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사건의 내막] 이형호 유괴 살인 사건

아이 목숨담보 44일의 협박…시신의 충격적 부검 결과

김범준 기자 | 기사입력 2018/12/11 [09:26]

[미제사건의 내막] 이형호 유괴 살인 사건

아이 목숨담보 44일의 협박…시신의 충격적 부검 결과

김범준 기자 | 입력 : 2018/12/11 [09:26]

대한민국 3대 미제사건 중 하나인 이 사건은 지난 1991년 발생해 2006년 영화 <그놈 목소리>를 통해 재조명 됐다. 9살 남자아이가 유괴됐고 이후 금품을 요구하는 남성의 집요하고 철저한 협박이 진행됐다. 경찰은 부모를 통해 금품을 주겠다며 범인을 유인하려 했지만 경찰의 실수 등으로 결국 실패했고, 아이는 44일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고 만다. 이후 납치 직후 아이가 숨졌음에도 범인은 부모에게 금품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돼 공분을 샀다. 전화를 걸어 부모를 협박한 범인은 아이 생모의 친척으로 분석됐지만 경찰은 친척의 알리바이와 증거 불충분으로 체포하지 못했다.


집에 들어가지 않던 형호…젊은 남자와 놀이터에서 사라져
30대 남성의 협박…카폰으로만 전화 걸며 정체 발각 경계
사건 43일 만에 시신 발견…이미 사망 했음에도 금품 요구
전화 음성, 아이의 생모 친척으로 분석됐지만 ‘증거 불충분’

 

▲ 이형호군과 범인 몽타주.     © 주간현대

 

지난 1991년 1월 당시 초등학교 3학년 故 이형호 군이 유괴 돼 44일 만에 한강공원 잠실지구 인근 배수로에서 시체로 발견돼 전국적인 이슈가 된 사건이다. 2007년에 개봉된 설경구, 김남주, 강동원 등이 출연한 영화 <그놈 목소리>가 이 사건을 토대로 제작됐다.

 

놀이터 사라진 아이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살던 이형호 군은 1991년 1월29일 오후 5시 30분경 아파트놀이터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후 행방불명됐다.


당시 형호 군의 한 친구에 의하면 아파트 앞 놀이터에서 등을 돌린 남자가 형호와 함께 있던 것을 목격했고, 약 10분 만에 돌아왔을 때 두 사람은 모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밤 30대로 추정되는 남자가 부모에게 아이를 찾고 싶으면 7000만원을 달라고 요구하며 협박 전화를 걸어왔다.


그런데 범인은 협박 전화를 처음 걸고 난 뒤 형호군 부모가 경찰에 신고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집으로 전화를 걸어 “XX경찰서입니다. 거기 있는 형사들 바꿔주십시오”라고 말해 계모가 그대로 대답할 뻔 했다가 수상히 여긴 경찰의 대처로 겨우 위기를 넘겼다. 당시 이형호의 부친 이우실씨는 형호군의 친모와 이혼 한 후 재혼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범인은 형호군의 부모가 경찰에 신고했을 경우를 대비해 철두철미하게 행동했다.


피해자 부모에게 승용차에 설치된 카폰을 사용하도록 하고, 김포공항과 대학로 등의 서울시내 곳곳을 약속 장소로 알려주며 이형호의 아버지에게 돈을 준비해 나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실제로 김포공항에서는 국내선 주차구역 2구역에 차를 세워둔 뒤 600번 공항버스를 타고 압구정 자택으로 돌아가라고 지시했으나, 차 뒷좌석에 누군가 타고 있었다는 핑계를 대며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아이의 부친에게 대학로에서 차를 세우고 건너편 빵집에 들어가서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라는 지시를 내려놓고는 집에 있던 형호의 계모에게 경찰을 왜 불렀느냐며 집요하게 추궁했다.


이에 계모는 삼촌이 같이 나간 것이라고 둘러댔지만, 범인의 추궁 끝에 경찰의 개입을 반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범인은 한 동안 형호의 부모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7000만원 요구


범인은 직접 돈을 받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 은행 계좌를 개설해 돈을 받으려 했다.


당시는 신분증 없이 가짜 신분으로 계좌 개설이 가능했기에 범인이 은행에 계좌를 개설한 뒤 특정 장소에 계좌번호를 적은 메모를 남겨 입금을 지시하는 ‘무인 포스트’ 방식이었다.


하지만 은행 직원들이 사고 계좌임을 보고 머뭇거리자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범인은 도주했다. 불행히도 당시 해당 은행지점에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았고, 통장 개설 신청서와 메모지에도 지문이 없었다.


돈을 받는 데 실패한 범인은 같은 해 2월14일 밤 최후통첩을 했다. 통첩을 받은 곳에 형사들은 잠복했지만 무전기 의사소통 과정에서 위치를 혼동해 범인이 돈을 집어갈 동안 형사들은 우왕좌왕하고 말았다.


형호군의 아버지에게 범인은 한강 둔치 양화대교 인근 철제박스 위에 돈뭉치를 올려놓으라는 메모를 남겼고, 형호 군 아버지는 경찰과 의논한대로 진짜 돈 10만원에 가짜 돈 뭉치를 섞어 철제박스 위에 놓아 뒀다.


그러나 형사들이 서로 무전을 주고받던 과정에서 박스 위치를 혼동했고, 그 사이 범인은 돈뭉치를 갖고 사라져 버린 것.
돈을 가져간 범인은 전화를 걸어 “가짜 돈이 잔뜩 섞여 있다”며 “아들을 되찾고 싶지 않은 것으로 알겠다. 단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것은 감사하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연락을 끊었다.


범인의 마지막 통화로부터 한 달 후인 1991년 3월13일 한강공원 잠실지구 터널 옆 배수로에서 아이의 시체가 발견됐다.


부검 결과 위에 남아있는 음식물이 실종 당일 친구 집에서 먹은 음식으로 확인된 것. 또한 시신에는 폭행당한 흔적이 있었으며 코와 입이 스카프 등으로 묶여 있던 형호군의 사인은 질식사로 밝혀졌다. 유괴 당일이나 직후에 폭행을 당하고 살해당했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범인이 이미 아이를 죽인 상태에서 계속 금품 요구 협박 전화를 한 것으로 밝혀지자 국민들은 대단히 분노했다.

 

▲ 이형호군의 사체가 유기된 장소.     © SBS 영상 캡처

 

몽타주 작성됐지만


이후 범인이 계좌를 개설하며 대화를 나눈 은행원의 기억을 토대로 몽타주가 작성됐고 공개수사로 전환됐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그러나 국과수의 전화 속 범인 음성의 성문 분석 결과, 아이 친척인 이상재의 성문과 완전하게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상재는 이형호의 생모쪽 친척으로 이우실과 생모의 이혼 당시 생모 편에서 대립해 이우실과 사이가 아주 나빴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당시 하던 일들이 잘 풀리지 않아 돈을 빌리고 다닐 정도로 자금 사정도 좋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유괴 후 전화를 걸었던 범인은 아이의 생모와 살고 있는 형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아이의 조부가 자산가이므로 돈을 충분히 줄 수 있지 않느냐고 묻는 등 가족, 친척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사실들을 많이 알고 있어 이상재에 대한 의심은 증폭됐다.


그 외에도 이상재가 범인으로 의심될 만한 정황들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범인이 개설한 은행 통장 명의가 이상재의 주변 인물들로 밝혀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상재는 서울의 공중전화를 통해 협박 전화가 걸려온 날, 경주에 있었다며 당시 고속도로 통행 영수증을 제시했고 이후 경주에 머문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그가 경주에서 전화를 걸고 서울의 공범이 이를 이형호의 집에 연결해 알리바이를 조작할 수도 있었다. 특히 이상재는 대학에서 전기 통신을 전공했기에 이 같은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었다.


그는 다른 날의 기억은 흐린 반면 사건 당일 일정만 뚜렷이 기억하고, 여러 물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추가적인 증거를 확인하지 못하고 수사는 원점으로 되돌아 온 것으로 알려진다.


이외에도 당시 사건을 담당한 경찰은 범인을 검거할 좋은 기회를 여러 차례 날렸다.


시체 부검 결과 위에 남아있던 잡곡과 나물에 착안, 송파 및 강남지역 보리밥 식당을 수사했는데, 아이가 실종 당일 친구 집에서 잡곡밥과 나물을 먹은 사실 등 행적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헛다리만 짚기도 했다.

 

안타까운 실수들


결국 범인을 검거하지 못했지만, 워낙 죄질이 나쁜 살인 사건이었기에 여론과 언론의 관심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전에도 몇 차례 이 사건을 다뤘던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지난 2011년 세 번째로 사건을 다루며, 범행 수법 등을 통해 범인이 최소 3명 이상이라는 가설을 제시하기도 했다.


범인이 ‘저희’ ‘우리’ 등의 단어를 자주 사용했으며, 무인 포스트 방식에서 타인에게 들키지 않고 이우실만 메모지를 발견하게 하려면 때 맞춰 메모지를 갖다놓는 인물이 따로 있어야 한다는 점, 이우실의 동선을 파악하는 감시 역할도 따로 있어야 범인과 접선 과정이 제대로 진행된다는 점, 목소리 심리 분석 등이 근거로 제기됐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46개의 유괴범의 녹취를 음성전문가들과 음성보안업체 등을 통해 검증한 결과, 범인의 목소리는 1명으로 판독됐다. 그러나 음성녹취록을 토대로 범죄심리학 교수들이 분석한 결과 부모와 통화한 유괴범은 사주에 의해 협박을 한 종범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또 부모들이 놓은 협상금을 가져간 흔적들을 살펴봤을 때 유괴범이 3명이어야 최적이라는 결론도 얻어냈다.


아울러 제작진은 목소리를 통해 연령대를 분석해 범인의 나이가 26살 정도일 것으로 결을 냈고 20년이 지난 목소리 속 범인의 음성과 얼굴 하관, 몽타주의 얼굴도 재연해냈다.


형호군의 부모에게 60여차례나 협박 전화를 걸었던 범인은 국과수 분선 결과 서울·경기권 출신이며 30대 전후의 남자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었다.


성격이 차분하고, 냉정하며 단어의 구사능력을 감안할 때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도킹, 디케팅 등 일상적으로 잘 쓰지 않는 전문용어를 사용하고 영어 발음이 정확했다.


그리고 “아무튼 말입니다”, “~ 가지구요”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또한 세세하고 설명적인 어투, 마치 회사 상사를 대하듯 흥분한 상태에서도 존칭을 사용했다.


형호군의 부친은 “그 놈의 (전화 통화)상 목소리를 수백 번도 넘게 들었다. 목소리만 직접 들어도 범인인지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아울러 협박전화를 한 범인과 동일인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마지막으로 돈을 받기 위해 직접 메모를 한 범인의 필체도 남겨졌다.


첫째, 모음과 받침 ‘ㅇ’을 붙여 ‘6’자로 보이게 글씨를 썼다. 둘째, ‘ㄹ’을 ‘2’자처럼 휘갈겨 썼다. 셋째, ‘ㅁ’의 받침 사이를 띄워서 썼다. 넷째, ‘ㅈ’을 ‘2’자처럼 보이게 끝을 올려 쓰는 성향이었다.


이같은 범죄를 저지른 범인들의 정체는 피해 가족들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알아내고 싶어한다.

 

penf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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