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눈물과 노래로 표현했다.
공연 초반 자신은 절대 울지 않고 더 씩씩하고 더 신명 나게 이날 공연을 끌고 나가겠다고 공언했던 나훈아는 실제 ‘나사모’ 등 팬들이 꽃다발을 전달하는 시간 그리고 스태프가 고생한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서 울컥하긴 했지만 눈물을 잘 참아냈다. 하지만 객석에서 손을 흔들며 자신의 삶도 응원하는 팬들을 지켜보면서는 흐르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
나훈아는 “살면서 어려웠지만, 마이크를 내려놓는다는 결심이 내 인생에서 최고로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여러분 집에 가시거든 아드님, 따님에게 정말 제가 미안하고 고맙고 애썼다고 꼭 전해주십시오. 저도 안 해본 거 해보고, 안 먹어 본 거 먹어 보고, 안 가본 데 가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일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은 장 서는 날 가서 막걸리 하고 빈대떡 먹는 것이다. 그간 구름 위에서 살다 보니까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들고 있던 마이크를 가리키며 “내 몸과 같은, 분신과 같은 마이크입니다. 여러분 이제 저는 마이크를 내려놓으려 합니다. 여러분이 노래를 불러주십시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고, 들고 있던 마이크를 드론에 실어 날려보냈다.
‘나사모’ 회원인 윤정(닉네임) 씨는 “올해가 데뷔한 지 58년이다. 60주년이 다가오는데, 조금만 더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올해가 광복 80주년인데 나훈아 오빠만큼 애국자도 없으니 올해 더 좋은 공연을 보여줄 수도 있고. 좋은 가수는 많지만 그만큼 무게감 있는 가수가 드물어 은퇴가 더 아쉽다”고 했다.
이날 나훈아의 모습은 10년은 더 노래를 해도 거뜬해 보였다. 목소리는 여전히 낭창낭창했고, 열다섯 번의 옷을 갈아입는 무대 위 강행군에도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반짝이는 의상, 흰색 수트도 기깔나게 소화했다. 팬들에게 서로 말을 놨으면 좋겠다며 이제 본인이 “맞제?”라고 물으면 “응!”이라고 답하라고 주문하며 웃기도 했다.
“할머니 팬이 ‘오빠’···정신 번쩍”
나훈아의 은퇴는 돌연 이뤄진 것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철저하게 계획됐다. 그는 이날 “마이크를 내려놓는다는 생각을 어제·오늘 한 게 아니고 6년 전 부산에서 공연을 끝나고 나오는데 팬들이 막 손을 흔들고 있을 때부터”라고 돌아봤다.
“어느 할머니 팬이 손을 흔들길래 제가 손을 흔들었더니, 저 보고 ‘오빠’라고 하시더라. 그때 제가 할배인 줄 알았습니다. 그 할머니 때문에 제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후 나훈아는 ‘내가 공연을 할 수 없을 만큼 힘이 모자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해왔다고 했다. 은퇴 생각은 그때부터 시작이 됐다.
나훈아는 “여러분 보시다시피 전 아직은 몇 년은 거뜬하게 해요. 제가 그만두는 게 서운해요? (관객들이 ‘네’라고 답하자) 그래서 그만두는 겁니다. 제가 그만두는데 ‘잘 가라이’ 하고 손 흔들면 얼마나 제가 마음 아프겠습니까?”라고 되물었다.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는 “나훈아는 굉장히 현실적이다. 무대에서의 몰입도가 대단한데 모든 활동은 사전에 철저하게 검토하고 계산한 뒤 진행한다. 은퇴 시기 역시 그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평론가는 특히 “은퇴 선언은 나훈아니까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짚은 뒤 “은퇴라는 건 사실 끝까지 활동을 잘 해온 위대한 가수들의 특권이다. 나훈아, 패티김 같은 분이 돼야 그 공연 타이틀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은퇴를 선언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하고 큰 용기를 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나훈아 이후 ‘가황’의 빈자리는 어떻게 될까. 박 평론가는 “가요계에 이런 말이 있다. ‘나훈아 이전에 나훈아 없었고 나훈아 이후에 나훈아 없다.’ 그의 빈자리가 크겠지만, 계속 스타가 등장하는 것이 우리 대중음악과 K팝의 힘이다. 또 다른 가수들이 많은 걸 보여주지 않겠나. 나훈아의 명곡은 계속 우리 곁에 흐를 것이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